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사이즈 수트를 입는 새로운 태도

한층 느슨하고 우아해진 오버사이즈 수트가 이번 시즌 취해야 할 현실적이고 세련된 태도에 대해 말해준다.

오버사이즈 수트를 입는 새로운 태도 -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Korea 2017년 2월호

2015년 그래미어워드에서 우아한 수트 차림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인 리한나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오버사이즈의 유행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실제로 럭셔리 하우스뿐만 아니라 현 패션계가 열광하는 젊은 디자이너의 옷들을 살펴보면 ‘1990년대에서 비롯된 오버사이즈’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시즌 극단적인 해체주의와 오버사이즈 룩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 베트멍을 필두로 자크뮈스, Y 프로젝트, 셀린, 질 샌더, 포츠 1961 같은 컬렉션에서 사이즈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부순 오버사이즈 수트가 대거 등장했다.

여성을 위한 수트를 생각할 때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930년대 남성복 수트를 즐겨 입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 1966년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룩, 그리고 1980년대 영화 <워킹 걸>의 멜라니 그리피스가 입었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파워 수트에 당도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수트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걸 잠시 중단하고 싶어진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 등장한 이 커다란 수트들은 복식사 사전에 등재된 ‘중성적이고 엄격하며 드레시한 의복’이라는 설명과는 별개로 마치 헐렁한 셔츠와 팬츠를 입은 것 같은 편안하고 일상적인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

오버사이즈 수트를 입는 새로운 태도 -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Korea 2017년 2월호

2017 S/S Vetements | 2017 S/S Paul Smith | 중성적이면서내추럴한스타일링을즐기는 캐롤린드 매그레의오버사이즈수트 스타일

오버사이즈 수트를 입는 새로운 태도 -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Korea 2017년 2월호

2017 S/S Isabel Marant | 2017 S/S Jil Sander

이러한 수트의 변화는 몇몇 젊은 디자이너들의 쇼에서 두드러졌는데, 참신한 스타일링도 한몫했다. 몇 시즌째 어깨를 강조한 오버사이즈 룩을 선보여왔던 자크뮈스는 지난 2016 F/W 시즌 지나치게 커다란 실루엣 덕분에 아트 피스 같았던 쇼를 뒤로한 채 한층 웨어러블해진 수트를 만들었다. 수트의 어깨는 여전히 두꺼운 패드로 직각을 이루고 있지만 재킷의 허리에 다트를 넣어 잘록하게 만들었고, 이너를 생략하고 어깨 뒤로 넘겨 입는 방식을 통해 여성스러움과 유연함을 더했다. 베트멍의 수트는 스타일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단추를 채우지 않고 대충 걸쳐 입은 것 같은 재킷, 모델이 걸어 나오면서 막 걷어 올린 듯한 소매, 잘못 입은 듯한 셔츠와 곧 바닥에 닿을 것 같은 벨트의 조합은 이제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조화였다. Y 프로젝트 쇼에 등장한 오버사이즈 수트 역시 스타일링을 통해 한층 캐주얼해졌다. 광택 있는 연보랏빛 수트에 허리가 드러나는 체크 패턴의 셔츠를 매치하고 재킷과 셔츠의 소매를 같이 걷은 채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는 모델의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라!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수트는 질 샌더의 수트다. 부드럽게 내려앉은 어깨선과 손가락 중간 마디까지 덮는 긴 소매의 오버사이즈 재킷, 적당히 헐렁한 팬츠와 셔츠에서 느껴지는 담담함과 자연스러움이 그야말로 쿨하게 느껴졌다. 셀린은 중성적인 오버사이즈 수트에 페미닌한 소재와 유니크한 디테일의 이너를 매치해 특유의 모던한 매력을 강조했다.

오버사이즈 수트를 입는 새로운 태도 -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Korea 2017년 2월호

2017 S/S Jacquemus | 2017 S/S Push Button | 2017 S/S Ports 1961 | 2017 S/S Céline

오버사이즈 수트를 입는 새로운 태도 -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Korea 2017년 2월호

1997년에 개봉한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매력적인 수트 룩을 보여주는 줄리아 로버츠

한편 여성의 파워와 비즈니스에 대해 다룬 책 <스틸레토 네트웍스>의 저자인 파멜라 리크만(Pamela Ryckman)은 <포브스(Forbes)>와의 인터뷰에서 워킹우먼의 변화된 옷 입기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과거 권력의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옷차림이나 행동이 강인해 보이거나 전문적으로 보이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컨퍼런스를 통해 만난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진정한 자아를 표현하는 것에 자유로웠어요. 그들은 트렌디한 드레스와 슈즈 차림에다 머리카락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어요. 그들은 자신의 자아를 테이블 위, 심지어 회의실에서 더 편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함축된 메시지를 살짝 돌려 해석해보자면 이제 수트를 권력과 파워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입는 건 고루한 발상이라는 것, 여성의 진정한 파워는 남성적인 겉모습이 아닌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는 올곧은 자아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상기해 이번 시즌에는 자연스럽고 여성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한 벌의 오버사이즈 수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