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의 영토

내추럴 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남부 프로방스의 내추럴 와이너리들을 찾았다. 테루아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농부들은 작고 소박한 그들의 영토에서 순결한 아름다움을 창조해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파리에서 좀 핫하다는 레스토랑이나 바오뱅(Bar au Vin)에 가면 소믈리에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내추럴 와인을 마시게 됐다. 내가 알고 있던 와인의 색과는 다른, 조금 불투명한 색을 띠는 내추럴 와인 잔에 코를 대면 무언가 오묘한 향이 나곤 했다. 그동안 마셔온 와인에 길들여 있던 나의 후각이 이 새로운 향에 엇갈린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맛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마셨을 땐 밍밍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여러 겹의 새로운 맛이 느껴졌다. 라면 스프에 길들여져 있던 혀가 집에서 담근 장의 깊은 맛을 점점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친구들이 집에서 내추럴 와인을 따라주면 “나의 아황산염(Sulfite)을 돌려줘~”라고 농담을 하던 내가 언제부터인지 많이 마셔도 그 다음 날 몸이 거뜬한 내추럴 와인을 자발적으로 찾게 됐다.(아황산염은 와인의 발효를 중지하기 위해서 쓰는 화학품으로서 와인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우리 부부는 파리의 보보(Bourgeois-Boh`eme, 한국으로 치면 강남 좌파)로 살아가는 부류로서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은 언제나 아주 기본적인 가치다. 현재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테루아(Terroir, 땅)로의 귀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도꽃이 떨어지고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맺혔다.

앙리 밀랑의 포도밭. 입구에 심은 장미는 병충해에 먼저 걸려서 나머지 포도나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고마운 덩굴이다.

우리 부부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토요일 오전 일주일에 한 번 바티뇰(Batignolles)에서 열리는 유기농 장에 가는 것이다. 이곳은 1980년대 후반부터 매주 열리는 유명한 유기농 장으로서 생산자 직거래와 로컬 제품이 대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이곳을 이용하며 모든 야채와 과일, 고기, 생선, 유제품들의 진짜 맛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이곳에서 사는 감자는 종에 따라 맛이 다르고 달콤하기까지 했으며, 샐러드는 일주일이 지나도 사각사각했다. 고기를 잘라주는 노르망디 출신 푸줏간 아주머니가 파는 고기는 모두 그녀의 가족이 키워서 그녀의 남편이 도살하는 동물들로서 파리 어느 푸줏간이나 레스토랑에서 맛보았던 고기보다 맛있었다. 9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오시는 굴 직판장 아저씨는 이제 우리 가족에게 택배로 굴을 납품해주시는 분이 되어버렸다. 더 나아가 정치적인 부분에서 우리의 땅에 좋지 않은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자들과 비도덕적인 사육자들, 그리고 거대한 유통업체들을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지탱해주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황산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추럴 와이너리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앙리 밀랑 와이너리의 생명력 

내추럴 와인이란 유기농법으로 지은 포도를 재료로 하여, 별도의 인공 이스트나 아황산염 같은 화학품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와인을 뜻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생 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emy de Provence)에 위치한 앙리 밀랑(Domaine Henri Milan) 와이너리였다. 프로방스의 상징과도 같은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있는 길을 몇 개 지나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와이너리의 영업 책임자 테오 밀랑(Theophile Milan)이 검은 혼다를 몰고 나타났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와인 페어를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면서, 미안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다. 그의 옆에는 귀여운 아기가 엄마와 미소 짓고 있었다. 

테오의 할아버지 로베르 밀랑(Robert Milan)은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서 공증인으로 일하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근처의 와이너리를 샀다. 테오의 아버지인 앙리 밀랑이 1986년에 이 와이너리를 물려받았는데,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생각은 숙취가 없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와인을 무척 사랑하지만 매번 숙취 때문에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와인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잘 알지 못했던 그는 와인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클로드 쿠르투아(Claude Courtois)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유기농법과 내추럴 와인에 대해 배웠다. 그러면서 아황산염 등의 화학품이 숙취를 더욱 심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앙리 밀랑 와이너리는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곳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 테오는 와이너리의 영업을 책임지고 있고, 그의 여동생 엠마뉴엘르는 양조를 책임지고 있다.

앙리 밀랑에서 생산되고 있는 레드 와인들. 맨 왼쪽의 병 ‘하루’는 포도 수확을 할 때 도와준 일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우리가 이곳에 방문한 시점은 이제 막 포도나무에 꽃이 떨어지고 작은 포도송이가 열리기 시작한 때였다. 테오는 10개월 된 아들 엘리엇을 한 팔로 안고 포도밭 쪽으로 걸어 갔다. 잭 러셀 테리어 종의 강아지 루나도 우리에게 합류했다. 포도나무 사이로 여러 가지 작물들이 보였다. 그는 땅에 생명력이 돌게 하기 위해 포도밭에 잠두콩을 심었다고 말하며 나에게 잠두콩 하나를 맛보라고 집어주었다. 달콤하고 향긋했다. 이곳에서는 잠두콩 대를 눕히기 위해 트랙터가 아닌 말을 사용한다. 트랙터의 무게가 땅을 짓누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땅속의 지렁이나 벌레들이 살아남아서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포도밭 끝에 장미를 심어놓은 것은 장미가 병충해에 먼저 걸리기 때문에 포도나무에 병충해가 퍼지기 전에 손을 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유기농 포도밭에서 살다 보니 화학비료를 이용하는 포도밭에 가면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유기농이 아닌 밭에는 아이를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땅은 석화 점토질의 땅에 비해 모래가 좀 더 섞인 땅이었다. 이 지역은 미스트랄 (Mistral, 프랑스 남부 지방의 동풍)이 많이 불기 때문에 물이 금방 빠지고 마른다. 그의 시라와 그르나슈 품종 포도나무들은 더욱 땅속 깊이까지 가서 물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나무들은 보디감이 있고 풍미가 좋은 와인을 만든다. 

테오는 우리에게 그의 로제 와인 ‘로제 데 우프(Rose des Ouf)’를 테스팅하게 해주었다. 과일 향과 새콤한 맛이 균형 잡힌 멋진 와인이었다. 유기농 재배로 키우지 않은 포도는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은 아이와 같아서, 스스로 이스트를 발생시켜 발효하지 못해 인공 이스트를 넣어서 발효시키고, 그리고 나서는 또 아황산염을 넣어서 발효 작용을 멈춰야 한다. 좋은 와인일수록 포도가 자연적으로 가진 풍미가 잘 살아 있는데, 유명한 와이너리들은 수작업으로 포도의 풍미를 살릴 경제력이 있지만, 비용의 문제로 매스 프로덕션으로 만드는 와인은 이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할아버지 대에 만들어진 와인 발효실을 보여주고 있는 테오.

테오는 우리에게 포도를 수확해서 발효시켜 숙성시키는 공간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콘크리트 양조장은 생각보다 모던했다. 그가 아직 병에 넣지 않고 오크통 발효주에 들어 있는 와인을 시음하게 해주었는데, 놀랍게도 와인이 오렌지 빛깔이었다. 이 오렌지 빛깔 와인은 레드 와인과 같이 껍질과 함께 발효를 시킨 화이트 와인의 한 종류이며, 반응이 엄청나게 좋다고 한다. 테오의 부인 나탈리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파인애플 등의 열대과일 맛이 난다고 덧붙였다.(그녀는 자신이 이 오렌지 와인을 다 먹어 없앤다는 농담을 듣곤 한다며 웃었다.) 테오의 아버지 앙리 밀랑은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로레(Appellation d’Origin Controlee)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원하는 품종의 포도를 원하는 대로 혼합하여 그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양조장을 나온 우리는 밀랑 와이너리의 간판 와인인 ‘파피용 블랑(le Papillon Blanc)’과 ‘파피용 루주(le Papillon Rouge)’를 한 병씩 손에 들고 와이너리 안에 있는 그들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프로방스풍의 큰 집은 30년이 넘게 방치되어 있다가, 두 달 전에 테오 내외가 아기와 함께 들어갔다. 테오와 나탈리는 아기를 데리고 뉴욕, 텍사스,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 밀랑 와인을 홍보하러 다녔다고 했다. 나탈리는 이 커다란 프로방스의 집을 부티크 호텔로 만들어서 내추럴 와인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 달 전에 늙어 죽은 포도나무를 대신해 심은 시라 품종의 포도나무.

데 테르 프로미즈 와이너리의 생동감

다시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두 번째 목적지는 프로방스의 데 테르 프로미즈(Domaine des Terres Promises) 와이너리였다.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재작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새 지하실 저장고 앞에 테라스 공사가 한창이었다. 와이너리 소유자의 아들 마랑(Marin)이 우리를 맞이하였는데, 그는 와이너리 농장주의 아들다운 차림을 한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를 따라 그림 같은 바르 주의 언덕과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층층의 포도밭을 걸어들어갔다.

마랑의 아버지 장 크리스토프는 원래 정부의 고문으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명망 있는 시앙스포(Institut d’Etudes Politiques de Paris, 파리정치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13년 전에 그는 사랑하는 와인을 위해 모든 것을 그만두고 프랑스 남부의 마을 로크브뤼산느(Roque-brusannes)로 와서 버려진 땅을 개간했다. 그는 와인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관습적이지 않은, 독창적인 와인을 만들기로 했다. 과일과 땅을 존중하는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포도나무 옆에 심어져 있는 호밀은 포도나무가 자라는 영토를 비옥하게 하는 지렁이와 벌레들이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와인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장 크리스토프가 우리에게 내추럴 와인에 대해 설명 해주고 있다. 3 푸르른 바르(Var)의 하늘 아래 다른 식물들과 어우러져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장 크리스토프의 포도나무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장 크리스토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총명하게 빛나는 파란 눈을 한 그는 포도나무 열 사이사이에 있는 풀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말했다. “매년 씨를 뿌리는 호밀인데, 이렇게 포도나무 옆에 뿌리를 내려서 땅을 비옥하게 하고 땅에 사는 지렁이와 땅벌레 같은 생명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살아 있는 땅에서 생명을 받은 포도나무의 포도는 더 맛있게 자라죠.” 그는 이 호밀들이 씨를 맺기 전에 밟아 뉘어서 포도나무와의 경쟁을 없앤 후 말라서 죽은 호밀이 다음 시즌에 거름이 되는 자연스러운 농법을 고수하고 있다. 포도나무 사이 여기저기에 붉게 꽃을 피운 개양귀비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땅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들을 따라 서늘함이 느껴지는 와인 저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크통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목조 테이블에는 와인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장 크리스토프가 하나하나 시음을 시켜주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가 만드는 와인은 ‘뱅 드 페이 드 라 생트 봄(Vin de Pays de la Sainte Baume)’과 ‘코토 바루아(Coteaux Varois)’, 그리고 ‘방돌(Bandole)’로 나눌 수 있다.

푸르른 바르(Var)의 하늘 아래 다른 식물들과 어우러져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장 크리스토프의 포도나무들.

시앙스포의 교수답게 와인의 작명 실력도 남달랐는데, 남프랑스에서 많이 나고 프랑스 인들이 여름에 자주 먹는 로제 와인에 그가 붙인 이름은 ‘라포스트로프(L’apostrophe, 시작)’였다. 그르나슈, 시소와 카리냥 포도로 만든 이 와인은 입안에서 톡톡 튀는 탄산의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와인이 발효할 때 일어나는 탄산을 화학 재료로 죽이지 않고 그대로 살려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특히 프로방스 지역에서 많이 나는 로제 와인을 그만의 독자적인 와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30헥토리터(약 2천300병)의 와인을 만든다. 사실 7천500병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수확할 수 있지만, 한 나무에 열리는 포도송이가 적을수록 포도가 맛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포도송이를 하나 하나 손으로 따고 옮기며, 기계는 사용하지 않는다.

와이너리 안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 일을 하다가 테라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아담한 와인 저장소. 이곳에서 테이스팅을 한다.

들꽃을 꽂아놓고 소박한 접시들로 꾸민 점심 식탁. 장 크리스토프의 가족은 너그럽게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그가 만드는 화이트 와인인 ‘라날렙스(L’anal`epse, 플래시백)’는 진한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원래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는 포도를 압착한 후 껍질을 버리고 남은 주스만을 발효시키지만, 그는 레드 와인을 만들듯이 카리냥 백포도 껍질과 씨를 모두 사용하여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이 와인이 다시 생각이 날 것이다’라는 이름만큼이나 유니크한 그만의 화이트 와인은 풍부함, 강렬함, 복합성 때문에 아페리티프보다는 식사와 곁들였을 때 어울리며 특히 한국의 김치에 잘 어울린다고 했다. 또한 어제부터 열려 있는 이 와인들이 맛을 지탱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아도 와인의 맛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인 애호가였던 그는 화학품을 쓰는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맛이 좋아서 내추럴 와인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과일이 가진 본래의 맛, 생동감과 신선함을 지켜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가 마지막으로 시음하게 해준 레드 와인은 ‘랄리비(L’alibi, 알리바이)’였는데 프랑스의 시인 랭보가 지어낸 단어다. 그는 이 레드 와인을 예의 바른 마초맨에 비유했다. 묵직한 남성미를 풍기지만 사실은 너무나 여린 심장을 가진 남자. 일요일에는 흰색 셔츠를 입고 여자의 부모님 댁에 같이 식사를 하러 갈 줄 아는 남자.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것과도 같다며, 그는 땅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자신만의 와인은 땅의 특성과 기후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은 포도를 생산하고 포도를 해석하는 사람이지, 포도를 변형시키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품종의 포도를 쓰고, 수확 시기와 발효 기간을 정하고, 과일을 잘 인솔해서 마지막까지 그의 땅과 과일만이 낼 수 있는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와인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화학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테이스팅이 끝나고 우리는 즐거운 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부리나케 그곳을 떠났다. 그의 와인을 12병이나 차에 싣고. 마랑과 장 크리스토프는 우리에게 포도 수확철에 다시 오라고 했다. 수확을 한 뒤에는 매일 거대한 디너가 가을 하늘 밑에 차려진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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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Julien Weber
출처
5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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