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얼리의 세계, 데미 파인

덧없는 유행에서 벗어난 감각적이고도 합리적인 신(新)부류가 등장했다. 데미 파인(Demi-fine) 주얼리의 세계.

DEMI-FINE

(오른손) 검지에 낀 커다란 열매 반지는 Panache,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반지는 John Hardy, 토끼 귀고리는 1백만원대 Prada, 중지에 낀 양식 진주 반지는 45만원 Appels & Figs by BOONTHESHOP, 그물 모티프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Ginette NY, 약지의 반달 모양 반지는 62만원, 커다란 프레나이트 원석을 세팅한 반지는 52만원 모두 Jem & Pebbles, 새끼손가락의 스퀘어 반지와 십자가 모티프 반지는 Ginette NY.
(왼손) 새끼 손가락에 낀 지르코니아 반지는 Minetani, 빈티지한 반지는 52만원 Jem & Pebbles, 약지에 낀 사각 지르코니아 반지는 90만원 Minetani, 14K 로즈 골드의 샴페인 문 반지는 58만8천원, 옐로 골드 반지는 58만8천원, 실버 반지는 18만8천원 모두 Hyéres Lor, 중지에 낀 블랙 오닉스 디스크 반지는 1백30만원 Ginette NY, 꼬임 디테일의 실버 반지는 65만원 Jon Hardy, 검지의 마퀴즈 핑크 반지와 라운드 옐로 반지는 모두 Minetani, 빈티지한 스퀘어 반지는 29만8천원 Jem & Pebbles, 귀고리는 Prada.
※가격이 표기되지 않은 제품은 모두 가격 미정임.

몇해 전 결혼을 준비하며 남편에게 선물받았던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약지 위에 어엿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몇 년째 화장대 보석함 안에서 고이 잠자고 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상에서는 불편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 아마 수많은 기혼자들이 이에 공감할 것이다.

파나쉬의 주얼리 디자이너 차선영을 만나기 위해 청담동의 부티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다이아몬드 링이 눈에 띄었다.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지니고 있던 다이아몬드나 루비, 에메랄드 같은 보석들을 리세팅하는 고객들이 많아요. 아무리 좋은 원석일지라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오래도록 질리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취향과 스토리가 깃든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나는거죠.” 그녀가 디자인하는 ‘파나쉬 차선영(Panache Chasunyoung)’ 레이블은 뉴욕 바니스에 바잉되어 소개되고 있다. 흔히 패션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코스튬 주얼리와는 좀 다르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 주얼리는 시즌을 타고, 유행이 시들해지면 질리게 마련. 매일 착용하는 주얼리는 분명 달라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파인 주얼리를 쉽게 살 수도 없는 입장이고. 그런 여심을 정확하게 읽은 주얼리 업계의 움직임이 바로 ‘데미 파인(Demi-fine)’ 주얼리인 것. 데미 파인 주얼리는 이제 완벽하게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쉽게 설명하지만 데미 파인은 ‘패션’과 ‘파인 주얼리’의 결합이다. 코스튬과 파인 그 사이의 틈새를 완벽하게 파고든 것. 텅스텐, 세라믹, 스털링 실버부터 14~18K 도금 그리고 9K, 10K 골드 등과 함께 귀중석이나 천연석을 사용하기도 한다.

2016년 네타포르테는 주얼리 섹션에 ‘데미 파인’을 추가했고 현재는 3배 이상 성장한 주요 카테고리로 떠올랐다. 네타포르테의 여성 패션 글로벌 바잉 디렉터 엘리자베스 폰 데어 골츠는 “고가의 파인 주얼리를 사는 사람들은 중대한 소비를 결정하는 겁니다. 반면 데미 파인 주얼리를 사는 사람들은 장신구를 사고 싶은 거죠.” 트렌드 리서치 회사인 스타일러스(Stylus)의 패션 디렉터는 “지난 몇 년간 데미 파인 주얼리 마켓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0~30대 여성들을 럭셔리 사냥꾼이라 부르죠. 과거의 소비자들이 잇 백에 열광했다면 현재는 파인 주얼리로 이동하고 있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어요. 반영구적인 패션 아이템에 빠져들고 있는 겁니다.” 2014년 론칭한 주얼리 브랜드 애니사 케미시(Anissa Kermiche, 네타포르테와 레인 크로퍼드에서 만날 수 있는) 전년 대비 25% 매출이 증가했고, 싱글렛 반지와 진주 귀고리 등 고전적인 아이템뿐 아니라 파격적이고 과감한 디자인도 인기가 높다고. “파인 주얼리보다 트렌디한 감성인 데다 품질 또한 오래 착용해도 변함없는 좋은 퀄리티이기 때문이죠. 고급 보석과 스트리트 패션 사이에 위치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의 말처럼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는 온라인에서만 감지되는 것은 아니다. 런던의 백화점 셀프리지스는 2018 S/S 시즌부터 데미 파인 주얼리 카테고리에 투자하고 알리기에리, 안네리스 미켈슨, 샬롯 체스네이스와 같은 브랜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런 데미 파인 주얼리는 보다 현실적인 가격이 장점이죠. 고객들에게 희망을 제공하는 겁니다. 3백~4백 파운드에 이르는 가격대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쇼핑할 수 있는 카테고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셀프리지스의 액세서리 구매 매니저 조시 가드너의 말이다. 독창적인 재료와 디자인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올해 초, 골드 코인 목걸이 열풍을 일으킨 알리기에리(Alighieri)는 데미 파인 주얼리의 대표 브랜드. 창업자 로시 마흐타니는 매치스 패션과 네타포르테를 통해 50만 파운드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고, 1백 파운드에서부터 1천2백 파운드에 이르는 폭넓은 가격대로 선보이고 있다. “대중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스타일에 대한 열망을 유지하려고 해요.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얼리란 개인적이면서도 착용자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영원한 소장품이 될 수 있거든요.” 내추럴 진주로 유니크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마리아 블랙(Maria Black) 역시 주목할 만한 브랜드다. “소비자들은 이야기, 가치, 스타일 등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원해요. 그래서 주얼리가 아닌 패션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매건 마클리가 사랑하는 런던 브랜드 미소마(Missoma)는 빈티지한 골드 주얼리가 대표적이다. 베이식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며, 최근 패션 블로거 루시 윌리엄스와 함께 컬래버레이션한 컬렉션도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도 눈에 띄는 데미 파인 주얼리 브랜드가 있다. 남프랑스 황금의 섬, 이에르의 다채로운 빛깔을 표현했다는 브랜드 이에르 로르(Hyéres Lor). 10K나 14K 골드에 라피스라줄리, 추만옥, 호박, 자마노, 블루 아게이트, 캐츠아이 등 다양한 컬러의 젬스톤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 볼드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에 이국적인 감성을 더했으며, 가격대 역시 합리적이다. 파리를 비롯해 홍콩 레인 크로퍼드에도 진출하며 주목할 만한 브랜드로 성장 중이다.

단순하면서도 대담하고, 독특하지만 클래식하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유니크한 소재와 동시대적인 디자인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춘 나만의 작품이자 작은 보석, 데미 파인 주얼리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