공항 패션 가이드

패션 브랜드들의 홍보를 위한 블루 오션이자 리얼 스타일을 어필하기 위한 셀러브리티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 바로 공항이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나는 공항 패션에 대해 언급하기에 매우 부적격한 사람이었다.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조차 무방비 상태로 떠나곤 했다. 남들 다 들고 타는 목베개나 비행 시 여자들이 챙기는 어메니티도 소지하지 않았음은 물론, 옷도 회사 갈 때 입는 옷과 다를 바 없이 입었다. 신축성이 없는 생지 데님에 높은 굽이 장착된 데다가 한번 신고 벗으려면 꽤나 수고로움을 요하는 레이스업 샌들을 신고 비행기에 오르는 식이었다.

그러던 작년 밀라노 출장길에 나는 타이트한 진에 무릎을 덮는 가죽 사이하이 부츠를 신고 비행기에 오르는 기행(?)을 저질렀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는 왜 그렇게 멋을 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사실 이건 일종의 게으름이었다. 편안하면서도 후줄근하지 않고 배낭여행을 떠난 대학생처럼 보이지 않는 ‘공항 패션’에 대해 생각하기에 나의 몸과 머리는 너무 게을렀다. 문제는 내릴 때 생겼다. 오랜 비행에 부을 대로 부은 다리가 부츠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 퉁퉁 부은 다리를 간신히 욱여 넣은 가여운 모습으로 짐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맞은 편에서 여유롭게 짐을 찾는 금발의 외국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패션업계 종사자로 추정되는 그녀의 박시한 캐멀 컬러 코트 사이로 언뜻 옅은 그레이 컬러의 스웨트셔츠가 보였다. 하의는 옆선에 하얀 줄이 들어간 네이비 컬러의 파자마 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여기에 납작한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고 팔에는 캔버스 소재로 추정되는 커다란 백이 들려 있었다. 세련되고도 편안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나와는 완전한 대조를 이뤘고 그날 이후 나는 공항 패션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란에서 쉽게 눈에 띄는 국내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은 두 가지가 전부인 듯했다. 공항이라는 장소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드레스업했거나, 잠에서 갓 깬 듯한 ‘추리닝’ 차림. 그 와중에 가수이자 배우인 크리스탈과 배우 배두나의 공항 패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먼저 크리스탈은 나이에 맞게 캐주얼하면서도 심플한 의상을 입는데, 낙낙한 티셔츠에 셔츠를 레이어드하거나 쇼츠를 즐겨 입었다. 배두나는 조금 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스타일로, 편안해 보이면서도 보이시한 룩이 인상적이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차림이었다.

하지만 공항 패션에 본격적으로 점수를 매기기 전,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유가’와 ‘협찬’이 내 판단력을 흐렸다. 비공식 일정이 아니라면 거의 협찬이 들 어간 걸로 봐도 무방하다는 한 스타일리스트의 말이 맴돌았다. 특히 대부분의 신인들은 회사나 스타일리스트의 입김이 작용한 협찬 의상을 입고 공항을 찾는다고. 그렇다면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은 리얼웨이 룩을 가장한 가짜인 걸까? “완전 가짜라고는 할 수 없어요. 과거에 비해 브랜드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게 이미지거든요. 물론 네임 밸류가 중요하긴 하지만 브랜드랑 어울리지 않으면 협찬하지 않는 추세예요. 아무리 톱 배우라도 말이죠.”

최근 한 여배우의 공항 패션으로 수익을 톡톡히 봤다는 럭셔리 브랜드의 홍보 담당이 말을 이어 나간다. “공항 패션은 자연스러움이 생명이에요. 연예인들의 멋진 모습은 시사회나 시상식에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연예인의 평소 옷차림이기 때문에 협찬 받은 티가 나거나 이질감이 들면 의미가 없어요. 패션 화보와 달리 ‘풀착장’이 외려 꺼려지는 이유죠. 그렇기 때문에 협찬을 진행할 때 연예인 본인의 옷처럼 소화 가능한 아이템을 제안하고 가짓수도 한두 가지로 제한해요.” 협찬에 너무 배신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공항 패션 - 하퍼스 바자

리얼웨이 스타일처럼 쿨한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공항 패션

공항 패션 - 하퍼스 바자

적당히 포멀하면서도 캐주얼한 차림으로 칸을 찾은 소피아 코폴라

그렇다면 평소 스타일리시한 공항 패션으로 화제가 되어온 해외 셀러브리티의 룩을 살펴볼 차례다. 지난 5월 칸에서 열린 영화제를 위해 입국한 수많은 배우와 모델, 셀러브리티의 모습이 공항에서 포착됐는데, 개인적인 베스트 드레서로 소피아 코폴라샤를로트 갱스부르를 꼽고 싶다. 소피아 코폴라는 파자마 팬츠에 짙은 네이비 컬러의 면 티셔츠를 입고 레드 컬러의 샤넬 백과 플랫 슈즈를 매치했다. 한편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짧은 헤어와 잘 어울리는 보이시한 스타일이 특징. 적당히 늘어진 면 티셔츠에 대충 걸쳐 입은 실키한 점퍼, 여기에 넉넉한 실루엣의 팬츠를 입고 스니커즈로 마무리했다. 물론 이들의 협찬 여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특정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 같은 액세서리가 아닌 각자의 퍼스낼러티가 도드라졌다는 점이다.

공항 패션 - 하퍼스 바자

트렌디한 베트멍의 챔피온 트레이닝 룩으로 공항에 등장한 켄달 제너

공항 패션 - 하퍼스 바자

평소 스포츠 브랜드의 의상을 즐겨 입는 벨라 하디드의 공항 룩

지금 최정상에 있는 모델 벨라 하디드켄달 제너는 평소 스포츠 브랜드에서 나오는 트랙 팬츠와 레깅스, 스웨트셔츠를 즐겨 입기로 유명하다. 이들의 스타일은 공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대신 슈즈나 백, 선글라스 같은 액세서리로 캐주얼한 무드를 중화시키는 식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스타일 팁을 덧붙이자면 주름이 잘 가지 않는 스포티한 소재를 선택할 경우 컬러를 모노톤으로 고르면 한결 포멀해 보인다. 롱스커트나 원피스도 좋은데 신축성이 좋은 저지나 니트 소재, 혹은 소재 자체에 주름이 져있는 아이템을 선택할 것.(<바자> 패션 디렉터가 출장 갈 때 선택하는 아이템 역시 플리츠 플리즈의 팬츠다!) 그리고 발이 부을 경우를 대비해 뒤가 뚫려 있는 뮬 형태의 슈즈를 권한다.

아무리 멋지게 차려입었다 한들 시간, 장소, 상황과 어우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걸 작년 출장을 통해 깨달았다. 바야흐로 휴가 시즌이다. 비행에 적합하면서도 개성을 살린 의상을 선택한다면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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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etty Images(인물), Kim Doojong(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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