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제 자신의 미적 뿌리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저는 문화적으로 매우 이탤리언스럽고 뿌리는 이탤리언 르네상스에 가깝죠. 자유에 대한 생각을 좋아했고,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결성을 얻고 싶었어요.”

지난 2월호 <바자>에 실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시즌 발렌티노 쇼에서는 르네상스 아트, 그중에서도 15세기 작품인 히에로니뮈스 보슈의 ‘세속적 쾌락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룩들이 등장했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의상들은 동화 같은 동시에 무척이나 섬세했고 또 우아했다. (관련기사: 런웨이 아트 투어)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년 3월호

Valentino

발렌티노 이외에도 이번 시즌 주목해야 할 다수의 쇼에서 풍요롭고 화려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느낄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나 구찌다. 르네상스 성애자라 해도 무방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손에서 탄생된 매혹적인 자수 장식의 빈티지한 드레스부터, 르네상스 시대 베니스 인들이 즐겨 신던 신발을 재해석한 거대한 플랫폼 샌들(샌들 안에 덧신 모양의 플랫이 들어 있다), 마치 나폴레옹의 것을 연상케 하는 리본 장식의 커다란 모자까지, 이번 시즌 가장 드라마틱한 르네상스 무드를 그의 쇼에서 발견할 수 있을 테니.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년 3월호

Gucci

고전적인 쿠튀르 룩에 특화된 사라 버튼의 알렉산더 맥퀸 쇼와 피치올리의 전 파트너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첫 디올 쇼에서도 르네상스 무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섬세한 레이스와 튤 소재, 회화적인 자수 장식, 변형된 코르셋과 보디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섬세하고 정교한 의상을 완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사라 버튼은 르네상스에 펑크 무드를, 치우리는 펜싱복 모티프를 가미해 연약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디올, Dior,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년 3월호

Dior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아트와 복식, 전반적인 무드를 컬렉션에 녹여냈다면, 펜디와 J.W. 앤더슨, 에르뎀은 르네상스 시대의 특정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은 쇼를 선보였다. 펜디는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당시 그녀가 입었던 나이트 가운과 정원복 등을 매력적으로 변형한 룩을 내놓았고, J.W. 앤더슨은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헨리 8세의 재킷에서 영감을 받아 소매가 인상적인 룩을, 에르뎀은 찰스 1세의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를 오마주한 고전적인 드레스 룩을 선보이며 과거 문예 부흥기와 21세기의 하이패션이 우아하게 교차된 순간을 담았다.

펜디, 에르뎀,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년 3월호

Fendi / Erdem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틱한 트렌드를 옷장 속으로 데려오는 건 약간의 고민과 실험정신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르네상스 무드를 일상에서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이에 대한 몇 가지 해답을 앞서 언급한 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참고해야 할 컬렉션도 달라질 터.

평소 중성적이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선호한다면 드리스 반 노튼과 J.W. 앤더슨, 알렉산더 맥퀸 쇼에 등장한 아이템들을 주목하자. 특히 레그오브머튼 소매가 달린 드리스 반 노튼의 화이트 재킷은 그 자체로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데다 캐주얼한 스웨트셔츠, 심플한 데님 팬츠에도 무리 없이 매치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이다. 드레스업하고 싶은 날엔 런웨이 룩처럼 앤티크한 패턴이 가미된 주얼 컬러의 팬츠를 매치해볼 것.

드리스 반 노튼, J.W.앤더슨 -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Dries Van Noten / J.W. Anderson

J.W. 앤더슨 쇼에서 발견한 화이트 셔츠와 데님 블루종은 기본 아이템에 극적인 디테일(조각처럼 이어 붙인 소매와 퀼팅, 버클 장식 등)을 가미한 스테이트먼트 피스. 여기에 블랙 스키니 진과 밀리터리 부츠만 더해도 남부럽지 않은 쿨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킬트(Kilt)를 덧입은 것 같은 맥퀸의 팬츠수트는 색다른 이브닝 룩을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선명한 타탄체크부터 완벽한 테일러링, 블랙 플라워 자수 장식, 앤티크한 새틴 벨트, 밑단이 적당하게 넓어지는 팬츠 실루엣까지, 모든 요소가 빈틈없이 조화를 이룬 이 수트는 꼭 한 벌로 그대로 입어보길 바란다. 쇼에서처럼 양쪽 디자인이 다른 오버사이즈 귀고리를 더한다면 보다 완벽할 것.

알렉산더 맥퀸,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년 3월호

Alexander McQueen

이와 반대로 르네상스의 호화로움에 초점을 맞춘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면 펜디와 발렌티노 쇼에 등장한 아이템들을 참고하자.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아이템은 베르사유 정원의 꽃들이 화려하게 수놓인 펜디의 브로케이드 소재 미디스커트. 앞치마처럼 둘러 입는 디자인으로 팬츠와 스커트 그 어디에도 덧입을 수 있으며, 파우더리한 핑크색으로 다양한 컬러의 상의와 손쉽게 매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플로럴 자수 장식이 가미된 스포티한 니팅 삭스 부츠도 스프링 룩에 포인트 아이템으로 유용하니 참고할 것.

펜디,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7년 3월호

Fendi

잔드라 로즈의 몽환적인 낙서 모티프가 돋보이는 발렌티노의 트렌치코트, 오버사이즈 재킷은 캐주얼한 디자인과 쿠튀르 디테일의 만남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의 아이템이지만 활용도가 높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고전적인 플라워 패턴을 입은, 옐로와 핑크 컬러의 오버사이즈 벨벳 팬츠도 화려함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아이템. 같은 톤의 오버사이즈 스웨터나 화이트 셔츠와 함께 드레스다운해 입는 것이 쿨해 보인다.

런웨이에서 스트리트로 시선을 옮기면 보다 실용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부풀린 소매의 블라우스와 코르셋은 가장 손쉽게 르네상스 스타일을 완성해줄 아이템이니 눈여겨볼 것. 화이트 컬러에 소매 끝이 풍성한 비숍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는 블라우스는 넓은 커프스를 갖춰 손을 감출 수 있는 제품이 활용도가 높다. 여기에 약간의 자수 장식이나 보타이 장식이 있어도 좋을 듯.

앞서 <텔레그래프>지의 패션 디렉터 리사 암스트롱도 ‘2017년의 주요 피스’라 언급한 코르셋, 그 가운데서도 원형의 코르셋에 가까운 레이스업 장식의 제품들은 가장 적나라하게 르네상스 무드를 드러냄과 동시에 맵시 있는 실루엣을 완성해줄 완벽한 아이템이다. 트렌치코트 위에 착용해도 좋고 스웨트셔츠에 매치해도 무방하며 와이드 팬츠와도 멋진 조합을 이룰 테니까.

펜디, 21세기 르네상스의 유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Erdem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반드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써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리본장식이 가미된 백리스 원피스를 입는 것, 업스타일 헤어에 얇은 헤드밴드를 하고 앤티크한 오버사이즈 귀고리를 착용하는 것(에르뎀 쇼를 참고하라)만으로도 충분히 르네상스적일 수 있다. 르네상스 아이템이 지닌 특유의 극적인 무드 때문에 완급 조절에 실패할 경우 코스튬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명심해야 할 것은 화려함에 현혹되어 현실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르네상스의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즐기기 위해선 응당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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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Jimmy House(런웨이,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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