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도 렌털하는 시대

사지 말고 빌리세요. 이제는 옷도 빌려 입는 ‘패션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들었다. 2016년 시작해 국내 패션 공유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는 프로젝트 앤을 통해 소유가 아닌, 공유라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 문화를 경험해보았다.

새로운 패션 습관 학습기

지금까지 나에게 옷을 산다는 행동은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꾸준히 모으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 프로젝트 앤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을 때 이 플랫폼은 나와 큰 연결성이 없어 보였다. 옷을 소유하거나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빌린다는 개념 자체가 너무나 생소했다. 내겐 비디오테이프에서 확장된 렌트의 개념은 정수기, 비데, 안마의자 정도가 다였으니까.

하지만 패션 쇄국정책도 아니고 ‘요즘’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지도 않고 밀어내는 낡은 사람으로 남기 싫어 용기 있게 프로젝트 앤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우리 이제 빌려 입자! 새로운 패션 습관’이라는 멘트로 반겨주는 프로젝트 앤은 여느 쇼핑몰과 다를 것 없이 생겼지만, 옷의 섬네일 사진 주변에 대여 중이라든지, 추가이용료, 프리미엄 같은 생경한 안내가 붙어 있었다. ‘쇼핑이랑 똑같네.’라고 쉽게 생각한 나는 너무 순진했다. 처음 공략해본 아우터 섹션에서 과감하게 엔폴드의 코트를 담았다가 ‘프리미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프로젝트 앤에는 두 종류의 이용권이 있는데 영하고 제한된 브랜드를 이용할 수 있는 마젠타, 그리고 마젠타의 옷들에 추가해서 컨템퍼러리하고 더 많은 브랜드를 이용하는 네이비가 있다. 나에겐 1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으로 한 달 동안 120개 브랜드 중 한 가지 아이템을 네 번 이용할 수 있는 네이비 옷장 이용권이 있었고 마젠타보다는 더 비싼 금액을 지불했으니 당연히 제일 좋은 이용권인 줄 알았으나, 네이비 이용권 위엔 프리미엄이 있었다. 프리미엄이라고 표시가 붙은 옷들은 별도로 책정된 금액을 더 결제해야만 빌려준다. 하지만 이미 이용권을 샀는데, 돈을 추가로 내면서까지 빌리고 싶진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 아우터에는 거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코트는 대부분 대여 중이었다. 그래서 코트 대여 포기. 한참의 디깅과 수많은 클릭, 끊임없는 스크롤바의 움직임이 있은 뒤, 마커스 루퍼의 점퍼와 곡선이 아름다운 렉토의 스커트를 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건 한 번에 한 아이템만 빌릴 수 있는 이용권. 추가이용도 가능하지만, 이것 역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니 또 포기. 이런저런 실패와 깨달음으로 일주일을 보낸 끝에 금요일 새벽이 돼서야 주문에 성공한 아이템은 월요일 오전에 도착했다. 무엇을 빌릴까 고민하던 시간보다 배송된 시간이 더 짧은 셈이다. 프로젝트 앤 로고가 박힌 종이박스에는 사진으로만 본 그 옷이 담겨 있었다. 이 옷 진짜 입어도 되나. 뭘 묻히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생각 중에 반납에 대해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반납에 대한 정보를 찾아 앱에 접속했더니 나에게 도착한 이 옷을 지금 구입하면 7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한다는 안내가 떴다. 결국엔 판매를 위한 플랫폼이었던 걸까. 반납 기한은 옷이 도착한 지 10일이 되는 시점으로 자동 설정되고 그 다음 날쯤 지정된 택배업체에서 거둬 간다. 이 일정대로라면 수거 시점에 나는 외국 출장으로 집을 비우게 되어 1:1 문자상담으로 반납을 미리 신청했다. 내 인생 처음 빌려본 옷이 처음 도착한 박스에 다시 얌전히 들어가 수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택배사에서 연락이 없어 불안해진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의 출장과 이용권 기한이 겹쳐 남은 세 번의 이용권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자상담으로 이용권 날짜를 미루거나 환불이 가능한지 질문했더니, 만료 날짜를 미룰 수는 없지만 이용한 날짜를 계산해서 환불은 된다고 했다. 답변 참 시원하고 빨랐다. 사실 프로젝트 앤의 모든 것이 간결하고 편리하고, 굉장히 ‘요즘’다웠다. 프로젝트 앤에서 말하는 ‘새로운 패션 습관’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습관이 낯설고 느린 나에게 스며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시작이 중요하니까. 김영신(플로리스트)

직장인을 위한 스마트한 방식

사회에 갓 입성한 신분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온 지난 몇 년간 제대로 된 쇼핑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음먹고 주말 쇼핑에 나서도 어딜 가나 미어터지는 사람들 통에 카페로 피신하기 일쑤. 그렇다고 입어보지 못하고 눈대중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자니 절반이 교환과 환불로 이어진다. 이마저도 포기. 점점 쇼핑이 피곤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학생 때처럼 자유롭게 티나 청바지만 주야장천 입고 다니기엔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격식을 차리고 갖춰 입어야만 하는 자리가 점점 많아졌다. 물론 출근길도 그중 하나다.

프로젝트 앤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이건 나 같은 직장인을 위한 거다’란 생각이 단번에 머릿속을 스쳤다. 몇 십만원, 몇 백만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을 매번 사기엔 대부분 직장인들의 월급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 특히나 나같이 사회 초년생이란 꼬리를 뗀 지 몇 년 되지 않은 사람일 경우 더더욱! 본격적인 사용 전 프로젝트 앤을 대충 둘러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다양한 아이템이 구비되어 있어 시작도 전에 기대감이 급상승했다. 특히 셀린부터 프라다, 펜디에 이르기까지 명품 브랜드의 가방 섹션은 무척이나 흡족했다. 날도 추워지니 평소 좋아하던 국내 디자이너의 점퍼를 주문했다. 오전에 주문한 상품은 24시간을 갓 넘긴 다음 날 오후에 도착했다. 총알 같은 스피드는 진정 놀라움 그 자체. 더군다나 단단한 종이박스에 깔끔하게 담긴 점퍼는 누가 입었던 옷이라기엔 오염이나 냄새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완벽한 상태였다. 후에 알아보니 독점 제휴한 전문 세탁 업체를 통해 관리한다고 한다. 특히나 프로젝트 앤이 마음에 드는 세 가지 이유를 꼽자면, 첫째 10일 동안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옷이라는 점. 둘째 오염이 되어도 세탁할 필요 없이 반납이 가능하다. 물론 너무 심한 오염은 배상을 해야 하지만. 셋째 마음에 들면 반값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 가능하다는 것.

이런 간편하고 매력적인 서비스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딱 맞는 일명 ‘패스트 패션’과의 이별을 주선했다. 싼 맛에 사서 한 철만 입고 옷장 구석에 처박아 두기보다는 10일 동안이지만 꽤 괜찮은 브랜드의 아이템을 입는 게 요즘 세대의 스마트한 소비 방식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매일 아침 옷장 앞을 서성이며 무엇을 입을까란 고민 대신 어떤 새로운 옷을 빌려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에게 안성맞춤 서비스가 되어줄 듯하다. 물론 데이트, 결혼식에도 무척 유용하다. 한 가지, 대여 중인 아이템이 너무 많다는 아쉬움만 빼면 말이다. 강소정(패션·뷰티 홍보 마케팅)

낯설지만 신선한 공유

‘소유’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종족으로서 프로젝트 앤이 지향하는 ‘옷의 공유’란 개념은 꽤나 낯설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소유하지 못함과 낯선 이들과의 공유로 인해 생기는 여러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옷을 즐긴다’라는 프로젝트 앤의 발상은 꽤나 신선하고 흥미롭다. 똑같은 옷을 너무 자주 입는 건 왠지 부끄럽고, 1년 전에 구입한 옷은 유행에 뒤진 듯하고, 아무리 예쁜 옷일지라도 몇 번만 입으면 질리기 일쑤니깐. 나는 내 옷장을 늘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싶지만 그 허영심을 충당하기엔 내 지갑은 한없이 얇다. 그러니 140개 이상의 브랜드와 2만3천 개 이상의 아이템을 자랑하는 프로젝트 앤이 해결책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셰어링 카인 ‘쏘카’로 시도 때도 없이 차도 빌리는데, 옷 하나 공유하는 게 무슨 큰 대수람, 하는 생각이 들자 찝찝함보다는 묘한 용기가 생겼다.

먼저 이용권을 구매한 뒤 제값을 주고 사기엔 너무 비싸거나 한두 번 입으면 족한 트렌디한 아이템을 기준으로 마이 클로짓(가상옷장)에 담기 시작했다. 첫 주문은 잉크의 언밸런스 스커트. 이틀 뒤 도착한 박스를 열어보니 옷 상태는 기대 이상. 낯선 이들과의 공유에 극도로 까칠하지 않다면 착용하기에 충분한 상태다. 일주일 후, 꽤 비싼 가격으로 인해 모 직구 사이트의 위시 리스트에만 담아놓았던 티비 원피스를 주문했다. 사실 바로 직구를 하기엔 사이즈의 위험 부담이 크니 미리 입어봐야겠다란 생각이 컸다. 다음 날 도착한 티비의 원피스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두 번을 입고 나니, 이상하게도 구매 의사가 싹 사라졌다. 위시 리스트에서 삭제. 남자들의 이상형은 처음 본 여자라더니, 또 다른 새로운 옷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해진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소유’에 대한 욕망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고 할까? 새 옷을 입었을 때 찾아오는 행복감과 자신감, 특히 ‘주변인들을 향한 과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입는 것으로 충분했다. 큰 아쉬움 없이 반납 박스에 옷을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된 나의 첫 네이비 클로짓 이용권은 티비 원피스 이후로 중단된 상태다. 고르는 즐거움이 크게 없다는 게 그 이유다. 2만3천 개 이상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입을 만한 아이템은 죄다 ‘대여 중’. 물론 원하는 아이템을 가상옷장에 담아두기만 하면 대여 가능하단 알람이 며칠 내로 뜨지만 이마저도 신속하게 낚아채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한 달에 10만원을 투자하면서까지 빌리고 싶은 브랜드가 많지 않다는 것. 규모만 크고 알맹이는 없는 아웃렛 놀러 온 기분이랄까? 그러던 중 2009년 시작된 프로젝트 앤의 미국판인 ‘렌트 더 런웨이’가 작년, 100만 달러 매출을 달성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사이트에는 빌리기 딱 좋은 아이템들로 풍요로웠고, 이 정도면 매달 이용권을 구입해도 후회하지 않을 듯했다. 프로젝트 앤 역시 더욱 폭넓은 브랜드와 아이템을 예고했다. 새로운 플랫폼 자체는 만족스러우니 조만간 다시 한번 기회를 노려볼 예정이다.

결론은 프로젝트 앤은 학생부터 직장인, 주부까지 직업군을 막론하고 입을 옷이 없어 고민에 빠져 있는 여성들에게 환영받을 서비스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SNS에 자신들의 모습을 늘 업데이트하는 존재라고 칭해지는 ‘밀레니얼 세대’, 즉 소유보다 과시에 대한 욕구가 큰 요즘 세대를 저격하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수단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을 통해 “20~30대 젊은 층은 더 이상 물건 소유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예상치 못했지만, 나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젊은 층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새롭게 확인했다. 윤혜영(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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