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이국적인 모먼트를 위해 전 세계를 유영하라. 떠나야만 하는 계절이 도래했으니!

“여름날, 항구를 걷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했어요. 내리쬐는 태양 아래, 파레오를 걸치고 세라믹 귀고리를 한 그녀의 모습이 이번 컬렉션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죠.” 젊은 디자이너 시몽 자크뮈스는 코스타리카나 카리브해 해변에 있는 소녀들의 룩을 상상하며 이번 시즌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행복과 태양이라고 꼽는 자크뮈스의 쇼를 보며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속 한 구절이 머리에 스쳤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이 생각의 산파라는 사실을 디자이너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놓인다는 것은 내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해방감과 상상력을 상승시킨다는 거니까. 그래서 여행을 영감의 근원이라 여기는 디자이너들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올여름 휴가 계획을 아직도 세우지 못했다면?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런웨이에서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 듯. 물론 스타일링 아이디어는 덤이다. 

먼저 메종 마르지엘라의 쇼장에서는 다양한 언어의 공항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존 갈리아노는 태국으로 떠나기 위해 들렀던 공항에서 컬렉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목베개와 안대를 착용하고, 수화물 태그와 비행기 티켓이 부착된 옷을 입은 21세기 젯셋 걸들이 걸어 나왔다. 공항 패션에 열광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 것일까. 머리를 기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폭신한 클러치 백은 이미 베스트셀러라는 사실! 자, 이제 공항을 떠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패션 하우스들을 살펴볼 차례다. 최근 자연의 매력에 푹 빠진 칼 라거펠트는 그랑 팔레에 자신이 즐겨 찾는 남프랑스의 협곡 조르주 뒤 베르동의 절벽과 폭포를 그대로 재현했다. 아찔한 높이의 계곡과 사방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웅장한 협곡 속에서 샤넬의 패션쇼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요니 요한슨은 프랑스 남서부의 비아리츠 해변에서 만난 서퍼들에게 매료되었다. 반짝이게 가공한 스웨이드와 가죽은 진짜 비닐처럼 보였고, 1970년대 무드의 오버사이즈 수트와 하이웨이스트는 쿨하기 그지없었다. 젯셋 룩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리플리>를 쇼장에서 상영한 토즈 하우스.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에 걸맞은 리조트 룩의 배경은 지중해 바다였던 것. 코튼 화이트 셔츠, 랩 스커트와 플리츠 스커트 그리고 카프리 풍경을 프린트한 스카프와 낮은 로퍼는 현실적인 트래블 룩으로 참고해도 좋겠다.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한 디자이너들은? 먼저 스텔라 매카트니. 아프리카 전통 의상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화려한 프린트 드레스와 오버사이즈의 리넨 사파리 재킷 등은 야생의 대자연으로 이끈다. 로베르토 카발리 역시 아프리카 초원으로 떠났다. 카발리에서의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폴 서리지는 정제된 이그조틱 룩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지브러 패턴과 지브러를 응용한 스트라이프 프린트의 이브닝드레스는 물론 아프리칸 무드에 어울리는 볼드한 액세서리까지 관능미 넘치는 아이템이 시선을 끌었다.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는 이번 시즌 에펠탑이 보이는 공간에서 쇼를 진행했다. 브랜드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쳤는데 그중에서도 마라케시를 연상시키는 아이템들이 눈에 띄었다. “마라케시는 저에게 컬러를 가르쳐준 도시죠. 그곳에 가기 전 저에게는 블랙이 전부였거든요.” 디자이너 생 로랑이 사랑했던 모코칸 무드는 정통 프렌치 룩에 유쾌함을 가미하는 요소였다. 한편, 로에베의 조너선 앤더슨은 인도와 발리로 떠났다. “로에베의 여인은 여행을 즐기는 보헤미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도에서 영감받은 페이즐리 프린트와 발리 해안에서 가져온 조개 모티프를 차용해 이지적인 스타일에 오리엔탈 무드를 살짝 얹는 위트를 보여주었다. 오리엔탈 무드에 빠진 것은 디자이너 시몬 로샤도 마찬가지. 어릴 때 빅토리아풍 드레스를 입은 중국 도자기 인형을 수집했다는 그녀. 창백한 피부에 볼이 발그레한, 머리에 진주 핀을 꽂은 중국 인형 같은 모델들은 동양적인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젊은 디자이너 듀오가 이끄는 마르케스 알메이다는 오리엔탈리즘과 미국 웨스턴 문화를 결합시켰다.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와 플라워 패턴의 실크 톱을 밀리터리 팬츠나 카우보이 재킷에 매치해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것. 스텔라 진 역시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남아메리카에서 영감을 가져왔다. 볼리비아의 여성 레슬러와 페루 전통 의상의 풍성한 텍스처와 화려한 프린트를 차용해 다문화주의적 스타일을 완성했다. 캘리포니아의 뉴포트 비치에 사는 브록의 부부 디자이너 로라 바사르와 크리스 브록. 낙천적인 그들의 에너지로 가득한 컬렉션은 인기가 높다. 체리 자수 장식 레이스, 페전트풍의 플라워 프린트 등이 더해진 로맨틱 드레스와 매치된 글래디에이터 샌들은 어디서든 우아한 애티튜드를 자랑할 수 있을 듯.  

이 외에도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이국적인 여정은 끝날 줄을 모른다. 보라보라섬에서 만끽한 휴가의 추억을 풀어내며 야자수 프린트와 하늘빛 블루 컬러를 런웨이에 흩뿌린 마이클 코어스, 이집트를 주제로 한 컬렉션을 자신만의 로맨틱한 감성으로 채운 클로에의 나타샤 램지 레비, 설원의 아이슬란드에서 시원한 바캉스를 보낸 이세이 미야케까지. 이번 시즌 런웨이를 감상하니 이국적인 풍광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지 않나.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한 말에 너무나도 동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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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oda on Air, Getty Images, S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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