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링의 힘

평범함을 비범하게 만드는 스타일링의 힘.

지난 2월 런던 컬렉션에서 인상적이었던 쇼 중 하나인 토가는 코스튬 디자이너 출신의 야스코 후르타가 1997년에 론칭한 브랜드로 국내에선 의상보다는 커다란 버클 장식의 웨스턴 앵클부츠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을 통해 보는 컬렉션은 항상 기대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막상 매장에서 의상을 보면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개인적으로도 아이러니한 브랜드였다.

지난달 처음 컬렉션 현장에서 토가의 의상을 지켜본 후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모델이 입은 의상에는 상반되는 소재, 두께, 컬러, 볼륨이 공존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모든 요소가 굉장히 치밀한 계획 하에 매치되어 있었다.

드레스 옆 라인의 커팅된 부분과 코트 뒷면의 슬릿 사이로 노출된 피부, 팬츠와 부츠 사이의 간격, 그리고 예술적인 컬러의 대비는 모두 철저히 계산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여러 겹의 레이어를 통해 완성된 하나의 룩이 분리되어 행어에 걸리는 순간 입기에는 다소 난해한 조각이 되어버렸던 것.

뒤이어 나는 발렌시아가의 컬렉션을 떠올렸다. 지난해 2017 S/S 컬렉션을 처음 공개한 직후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몇 벌의 의상을 보고는 실망했음을 고백한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예쁘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거나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열린 프레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옷을 실제로 접한 이후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행어에 걸린 의상들의 컬러 조합이 나를 압도했는데 옷의 디테일을 세세히 살펴볼수록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패션 에디터조차 어떻게 입는 게 맞는 건지를 고민할 만큼 모든 옷이 기존의 옷 입는 방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블라우스는 앞뒤를 구분하기가 어려웠고 네크라인의 여밈 방식, 벨트를 두르는 위치 등에 대해 홍보 담당자의 설명을 구해야만 했다. 곧바로 모든 의상은 스타일링의 무한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17 S/S Prada | 2017 S/S Balenciaga | 2017 S/S Y Project | 2017 F/W Toga | 2017 S/S Louis Vuitton | 2017 S/S Céline | 2017 S/S Loewe | 2017 S/S Vetements

그러고 보면 뎀나가 만드는 베트멍은 스타일링에 좀 더 과감하다. 마놀로 블라닉과 컬래버레이션한 허리선까지 오는 건축적인 사이하이 부츠의 경우 한 짝은 무릎 아래로 접어 내피를 보여주고 또 다른 짝은 허리까지 올려 원피스를 넣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일상에서 실제로 이렇게 입기는 힘들겠지만 뎀나가 베트멍 컬렉션을 통해서 보여준 스타일은 그 자체로 어떤 영감을 주었다. 그건 일상 속 스타일링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 구상적인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껴지던 기운이기도 했다.

아마 뎀나의 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로타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2017년 뎀나가 특별한 디자이너로 여겨지는 이유는 패션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상업적인 시선으로 패션을 바라본다. 단순히 기술과 예술성을 자랑하고 아카이브를 탐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아이디어를 가미하는 것.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가장 쿨하고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셀린의 피비 파일로 역시 어느 순간부터 브랜드의 아카이브 탐색을 멈췄다. 최근 그녀가 만드는 의상들은 세련된 현대 여성들이 갈망하는 ‘평범한 듯한 비범함’의 표본이다. 그녀가 이번 시즌 선보인 1980년대 풍의 오버사이즈 수트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좋은 소재로 잘 재단된 이 수트를 특별하게 만든 건 수트 안에 입은 시스루 소재의 보디수트다. 의도적으로 양쪽의 컬러를 다르게 신은 오드(Odd) 부츠도 그녀가 지금 셀린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을 은유적으로 설명한다.

한편 조나단 앤더슨은 꽃을 모티프로 한 볼드한 주얼리, 조형적인 벨트처럼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비전형성을 가미한 스타일링으로 로에베를 모던하고 세련된 브랜드로 각인시키고 있다.

바로 전 시즌 <바자>에는 스타일링이 첨가된 ‘한 벌의 옷’에 대한 칼럼이 게재 되었다. 구찌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이 칼럼에는 상의와 하의, 주얼리, 칼라 장식이 혼재된 한 벌의 의상이 쉽게 스타일리시해지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손쉬운 선택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대되는 듯한 이 기사와 위에 언급된 내용에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맥시멀리스트인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만드는 옷 한 벌에 존재하는 모든 디테일은 그의 치밀한 스타일링과 재단을 거친 장치다. 그가 만드는 옷에는 다양한 시대, 문화, 음악, 성별이 공존하는데, 자신의 생각이 타인에 의해 훼손되는 게 싫은 건지 이를 한 벌의 옷에 붙여두었을 뿐이다.

이처럼 아이디어가 가미된 스타일링은 오래된 브랜드에 젊은 기운과 생명력을 더하면서 선전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토가의 디자이너 야스코 후르타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디자인 철학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디자인의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어딘지 불편하면서 신선함이 느껴지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볼 때 다른 관점에서도 관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두 요소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걸 볼 수 있다.”

지금은 기본에 충실한 옷과 그걸 새롭게 연출할 아이디어가 절실한 시대다. 이건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옷을 소비하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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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Jimmy House
출처
28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