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전시가 흥행하기 위한 조건 3

“이건 광고지 전시가 아니잖아요.” 2015년 루이 비통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가 파리 그랑 팔레에서 간판을 내걸 당시, 그랑 팔레의 다른 전시실에서는 피카소전이 열리고 있었다.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전시가 피카소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보수적인 미술계 인사들은 볼멘 소리를 했다. 하지만 루이 비통 전시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피카소전의 3배에 달하는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오늘날 패션 전시는 더 이상 패션 하우스의 세련된 광고에 머무르지 않는다. 패션 아카이브 전시의 흥행 공식 세 가지.

Scenario

10년 전만 해도 패션 전시는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나란히 걸어놓는 데 그쳤다. 1987년 파리장식미술관에서 열린 디올 전시 역시 그랬다.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디올의 뉴룩을 중심으로 1947년에서 1957년까지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데만 집중했다. 반면 70만 명의 입장객을 기록하며 공전의 히트를 친 2017~2018년 디올 전시 는 같은 미술관에서 열렸지만 구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우선 크리스찬 디올뿐 아니라 그동안 디올 하우스의 디렉터를 맡았던 이브 생 로랑, 마르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그리고 현재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까지 주인공의 숫자를 대폭 늘렸다. 각 디자이너들의 스타일부터 그들의 개인사까지 풀어나가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디자이너에 대한 접근 방법도 다르다. 1987년의 전시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크리스찬 디올에 집중하고 있다면, 2017년의 전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갤러리스트로서의 모습을 조명한다.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 디올이 친구였던 자크 봉장, 피에르 콜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코메티, 달리, 칼더, 장 콕토 같은 동시대 아티스트와 연결점을 만든다. 그들의 미의식, 시대정신,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스토리는 몇 배 더 풍부해진다. 과거의 전시가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현재의 패션 전시는 문화적인 경험치를 최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시나리오가 필수적이다. 전시를 통해 과거의 인물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전시 비주얼을 통해 그 호기심이 매혹으로 변하는 지점에는 늘 훌륭한 시나리오가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루이 비통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창립자 루이 비통의 손자 가스통-루이 비통의 개인적인 취향을 상세하게 펼쳐낸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가 한때 출판사를 운영했다는 사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데생과 크로키를 그려 피가 묻은 트렁크에 보관했다는 일화, 어린 시절부터 트렁크에서 시작해 자물쇠, 향수 병, 호텔 라벨, 모노그램 프린트, 희귀한 활자 등 수천 개의 오브제를 광적으로 수집한 컬렉터였다는 점 등. 전반적인 전시품에 있어서도 저절로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를 짰다. 1895년 모자를 보관하기 위한 고급 트렁크를 주문했던 영국 귀족 윌리엄 롬블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유럽 횡단 열차의 여행객이자 정교하고 섬세한 화장품 전용 트렁크의 주인이었던 마르트 슈날은 어떤 스타일이었을까? 리즈 테일러의 보석 트렁크에는 어떤 보석이 담겨 있었을까? 루이 비통의 유구한 하우스 히스토리와 그 세월을 함께한 디자이너를 비롯해 그들의 고객까지, 다양한 콘텍스트는 전시를 풍부하게 채웠다.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 디올이 갤러리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자코메티, 달리, 장 콕토 같은 동시대 아티스트와 연결점을 만든다. 그들의 미의식, 시대정신,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스토리는 몇 배 더 풍부해진다.

Scenographie

전시 디스플레이어를 일컫는 세노그라피 담당자의 지명도와 실력은 패션 전시 흥행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의상뿐만이 아니라 사진, 비디오, 잡지 등의 비주얼 자료, 각종 예술작품까지 각기 성격이 다른 전시품을 혼합해 얼마나 창조적인 환상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전시 입장객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내용에 역점을 둔 전시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세노그라피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전시 전문 세노그라피가 아닌 오페라와 연극 연출자인 로베르트 칼슨을 기용한 루이 비통 전시는 현재 패션 전시에서 세노그라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속에 등장할 법한 유럽 횡단열차, 구름 속을 유영하는 비행기 구조물, 트렁크의 주 재료인 가죽, 나무, 청동, 리넨을 적절하게 배치한 내부 인테리어 등 전시장의 아주 사소한 장식 하나도 루이 비통 트렁크가 상징하는 ‘여행 예술(Art of Travel)’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루이 비통 전시의 책임 큐레이터였던 파리 갈리에라 박물관의 전 관장, 올리비에 사일라르가 세노그라피를 담당한 발렌시아가 전시 <검은색의 예술품(L’oeuvre au Noir)>는 올리비에 사일라르라는 이름만으로도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그의 미장센은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부르델 박물관의 화이트톤 조각품을 염두에 둔 듯 전시 주제부터 ‘블랙과 빛’, ‘블랙과 컬러’, ‘실루엣과 볼륨’ 등 화이트와 블랙의 대비에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전시 마네킹 대신 자체 제작한 검정 금속대 위에 걸린 마네킹과 부르델 박물관의 19세기 고전 조각상들, 그리고 발렌시아가 특유의 엄정한 블랙 드레스의 만남은 극도로 포토제닉했고 이는 SNS를 도배하면서 곧 전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그동안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브루델 박물관은 이 전시의 성공에 힘입어 입장객이 15퍼센트나 늘어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루이 비통 전시가 열린 그랑 팔레나 발렌시아가의 브루델 박물관처럼 장소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공간 경험을 선사할 수 없을 때 세노그라피의 역할은 더욱 부각된다. 19세기 전설적인 무도회였던 노아유 가문의 무도회장, 디올이 사랑했던 모네의 정원, 베르사유의 트리아농 궁전을 전시장 안에 재현하는 데 성공한 아르데코 박물관의 디올 전시는 박물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완벽한 미장센으로 커버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내용에 역점을 둔 전시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세노그라피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Collaboration + voyage

패션 전시가 패션 하우스에게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잘 만든 전시 시나리오 하나면 전 세계를 순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파리에서 시작한 루이 비통 전시는 뉴욕, 도쿄, 서울 등 루이 비통 하우스가 역점을 두는 도시를 순회했다. 도시 선정은 철저하게 패션 하우스의 마케팅 시장 지도를 따르고 있다.

2017년 연말을 장식했던 막스마라의 <Coats!>전은 2006년 베를린을 시작으로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서울을 돌았다. 막스마라 패션 그룹의 주력 마케팅 지역이 어디인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순회 경로다. 전시가 열리는 나라의 현대미술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예술성을 높이는 일은 전시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최상의 전략이다. 한국 막스마라 전시에서는 프로젝션 매핑 아티스트 강이연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미래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마케팅 거점이 아니더라도 성공적인 시나리오를 가진 패션 전시는 여러 도시를 순회한다. 2017년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Margiela, The Hermès Years>전은 2018년 파리 장식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관람객으로서는 도시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전시의 다양한 측면을 만날 수 있고, 하우스로서는 전시를 통한 아케팅(Artketing)을 성공시킬 수 있는 비결이다.

2018년에도 다양한 패션 전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라는 제목으로 패션과 종교의 상상력의 관계를 살펴본다. 홈페이지에서는 엘 그레코가 추기경의 붉은 모자, 망토를 입은 페르난도 니뇨 데 게바라를 그린 유명한 초상화 작품(1600)과 그와 똑 닮은 발렌시아가 이브닝 코트(1954-55 A/W) 이미지를 병치해 전시를 소개하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패션에서 가톨릭 신앙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맥락을 살펴보는 이번 전시에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종교적인 이미지를 패션으로 풀어낸 150점의 컬렉션이 동원될 예정이다. 리아나, 아말 클루니, 베르사체가 영예 전시 큐레이터로 참여해 벌써부터 SNS에서 핫하다.(5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5월부터 가 열린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천재적인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를 추모함과 동시에 60점에 달하는 다양한 실루엣의 의상이 등장해 그의 작업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5월 10일부터 10월 7일까지.)

파리 장식미술관에서는 에르메스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마르지엘라의 에르메스 작업에 초점을 맞춘 전시 <Margiela, The Hermès Years>가 펼쳐진다.(3월 22일부터 9월 2일까지.) 동시에 파리 갈리에라 박물관에서도 마르지엘라의 1989년 S/S부터 2009년 S/S까지의 커리어에 집중하는 <Margiela/ Galliera, 1989-2009>가 열리니 2018년은 마르지엘라의 해가 될 것 같다.(3월 3일부터 7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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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 지은(오브제 경매사)
일러스트 Sim Ja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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