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만난 황록

한국인 최초로 LVMH 프라이즈 파이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특별상까지 거머쥔 록(Rok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황록을 런던에서 만났다.

“우리는 텍스타일도 직접 해요. 여기서 프린트도 직접 하고, 자수도 놓죠.” 런던에서 만난 황록은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록(Rokh)’을 설명하면서 ‘우리 브랜드’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의미한다. 그중에는 브랜드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아내 스텔라 임도 있다. 록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마치 할리우드 명예의 길을 걷듯 반짝이는 이름들로 눈부시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고(졸업 쇼에서 상도 받았다), 피비 파일로 시절의 셀린 디자인 팀을 거쳐, 루이 비통, 클로에에서 실력을 쌓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난 6월, 그의 특급 경력에 또 하나의 이력이 채워졌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LVMH 프라이즈의 파이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특별상까지 수상한 것. 상금 약 1억8천만원이 주어지는 2등격의 상이었다. 물론 모든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러나 황록은 그림자까지 빛의 일부로 여기는 노련한 크리에이터였다.

LVMH 프라이즈 특별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록은 아는 사람만 아는 조용한 브랜드였다. 이 기회를 통해 한국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좋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도 늘었다.

경쟁 과정은 어땠는가?

치열하고 촉박했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행사는 본선과 결선으로 나뉜다. 첫날 준비하고, 다음 날 작품 설명을 하는데 그날 하루에만 패널과 기자를 포함해서 200명 정도를 만난다. 결선 때도 방식은 같지만 좀 더 심층적인 인터뷰를 한다. 솔직히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한쪽 벽면을 따라 정갈하게 걸려 있는 황록의 최근 컬렉션 피스들.

런던에 위치한 록(Rokh) 스튜디오의 모습.

LVMH 프라이즈 수상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선택받은 것에 감사하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같은 평소 존경했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내 작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으며 무엇보다 해오던 일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고(故) 루이스 윌슨 아래에서 공부했다. 그녀가 해준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은 무엇인가?

루이스 윌슨 선생님에게는 필터가 없었다. 본인 마음에 들 때나 안 들 때나 여과 없이 얘기하셨다. 험한 말을 많이 하셨지만 따뜻하신 분이었다. 그분은 늘 “패션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면 절대 패션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디자이너가 200시간 걸려 창작을 했어도 이미 6달 전에 누군가 했다면 아무 의미 없지 않을까? 이게 가장 큰 교훈이다. 그래서 나도 늘 패션 뉴스를 보고, 정보 업데이트를 한다.

졸업 후 피비 파일로와 셀린 디자인 팀에서 일했다. 그때 경험을 말해달라.

피비가 팀을 꾸릴 때 기성복 디자이너로 들어갔다. 프리 컬렉션과 컬렉션을 준비하고 쇼를 할 때는 피비를 어시스트하고 파리 컬렉션에 함께 갔다. 셀린에서 일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굉장히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작은 것 하나까지 완벽해야 한다. 그렇다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혼자 깨달아야 한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컬렉션 하나를 위해 팀 전체가 함께 달려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진다.

영상으로 제작된 록의 첫 번째 컬렉션.

록의 여성상이 느껴지는 봄/여름 시즌의 컬렉션 이미지들.

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나이도 먹고, 결혼도 했고, 더 늦으면 못하겠다 싶었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나와 아내만 있었다. 첫 컬렉션 때는 작업실 없이 집에서 혼자 총 170벌을 만들었다. 그래도 적다고 생각했다. 다른 브랜드는 200벌 이상 만드니까.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다 못 보여주고 다 할 수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매번 컬렉션이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즐기면서 하려고 했다. 첫 컬렉션에 선보인 더플코트는 지금까지 우리 브랜드의 시그너처 디자인이다.

록의 미학을 설명한다면?

클래식한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시대나 연령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다. 파격적이기도 하다. 기본 트렌치코트이지만 뒤쪽에 슬래시가 있다거나, 위는 트렌치코트이지만 아래로 내려가면 주름이 잡혀 있는 등 변형이 있다. 내 디자인은 형태에 변형이 많은 편이다. 단추를 풀거나 끼워서 실루엣을 바꿀 수 있다. 카고 팬츠이지만 단추를 풀면 플레어가 풀리면서 스트레이트 실루엣으로 바뀌는 식이다.

디자인 과정이 궁금하다.

피팅 중에 디자인을 다시 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나는 이미지를 걸어놓거나 자료를 보면서 디자인하지 않는다. 손으로 촉감을 느끼고, 눈으로 보면서 여러 번 디자인한다. 옷도 여러 번 만든다. 최소 5번부터 많게는 20번까지 다시 만든다. 일부러 못생기게도 만들고, 더 예쁘게도 만들어본다.

컬렉션에 주제가 없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상을 표현한다. 감성적으로는 어리고, 취향은 성숙한 여성이다. 비디오나 사진을 통해서 나의 여성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부러 스토리텔링을 자세히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말 없이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록의 트렌치코트 룩을 선택한 네타포르테의 리테일 패션 디렉터 리사 에이컨.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인 여성스러운 디테일의 가죽 드레스와 록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더플코트 룩.

첫 번째 컬렉션은 영상으로 제작했다. 촬영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던데?

런던 외곽에 있는 학교를 통째로 빌려서 총 이틀 정도 촬영했다. 규정이 까다로워 허가도 간신히 받았고 전교생이 수업하는 중에 조용히 촬영해야 했다. 원래 쇼를 안 하는 대신 첫 번째 컬렉션 전체를 보여주려고 제작한 영상이라 굉장히 많은 수의 모델이 참여했다. 촬영장 세팅도 쇼만큼 컸다. 그래서 구경하러 나오는 학생들을 통제하느라 애먹었다. 전체 영상은 나중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공개할 예정이다.

함께 일하는 팀을 소개한다면?

프리랜서 등 외부 인력 10여 명을 포함해 20여 명이다. 다른 패션 하우스처럼 부서가 따로 있다. 디자인, 생산, 프린트, 아틀리에, 세일즈, 마케팅, PR팀으로 나뉜다. 모든 팀원이 여성이다. 스타일링과 피팅도 여기서 한다. 여성복을 만들지만 내가 입어보지 못하니까 팀원들이 입어보고 의견을 말해준다. 길이가 너무 길거나 짧거나 등등 의견을 듣고 생산에 반영한다. J.W 앤더슨에서 온 친구도 있고 다들 경력이 화려하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런던에서 가장 큰 브랜드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채용도 까다롭게 한다. 인성을 중점적으로 본다.(웃음) 같이 일해서 즐거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다.

연도 없이 시즌만 표시하는 라벨이 독특한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가?

20대 초반에 옷을 모았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오트 쿠튀르 옷을 수집했는데 옷마다 제작년도가 적혀 있다. 내가 만든 옷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옷 같으니까.

미래의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록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스트리트 웨어가 강세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클래식하고 기본적인 여성복을 만들고 싶다. 우아하고 섬세한, 정통의 패션을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진짜 잘 만든 수트나 트렌치코트는 누구나 한 벌쯤 갖고 싶지 않은가.

곧 첫 번째 쇼를 한다. 준비는 잘 되어가는가?

아직 구상 중이다. 파리에서 열릴 것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결정된 것은 없다. 우리 브랜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에센스가 담긴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덜 예쁘고 덜 완벽한 모델들을 보게 될 것이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