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들의 사적인 식탁

이름 자체가 브랜드이자 패션 히스토리의 한 챕터가 된 여섯 명의 디자이너. 그들이 남긴 상징적인 패션 기호와 지극히 사적인 취향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디자이너의 식탁 - 하퍼스 바자

컬러풀한 크리스털 와인 잔은 Baccarat, 에스닉한 형태의 조명은 Hillolighting 제품.

Yves saint Laurent

이브 생 로랑은 모로코를 동경했다. 연인이자 파트너인 피에르 베르제와 그는 1966년에 마라케시를 발견했다. 이들은 1930년대 프랑스의 동양화가 자크 마조렐이 디자인한 식물원이자 레지던스인 ‘마조렐 가든’을 영혼의 안식처로 삼았고 1980년 철거 직전의 그 공간을 운 좋게 구매할 수 있었다.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지 않는 기간에 이브 생 로랑은 마라케시에 있는 자신의 빌라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국적인 식물이 우뚝 솟은 야외 정원에서 얇은 천 하나만 깔고 비스듬히 누운 그의 모습은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나는 모로코에서 내가 사용하는 색깔의 스펙트럼이 이곳 사람들이 입는 전통 의상인 카프탄이나 헐렁한 가운, 모자이크 타일의 색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쉼 없이 달려온 이브 생 로랑은 마라케시에서 빛과 새로운 색을 되찾았다. 길거리 풍경, 건축물의 벽, 지나가는 여성들의 옷 하나하나가 영감이 되어주었다. 생의 감각을 되찾았고 즉각 떠오르는 것을 스케치로 남겼다. 모로코의 에스닉한 요소는 이후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에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오는 2017년 10월 뮤제 이브 생 로랑 마라케시가 개관을 앞두고 있다. 마조렐 가든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designer

해골 그림이 프린팅된 접시는 Melody Rose by Lonpanew 제품.

Alexander McQueen

앙팡 테리블, 아웃사이더, 배드 보이, 테일러링의 마법사, 낭만적인 정신분열증 환자. 맥퀸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이사벨라 블로는 쓰레기봉지에 졸업 작품 컬렉션을 담아온 그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섬뜩한 것, 혐오스러운 것, 기괴한 것, 아방가르드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던 그이기에 ‘패션계의 데미언 허스트’만큼 적절한 수식어도 없는 것 같다. 히치콕의 영화 <새>, 신체 결박이나 체인 메일, 정신병원, 종말 등 반사회적이며 인류학적인 주제가 스토리에 힘입어 옷 위에 피어올랐다. 깃털, 타탄체크, 사슴의 뿔, 파충류나 곤충의 표피 등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캐듯, 역사학자가 팩트를 찾듯 당대의 이슈를 자신의 컬렉션에 이식시켰다. 이성보다 본능적으로, 규칙보다 즉흥적으로 살았을 것 같은 그는 의외로 심플한 라이프를 지향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틈틈이 여행도 다녔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그가 남긴 마지막 컬렉션은 자신의 심경을 수놓은 듯 사후 세계를 표현하는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천국에서 지옥까지, 삶은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아름다움이란 것도 결국 가장 역겨운 장소에서 태어난다.” 알렉산더 맥퀸이 유서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디자이너의 식탁 - 하퍼스 바자

스틸레토 힐은 Dior, 은방울꽃이 그려진 티포트 세트, 카나주 패턴의 커피잔 세트와 플레이트, 나무 재질의 커틀러리, 투명한 핑크빛 유리 재질의 글라스와 저그는 모두 Dior MAISON 제품.

Christian Dior

크리스찬 디올은 1905년 프랑스 그랑빌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해변의 큰 정원이 딸린 저택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오감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랑빌 정원은 그에게 중요한 세계였다. 흑백 사진 속 무슈 디올은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서 가든 도구로 땅을 일구고 있다. 그는 흙 밟는 느낌을 좋아했다. 디올에게 정원이란, 파리에서의 각박한 일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레이 양복을 벗고 큼직한 스웨터로 갈아입은 후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프로방스 라이프를 담은 책 에는 정원을 향한 애정이 온전히 드러난다. “우아함이란 자연스러움, 차이, 섬세함, 단순함의 조합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이것을 벗어나면 우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식일 뿐이다.” 그가 추구한 우아함은 결국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건 아닐까. 페미닌한 핑크빛 컬러, 은방울꽃, 야자수나무 등의 디올 유전자는 패션, 뷰티뿐만 아니라 얼마 전 서울에도 론칭한 디올 메종의 라이프스타일 제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그의 컬렉션만큼이나 흥미로운 무슈 디올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책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다채로운 음식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수프, 샐러드, 소스, 달걀, 채소류, 가금류, 치즈, 디저트 등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와인 매칭도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샬롯과 셰리를 곁들인 오이스터에 돔 페리뇽을 매치해 먹던 디올의 테이블을 그대로 재현해볼 수 있다. 심플하고 시골 특유의 소박함이 느껴지는 민들레 샐러드와 으깬 감자에 달걀 노른자를 섞어 만든 듀세스는 어떤 맛일까? 무슈 디올은 그의 미적 취향처럼 아름답고 진귀한 음식을 사랑한 미식가였다. 오이스터와 푸아그라를 특히 즐겨 먹었다. 디올의 절친한 친구는 그가 개인 셰프에게 찾아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매일마다 상의하곤 했을 거라고 회상했다. 쿠튀르만큼이나 퀴진의 재료들을 고귀한 존재로 여긴 디올은 이런 상상도 했다. ‘우리가 혹시 디올 햄을 만들 수 있을까? 혹은 디올 로스트 비프는?’ 결국 디올이 만든 미트 브랜드는 탄생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쿡북은 미식을 친애했던 푸디 디자이너의 기록으로 남았다.

 

 

디자이너의 식탁 - 하퍼스 바자

블랙 크리스털 장식의 샹들리에는 Hillolighting, 향수는 모두 Chanel ‘N° 5’.

Gabrielle Chanel

진주, 카멜리아, N° 5, 트위드, 굽 낮은 구두, 담배와 커피, 단발머리, 블랙 컬러. 몇 가지 기호와 암호만으로도 당대 최고로 우아하고 당돌했던 여자를 찾아낼 수 있다. 흑백 사진 속 가브리엘 샤넬은 한결같다. 깡마른 몸에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 뿔 모양의 파이프에 담배를 꽂아 피웠고 미국 재즈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밀크커피를 마시며 삼류소설을 읽었다. 패션처럼 음식도 심플하게 즐겼다. 쓸데없는 치장도 소스도 양념도 싫어했다. 포부르 생토노레 가 29번지의 집은 이상하게도 그녀의 패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크풍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으로 집을 채웠다. 벽난로 위에는 십자가와 금부처상이 놓여 있었고 중국 병풍과 사자상들도 보였다.(샤넬은 골동품 수집을 좋아했는데, 사자자리였던 그녀는 특히 사자상을 열렬히 모았다.) 한때 “집은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기호에 맞게 집을 꾸민다면 조금이나마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32년 자신의 집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장신구 전시회를 열었던 샤넬은 어느 순간 갤러리처럼 바뀐 자택으로 인해 사적인 공간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집 대신 리츠 호텔 스위트룸에서 살며 생의 마지막 순간도 그곳에서 맞이한 샤넬. 과거 그는 애인 보이 카펠을 잃고서 크림색 방을 검게 칠해버리고 힌두교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경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아 가슴에 품었다. “정말로 죽는 것은 없다. 가장 작은 모래알이라도…. 아무것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디자이너의 식탁 - 하퍼스 바자

가죽 장갑은 Karl Lagerfeld 제품.

Karl Lagerfeld

그러니까 17년째다. 라거펠트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요요현상에도 흔들림 없이 몸매를 슬림하게 유지하고 있는 햇수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일어나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몸으로 사는 건 더 이상 행복하지가 않군.’ 당시 그의 나이 예순둘. 가지런히 묶은 백발, 블랙 선글라스, 가죽 장갑. 여기에 타이트한 팬츠가 추가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3개월 만에 42kg을 감량했다. 그 비법이 궁금한가?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를 아마존에서 구매하면 된다. 독자 후기에 이런 말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오, 별 다섯 개! 그런데 레몬 수프 실화임?” 그는 단백질과 채소의 비중은 늘리고 튀긴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 극단적 식단을 유지했다. 2012년 <하퍼스 바자> ‘24Hours’에 공개한 그의 아침 8시 일정은 다음과 같다. “7시간 정도 숙면을 취한다.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는다. 초콜릿 맛 단백질 셰이크를 먹는데 당연히 노 슈거! 그거 말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다이어트 콜라를 입에 달고 산다. 나는 커피도 티도 싫다.” 라거펠트는 가끔 기분이 내킬 땐 라 메종 뒤 카비야르와 같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그는 에디 슬리메인의 옷도 능히 소화하는 몸을 갖는 대신 먹는 즐거움을 일부분 포기했다. 어쩌면 이 말은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청바지와 티셔츠만 입고도 세상에서 가장 시크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건 당신에게 달렸다.”

 

 

디자이너의 식탁 - 하퍼스 바자

크리스털 장식의 펌프스, 체스 게임 세트는 모두 Prada 제품.

Miuccia Prada

미우치아 프라다는 아트를 사랑한다. 실험적이고 진취적이며 새로운 것에 사로잡힌다. 작품을 바라보는 미우치아의 기준은 직관적이다. “본능이죠. 제 마음에 끌리고 확신이 가는 작품을 선택해요.” 그가 예술에 눈뜨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첫 예술작품 컬렉션은 어느 독일 아티스트의 작은 조각품이었다. 점차 프라다 저택과 본사에 소장할 수 없을 만큼 아트 컬렉팅이 확장되자 1993년 남편과 함께 ‘프라다 밀라노 아르테 재단’을 만들었다. 밀라노에 있는 프라다 창고에서 일 년에 두 번 현대미술 전시를 열었다. 1995년 재단의 이름을 ‘폰다지오네 프라다’로 바꾼 이후 작가들과 함께 설치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협업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DNA를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밀라노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렘 콜하스의 건축회사 OMA는 1910년대 증류주 양조장이었던 건물을 뮤지엄으로 변화시켰다. 원래 있던 건물과 새로운 것이 충돌하면서 공존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이들의 의도였다. 특히 미우치아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즉흥적으로 금색 스프레이를 뿌려서 완성한 황금빛 건물이다. ‘유령의 집’이라고 직접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 안에 로버트 고버가 만든 영구 설치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기존 작품을 컬렉팅해서 전시하는 박물관 그 이상의 역할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아트 유토피아를 건설했다. 아니시 카푸어, 마크 퀸, 마리코 모리, 스티브 매퀸, 월터 데 마리아, 고슈카 마쿠가 등 지적이고 센세이션한 작가들의 전시를 열었다. 예술평론가 안젤라 베테세는 이렇게 평가했다. “프라다 재단은 밀라노에서 수준 높은 전시회를 제작하는 유일한 재단으로 인식돼왔어요. 거의 정부 기관에 가까울 정도로 지원 활동을 해왔죠. 그건 까다로운 평론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에요. 모두들 루이즈 부르주아, 카르스텐 휠러, 토비아스 레베르거 같은 이들의 세기적인 전시회를 기억하고 있죠.”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사진Park Jaeyong
푸드 스타일링김 보선
기타아트워크/Dohun Kim(미우치아 프라다 컷), 프롭 스타일링/이 나경(이브 생 로랑 컷)
어시스턴트전 윤정, 김 민형
출처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