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취미, 독서

70개에서 130개에 달하는 이름을 가졌던 미스터리한 남자, 페소아의 시집 두 권이 출간됐다.

“생각한다는 건/바람이 세지고,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아니다./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시집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중부 알베르투 카에이루의‘엮이지 않은 시들’중에서. 페루난두페소아는년에 태어나년에 사망한 포르투갈의 시인이다.그가 남긴 글은 비평,에세이,희곡,정치 평론,소설,탐정소설,영화 시나리오,광고 카피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으나,일곱 살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시 쓰기를 멈춘 적은 없었다.이 이름이 낯설게 들린다고 해도 놀랄 일은아니다. 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라 해도,한국에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었으니까.위에 인용한 시집부의‘알베르투 카에이루’는 그가 사용한 이명(異名)중 하나였다.페소아가 한국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페소아의 산문집불안의 서>가 계기가 되었다.그리고페소아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마흔일곱 살에 사망한페소아는 모국어로는 사망 전해인년 단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불안의 서>의 원고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발견된 엄청난 양의 미발표 원고가 담긴 트렁크에서 나왔다.그는 이명을 여럿 만들었고 그 이명으로 시를 지었는데,모두 몇 개나 되는지 알기 어렵지만, 70개에서개가 사람들이 추정하는 그의 이명 개수다.이번에 번역 출간된 시집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과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의 목차를 보면 알베르투 카이에루,리카르두 레이스,페르난두페소아,알바루 드 캄푸스 같은 큰 제목이 있는데 페르난두페소아를 제한 나머지는 모두 그가 지은 이명들이다.

페루난두 페소아

이명은 필명이아니다.이명은 쉽게 말하면 상상 속 문학 캐릭터들의 이름을 가리키는데,이들은 각기실존 인물처럼!)고유한 문체,전기,특징,별자리 등을 갖고 있었다.그중 카에이루,레이스,그리고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으로 쓴 것들은 진지한 것들이라고,페소아가 생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조했다.요즘으로 따지면 특정 캐릭터가 된 것처럼 역할극을 하는 셈이다.그리고 그 여러 자아는 각자의 목소리로 창작을 했다.

페소아의 시는 제목과 한두 페이지의 연과 행으로 구분(아마도 전 세계 독자들이 가장 익숙한 형태일)되어 있지 않다.이 책들은 페르난두페소아에서 다른 이명을 가진 존재로 변신해 시작(詩作)을 한 기록이며,그의 생전에 책으로 묶인 적이 없으니 어떤 글에는 작성한 날짜가 인식표처럼 붙어 있곤 하다.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를 읽는 일뿐이다.

죽기년 전에 쓴 시에서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듯하다.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책 한 권 출판되지 못하고,/내 시구들이 인쇄된 모양이 어떤 건지 보지도 못한다면,/내 사정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부탁한다,/염려 말라고./그런 일이 생겼다면,그게 맞는 거다.” 그리고 사랑은 뜻밖의 상황에 등장한다. “어느 날 식당에서,시공간 바깥에서,/나에게 사랑을,식은 내장 요리처럼 가져다주었어./나는 주방장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지/나는 데워서 주는 편을 선호한다고,/내장 요리는(게다가 그건 포르투풍이었어)절대 차게 안 먹는다고.”

새로 나온 책 두 권 중에서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을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시어들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면 역자 김한민이 권말에 쓴페소아에 대한 글이 도움이 되리라.마지막으로 그가 죽던 날 남긴 말을 덧붙인다.살아 있는 모두를 위한 오늘의 인사로 들린다.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오른손을 들어,태양에게 인사한다,/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아니었다./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손짓했고,그게 다였다.”  이다혜(북 칼럼니스트)


패티 스미스의 몰입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 없어서.”

패티 스미스가 신작 <몰입>을 내놨다. 뮤지션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평론가, 화가, 배우 등 전방위적 ‘아티스트’란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그는 사실 앨범보다 시집을 먼저 출간한 작가다. “뭔가 다른 걸 찾다가 우연히.” 첫째 장을 여는 이 문장은 책 전체를 응축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기다리기보다 그녀는 우연한 일상으로부터 창작의 실마리를 캐치해낸다. 두 번째 장 ‘헌신’은 그녀가 쓴 짤막한 소설이다. 에스토니아의 한 소녀가 스케이트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이야기다. 첫째 장과 셋째 장은 소설이 착상되는 과정, 소재의 근원을 밝혀나간다. 우리말 번역본의 ‘몰입’, 둘째 장 소설의 제목인 ‘헌신’은 모두 책의 원제 ‘Devotion’을 번역한 말이다. 특히 프랑스어로는 기도, 경건한 성찰을 뜻하기도 한다. 읽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몰입하고 헌신하며 묵상하는 태도가 글쓰기라는 행위로 거듭난다. 창작이란 비단 재능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준다. 책을 덮을 무렵,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어시스턴트 에디터/ 이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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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혜(북 칼럼니스트)
사진 민음사 제공
어시스턴트 이현준
출처
5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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