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랄프 로렌이 도시의 가장 매혹적이고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50년간의 영화 같은 스타일을 기념했다.

“제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자극들, 예를 들면 흑백 필름, 케네디 가문, 시나트라, 산타페로 간 첫 여행 등에 대해 풀어낸 것이지요. 그것들을 확장해서 세상으로 다시 내보낸 거예요.”
– RALPH LAUREN(랄프 로렌)

어반 카우 걸.
숄, 드레스, 귀고리, 벨트, 슈즈는 모두 Ralph Lauren Collection.

어반 카우 걸
코트, 드레스, 귀고리, 목걸이, 벨트는 모두 Ralph Lauren Collection.

“아메리칸 글래머를 새롭게 일궈낸 50년의 세월 동안 랄프 로렌은 단지 우리의 옷 입는 방식만을 바꾼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즈니스 거물이자 격식 타파주의자, 자선가인 그는 우리의 삶과 꿈의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 Deborah Needleman(데보라 니들맨)

오늘날 ‘폴로’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 혹은 그녀는 1967년 브롱크스 출신의 젊은 남자가 오래전 귀족들의 스포츠에서 이름을 따 창립한 브랜드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지난 50년간 랄프 로렌은 자신의 이름 그대로의 럭셔리 브랜드를 통해 우리가 가장 멋진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꾸며주었지만, 사실 가장 멋진 삶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자체를 정의 내려주기도 했다. 부와 여유를 가진 이 자수성가한 우아한 미국 남자는 뜨거운 여름날 오후 대체 무엇을 입을까? F. 스콧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창조했고 랄프는 화이트 리넨 수트를 통해 우리의 상상을 눈앞에서 현실화시켜주었다. 이건 6월의 어느 날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가 실제로 입고 있던 옷이기도 했다. 랄프 로렌의 옷들은 왕, 영화배우, 공주, 수상, 귀족 등 위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었다. 즉 그들과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는 성공과 럭셔리, 성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 다뤘던 주제이자 오랜 세월 반복해 보여준 것들은 하나의 특징적인 시그너처 스타일이 되었다. 이를테면 사파리, 카우보이, 밀리터리, 할리우드, 아르데코, 모더니즘, 나바호 족의 인디언 룩이 그것이다. 그는 이것들을 ‘표준’, 그러니까 세월이 흘러도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는 주요 모티브라고 설명한다. “미국인으로서 우리가 누구라기보다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했지요.” 그가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이 되었나. 거대한 회사를 거느리는 세계적인 아이콘일 뿐만 아니라 그의 광고와 런웨이에서 우아함을 선보이기도 했던, 또 미국의 자연 미인인 리키와 53년의 결혼생활을 함께했으며 자녀들과 더불어 손자, 손녀들도 있는 가정적인 남자이기도 하다. 물론 뉴욕의 맨해튼과 몬토크, 베드퍼드, 콜로라도, 자메이카에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결국 그가 개인적으로 원했던 건 우리 모두에게 바랐던 것이기도 하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옷과 가구, 라이프스타일 소품은 물론 그것을 팔기 위해 창조한 광고 이미지 등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제가 꿈꿨던 것 중의 일부예요.” 그가 말한다. “제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자극, 예를 들면 흑백 필름, 케네디 가문, 시나트라, 산타페로 간 첫 여행 등에 대해 풀어낸 것이지요. 그것들을 확장해서 세상으로 다시 내보낸 거라 할 수 있어요.”

“2003년부터 랄프 로렌 센터와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의 암 치료를 위한 협업은 인간의 존엄성에 접근하는 데 하나의 등불이 되었어요. 그의 너그러운 마음과 우정에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 CRAIG B. THOMPSON, MD (크레이그 B.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켄서 센터의 대표 & CEO)

어떻게 디자이너 한 사람이 미국인의 꿈의 미학 그 자체를 살아낼 수 있는 걸까? 나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미국의 문화니까요.” 간단하고 직접적인 답변이다. “저는 미국인이에요.”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솔 벨로의 위대한 미국 소설 <오기 마치의 모험(The Adventures of Augie March)>의 유명한 첫 장면 구절을 연상시킨다.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카고에서 태어났죠. 스스로 자유롭게 배웠고, 또 제 방식대로 이름을 남길 겁니다.” 한 사람의 재능을 한껏 활용하고, 또 가진 것을 최대한 펼쳐 보이는 것이 미국인이 가장 추구하는 가치라고 할 때 랄프 로렌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랄프의 비전이 가진 변함없는 일관성은 역사상 가장 강하고 명쾌한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반대로 여러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다. 패션은 시대정신에 입각한 변덕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랄프는 완전한 것, 클래식, 그리고 아이콘을 꿈꿨다. 파리에서 활동한 진 시버그에게 어울리는 스트라이프, 피코트, 선원 모자, 다이앤 키튼의 애니 홀이 입을 만한 와이드 핀스트라이프 팬츠, 메릴 스트립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이삭 디넨센을 연기할 때 입은 하이네크라인의 화이트 블라우스와 커다란 가죽 벨트 룩 등이 그러했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뮤즈에 그다지 헌신하지 않은 것과 달리 랄프는 자신이 가진 확고한 비전의 진정성을 굳게 믿었다.

자유의 여신상. 드레스, 귀고리, 슈즈는 모두 Ralph Lauren Collection.

이러한 그의 순수한 열망은 1980년대 로 라이프(Lo Life)라는 이름으로 합쳐진 두 브루클린 집단에 의해 특히 크게 사랑받았다. 이 집단의 멤버가 되기 위한 단 한 가지 필요충분조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폴로로 입는 것. 이는 주로 매장을 터는 수법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입지 않는 브랜드였죠.” 로 라이프의 창시자 랙 로가 이렇게 말했다. “폴로는 부자에 앵글로색슨계 미국인 아이들을 위한 옷이었어요. 도시 골목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옷이 아니었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들이 주로 옷을 구입했어요.” 랄프가 말한다. “제 비전의 순수함을 이해했지요.” 그들은 자신들을 동네에서 끌어내어 더욱 화려한 삶으로 인도하는 옷의 마법을 경험했다. 마치 랄프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랄프의 비전을 찬양하는 로 라이프 족들은 빈티지 마켓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고 폴로 아카이브의 랄프 로렌이 만든 리미티드 재발매 제품도 마찬가지로 사랑받고 있다.

성공적인 브랜드는 타깃 소비자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모두에게 말을 건다. 78세의 나의 아버지도 팜 비치의 컨트리 클럽에서는 폴로 셔츠를 입는데, 그의 세계에서 그건 분명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 열일곱 살이 된 아들도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스케이트 파크에 갈 때 90년대 폴로를 입곤 하는데, 뭔가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내가 랄프를 방문한 날, 그는 내게 다음 여성 런웨이 컬렉션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88번째 쇼이자 5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비적인 자리이다. 그는 기력이 쇠하거나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탠더드 피스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선보이는 이 쇼의 방식에 더 흥분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패션 브랜드가 거의 그러하듯 지난 몇 년간 랄프 로렌 또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와 현재 CEO에게는 디지털의 성장, 메인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 타깃 목표 확대 등 ‘전략적인 우선순위’ 리스트가 산재해 있다. 그중 무엇이 이뤄지고 성공하게 될지 랄프조차 모른다. 다만 알려진 것은 랄프 로렌이 지금껏 창조한 형언할 수 없는 마법,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이 존재가 지난 50년간 미국 브랜드로서 최고의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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