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패션 VS 미래주의

가장 눈부시고 풍요로웠던 패션의 황금기인 1980년대와 새로운 소재와 기술, 상상력으로 충만한 미래주의가 런웨이를 장악했다.

지난 2월, 2018 F/W 컬렉션을 지켜보던 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 SNS 타임라인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컬렉션들은 나를 1980년대로, 그리고 곧이어 먼 미래(<블레이드 러너>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SF 영화를 통해 간접체험한)로 데려갔다.

1980년대의 강렬한 기운은 뉴욕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었다. 톰 포드의 화려하고 섹슈얼한 글램 시크로 시작된 1980년대 무드는 마크 제이콥스의 대담하고 커다란 어깨, 과감한 컬러 블로킹으로 정점을 찍었다. 각진 패드로 과장된 어깨는 몸의 일부 같았고, 어깨를 비롯한 모든 실루엣이 큰 비율로 팽창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글램과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던 브랜드의 전성기 1980년대로 돌아가 이를 새롭게 리바이벌한 베르사체, 1980년대 아카이브에서 발췌한 반짝임과 화려함을 우아하게 표현한 생 로랑과 발맹, 1980년대 특유의 B급 감성과 아찔함, 속물주의 같은 특징을 긴장감 넘치는 의상으로 옮긴 지방시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80S

Futurism

Marine Serre

이제 1980년대와 상반되게 느껴지는 미래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디자이너를 살펴볼 차례다. 캘빈 클라인, 알렉산더 왕, 프라다, 메종 마르지엘라, 그리고 작년 LVMH 프라이즈 우승을 차지한 마린 세레 등이 대표적. 라프 시몬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의 런웨이를 앤디 워홀의 사진으로 도배한 헛간으로 만들고 스털링 루비의 조각품을 걸어놓는 등 기이한 농장의 풍경으로 연출했다. 메탈릭한 포일 소재의 유틸리티 드레스와 장갑, 방독면을 연상시키는 헤드 피스로 무장하고 한 팔에 팝콘을 든 모델들의 모습은 마치 기후 변화로 북극처럼 변해버린 미래의 뉴욕을 상상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알렉산더 왕은 미래적인 스포츠웨어를(등산복으로 적격일!), 질 샌더의 루크와 루시 마이어 듀오는 우주 여행을 생각하는 시기가 오더라도 정교함과 우아함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편안하고 친숙한 소재와 커다랗게 부풀린 실루엣으로 미래지향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이 두 가지 트렌드를 정신없이 오가는 사이 나는 ‘1980년대’와 ‘퓨처리즘’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패션은 다른 어떤 시기보다 풍요롭고 감각적이었으니까. 기술의 발달과 함께 TV와 비디오의 영향이 커졌고, 경제적인 호황기로 타인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추구했던 시기다. 이러한 풍요로움으로부터 기인한 기이하고 과감한 스타일링, 무지갯빛의 포일 직물, 사이키델릭한 디자인의 이브닝 룩, 플라스틱같이 키치한 소재들은 퓨처리즘을 표방한 디자이너들의 런웨이에서 고스란히 발견된다.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자신의 컬렉션에 대해 과거보다 미래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이게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자신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발맹의 컬렉션은 1980년대를 향해 있는 동시에 미래적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그녀만의 균형 감각을 뽐냈다. 미우 미우 컬렉션에 등장한 스톤워시 데님과 광택 있는 파워숄더 재킷, 미러볼 슈즈는 1980년대로 귀결되지만, 페이턴트 소재의 코트와 재킷 등은 미래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프라다 컬렉션은 과거의 아카이브와 미래적 소재,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스타일링을 혼합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유니크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1980년대에서 차용한 커다란 실루엣과 미래적인 플라스틱 소재, 헤드기어로 무장한 존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도 같은 맥락. 이 두 가지 트렌드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의 차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패션 역사 및 이론 교수인 앨리스터 오닐은 저서에 패션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패션은 현재이다. 즉, 그것은 변화이자 진보다. 하지만 패션은 하나의 산업이기도 하며, 항상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시각만을 전파하는 것은 아니다. 패션은 사고의 한 방식이기도 하며, 만듦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패션은 모순이다. 그리고 패션은 자신이 가장 인간적이라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그는 패션과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양극은 패션뿐만 아니라 패션을 취하는 우리의 삶과 사고를 윤택하게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모든 것은 과거에서 왔지만 미래를 향해 흐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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