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패션이 궁금해?

세계에서 가장 신비한 나라, 오지 아닌 오지의 나라, 북한이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북한 패션에 대해 기대하는 바.

“북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생각의 변화를 관찰했어요. 특히 여성들의 패션 감각이 변했어요.이건 단순한 옷차림의 변화가 아니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화나 계량화할 수 없는 변화, 감각의 변화입니다.”

한 북한 전문 기자가 지난달 24번째 북한 방문을 마치고 남긴 소회다.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보여진 북한은 스카이 라인만 드라마틱하게 바뀐 게 아니었다. 기자는 이런 감각의 변화야말로 북한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꾹꾹 눌러 말했다.

동화적인 색채의 평양 건축물들은 소비에트 건축 양식을 따른다.

평양 부흥 지하철역의 풍경.

“북한은 획일화된 사회이고 수령이 명령하지 않으면 변화도 불가능한 사회로 오해해요. 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고, 그 사람들과 사회는 상호 작용하면서 변화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북한의 달라진 패션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지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북한의 몇몇 모습은 흥미로운 상상을 가능케 했다. 우선 평양 고려호텔에 차려진 프레스 센터부터 눈길을 끌었다. 연두색 카펫과 초록색 벨벳 의자, 우드로 장식된 벽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속에 나올 법한 그곳은 DDP에 차려진 한국의 ‘모던한’ 프레스 센터와는 달랐다. 촌스럽지만 개성 있고, 소박하지만 멋스러웠다. 한국과 북한, 더 크게는 세계와 북한의 차이점은 ‘모던’에 대한 기준이다.

고려호텔에서 목격한 북한의 천연덕스러운 색조는 인테리어, 건축물, 소품, 패션 등 모든 것에 이어졌다. 우리가 그렇게 목놓아 외치던 ‘동시대적’이라는 잣대가 이 나라에선 통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서체부터 36색 크레파스를 몽땅 사용한 것 같은 화려한 한복들, 레고에서나 볼 법한 다양한 색과 모양의 건축물 등 북한은 세계화란 이름으로 획일화된 여느 나라들과는 달랐다. 가장 충격적인 건, 칙칙한 인민복을 입고 옷만큼이나 우울한 표정일 거라 예상했던 평양 시민의 모습이었다.

평양 부흥 지하철역의 풍경.

러시아 사진기자가 촬영한
평양 여성의 모습.

과거 북한은 검열단이 주민들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을 감시했었다. 컬러가 있는 옷을 입거나 바지를 입거나, 혹은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은 금지되었다.(심지어 청바지를 입으면 그 무섭다는 노동단련대로 보내진다.) 대개 한복이나 인민복 정도만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북한 전문 기자 다니엘 튜더와 제임스 피어슨이 쓴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 실린 북한의 최신 패션은 이러한 모습과는 달랐다.

요즘 북한 여성들은 파마도 하고 성형수술도 한다. 리설주의 패션을 따라 사치품을 즐기는 상류층 여성들도 늘었다. 그들은 김일성 배지를 달아야 할 자리에 브로치를 달기도 하고, 바지 정장에 하이힐도 신는다. 얼마 전 평양에서는 뉴발란스와 나이키를 신은 시민도 목격됐다! 우리에겐 별거 아닌 일이지만 북한 시민에게는 가히 ‘개벽’과 같은 변화다.

이 책에서는 패션에 대한 변화가 가장 급진적인 곳은 평양이 아니라 청진이라고 한다. 항구 도시인 함경도 청진에서는 북한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평양 시민에게는 ‘규범파괴자’로 불리는 리설주의 패션을 “조금 촌스럽다”라고 평가하는 청진의 패션 리더들은 스키니 진과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모던한 블랙 룩을 즐겨 입는다.

커플 룩으로 맞춰입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연인들.

이 뿐 아니다. 북한 투어 전문 회사인 통일투어(tongiltours)에 따르면 밀라노, 파리, 뉴욕처럼 평양에서도 패션 위크가 열린다. 지난 2017년 9월 27일부터 3일간 열린 패션쇼(북한말로는 ‘전국조선옷전시회’다)를 관람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판매한 적도 있다. 패션 위크가 있다는 건, 모델과 디자이너가 존재한다는 것. 지금 북한은 이제껏 인민복 속에 꾹꾹 눌러왔던 패션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 직전에 다다르고 있다.

얼마 전 평양에 다녀온 <뉴욕 타임스> 기자 캐럴 지아코모는 “패션에 관한 한 북한의 어린 세대는 더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줘요.”라며 지금보다 미래의 북한에 대해 더 기대할 것이 많다고 했다. 그녀가 본 건 노란색 셔츠에 보라색 바지를 입고 파란색 양말을 신은 아이였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최근 ‘포스트 소비에트’ 트렌드를 이끌며 패션 주류로 등극한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와 패션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 이 둘은 모두 구소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물 밀 듯이 들어온 서양의 음악과 자본주의 문화는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또 그만큼 크게 자극했다. 이들이 어린 시절 겪었던 정보의 결여와 서구 문화에 대한 열망은 주류 패션계를 놀라게 할 독특한 패션 관점을 만들었다.

“유니폼은 착용자에게 유니폼이 상징하는 어떠한 관점을 부여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유니폼을 소재로 다루기 좋아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뎀나 바잘리아는 어린 시절 매일 유니폼같이 똑같은 옷을 입었던 경험 역시 베트멍을 탄생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폐쇄적인 사회 환경은 더 많은 상상을 가능케 했다.

커플 룩으로 맞춰입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연인들.

올리버 웨인라이트(Oliver Wainwright)의 텀블러에 올라온 북한의 인테리어 사진.

러시아 <하퍼스 바자>의 전 에디터이자 패션 웹사이트 ‘Buro 24/7’의 대표인 미로슬라바 듀마 역시 구소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녀는 한때 스트리트 패션계를 이끌던 러시아 패션 군단 중 한 명이었다. 당시의 미니멀리즘 트렌드와는 정반대로 엄청나게 화려한 룩으로 패션계를 시끄럽게(?) 하던 그녀는, “러시아 여성들은 구소련 시절에 오랫동안 세련된 패션과 치장에 대한 열망을 겪었어요. 지금 러시아 패션에서 나타나는 화려한 패션과 짙은 화장은 그때 억압된 것에 대한 표출이에요.”라고 했었다. 이들 속에 응축된 무언가는 더 큰 폭발음을 냈고, 언제나 새로움을 갈구하는 패션이란 생태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재미난 상상이지만, 깡총한 한복을 입고 격렬하게 꽃술을 흔들던 북한 여인들이 미래의 어느 날 러시아 패션 군단처럼 스트리트 패션계를 발칵 뒤집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새로운 모든 패션은 전통에 대한 거부이며 기존 패션의 억압에 대한 정복이다.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전혀 패셔너블하지 않은 너드에게서도 트렌드를 찾아내고, 택배회사 티셔츠도 패션으로 둔갑하고, 눈이 3개 달린 모델을 런웨이에 올릴 만큼 병적으로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곳이 패션계다. 이런 패션계에 지금 북한만큼이나 새롭고 신비한 곳이 또 있을까? 1차적으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북한은 가장 신선한 영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예컨대 “세상의 모든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키코 코스타디노브 같은 디자이너에게 북한은 얼마나 매력적인 ‘유니폼 공화국’이겠는가. 또 캐럴 지아코모의 예상처럼 엄청난 외부 자극을 받고 있는 북한의 젊은 세대는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포스트 DPRK’ 트렌드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들이 (뎀나 바잘리아가 그랬듯) 하이패션 하우스의 수장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물론 이 모든 건 상상일 뿐이다. 여전히 북한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사실일지, 꾸며낸 모습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 상상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갈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건 사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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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민정
사진 Getty Images, northkoreaninteriors.tumblr.com
출처
57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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