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의 작업실

사진작가 구본창이 자신의 새로운 스튜디오에서 예술세계를 구축하게 한 시선의 원형과 수집이라는 행위에 담긴 예술성에 대해 말한다.

구본창 - 하퍼스 바자

스튜디오의 중정에서 포즈를 취한 구본창 작가. 이 공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드리워진 콘크리트 외벽 무대가 마련돼 있다. 이 무대에서는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은 일본인 친구들을 위해 한 차례의 가야금 연주 공연이 열렸다.

구본창 - 하퍼스 바자

‘백자’ 시리즈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설치하기 위해 제작한 ‘백자’ 사진을 이용한 비디오 작품.

수집의 역사는 까마득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또래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뭔가를 모으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어요. 별거 아니었지. 처음에는 흙바닥을 파서 나온 깨진 그릇, 실로 꿴 구슬 쪼가리, 자갈 뭐 그런 것들이었다가 열한 살 때였나, 출장길에 아버지가 구해다 주신 1964년 도쿄올림픽 카탈로그와 포스터가 나의 첫 수집품이었어요. 6남매였는데 누나 셋에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똑똑한 형과 막내인 남동생 사이에 낀 소극적인 성격의 나는 어린 마음에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나 봐. 말이 없는 대상물 가운데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고 사랑을 주었으니. 저기 수납장 한 칸에는 온통 빈 갑들이 들어 있어요. 나에게는 ‘공간’이나 ‘그릇’, ‘상자’처럼 무언가가 있다가 빠져나간 자리가 특별하게 느껴져. 그래서 차가 빠져나간 빈 차고를 찍기도 하고 물건들이 사라진 빈 갑들을 찍기도 했어요.

이것들은 프랑스 군인들이 제복을 입을 때 어깨를 장식하는 견장이 들어 있던 상자인데 벼룩시장에서 샀어요. 그냥 상자만 사고 싶다고 하면 안 파니까 하는 수 없이 견장도 함께 사서 촬영할 때는 상자만 활용하지. 사실 ‘백자’ 시리즈도 이런 ‘부재의 오브제’에서 시작된 거예요. 빈 상자들을 찍다 보니 먼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백자의 아름다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지. 조선시대의 백자는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을 비워 무욕의 아름다움을 성취한 놀라운 작품이에요. 텅 비어 있는 듯 내면에 흐르는 깊고 단아한 감성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데 세월이 필요했던 거죠.

구본창 - 하퍼스 바자

‘황금’ 연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작가의 머릿속 폴더에 저장되어 있던 관심사를 반영하는 오브제들. 부다페스트 박물관에서 구입한 말 형상의 황금 술잔 포스터와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주운 말과 용가리 모양의 뽑기.

구본창 - 하퍼스 바자

작가의 서재에는 일본 디자이너 야마구치 노부히로와 함께 ‘수집’ 그 자체에 집중한 결과물을 담은 <심심하다>전 도록부터 ‘백자’ 시리즈 가운데 대표작 30여 점을 모은 사진집 <白磁, White Vessels> 등이 빠짐없이 수집되어 있다.

사람들은 여기 스튜디오에 와서 끝도 없는 갖가지 물건들을 보고 놀라는데 나에게는 수집이라는 행위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고, 지금은 그냥 나의 삶 자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물론, 마르지 않는 작업의 영감이기도 하고요. 저 도자기 인형은 미국 벼룩시장에서 샀어요. 다른 물건들은 대부분 10달러 정도였는데 저 인형만 주인이 3백 달러를 불러서 같이 간 사람들에게 그 가격에 샀다고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30달러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

이건 한옥 처마에 달렸던 닭 모양의 물받이예요. 철거하는 한옥이 있기에 얻어왔지. 여기 홈 통이 쭉 있어서 비가 오거나 할 때 물이 멋지게 입으로 빠져나와요. 닭의 부리까지 공들여 만든 디테일이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이제는 아무도 이렇게 공들여 만들지 않지. 이런 물건들이 영감을 주어서 내 나름대로 책상도 디자인하고 스탠드도 만들고 해요. 사실 내 수집품들은 낡고 이름없는 것들이에요. 초등학교 앞, 어떤 아이가 버리고 간 뽑기의 형상이 아름다우면 그것도 주울 정도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나는 모아요. 그 물건들의 어쩌면 보잘것없고 작은 목소리가 궁금해요. 대학에서 애들을 가르칠 때도 반짝 눈에 띄는 작품을 내놓는 학생들보다 매일 조용히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친구들을 주목하게 돼요.

구본창 - 하퍼스 바자

작품 보관실에 걸려 있는 ‘황금’ 시리즈 중 한 작품

구본창 - 하퍼스 바자

세상의 모든 존재로 확장된 작가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스튜디오 내부.

물건이나 오브제도 많이 모으지만 신문이나 잡지 기사도 열심히 스크랩해요. 아주 짧게 나온 단신들도 새롭게 착수하는 주제의 실마리가 될 때가 많아요. ‘굿바이 파라다이스’ 연작은 나비박사 석주명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은 게 발단이었고, 일본 잡지에 소개된 조선 백자에 관한 기사가 ‘백자’ 시리즈의 단초가 되었어요. 여러 폴더에 나누어 자료를 보관하듯이 내 머릿속에도 여러 개의 폴더가 있고, 언젠가 작업할 여러 가지 주제의 아이디어와 자료들이 담겨 있어요.

요즘에도 서너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에요. 하나 하나 오랫동안 자료를 수집하면서 내 안에서 발효되기를 기다렸다가 때를 만난 것들이죠. 그중에 하나가 황금이에요. 백자의 대척점에 황금이 있어요. 욕망의 종착지라고 할까? 오래전부터 황금과 관련된 역사나 자료를 모으고 있었는데 3~4년 전에 호주의 금광 지역에 가게 되었어. 사금을 컬렉션하는 사람을 만나 금을 촬영하게 되었고, 페루의 리마에 특강을 하러 갔을 땐 황금의 나라, 잉카제국의 유물을 박물관에서 촬영할 수 있었죠. 저기 걸려 있는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거예요.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조금씩 발전되고 있어요.

구본창 - 하퍼스 바자

Artist 구본창 작가의 사진에 담긴, 조용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의 아름다움.

구본창 - 하퍼스 바자

자개장과 한겨울의 금강산을 찍은 작품.

또 다른 폴더에는 돌에 관한 자료들이 들어 있어요. 스튜디오 곳곳에 이런저런 돌멩이가 있는 것도 그 이유지.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닳고 닳아서 둥글고 무던해진 느낌 같은 걸 표현해보고 싶어요. 작년 여름에는 대구 외곽에 ‘용의 알’이라고 불리는 거대 알 돌이 발견돼 화제라고 해서 그걸 찍으러 갔어요. 비슬산이란 곳인데 유스호스텔을 지으면서 부드럽게 깎아놓은 듯한 용 알 형상의 둥근 돌 수십 개가 발견된 거야. 실제로 보니까 정말이지 초현실적인 풍경이었어요. 마침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지역이더군요.

황금이고 돌이고 결국 다 말이 없는 것들이네. 시선이나 감성의 원형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 시선은 내가 바깥 세계와 감응한 최초의 마음속 풍경이고, 기억 속에 거주하는 이 풍경을 비주얼 아티스트인 나는 확인하고 찾아내어 작품으로 만들게 돼요. 가만히 관찰하고 수집하기를 즐겨 했던 외톨이 소년이 봤던 시선의 원형이 결국 지금 내 작품 세계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소년도 성장했지. 그래서 시선은 나를 대입했던 자연이나 물건에서 타인으로, 또 모든 생명체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구본창 - 하퍼스 바자

청화백자 사진을 이용해 구본창 작가가 직접 만든 병풍.

구본창 - 하퍼스 바자

계단에 걸린 ‘긴 오후의 비행’(1985~1990)은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낯선 일상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던 시절 작가가 두 대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서울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황금이랑 돌과 함께 요즘 내 관심사는 탈북자예요. 이 프로젝트 역시 자료를 스크랩한 건 꽤 오래된 일이죠. 외면 당하고 소외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보고 싶어요. 어렵게 어느 단체와 연락이 되어 두 명을 촬영해보았는데 신변이 노출되면 북에 있는 가족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촬영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과 함께 촬영하려고 해요. 탈북을 하는 상황에서도 간직하고 있었던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어떤 이는 엄마가 준 편지를 가지고 나왔는데 중국에서 붙잡히게 될 경우 이 편지가 엄마가 탈북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 찢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이 중국에서 몇 년 일을 하면서 노트에 일기를 써왔는데 첫 장에 ‘인생 성공’이라고 한자로 적어놓은 거예요. 볼펜으로 계속 반복해 써서 먹으로 쓴 것처럼 보이는 낯선 글씨체였지.

이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게 된 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나서였어요. 작가가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겪은 사람들을 인터뷰해 거의 20년에 걸쳐 완성한 이 문학 작품은 타인의 ‘목소리’를 담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죠. 내 마음 깊은 기저에 깔린 외로움은 결국 소외된 타인을 향하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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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Shin Chae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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