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W 뉴욕 패션위크 리포트

뉴욕에는 수많은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패션위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컬렉션을 선보이기로 한 알렉산더 왕과 런던으로 터를 옮기는 빅토리아 베컴, 37년의 디자이너 인생을 정리한 캐롤리나 헤레라까지.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베테랑 디자이너들은 아메리카 아이덴티티를 더욱 강조했으며, 재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앞으로 뉴욕 패션계의 운명을 가를 희망의 불씨로 떠올랐다.

Calvin Klein 205W39NYC

귀여운 팝콘 인비테이션을 보내며 쇼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던 캘빈 클라인. 달짝지근한 팝콘 향기가 코를 찌르는 쇼장에 들어서자마자 목도한 건 새하얀 눈이 온 듯한 팝콘 동산! 또 한 번 공간 디자인을 책임진 스털링 루비는 팝콘 동산 위에 19세기 초원 속 곳간을 세웠고, 외벽에 앤디 워홀의 작품을 도배해 서정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지극히 미국적인 세상을 탄생시켰다. “이번 컬렉션은 자유를 표현했으며 새로운 미국, 새로운 캘빈 클라인을 정의한다.” 소방관 유니폼을 시작으로 나사의 우주비행사, 1949년 상영된 영화 <루니 툰>의 캐릭터 스웨터, 시그너처로 자리 잡은 웨스턴 셔츠까지. 라프 시몬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자신이 생각하는 미국을 정의하는 단어들을 또 다시 런웨이에 펼쳐내며 ‘라프 시몬스표’ 캘빈 클라인을 확고히 정립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스털링 루비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쇼장의 모습. 팝콘 동산 위에 세워진 곳간 모습이 인상적이다.

액세서리처럼 등장한 팝콘 봉투.

 

Alexander Wang

‘Welcome to AWG(Alexander Wang Group)!’ 과거 콘데나스트 본사였던 4 타임스퀘어 21층을 쇼장으로 택한 알렉산더 왕은 빈 사무실을 파티션과 사무용 의자로 꾸며 ‘알렉산더 왕 그룹’의 오피스로 연출했다. 깜박거리는 형광등과 하이힐 소리로 시작한 쇼에는 스포티즘과 퓨처리즘을 곁들인 센슈얼한 파워 워킹 걸들이 대거 등장했다. 샤프한 올백 머리를 연출해준 헤어 핀과 브랜드 로고가 담긴 스타킹, 스포티한 백팩과 벨트 백, 젠틀몬스터와 협업한 유니크한 선글라스는 런웨이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 요소. 지난 몇 시즌간 침체기를 겪어서일까. 알렉산더 왕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뉴욕 패션위크의 전통적인 캘린더와 안녕을 예고했다. 빅 쇼의 부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뉴욕 패션위크에 또 하나의 비보가 아닐는지.

오피스처럼 꾸며진 쇼장.

젠틀몬스터와 협업한 미래적인 선글라스.

 

Marc Jacobs

마크 제이콥스 쇼는 그동안 집중했던 스트리트 무드를 철저히 배제한 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쇼를 선사하며 뉴욕 패션위크의 대미를 장식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이브 생 로랑 같은 전설적인 쿠튀리에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어깨를 강조한 아방가르드한 실루엣, 대담한 컬러 팔레트와 레트로적인 패턴에서 짐작할 수 있듯 1980년대식의 맥시멀리즘에 한껏 취한 듯한 런웨이를 완성했다. 스티븐 존스의 날카로운 모자부터 한껏 부풀어 오른 형태의 스카프와 벨트, 멀티 백 스타일링은 쇼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

뉴욕 패션위크의 마지막을 드라마틱하게 장식한 마크 제이콥스의 피날레.

스티븐 존스의 모자 행렬.

 

Ralph Lauren

“누구나 시간을 초월하여 천연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는 마법 같은 장소를 소망합니다. 자메이카 휴양지에서 느꼈던 기분, 빛, 청명한 블루 앤 화이트 컬러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시즌 자메이카 휴양지에서 영감을 얻은 랄프 로렌의 런웨이는 ‘휴양지의, 휴양지에 의한, 휴양지를 위한’ 옷장을 보는 듯했다. 젯셋족을 위한 리조트 웨어 같았던 컬렉션에선 맨발로 등장한 로맨틱한 플로럴 패턴 군단, 블루 앤 화이트, 요트 같은 휴양지 모티프를 담은 페이턴트 재킷, 볼드한 컬러의 이브닝드레스가 눈길을 끌며 당장 휴양지로 떠나고픈 충동을 자극했다. 쇼 중간 들려온 자이언티의 노래 ‘영화관’도 반가웠던 것 중 하나.

 

Bottega Veneta

매디슨 애비뉴 740번지에 자리 잡은 메종 오픈을 기념하고자 밀라노가 아닌 뉴욕에서 쇼를 선보인 보테가 베네타. 뉴욕 데뷔전답게 토마스 마이어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뉴욕 남녀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갔다. 하우스의 홈 컬렉션과 빈티지 제품들로 꾸며 마치 럭셔리 아파트를 떠오르게 했던 런웨이는 보테가 베네타식의 장인정신, 기하학적인 그래픽 패턴,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 애니멀 프린트 등 도회적이면서 여성스러운 룩으로 채워졌다.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도 완벽히 고립된 상태가 되기도 하는 양 극단을 오가는 도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는 토마스 마이어의 말처럼 실크 파자마, 부드러운 이브닝드레스 등 럭셔리 아파트를 닮은 쇼장에 어울리는 의상들도 등장했다.

홈 컬렉션과 빈티지 제품들로 꾸며진 쇼장은 도심 속 럭셔리 아파트를 떠오르게 했다.

 

Victoria Beckham

10주년을 맞아 프라이빗한 쇼를 마련한 빅토리아 베컴의 런웨이엔 가죽 후디와 매치한 밀리터리 코트, 레오퍼드 자카드 코트, 스포티함과 우아함을 겸비한 패딩 베스트, 언밸런스한 아코디언 주름이 잡힌 드레스와 오버사이즈 퀼팅 백이 등장했다. 이질적인 요소를 빅토리아 베컴 특유의 세련된 방식으로 융합하는 명민함을 선보였다. 뉴욕의 세련된 페미니즘을 담당해오며 꾸준히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전시키고 있던 빅토리아 베컴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런던행을 선언했다.

밀리터리, 스포티, 매니시 무드를 한데 모은 코트 군단.

무엇이든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오버사이즈 퀼팅 백!

 

THE ROW

모던아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뉴욕에서, 옷이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이는 컬렉션이 없었다면 애석한 일이었을 터. 다행이도 더 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롱아일랜드 시티에 위치한 노구치 뮤지엄에서 공수해온 작품들로 자신들의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뒤, 단순하지만 조형미가 느껴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컬렉션을 선보인 메리-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자매. 자연스럽게 흐르는 드레이핑에서는 훌륭한 소재에 대한 존중을, 조형적인 실루엣을 만들어낸 플리츠 디테일 드레스에선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유니폼이 어떻게 오늘날 옷장에서 재현될 수 있는지 고민했다는 올슨 자매는 트렌치코트부터 카키, 베이지 등의 유틸리티 컬러가 더해진 룩을 지나 중세 무드의 조형미 넘치는 이브닝 라인까지, 실용성과 예술성을 넘나들며 오늘날 여자들의 유니폼을 재정의했다.

 

TOM FORD

톰 포드 우먼은 벌키한 패딩이나 헤링본 수트를 입을 때조차도 세상 그 누구보다 관능적이다. 웅장한 파크 애비뉴 아르모니 홀에 설치된 런웨이 위로 톰 포드 특유의 1980년대 글램 스타일에 이디 세즈윅이 연상되는 1960년대의 펑크 무드가 가미돼 관능과 화려함의 점정을 찍은 듯한 현란한 룩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체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실루엣과 견고한 테일러링 위에 애니멀 패턴, 비비드와 네온 컬러, 메탈릭, 시퀸 등의 소재를 더해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에디터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블랙 턱시도 캣 수트(르 스모킹이 연상되는)가 가장 파워풀해 보였다. ‘톰 포드 베벌리 힐스(Tom Ford Beverly Hills)’ 레터링이 크리스털로 수놓인 시퀸 스웨트셔츠는 스왜그 넘치는 스타일을 사랑하는 로고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을 듯. 관능적이며 실패를 모를 것같이 파워풀한 여성상을 창조한 톰 포드는 ‘푸시 파워(Pussy Power)’ 레터링이 더해진 백과 슈즈로 타임스업과 미투 움직임에 힘을 보탰다.

 

MICHAEL KORS COLLECTION

뉴욕을 상징하는 링컨센터에서 쇼를 진행한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곡에서부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시그널 음악, 비욘세의 곡 등 미국을 대표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메들리처럼 쇼장을 가득 채웠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과 커리어(슈퍼모델부터 신인까지), 체형(건강한 아름다움을 과시한 애슐리 그레이엄)의 모델들이 런웨이 무대에 올라 역시 다채로운 스타일의 드레시, 스포티, 매니시, 페미닌 무드의 의상을 선보이며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미국 문화를 오마주했다. 쇼의 말미에 흘러나온 제이지와 앨리샤 키스의 ‘Empire State Of Mind’와 피날레 무대에서 흘러나온 줄리 앤드류스의 ‘My Favorite Things’는 마이클 코어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뉴욕이며, 이번 컬렉션은 미국에 바친 경의였음을 위트 있게 전해주었다.

데이비드 다운튼의 일러스트가 더해진 핸드백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애슐리 그레이엄.

 

CAROLINA HERRERA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는 자신이 사랑하는 공간인 모마 뮤지엄에서 마지막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프닝 룩은 그녀를 상징하는 화이트 셔츠를 변형한 화이트 블라우스와 블랙 스커트의 조합,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룩은 그녀가 피날레에서 입고 나온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의 조합이었다. 그리고 잇따라 등장한 뉴욕 상류 문화의 자존심인 헤레라식 엘레강스 룩을 지나 그녀를 상징하는 드레스 라인이 쇼의 말미를 장식했다. 쇼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감동적인 모먼트가 모마 안에 펼쳐졌다. 색색의 태피터 볼 스커트에 매치된, 그녀가 평생을 사랑한 화이트 셔츠 퍼레이드가 이어졌기 때문. 아틀리에 장인들과 함께 무대로 나와 기립박수를 받은 캐롤리나 헤레라 여사의 마지막 인사와 쇼장에 내내 흐른 엘라 피츠제럴드의 ‘Night and Day’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기립박수 속에서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맞이한 캐롤리나 헤레라.

 

Tory Burch

토리 버치의 쇼가 열린 브리지 마켓에 들어선 순간, 봄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구아스타비노 양식의 우아한 크림빛 타일 아치 공간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푸른 잔디와 아름다운 핑크 카네이션이 늦겨울의 뉴욕에 봄을 선사했다. 독일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시의 ‘카네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디어로, 페미닌과 매니시 무드가 적절히 조화된 룩을 입은 토리 버치 걸들이 이 아름다운 꽃들 사이로 등장했다. 파카와 피코트, 블레이저 등과 같이 매니시한 아우터에 보태니컬 플라워 패턴 드레스를 매치한 스타일이 컬렉션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이 밖에 (소녀들이 열광할) 화이트 러플 드레스들도 매우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우아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실용적인, ‘뉴욕식 보헤미안 룩’이라 할 수 있을 듯.

카네이션이 만발한 토리 버치 쇼장의 아름다운 전경.

 

Coach 1941

지직거리는 화면의 텔레비전들이 군데군데 놓인, 어둡고 음산한 숲이 재현된 쇼장을 보자 이번 시즌의 테마를 눈치챌 수 있었다. 코치 하우스에 ‘아메리칸 헤리티지’라는 명확한 비전을 불어넣어 조용한 가죽 브랜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인 스튜어트 베버스는 다크 로맨스 감성을 컬렉션에 주입시켰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런웨이 위를 유령처럼 걸어다니던 모델들은 코치의 아이코닉한 무톤, 레더 아우터를 플라워 패턴과 러플 보헤미안 드레스에 매치한 웨스턴 고딕 룩을 입고 있었다. 코치의 크래프트맨십을 드러내는 패치워크, 태슬, 스터드, 프린지 등의 수작업 디테일이 돋보였으며, 여러 개의 핸드백을 레이어링한 오버사이즈 백 또한 인상적이었다.

 

3.1 Phillip Lim

다양한 컬러가 조합된 스트라이프 니트 드레스에 카우 패턴 송치 코트를 매치한 룩으로 쇼를 시작한 필립 림은 어머니가 조각을 이어 붙여 옷을 지으시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패턴과 패턴을 잇고, 컬러와 컬러를 잇고, 무드와 무드를 이어 어머니가 조각을 잇듯 컬렉션을 지어낸 필립 림은 매력적인 모던 노마드 룩을 탄생시켰다. 후반부의 스카프 디테일 드레스나 셔츠 피스들은 파리의 어느 대가를 떠올리게 했지만, 쇼의 전반부를 화사하게 채운 파스텔 팔레트의 룩과 블랙과 화이트 컬러가 조합된 모던한 피스들은 눈부시게 빛났다. S/S 시즌에 자주 볼 수 있는 조개 모티프가 주얼리에 더해졌는데, 이 주얼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노마드 컨셉트를 살리는 포인트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키스!

 

Sies Marjan

네 번의 훌륭한 컬렉션을 통해 뉴욕의 상위권 디자이너로 발돋움한 샌더 락은 이번 시즌 실용성과 예술성이 조화된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동안 그의 특기로 인정받아온 컬러 플레이는 같은 컬러 안에서 플리츠나 광택에 의한 변화를 보여주거나, 옴브레와 그러데이션, 그리고 투 톤 PVC 소재 등을 통해 예민하고 오묘한 컬러 팔레트로 전개됐다. 패브릭의 레이어링을 통해 컬러의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새틴 소재에 얹혀진 튤 소재가 바로 그것. 컬러뿐만 아니라 디자인 자체도 힘이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프닝 룩과 피날레 룩에 사용된 소용돌이 모양의 꼬임 디테일로 모던한 조형미를 드러냈다.

 

Mansur Gavriel

패션이 여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어쩌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만수르 가브리엘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90년대의 미니멀리즘이 연상되는 심플한 의상과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인 만수르 가브리엘은 라이트하고 투명한 소재와 아름다운 컬러로 여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지난 시즌 선보인, 첫 레디투웨어 컬렉션보다 한층 진화한 섬세하고 정교한 컬렉션으로 여유롭고 낙천적이며 우아한 여성상을 보여주었다. ‘시 나우, 바이 나우’ 컬렉션을 선보이는 만수르 가브리엘은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오간자 소재의 룩과 우아한 라벤더 컬러 드레스, 백과 슈즈를 통해 지금 당장 지갑을 열라며 여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쇼장에 설치된 탱자 나무가 낙천적인 무드를 더욱 살리고 있었다

앙증맞은 디자인의 스트로 모자.

 

TIBI

스트리트 신에 자주 등장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티비. 지금 이 순간, 현실 속 멋쟁이 여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입고 싶어하는 브랜드 중의 하나가 바로 티비라는 이야기다. 입기에 쉽고, 실용적이지만 어딘가 멋스러운 티비의 ‘에포틀리스 시크’가 느껴지는 옷들이 바로 동시대 여자들이 입고 싶어하는 옷들이다. 이번 시즌 ‘도시와 건축물’을 테마로 한 티비는 단순히 도시와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니라, 이 옷을 입은 도시와 건축물 안의 여자들을 그려냈다.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는 ‘도시와 건물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원하는 대로 골라 입을 수 있는 시크한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Derek Lam

데렉 램은 이번 시즌, 전설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2세에 주연을 맡은 영화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로 영화의 소재인 승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데, 아메리칸 클래식 컨셉트의 브랜드가 애용하는 테마인 이 승마 모티프를 데렉 램은 자신만의 모던 클래식 감성으로 재해석해, 지나치게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이며 세련된 승마 룩을 제안했다. 테마에 부합하는 고급스러운 울 소재의 케이프 코트부터 핀스트라이프 코트까지 데렉 램의 어번 시크 아이덴티티를 담아낸 의상들이 런웨이에 대거 등장했다.

 

Gabriela Hearst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레이블 론칭 3년 만에 확고한 성공을 이루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취향 덕분일 것이다. 귀족적인 컬렉션으로 수많은 워킹 우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이번 시즌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의 여성 석탄 채굴자와 세계대전 당시 여공들의 옷에서 영감을 얻었다. 또한 <워싱턴 타임스-헤럴드>의 칼럼니스트였던 자신의 시어머니, 오스틴 허스트에게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칼럼니스트이자 라이더였던 그녀의 스타일을 참고해 마이크로 라이딩 부츠 프린트와 흑백 신문 콜라주 패턴을 만들어냈다. 이전 컬렉션에 비해 모든 피스가 완벽에 가깝지는 않았으나, 쇼의 마지막을 장식한 우아한 드레이핑 디테일의 코발트 컬러 모헤어 코트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카페 알트로 파라디소에서 소규모로 진행된 컬렉션.

 

Brandon Maxwell

블랙과 화이트 또는 톤다운된 컬러를 선보이던 브랜든 맥스웰이 지난 시즌부터 선보인 원색적인 컬러와 1980년대 무드는 컬렉션에 분명 자유로움을 불어넣고 있다. 두 시즌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던 엄격함과 긴장감은 상당히 풀어졌으며 디자이너의 말처럼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저는 편안한 글래머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어요”. 브랜든 맥스웰의 컬렉션은 글래머러스한 동시에 세련되고 시크하다.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으며, 파인애플 모양의 립스틱 케이스와 같은 위트도 있다. 그의 컬렉션에 처음으로 등장한 데님, 티셔츠와 후드 니트 스웨터에 매치된 볼 스커트 그리고 니트 드레스가 바로 이 편안한 글래머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룩이다.

브랜든 맥스웰의 절친한 친구 칼리 클로스와 하디드 자매가 런웨이에 올라 쇼를 빛냈다.

 

Narciso Rodriguez

2018 F/W 시즌을 위해 17벌의 새로운 의상들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 나르시소 로드리게즈는 자신의 브랜드의 20주년을 기념해 아카이브 속 최고의 드레스 아홉 점을 재창조한 바니스 백화점과의 캡슐 컬렉션을 기념하는 디너 파티를 가졌다. 그의 옛 드레스들은 지금 보아도 여전히 모던하고 지적이며 섹시하다. 그가 만들어내는 옷은 언제나 그렇다. 그리고 새로이 발표된 2018 F/W 컬렉션도 마찬가지. 지금 당장 당신의 옷장을 채워줄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컬렉션이다. 지난 20년과 같이, 그는 앞으로의 20년도 묵묵히 트렌드를 초월한 자신만의 옷을 지어나갈 것이다.

 

Jason Wu

지난 시즌에 이어 런웨이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 제이슨 우는 이번 시즌, 섬세하며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인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와 미켈레 드 루치(Michele De Lucchi)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크리스털을 상당한 수의 룩에 수놓았으며, 스트랩 초커와 벨트에 달거나 귀고리로 활용했다. 또 주목할 만한 소재는 바로 형태감이 느껴지는 플리츠 소재. 그러나 전반적으로 스프링 시즌의 옷처럼 느껴졌으며, 전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마음을 훔친 아름다운 드레스에 비해 데일리 웨어가 빈약하고 부족하게 느껴진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던한 블랙 구조물과 플라워 기둥 사이에서 등장한 모델들.

 

PRABAL GURUNG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프린트한 티셔츠로 화제를 낳았던 프라발 구룽은 이번 시즌에도 역시 우먼 파워를 이야기했다. 또한 프런트 로에는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타라나 버크, 트랜스 젠더 배우와 작가들이 앉아 있었다. 이번 시즌 프라발 구룽은 인도의 여성 갱단 굴라비 강(Gulabi Gang), 중국의 모계사회 종족 모수오(Mosuo) 족과 같이 여성이 지배하는 그룹과 자신의 고향인 네팔의 파워풀한 여성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동양적이고 민속적인 무드를 모던하게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다양한 인종과 체형의 모델들을 캐스팅한 점도 인상적. 그러나 그의 컬렉션 자체보다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주목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을 듯.

프라발 구룽이 디자인한 타사키 아틀리에의 유니크한 진주 주얼리가 런웨이에서 소개되었다.

 

OSCAR DE LA RENTA

창립자의 지휘 아래 십수 년 동안 컬렉션을 도와온, 오스카 드 라 렌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라 킴과 페르난도 가르시아 듀오는 두 시즌 동안의 방황 끝에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은 듯 보였다. 이 듀오 디자이너는 오스카 드 라 렌타와 함께 방문했던 중세미술 뮤지엄인 클로이스터 뮤지엄을 떠올렸고 이를 컬렉션으로 풀어냈다. 드 라 렌타의 헤리티지를 적극 이용해 기존 팬들의 불만을 듣지 않는 동시에 젊은 세대도 반할 만한 로맨틱한 피스도 함께 선보인 명민함이 돋보인다. 중세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뮤지엄에서 얻은 영감은 이 디자이너 듀오를 동화 속 엘리자베스 시대로 이끌었다. 퀼팅, 태피스트리, 보태니컬, 자수, 유니콘과 같은 중세 모티프가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에서 튀어나온 듯한 태피스트리가 아름다운 드레스로 부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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