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블랙

돌이켜보면 성 모럴이 변화하는 변곡점에는 늘 블랙 패션이 있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화와 함께한 블랙 모먼트.

올초 열린 골든 글로브 어워즈의 레드 카펫은 영화보다 영화인들의 블랙 드레싱 연대로 화제를 모았다. 2017년 가을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일의 성추문 스캔들을 신호탄으로, 직장에서의 고질적인 성불평등에 항의해 만들어진 ‘타임스 업’ 캠페인을 지지하는 이벤트였다.

나탈리 포트먼, 리즈 위더스푼, 엠마 스톤 등 유명 여배우를 비롯해 대부분의 참석자가 블랙 드레스 코드에 동참했고 남자 배우들도 블랙 턱시도를 입거나 타임스 업 배지를 착용했다.

“어제와 다른 내일을 구분하자는 검은 연대입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앞으로 더는 없을 거예요.”

블랙 드레스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장례식을 방불케 한 이날 시위는 더이상 희생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사회적 관심을 촉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제시카 채스테인

니콜 키드먼

돌이켜보면, 블랙은 지난 한 세기 여성의 지위와 의식의 진보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늘 함께했다. 여성해방가라 해도 좋을 코코 샤넬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때는 쿠튀리에 폴 푸아레가 만든 아르누보풍의 장식적인 풀 드레스가 사교계를 지배하던 20세기 초. 코코 샤넬은 코르셋을 생략하고 장례식에나 사용하던 블랙을 일상복으로 가져와 심플한 미니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녀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장 파투가 이를 두고 장례식에 가는 길이냐고 조롱하자 코코 샤넬이 “당신의 장례식에 가지요.”라고 응수한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이전에 없던 신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 예로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기분 전환으로 참석한 파티에서 그녀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력적인 남자 레트와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여자들을 압도하는 블랙 상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강인한 아름다움 그 자체다.

남자용이 아닌 여자를 위한 블랙 수트를 만들고 ‘르 스모킹’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인 이브 생 로랑도 있다. “세상에는 한 가지의 블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블랙이 있다.”고 말한 그가 만든 블랙 수트는 자신감 넘치고 도발적이며 센슈얼한 페미니티를 상징한다.(1970년대 촬영된 헬무트 뉴턴의 전설적인 사진을 떠올려보라.)

영화 <재키>는 1960년대 미국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재키가 아니라 욕망과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한 지략가로서의 모습에 집중하며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존 F. 케네디의 사망에서 장례식까지 5일의 시간을 다룬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성대한 장례식에 선 그녀는 미망인을 넘어 남편의 죽음을 역사의 한 장면으로 만든 킹 메이커로서의 위엄과 함께 우아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쯤에서 1960년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오드리 헵번의 지방시 블랙 LBD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LBD는 거의 모든 여자가 선망하는 뉴요커를 상징하고 있으니. 여기에는 1990년대를 강타한 미니멀리즘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아내로 전설적인 패션 아이콘이 된 캐롤린 베셋 케네디 그리고 블랙을 멋쟁이 커리어우먼의 컬러로 만든 도나 카란 덕분에 블랙은 자유롭지만 까칠하며 지적이고 능력을 겸비한,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뉴욕 여자와 동의어로 거듭났다.

지금도 시크함의 첫 번째 요소는 블랙이다! 칼 라거펠트의 뮤즈로 샤넬의 스타일리스트 이전에 사교계 명사인 아만다 할레치는 블랙을 재규어와 블랙 다이아몬드에 비유한다. “블랙 드레스는 지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블랙 다이아몬드입니다. 이를 걸치는 여성들 모두가 잠재적인 매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줍니다. 마치 카드의 예리한 모서리처럼 숨겨진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프랑스 시사지 <르몽드>의 한 칼럼에 따르면 이번 성추문 사건으로 촉발된 사회 문제는 여성보다 남성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성을 이용한 경우이기 때문에 섹슈얼리티가 성차별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소녀나 젊은 여성들이 섹슈얼리티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지금이 성적으로 더 폭력적이라는 뜻도 아니라는 거다. 성적인 목적보다는 오히려 남성 위주의 권력을 유지하고, 발언권이 확대된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키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타임스 업’이 보여준 블랙은 대담하고 용감하며 주체적인 여성, 시대의 주인공이 된 여성을 상징하는 모먼트라 하겠다.

“블랙 드레스는 여성 파워의 통합체입니다. 적나라하고 직접적입니다. 왜냐하면 순전히 실루엣과 형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풍자적이고 현대적이며 시대에 맞춰야 합니다. 지방시의 오드리 헵번 드레스가 있었듯이 나도 이 시대를 대변할 만한 드레스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알렉산더 맥퀸의 말이다. 시대를 사로잡았던 천재 아티스트요 쿠튀리에인 그라면 지금 어떤 블랙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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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에디터 홍 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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