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에이징

노화는 더 이상 회피해야 할 현상이 아니다. 패션계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나이 든 여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시니어 모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대 못지않은 아름다운 몸매로 온라인 쇼핑몰 ‘더드레슬린’과 속옷 브랜드 ‘랜드오브우먼’의 공동 작업에 참여한 모델 겸 사진작가인 61세의 야스미나 로시(Yazemeenah Rossi)

이달 <바자> 곳곳에서는 친숙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커버에서부터 어느덧 50대를 앞둔 슈퍼모델 크리스티 털링턴이 세월이 비껴간 듯 여전히 아름다운 몸과 기품이 넘치는 얼굴, 한결 온화해진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열린 2017 S/S 보테가 베네타의 런웨이에서 지지 하디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등장한 로렌 허튼은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24 Hours’ 칼럼에서, 1980년대 미국에서 하이패션 모델로 활동하다 올해 62세의 나이로 다시 모델 활동을 시작한 우노 초이는 뷰티 인터뷰 지면을 통해 나이를 초월한 아름다움과 지혜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니어 모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젊은 모델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로렌 허튼의 아름다움

시니어 모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 S/S 발렌티노 캠페인을 통해 기품 있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 크리스티 털링턴

이달 아름답게 나이 든 ‘시니어’들이 <바자>의 페이지를 채운 것처럼 2017년 패션은 아름답게 나이 든 시니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몇 해 전 불어닥친 이른바, ‘시니어 시크’가 한 시즌의 유행일 것이라는 우려와 다르게 이번 시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점은 과거 시니어 모델들이 ‘빈티지 패션’ ‘그래니 시크’ ‘에이지리스 뷰티’ 같은 특정한 컨셉트나 캠페인을 위해 영감을 주거나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적 요소로 존재했다면, 이번 시즌 런웨이와 광고 캠페인을 종횡무진하는 시니어들은 패션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아름다움의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낡거나 익숙해지는 순간 도태되어버리고 오로지 젊음과 신선함에만 집착하는 변덕스러운 패션의 특성, 몇 시즌째 런웨이를 휩쓸고 있는 동유럽발 유스 컬처를 떠올린다면 이는 꽤 놀라운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과 역사의 가치를 존중하고 미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선구적인 시선의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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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데뷔한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는 지난 2월 86세의 나이로 초 페이(Cho Pei)의 쿠튀르 컬렉션과 베트멍 런웨이에 등장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는 하우스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1980년 로렌 허튼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속 그녀가 든 인트레아토 클러치를 재해석해 그녀에게 선사하는 동시에 런웨이 위로 초대했다. 73세의 나이에 런웨이에 선 로렌 허튼이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찌릿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녀가 쌓아온 자신만의 역사, 세월이 깃든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줄 수 있는 울림이었다. 뎀나 바잘리아의 2017 F/W 컬렉션에는 1930년생으로 올해 86세가 된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가(Carmen Dell’Orefice)가 우아한 은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런웨이에 등장했다. 1920~50년대 <하퍼스 바자> 커버를 장식했을 당시의 젊은 시절 모습과는 또 다른 견고하고 진실된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성의 경계를 부수고 과거와 현대의 것을 조합하는 데 탁월한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 역시 로에베의 2017 S/S 광고 캠페인 모델로 샬롯 램플링을 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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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리의 란제리 광고에 등장해 섹시함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56세의 모델 머시 브루어

한편 뉴질랜드의 란제리 브랜드 로운리(Lounly)는 2017 F/W 시즌 56세의 모델 머시 브루어(Mercy Brewer)를 발탁해 화제가 되었다. 20대 모델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표정과 포즈로 관능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그녀는 아름다움과 노화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롭고 유쾌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름다움과 패션 트렌드는 항상 변화를 겪었어요.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곤 하죠. 이제는 노화한 여성의 아름다움도 비출 때가 왔어요.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미래에서 찾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노화는 이에 따르는 손실과 손상에 대한 보상이 분명해 어떤 면에서는 무척 달콤하죠!” SNS상에서도 시니어들이 선전하고 있다. 전직 모델로 활동했고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면서 ‘크림슨 캐시미어’라는 브랜드를 운영 중인 린다 브이 라이트(Linda V Wright)와 어번 그래니를 대표하는 뉴욕의 멋쟁이 할머니 린다 로딘(그녀는 더로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했다) 등은 디지털 세계에서 ‘베스트 시니어 인스타그래머’로 수많은 팔로어와 콘텐츠를 양산해내고 있다.

시니어 모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60세 이상 세련된 시니어들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집 <어드밴스드 스타일>

그렇다면 패션계가 시니어들에게 주목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인한 노령 인구의 증가, 그리고 세련된 시니어들이 구매력 있는 고객층으로 떠올랐다는 사실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젊음은 도저히 견줄 수 없는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니어들의 스트리트 패션 사진집 <어드밴스드 스타일>의 사진작가 아리 세스 코헨이 남긴 인터뷰가 보다 이상적인 답을 들려준다. 거리에서 만났거나 행사장에서 만난 60세 이상의 스타일리시한 시니어의 근사한 모습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아리 세스 코헨은 시니어로부터 패션에 대한 아이디어뿐 아니라 현명하고 멋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배웠고 더 많은 사람과 자신이 느낀 바를 공유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밝혔다. 그가 만난 아름답게 나이 든 시니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되는 규칙이 있다. 외면에 집착하기보다는 내면을 사려와 배려, 사랑, 따뜻함, 나눔 등으로 가꾸려 노력하는 것, 유행에 편승하거나 명품에 집착하지 않는 것, 나이와 과거를 붙들어 두지 않는 것,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이달 뷰티 인터뷰 촬영장에서 만난 예순두 살의 모델 우노 초이는 위의 규칙들로 완성된 하나의 답안과도 같았다. 소녀 같은 천진한 웃음과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현장의 모든 스태프에게 귀감이 된 그녀가 30대 초반의 에디터에게 남긴 조언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뚜렷한 색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타인, 혹은 다른 부차적인 것들이 나를 컨트롤할 수는 없어요. 내가 오랫동안 고수해왔던 긴 머리나 오늘 바른 레드 립스틱 때문에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나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있다면 뭘 해도 괜찮아야 해요. 그렇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조차 필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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