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홀리데이 리스트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기 19인이 고른 영화, 드라마, 책, 음악 목록은 기분 좋은 휴식이 될 것이다.

HOLIDAY LIST

문이랑(프로듀서, DJ)
Discography

최근 내가 작업에 참여한 곡들을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해 좋아하는 음악을 엮은 플레이리스트는 수도 없이 만들어왔지만, 정작 내가 작업한 곡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난히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여름을 생각하지 않고 작업한 곡들이 더 많지만, 음악은 언제나 겪고 있는 상황과 함께했을 때 더욱 의미가 있어진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여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Duvv – For you
OBON – Good Time (ft. nov)
Jvcki Wai – A Signal / Analyzer
75A – Man Ray System
Moon Yirang – Aphasia (ft. Hoody)
Sik K – Runnin’
YonYon, Hitomi – Overflow
Cifika – I’m awake


한다솜(포토그래퍼, DJ)
Highway Han River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따로 휴가라 할 것도 없다. 대신 매일을 휴가처럼 보낼 수도 있다. 나에게 바캉스는 더이상 뜨거운 태양, 해변과 모래사장 그리고 푸른 야자수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위에서 한강을 따라 차창 밖을 보며 달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휴가만큼이나 유익한 시간이다. 버스나 택시 뒷좌석에 앉아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창밖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서울의 여름과 해 질 녘 한강, 도시고속도로에서의 드라이브를 떠올리며 모아본 음악 리스트들.

Polo & Pan – Bakara
Yaeji – One More (object blue Remix)
Bumjin – Not Missing You
Kool & The Gang – Summer Madness
Mobilegirl – Beaten Track
Cifika – MACH
Apachi – HYPE
Lee Byeong Woo – 한강찬가 In Praise of the Han River (영화 <괴물> Original Soundtrack)
Soda Plains – She Has All Kinds of Temperatures
HYUKOH – Goodbye Seoul


이혜승(모델)
Not Too Far, Not Too Close

마치 휴가가 꿈이라도 된 듯,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멀게 느껴졌을까. 문득 “떠나고 싶은 그대 떠나라!”는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되지 왜 떠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경쾌하게 되받아치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삶의 어쩔 수 없음으로부터 겪는 갈등에 대한 영화를 골랐다. 자유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샘 멘데스 – <레볼루셔너리 로드>
마이웬 – <몽 루아>
이윤기 – <멋진 하루>
루카 구아다니노 – <아이 엠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 <펀치 드렁크 러브>


박혜진(‘아트나인’ 프로그래머)
홈드라마처럼

홈드라마의 정의는 한 가정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간의 사랑과 미움, 갈등과 화해를 여러 에피소드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다. 홈드라마는 장르물처럼 긴장하고 쪼이는 마음으로 볼 필요도 없고, 멜로드라마처럼 애써 감정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휴가는 홈드라마처럼 여유 있는 편이 좋다. 홈드라마의 ‘정주행’ 방법은 일단 틀어놓고,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하고 싶은 다른 일을 마음껏 하는 것. 한참 딴짓을 하고 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 수 있다. 그러다 또 금방 빠져들어 웃고 울 수도 있다. 쉴 때만큼은 집중도 감정 소모도 필요 없는 홈드라마와 함께하길.

한영미 – <해피 시스터즈>
김병욱 – <순풍 산부인과>
김수현 – <인생은 아름다워>
이남규, 김수진 – <눈이 부시게>
한설희, 백지현, 홍보희 – <막돼먹은 영애씨>


김수랑(‘오벌’ 디렉터)
돌아오는 길의 풍경(風景)

휴가-여행의 근본적 안식의 힘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다. 기대와 흥으로 고취되는 달뜬 시작에 비해 돌아오는 길의 안도는 쉬이 잊힌다. 그 안도의 시간-이완의 계기가 왔을 때,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이 익숙한 풍경에 겹쳐 비로소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금 발견되는 시간. 이 영화들에는 각자의 사연으로 잠시 집을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들, 마중을 나가고 배웅하는 풍경이 있고, 그 풍경 안에 포개진 삶의 면면이 우리의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는 순간이 열린다. 삶이란 결국 나아가고 만나고 헤어지며 되돌아오는 헐겁게 이어진 여정이다. 그 길에 잠시 멈춰 바깥의 풍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시간은 삶과 세상을 헤아려보게 되는 동시에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응원으로 다가온다. 이런 연유로 이 영화들의 영화다운 성취를 아끼며, 영화를 지켜보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으로 온전한 휴식을. 너무 사소해서 그렇게 점점이 크게 다가오는 순간들에 순연히 감사하는 마음을.

오즈 야스지로 – <동경 이야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에드워드 양 – <하나 그리고 둘>
허우 샤오시엔 – <카페 뤼미에르>
고레에다 히로카즈 – <걸어도 걸어도>


임유청 (‘플레인 아카이브’ PD)
#Nofilter does Matter

극장, 공연장, 미술관, 호텔 등 ‘즐길거리’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7~8월 정신건강의 적은 SNS다. 제아무리 ‘성수기 휴가=고생길’이란 도식을 철칙으로 삼고 있어도, 모두가 남국으로 떠난 휴가철의 인스타그램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날 슬프게 한다. 남의 일상이나 몰래 엿보는 일이 자괴감 들고 괴로울 때 차라리 SNS를 끄고 남의 인생에 푹 들어갔다 나온다. 여기 어떤 여성들이 있다. 가장 화려하고도 가장 불행했던 디바로서의 삶을, 부러움과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된 상속녀의 삶을, 은둔한 사진가의 삶을, 끝내 누벨바그의 전설이 된 삶을, 최고의 무대를 창조한 삶을 산 여성들. 이들의 공통점은 위대한 아이콘이라는 점(뿐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 삶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난 인생들 때문에 질투와 패배감에 빠지게 될까 걱정이라고? 그럴 틈도 없다.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라. 다만 공감과 연민, 정립하고픈 인생의 덕목을 헤아려보게 한다. 그러니까 어차피 누군가를 엿볼 거라면, 이쪽이 도움이 된다. 인스타그램보다 훨씬 재밌고 말이다!

케빈 맥도널드 – <휘트니>
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
존 말루프, 찰리 시스켈 –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아녜스 바르다 –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비욘세, 에드 버크 – <비욘세: 홈커밍>


이유미 (‘할로미늄’ 디자이너)
만화책 명상

고강도의 업무는 언젠가 마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일을 다 끝내지 않은 채 가는 여행만큼 피곤한 것도 없다. 이번 휴가는 어렸을 적 여름방학처럼 며칠이고 만화책을 보며 지친 마음을 되돌아보고 싶다. 10대의 방황기부터 고령자의 삶 그리고 19금 장르까지 아우르는 여운 깊은 이야기로 내 삶을 반추해볼 것이다. 특히 <우리집>은 내가 엄청난 우울증에 걸렸을 때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책으로 누군가도 꼭 읽었으면 한다.

오카자키 교코 – <리버스 에지>
사이바라 리에코 – <우리집>
이토 준지 – <인간실격>
야마모토 나오키 – <내일 다시 전화 할게>
쓰루타니 가오리 –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박다함(‘헬리콥터 레코즈’, 공연기획자)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

휴가를 갈 때마다 휴가지에 일을 벌인다. 그러니까 휴가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나 같은 버릇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음악 목록이다.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의 곡들인데, 어딘가로 빠르게 움직여야 하거나 (제발 여러분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여행 중에 노트북과 함께하는 업무 타임을 가질 때 들으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을 것이다.

Buzzcocks – What Do I Get
Le Tigre – Deceptacon
Sleater-Kinney – Modern Girl
ESG – Dance
No Age – Everybody’s Down
Ty Segall – Imaginary Person
John Zorn – Snagglepuss
Suicide – Dream Baby Dream


노포페이스(탐험가, @thenopoface)
Circle of Life

시간이 나면 그저 눕고 싶고 쉬고 싶은 무기력. 무색무취의 휴가를 보내며 이대로 잘 늙을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스스로를 괴롭힐 때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본다. 귀여운 노인, 멋있는 노인, 치열한 노인이 나오는 영화. 영화 속에는 다양한 삶을 사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의 삶에 연민을 가지고 아직 젊은 내 인생을 위로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비슷하구나. 고민의 연속이구나. 나의 일상과 저들의 일상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다가 삶에 대한 조금의 의지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후시하라 켄시 – <인생 후르츠>
파올로 소렌티노 – <유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 <태풍이 지나가고>
켄 로치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카엘 하네케 – <아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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