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핫한 패션 예술가

패션은 이제 유명 아티스트의 이름이나 고상한 갤러리가 아닌 인스타그램과 거리로 눈을 돌렸다. 하이패션 매거진과 럭셔리 브랜드에서 발견한 낯선 이름의 예술가들.

끝을 모르고 호황을 누리던 럭셔리 시장에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럭셔리’를 대하는 젊은 세대의 반응이 어느 순간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 흐름을 의미심장하게 살피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범접하기 어려운 가격,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온라인을 활용해 보다 빠르고 합리적인 소비를 이끌어내는가 하면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패션이 예술을 취하는 목적에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적이고 풍요롭게 업그레이드해주는 동시에 희소성이 있다는 이유가 크다. 과거 아티스트의 유명세나 아티스트가 소속된 갤러리의 이름이 그 희소성을 판단하는 잣대였다면, 오늘날 그 희소성은 SNS나 스트리트 문화와 동의어처럼 느껴질 정도다.

2018 F/W 펜디 컬렉션에 등장한 로고 아트워크는 헤이 레일리의 작품!

몇몇 럭셔리 브랜드가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늘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고 지지해온 펜디의 최근 행보는 다소 생경하다. 오랜 시간 펜디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왕좌에 군림했지만, 동시에 무겁고 고전적인 이미지 또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지난 2월, 밀라노 컬렉션을 통해 펜디의 변화가 감지됐다. 2018 F/W 컬렉션이 끝난 직후 홍보 담당에게 낯선 이름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쇼 전반에 걸쳐 로고를 활용한 빈티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아트워크가 등장했는데, 바로 헤이 레일리(Hay Reilly)라는 그래픽 아티스트의 작품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 협업의 성사 과정이 꽤 흥미롭다. 헤이 레일리는 두 브랜드 로고를 결합해 재해석한 개인 작업 ‘FAKENEWS’를 진행했는데, 휠라와 펜디를 결합한 로고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작업물을 올렸고 이를 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레일리의 아트워크를 포스팅 하면서 인연이 이어졌다고. 그런가 하면 펜디는 최근 공식 웹사이트에 ‘F is For…’라는 이름의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을 공개했다. 음악과 예술, 라이프스타일을 버무린 야심 찬 프로젝트를 위해 펜디는 세계 각국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여섯 명과 ‘미래’를 주제로 한 특별한 아트워크를 선보였다. 영국, 이란, 미국, 일본, 홍콩에서 온 아티스트와 한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조대(Jodae)는 로마에 위치한 펜디의 본사 옥상에서 각자 경계 없는 예술작품을 창조해냈다. 이러한 낯선 시도들에서 끊임없이 하위문화와 지금의 시대정신을 좇기 위해 노력하는 펜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펜디 본사 옥상에 한국적인 그래피티 작품을 남긴 조대.

블론디 맥코이의 버버리 벽화 작업.

비록 지난 2월을 마지막으로 버버리와 작별을 고했지만,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낙서’를 향한 관심도 주목할 만하다.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지난해 영국 팔라스 스케이드보드와 아디다스 스케이트보딩 팀의 일원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맹활약 중인 블론디 맥코이(Blondey Mccoy)에게 런던과 뉴욕에 벽화 작업을 의뢰하는가 하면 일러스트레이터 대니 샌그라(Danny Sangra)의 장난스러운 낙서를 2018 S/S 시즌 아이템과 캠페인에 새겨 넣기도 했다.

버버리 캠페인에 장난스러운 일러스트를 새겨 넣은 대니 샌그라.

이그나시 몬레알의 구찌 아트월 프로젝트.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영입한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수익을 기록하며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롤모델로 부상한 구찌는 지난달 밀라노와 뉴욕 거리를 점령했다. 아티스트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과 함께한 새로운 아트월 프로젝트를 공개한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걸로 유명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심미안은 제이드 피시(Jayde Fish), 구찌 고스트(Gucci Ghost), 코코 카피탄(Coco Capitan)에 이어 이그나시 몬레알로 이어졌다.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은 구찌의 전략은 아직까지 제대로 먹히고 있다.

이그나시 몬레알의 구찌 광고 캠페인.

코코 카피탄의 아트워크가 가미된 구찌의 힙색.

사키가 참여한 ‘바자’ 코리아 21주년 기념 커버 아트워크.

이러한 협업은 재능 있는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해내는 동시에 럭셔리 브랜드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특정 아티스트를 통해 브랜드의 위치를 새로이 갱신해내는 방식은 다소 얄팍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과 실험성이야말로 수십여 년간 유지되어온 브랜드에 변화를 주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된 아티스트들에게 공통되는 특징은 ‘실험’과 ‘자기표현’의 가치를 중시하고 장난기 어린 낙서나 메시지에 기반해 작품을 창조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패션을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지난 9월 <바자> 코리아 창간 기념호를 위해 콜라주 작업을 하기도 한 아티스트 사키(Saki)는 어린아이가 연필로 대충 그리거나 쓴 것 같은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패션이나 문화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특별한 시선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표현 방식은 그 다음인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제 작업의 주된 표현 방식이자 어쩌면 패션의 원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콜라주 작업이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서 기뻐요.” 확고한 개성, 약간의 키치함과 가벼움이 빚어내는 이미지들이야말로 2018년 디자이너와 우리가 패션을 취하는 가장 현대적인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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