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W 파리 패션위크에서 생긴일

패션 하우스의 아카이브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새로운 코드를 창조해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그들로 인해 파리 패션위크는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고급과 저급, 실용과 판타지를 오가는 하이브리드 현상은 이번 시즌에도 주요한 키워드로 떠올랐으며, 자연과 예술을 향한 경외심은 가장 강력한 영감으로 작용해 파리 패션계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었다.

Chanel

낙엽이 수북이 쌓인 가을 숲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드리운 그랑 팔레. 에드워디언풍 롱 코트와 깃털 장식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마치 숲속을 산책하듯 등장했다. “이건 일종의 ‘인디언 서머’예요.” 폭포를 배경으로 한 지난 시즌에 이어, 칼 라거펠트는 숲을 모티프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 대지의 기운을 머금은 적갈색과 짙은 초록의 트위드 수트에는 호화로운 주얼리 스타일링으로 화려함을 더했고, 낙엽을 찍어낸 듯한 컬러풀한 프린트의 룩에는 골드 루렉스 소재 피스들을 매치해 이국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건 나일론 소재로 스포티한 변신을 꾀한 트위드 재킷과 피날레를 장식한 리틀 블랙 드레스와 핑크 장갑의 로맨틱한 조합!

가을 숲으로 변모한 그랑 팔레, 피날레 워킹 중인 모델 군단.

 

Louis Vuitton

루브르 박물관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미래지향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가장 탁월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영화 <스타워즈>의 우주선 내부를 옮겨 놓은 듯한 데커레이션과 거대한 분수를 중심으로 걸어 내려오는 모델들의 모습은 마치 미래 전사를 방불케 했으니. 지난 시즌에 이어 르네상스와 하이테크 스포티즘의 하이브리드가 주요한 키워드로 활용되었지만 보다 실용적인 피스들이 등장했다. 그중 스포티한 LV 로고 장식을 더한 변형된 스웨트셔츠와 블라우스가 눈길을 끌었고, 다채로운 실루엣과 컬러로 등장한 시어링 코트는 도시 여성을 위한 완벽한 아우터로 느껴졌다.

스포티한 LV 로고 장식이 가미된 스웨트셔츠와 펜슬 스커트의 조합.

 

Dior

올해 5월, 파리 학생 시위 50주년을 맞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당시 처음으로 기성복을 내놓았던 디올의 히스토리와 1960년대 특유의 장식들(크로셰, 자수, 패치워크)을 주요한 영감으로 활용했다. 또한 당시의 잡지 표지와 학생 시위에 쓰인 슬로건으로 쇼장 전체를 장식하는 한편, 런웨이 전면엔 ‘I am a Woman!’ 문구를 삽입해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기도! “60년대는 개성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죠. 창의력이 빛나던 시대였고, 여성들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창조해냈어요.” 그녀의 대담함이 느껴진 피스는 다양한 길이의 킬트와 진화된 스쿨 룩을 연상케 한 유니폼들. 아울러 다채로운 가방 컬렉션도 쇼를 풍성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1960년대 잡지 커버로 꾸민 쇼장의 모습.

데님을 패치워크한 룩에 ‘D’ 로고 벨트를 매치한 룩.

 

Balenciaga

뎀나 바잘리아가 “스노보더들의 낙원”이라 소개한 그래피티 빙산을 배경으로 발렌시아가의 첫 남녀 통합 컬렉션 쇼가 열렸다. 이번 시즌 뎀나는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유산(구조적 실루엣)과 하이테크 기술의 결합을 통해 그만의 코드를 완성했다. 3D 스캔을 통해 손가락까지 재현된 완벽한 보디스 위에 트위드, 벨벳 등을 부착, 매끄럽고 날렵한 맞춤형 피스들을 선보인 것. 보디콘 드레스, 혹은 후디에 바스크 코트를 매치한 모델들이 마치 21세기형 본드 걸처럼 보였달까. 후반부에 등장한 거대한 나일론 파카와 페이크 퍼 코트는 1950년대 발렌시아가의 버블 가운을 떠올리게 했고,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일환으로 탄생된 로고 후디와 티셔츠도 눈길을 끌었다.

컬러풀한 그래피티로 뒤덮인 설산이 시선을 압도했다.

스노보더의 고글을 연상케 하는 선글라스.

 

Valentino

지난 1월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선보인 오트 쿠튀르 쇼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파리에서 다시금 마주한 발렌티노 2018 F/W 컬렉션은 피치올리의 낭만주의로 가득했다. 보디를 타고 흐르는 실루엣의 가운, 꽃을 형상화한 후디 케이프, 큼직한 꽃 모티프를 패치워크하거나 아플리케 장식한 드레스, 스캘럽 디테일로 로맨틱함을 주입한 드레스 등, 온전히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피스들은 치우리와 함께하던 시절의 발렌티노와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음을 실감케 했으니. 팬츠에 발목까지 오는 튜닉을 덧입은 금욕적인 스타일링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그의 주특기인 생생한 컬러 팔레트가 쇼 전체에 매력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준 듯.

 

Saint Laurent

안토니 바카렐로는 변덕스러운 트렌드 속에서도 가장 생 로랑적이고 또 바카렐로다운 컬렉션을 일관되게 선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 에팔탑 앞으로 런웨이를 옮겨오며 드라마틱함을 더했던 생 로랑은 반짝거리는 에펠탑이 지척에 보이는 거대 부스에서 쇼를 진행했다. 컬렉션은 짧은 가죽 쇼츠에 다채롭게 변주된 르 스모킹 재킷, 중산모 혹은 터번을 쓴 행렬로 시작해 1980년대 무드의 글래머러스한 미니 드레스로 이어졌다. 슬라우치 부츠와 플랫폼 부츠, 모히칸 퍼 장식의 스틸레토 힐이 의상에 날개를 달아주었음은 물론이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다양한 곡선형 네크라인이 돋보이는 롱앤린 블랙 드레스들. 피날레를 장식한 건 다채로운 플라워 프린트의 미니 드레스로, 당장 파리의 클럽에서 입어도 좋을 법했다.

롱앤린 실루엣의 블랙 드레스에 중산모를 매치한 룩들.

우아한 네크라인과 야성적인 귀고리의 매력적인 조합.

 

Givenchy

레디투웨어와 쿠튀르 쇼를 한 번씩 치러낸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지방시는 긍정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베를린 음악과 클럽 신에 대한 다큐멘터리 <악마의 키스>와 <B급 영화: 웨스트 베를린의 욕망과 소리 1979-1989>에서 영감을 얻어 음울하면서도 매혹적인 1980년대 무드를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는 쿠튀르 쇼의 테마였던 ‘나이트 비전(Night Vision)’에 이어 ‘나이트 누아르(Night Noir)’를 표현한 셈. 놀라웠던 건 쇼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모피코트들이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모두 페이크 퍼라는 사실이었다. 몇 시즌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녀가 다크한 스트리트 무드의 리카르도 티시와는 상반된 노선을 택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애니멀 프린트의 니트에 매치한 클래식한 스퀘어 백.

 

Hermès

붉은 모래가 깔린 런웨이와 오렌지색 조명, 황혼이 빚어낸 그림 같은 풍경은 이번 시즌 에르메스 쇼를 완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해도 무방할 것. 이를 배경으로 등장한 특유의 부드러운 가죽 소재 피스와 캐시미어, 무톤 소재의 아우터, 정교한 자수 장식 드레스들은 충분히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니.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는 기존의 스타일에 아웃도어 감성을 주입해 체인 잠금 장치가 더해진 코트, 로프를 더한 벨트, 가방처럼 멜 수 있는 담요 등을 선보였다. 늘 그러하듯 장인정신이 담긴 슈즈와 백 컬렉션 또한 여심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 에르메스 쇼의 피날레 모습.

 

Alexander Mcqueen

알렉산더 맥퀸의 쇼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나비와 벌레, 잃어버린 낙원보다 찾은 낙원”. 평소 자연 애호가로 잘 알려진 사라 버튼다운 테마 아래, 완벽한 테일러링의 턱시도 수트부터 쿠튀르 피스에 가까운 드라마틱한 가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국적인 곤충 자수 디테일, 나비 날개가 프린팅된 프린지 장식 드레스, 야성적인 프린트를 시퀸으로 표현한 케이프 등,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는 피스로 가득 채워졌다.

곤충의 표피를 연상케 하는 야성적인 프린트 룩.

쿠튀르 피스에 가까운 드라마틱한 이브닝 가운.

 

Miu Miu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모델은 다름 아닌 소녀 갱단으로 변신한 엘르 패닝! “1950~60년대로 돌아가 성격, 인종을 넘어 크고 작은 것들의 다양성을 표현하고 싶었죠.”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쇼장의 천장을 다양한 인물을 담은 패션 알파벳 일러스트로 장식했다. 그 아래로 반항적인 레트로 룩을 입은 소녀들이 등장했는데, 워싱 데님 수트, 오버사이즈의 가죽 벨티드 코트, 컬러풀한 미니스커트 등 당시의 유행 코드를 미우 미우 스타일로 재해석한 피스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팝한 컬러의 레인부츠와 니트 넥워머, 프티 사이즈의 토트백과 같은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는 미우 미우 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패션 알파벳 일러스트를 담은 플래그로 장식한 쇼장 전경.

마치 양말을 덧신은 듯한 신데렐라 슈즈.

 

Loewe

조너선 앤더슨은 이번 시즌에도 자신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바로 컬렉션의 영감이 된 일본 작가 데츠미 구도(Tetsumi Kudo)와 영국 태생의 건축가 E.W 고드윈(E.W Godwin)의 작품을 쇼장에 전시한 것. ‘수공예 럭셔리(Crafted Luxury)’라는 테마 아래 유연함과 편안함, 섬세함이 공존하는 로에베 특유의 데이웨어가 쏟아져 나왔고, 특히 가죽 라이닝이 패턴처럼 더해진 드레스와 커팅 디테일에 태피스트리 장식을 가미한 피스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아웃 포켓 장식의 재킷과 코트에도 하우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가죽 공예가 더해졌고,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백 컬렉션 또한 한층 진화된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고드윈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의자에 놓인 ‘로에베 클래식 북’.

게이트 백의 2018 F/W 버전.

 

Céline

셀린 하우스는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시즌 셀린은 에디 슬리메인이 새롭게 선보일 2019 S/S 컬렉션에 앞서 ‘피비 스튜디오(피비 파일로의 팀이 완성한)의 작품’이라 소개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쇼를 대체했다. 파리 본사에서 마주한 F/W 컬렉션은 분명 피비의 흔적으로 가득했으나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가 즐겨 사용했던 실루엣의 변주, 드라마틱함을 더하는 주름 장식, 빈티지 오너먼트를 활용한 세련된 포인트 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백 & 슈즈 라인도 약간의 진화된 버전으로 선보였다. 물론 그녀의 팀이 새롭게 선보인 피스 중에도 동시대 여성들을 매료케 할 만한 아이템은 존재했다. 고급 부르고뉴 나파 가죽으로 완성한 보르도 컬러의 후드 코트가 그 대표적인 예.

Chloé

나타샤 램지-레비의 두 번째 클로에 컬렉션은 1970년대 프렌치 클래시즘의 정수를 담았다. 이국적인 프린트와 자수 장식, 패치워크에서 1970년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고, 후반부에 등장한 어깨 혹은 가슴, 복부에 가미된 대담한 컷아웃 디테일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가장 주요했던 피스는 쇼 전반에 걸쳐 등장한 깊은 브이넥 드레스와 블라우스들. 여기에 클리비지 라인 위로 볼드한 펜던트를 착용해 화려함을 더했다. 펜던트 외에도 너클링, 한 쌍의 뱅글 등과 같은 금속 액세서리가 쇼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로고 장식의 스포티 양말과 글래디에이터 부츠의 조합, 조랑말을 연상케 한 모피 장식의 조거 팬츠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STELLA MCCARTNEY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모델 니나 마커는 란제리 슬립과 빈티지 웨딩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룩을 입고 등장했다. 그 한 벌에서 느낄 수 있듯, 이번 시즌 매카트니는 시간을 초월한 클래식 피스를 재해석하는 데 주력했음을 밝혔다. 남성 코트의 안감을 활용한 드레스, 펜슬 스커트처럼 보이는 퀼로트 팬츠, 웨이스트 코트를 여러 겹 겹쳐 완성한 테일러링 재킷이 대표적인 예. 인상 깊었던 건 1960년대 영국 출신 예술가 J.H 린치(J.H. Lynch)가 그린 관능적인 여인의 모습을 프린팅한 드레스로, 레이스와 튤 너머로 은은하게 비치게끔 디자인되었다. 친환경적인 컬렉션을 위한 노력은 접착제 사용을 배제하고 독특한 후크 디자인을 가미한 신제품 루프 스니커즈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Nina Ricci

기욤 앙리가 하우스에 남기로 했음을 알리는 기사가 난 직후 열린 니나 리치 쇼, 피날레에 등장한 그에게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아이스 블루 컬러의 케이프 셔츠와 강렬한 레드 컬러의 연미복 팬츠의 매치로 오프닝을 연 그는 근위병 유니폼을 연상케 하는 롱 더플코트를 선보인 데 이어 1950년대 무드의 콘 브라, 1930년대풍 실크 가운 등 시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룩을 선보였다. 다수의 모델들이 쓰고 등장한 베일 장식 필박스 모자는 쇼에 통일감을 준 요소.

 

Dries Van Noten

드리스 반 노튼의 쇼장에는 딥 퍼플의 ‘Child in Time’이 울려 퍼졌고, 날것 그대로의 창조물을 뜻하는 ‘아르 브뤼(Art Brut)’를 테마로 한 컬렉션이 펼쳐졌다. 비교양적이고 비회화적인 미술 형태로 지칭되는 사조를 담아낸 러프한 스케치의 프린팅이 느슨하고 긴 실루엣의 드레스에 덧입혀졌고, 아르 브뤼라고 하기엔 다소 정교하게 느껴지는 화려한 패턴도 몇몇 눈에 띄었다. 시선을 압도한 건 모델 한나가 입고 등장한 오버사이즈의 그런지한 퍼 코트와 심플한 블랙 드레스에 플라스틱 프린지 장식이 아티스틱하게 가미된 피날레 룩.

 

Isabel Marant

“미국 서부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고전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방식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는 짐 자무시에 가까웠죠.” 이번 시즌 이자벨 마랑은 웨스턴 무드라는 자신의 주특기를 살린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였다.(이는 그녀의 첫 공식 남성 컬렉션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웨스턴 피스라 할 수 있는 카우보이 재킷과 부츠, 슬라우치 부츠, 스트라이프 패턴의 블랭킷 코트, 청키한 니트 아이템이 런웨이에 등장했고, 웨스턴 무드의 벨트와 프린지 장식의 클러치 백도 눈길을 끌었다.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 리앤 반 롬페이가 입은 프린지 장식의 호화로운 카우보이 코트와 사이하이 부츠의 매치. 후반부에는 브랜드 특유의 1980년대풍 칵테일 드레스로 마무리했다.

이자벨 마랑의 웨스턴 무드 룩을 입은 모델 프레데리케와 펠리스.

 

Maison Margiela

존 갈리아노는 메종 마르지엘라를 통해 확립된 안과 밖이 뒤바뀐 의상들을 재해석하고 진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아티즈널 쇼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볼륨감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고, 홀로그램 및 투명 소재 역시 핵심적인 요소로 사용됐다. 아울러 커팅을 통해 옷의 안쪽 단면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하우스 고유의 테콜티크(Décortiqué) 기법은 다양한 아우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구름을 닮은 글램 슬램 백은 레인보 컬러로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샐로펫이라 불리는 스키복이 레이어드된 트렌치코트.

아티즈널 쇼에도 등장했던 미래적인 하이톱 스니커즈.

 

Lemaire

르메르의 듀오 디자이너는 지혜롭고 예술을 즐기는 동시대 여성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법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당신은 흠잡을 데 없는 옷차림에 싫증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그들의 옷은 정확한 재단과 완벽한 공정을 통해 탄생했지만 스타일링에는 자유분방함을 추구했다. 실크 셔츠는 재킷 아래로 비죽이 나와 있었고, 스커트는 팬츠 위에 레어어드했으며 아우터에 달린 스트랩은 자유롭게 나풀거렸으니. 피비 파일로의 셀린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르메르는 분명 가장 최선의 대안이 되어줄 것.

쿨한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가죽 재킷 룩.

 

Thom Browne

지난 시즌에 이어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톰 브라운은 여성 페인터들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을 쇼 안에 녹여냈다. 플란넬이라는 단 하나의 소재만을 가지고 컬렉션을 완성한 그는 시그너처인 남성복을 소재로 여성의 보디라인을 재창조해내는가 하면, 기성복에서 찾아보기 힘든 쿠튀르적인 디테일을 선보여 프레스들의 감탄을 이끌어냈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의상의 앞뒤를 바꾸거나 없애기도 하고, 색채를 생략하고 명암만을 나타내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통해 회화적인 무드를 주입하기도. 특히 한 편의 연극과도 같았던 피날레는 긴 여운을 남겼다.

플란넬 수트를 입은 여성 페인터들이 등장한 쇼의 오프닝.

 

Off-White

루이 비통의 남성 아티스틱 디렉터로 낙점되며 전성기를 맞이한 버질 아블로. 그는 ‘West Village’라는 슬로건 아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쇼를 선보였다. 쇼 전반에 등장한 하늘빛 컬러 팔레트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으며, 태피스트리 소재로 의상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승마 모티프의 프린트도 돋보였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스포티한 요소, 후디, 선글라스, 브라 톱, 보디수트 역시 분위기를 전환하는 키 아이템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승마 모티프 프린트가 돋보이는 태피스트리 룩을 입은 모델들.

벨라 하디드가 오프닝에서 들고 등장한 토트백.

 

Comme Des Garcons

레이 가와쿠보는 미국 태생 작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대표적인 에세이 에서 영감을 받았다. 케케묵거나 속된 것이 오히려 멋있다고 보는 ‘캠프’의 사전적 의미와 수전 손택의 글에서 감명을 받은 그녀는 새롭고, 과장되며, 강한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한 것. 그 결과로 탄생한 컬렉션은 룩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강렬함이 존재해 있었고, 패션이 가진 판타지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Lanvin

올리비에 라피두스는 지난 시즌 데뷔 쇼에 쏟아진 차가운 비평을 견디며 두 번째 쇼를 준비했을 것. 이번 시즌 그는 한국계 아티스트 크리스타 킴(Krista Kim)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그레이디언트 룩으로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두꺼운 실크 소재 혹은 가죽, 가방 등에 더해진 컬러풀한 색들은 확실히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그는 앨버 엘바즈가 창조해온 동화적인 파리지엔 룩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일관된 컬렉션을 완성해나가야 한다.

룩에 포인트로 작용한 컬러풀한 벨트 백들.

 

Rick Owens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릭 오웬스의 컬렉션은 가난한 미술을 뜻하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양털 담요와 같은 빈곤한 재료를 통해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창조해내는 한편, 말 안장에 달린 짐 바구니를 연상케 하는 큼직한 페니 팩을 다수의 룩에 매치해 아방가르드한 무드를 고조시켰다. 릭 오웬스 특유의 그로테스크는 몇몇 모델들의 창백한 메이크업과 미래적인 헤드피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말 안장에 달린 짐 바구니를 연상케 한 페니 팩.

 

Balmain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2050년으로 타임머신을 보내 그의 모델 군단에게 반짝이는 메탈릭 수트, 글로시한 홀로그램 드레스, 비비드한 컬러의 PVC 스커트 등을 선사했다. “‘펀(Fun)’하다는 것이 트렌디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번 컬렉션은 정말 ‘펀’하게 작업했죠.” 미래적인 감성을 주입한 것 외엔 특유의 1980년대 무드는 그대로였지만, 쇼의 BGM으로 울려 퍼진 아하의 ‘Take on Me’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한 즐거운 미래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모델 군단과 함께 피날레에 등장한 올리비에 루스테잉.

 

Giambattista Valli

지암바티스타 발리 컬렉션의 원천이 된 것은 1970년대의 개척자들과 동시대의 예술계를 이끈 알리지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물론 오프닝에 등장한 데님 점프수트부터 피날레를 장식한 러플 장식 가운까지, 하우스 고유의 낭만적인 무드는 컬렉션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인상적인 요소는 이국적인 감성을 담은 다양한 프린트 룩, 그리고 목걸이 형태로 제안된 프티 사이즈의 엔벨로프 백.

피날레의 러플 장식 가운을 입은 모델.

 

Sacai

강렬한 스트라이프 패턴과 패딩 아우터의 감각적인 조합으로 쇼의 포문을 연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하이브리드 피스에 주목한 그녀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유니폼, 스쿨 룩, 레인코트, 스트라이프 셔츠, 마린 재킷, 데님 재킷, 테일러드 코트 등이 계산적으로 믹스된 하이브리드 룩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니. 아울러 이그조틱 프린트가 믹스 매치된 니트웨어, 모조 퍼가 트리밍된 데님 재킷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국적인 프린트 룩을 입은 모델 마리아 클라라.

 

Jacquemus

자크뮈스의 남성복 라인이 출시될 것이라는 뉴스와 함께 공개된 컬렉션은 모로코 여행에서 받은 영감으로 채워졌다. “내 마음속에 단 한 가지만 남겨두고 모로코의 시장에서 길을 잃었다. 그건 바로 나만의 여름 컬렉션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쇼 노트에 적힌 글귀처럼, 컬렉션에는 따뜻한 겨울을 꿈꾸는 그의 로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편안함 속에 관능적인 무드를 담아낼 줄 아는 그는 보디라인을 타고 유연하게 흐르는 카프탄 드레스, 독창적인 드레이핑의 드레스와 같은 시그너처 피스는 물론, 이국적이고 감각적인 컬러 팔레트로 또 한 번 진화된 쇼를 선보였다.

 

 

Vivienne Westwood

안드레아스 크론탈러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에서는 그의 아내인 웨스트우드의 ‘Life in Fashion’에 대한 경의와 새로운 펑크 감성에 대한 욕구를 느낄 수 있었다. 쇼의 시작을 알린 젠더리스 댄서들의 격렬한 댄스와 함께 성별을 분간하기 힘든 다양한 모델들이 전위적인 펑크 의상으로 무장한 채 차례로 등장했다. 또한 그는 웨스트우드 여사의 옷장에서 두 개의 상징적인 물건을 건져내 컬렉션에 도입했는데, 모헤어 소재의 펑크 스웨터와 캣 수트가 바로 그것. 쇼의 하이라이트는 그로테스크한 웨딩드레스와 사랑스러운 두 디자이너의 피날레 인사였다.

전위적인 의상과 상반된 바로크풍의 키치한 토트백.

 

Rochas

이번 시즌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1970년대 무드의 아우터와 드레스에 집중했다. 이는 두 가지 스타일로 발현되었는데, 하나는 과장된 칼라와 오버사이즈를 특징으로 하는 얌전한 정통 클래식 스타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화려함을 주입한 1970년대 스타일로 반짝이는 소재와 핑크에서 옐로를 넘나드는 다양한 컬러 팔레트로 등장했다. 쇼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란색으로 물들인 룩으로, 같은 톤의 파이턴 소재 백, 부츠가 더해져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각기 다른 1970년대 스타일을 소화한 백스테이지의 모델들.

글래머러스한 소재가 돋보이는 룩, 가방, 그리고 부츠.

 

Sonia Rykiel

하우스 탄생 50주년을 맞은 소니아 리키엘 쇼가 열린 에콜 데 보자르는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우리는 50주년을 기념하며 아카이브를 다시금 재해석했어요. 저는 그 옷을 사랑했던 여성 중 한 명이었으며, 그것은 무척이나 창의적인 피스들이었죠.” 줄리 드 리브랑은 하우스의 시그너처 아이템, 가령 1970년대 생제르맹 펑크를 대변하는 트렌치코트, 바이커 재킷, 1980년대 인기를 모은 벨벳 팬츠수트 등을 선보였고, 멀티 스트라이프 패턴의 니트웨어도 다채롭게 등장했다.

오프닝에 등장한 페이크 퍼 소재 룩.

 

Carven

세르주 후피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오래된 역사를 가진 카르벤 하우스의 진화를 확실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먼저 하이넥 셔츠와 브로치, 플리츠 장식의 그래니 스커트, 성긴 모헤어 니트와 포카혼타스 슈즈도 충분히 쿨해 보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남성용 타탄체크 셔츠의 변주, 다양한 체크 패턴의 믹스 & 매치도 눈길을 끌었으며, 후반부에 등장한 빈티지 웰페이퍼 프린트의 코트 및 드레스도 카르벤 걸들의 DNA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숄더백을 레이어드한 가방 스타일링.

 

Paco Rabanne

“매우 세련되고, 또 매우 파리지엔적인 것으로 돌아가고 싶었죠.” 줄리앙 도세나는 파코라반을 대표하는 플라스틱 소재를 바탕으로, 하우스의 미학을 실용적으로 풀어냈다. 플라스틱 디스크를 엮어 만든 슬립 드레스와 펜슬 스커트, 레이스에 플라스틱 꽃무늬 조각을 덧붙인 톱이 대표적인 예. 걸을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낸 메탈 장식 슬라이드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Undercover

컬러풀한 스쿨 룩과 트레이닝 수트, 레인코트 등, 영한 감성으로 채워진 언더커버 컬렉션에는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끔찍한 총격 사건을 비판하는 다카하시 준의 날카로운 뷰가 담겨 있었다. “Total Youth” “Enjoy It Because It’s Happening” “We Are Infinite”와 같은 문구들이 스웨터와 레인부츠 등에 자리했고, 과감한 컬러 매치와 하이브리드 피스로 사춘기의 혼란스러운 정서를 표현했다. 그 중 마치 접착제에 넣었다 건져 올린 듯한 트렌치코트는 가장 인상 깊었던 피스 중 하나.

스쿨 룩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컬러풀한 백팩.

피날레에 등장한 다채로운 컬러의 레인 룩들.

 

Acne Studios

쿠튀르 기간에 F/W 컬렉션을 선보인 조니 요한슨은 스톡홀름의 뮤지션 친구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방랑자 스타일의 룩들을 선보였다. 자유로웠으나 페미닌했고, 목가적이었으나 세련된 느낌을 전했다. “만약 우리가 도시에 살지 않는다면 하이힐은 신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슬리퍼를 넣었죠.” 슬리퍼와 스니커즈를 신은 모델들은 레인보 컬러의 니트와 블랭킷 코트, 플로럴 프린트의 드레스 등을 입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왼쪽부터) 리본 장식이 달린 핸드메이드 니트, 코트의 소매 부분에 가미된 컬러 그러데이션, 손에 들고 등장한 매듭 디테일 클러치 백.

Y / Project

글렌 마르탱의 쇼는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그 원천은 디자이너의 놀라운 믹스 매치 능력과 성 정체성이 모호한 피스들, 그리고 화려한 액세서리 플레이에서 온다. 거대한 태피터 코트에 붉은 벨벳 롬퍼를 매치한 룩, 탱크톱을 여러 겹 겹쳐 입은 듯한 니트웨어에 특유의 후프 진주 귀고리를 더한 룩 등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쇼로, ANDAM 그랜드 프라이즈 수상 후 날개를 단 그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Marine Serre

2014년 베트멍의 데뷔 쇼 이후 파리를 가장 흥분케 한 쇼로 평가받은 마린 세레의 세 번째 컬렉션. 그녀는 ‘Manic Soul Machine’을 테마로 한 퓨처 스포티즘 룩을 선보였다. ‘Futurewear’ 로고가 프린팅된 재킷과 팬츠에는 아이폰, 물병, 립스틱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유틸리티 포켓이 달려 있었고, 스카프를 활용한 피스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그녀의 시그너처인 초승달 모양의 프린트 역시 보디수트, 방한모 등에 덧입혀져 존재감을 드러냈다.

스카프를 스트랩으로 활용하거나 스카프에 감싸인 구형 클러치가 다채롭게 등장했다.

 

Junya Watanabe

준야 와타나베는 유행과 상관없이 자신이 표현하고픈 룩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No Theme’라는 테마 아래 오버사이즈 남성복 재킷, 꽃무늬 레깅스, 스포츠 양말에 리복과 협업한 대디 스니커즈를 신은 펑크 걸들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니트, 후디, 드레스, 트렌치코트, 페이크 퍼 코트, 스포츠 파카 등, 모든 피스들은 거대했으며 빈티지한 감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소매 부분에 페이크 퍼를 거칠게 패치워크한 트렌치코트.

리복과 협업한 프리스타일 하이 버팔로 스니커즈.

 

Lacoste

지난 8년간 라코스테를 이끌어온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의 마지막 무대가 된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의 창립 85주년을 기념하는 쇼이기도 했다. 그는 하우스의 헤리티지인 나무 경작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유연함과 영속성의 가치를 표현한 기능적인 스포티 룩을 선보였다. 특히 세계자연보전연맹과 협업,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모티프로 한 폴로셔츠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에이글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웰링턴 부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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