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김밥

바야흐로 피크닉의 계절이다. 엄마의 손맛이 떠오르는 우리 동네 맛집부터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어느 골목길 작은 가게까지. 그들 각자의 추억이 담긴 생애 최고의 김밥은 어떤 맛일까?

을지로 수제 김밥

을지로 시장통에서 일명 ‘을지로 김밥’으로 불리는 ‘수제 김밥’. 을지로 4가 6번 출구에서 농협 가기 전 첫 번째 골목에 위치한 인테리어 필름/시트지 가게에 ‘수제 김밥 전문’이라고 씌어 있는 집이다. 아들은 인테리어 상담을 하고 엄마는 가게 안쪽 빈 공간에서 김밥을 말고 있으니 숍인숍 개념의 김밥집이라고나 할까. 이곳의 시그너처 김밥은 ‘매콤 제육 김밥’. 주문과 동시에 제육을 볶으니 진정한 수제다. ‘베를린 햄 김밥’의 커다란 소시지와 기존의 느끼함이라고는 없는 ‘칼칼 참치 김밥’은 한 줄만 먹어도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외부인들보다 주변 시장 상인들이 주로 오다 보니 뭐든 재료를 듬뿍 넣어주게 된다고 했다. 가지런히 채 썬 우엉과 당근을 아낌없이 넣어주는 ‘듬뿍 야채 김밥’과 곁들여 주는 시금치 된장국은 시판 용이 아닌 집 된장으로 엄마가 끓여주던 맛이다. 동생 부부가 방이동에서 운영하는 ‘부부 김밥’에서도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한다. -이상민(프리랜스 에디터)

연희김밥

연희동 연희김밥

소풍날이면 엄마는 아침마다 김밥을 마셨다. 솥에서 밥을 푸고 소금과 식초, 참기름으로 양념을 한다. 김에 밥을 얹은 후 미리 준비해놓은 우엉, 단무지, 시금치, 당근, 오이, 계란을 올려 말은 김밥을 고등학교 때까지 내내 먹었다. 두 줄도 먹고 세 줄도 먹었다. 김밥을 사 먹는다는걸,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대학 와서 학교 앞에 김밥집들이 하나둘씩 생겨났지만 사 먹기엔 어색했다. 골목마다 김밥 천국이 생겨났다. 하향 평준화된 맛이었다. 레시피라고 해봤자 엄마가 말아주던 김밥과 다를 게 없을 텐데, 밥은 떡지고 속 재료들은 제멋대로 씹히기 일쑤였다. 프리미엄 김밥들도 마찬가지, 어릴 때인 인이 박힌 김밥의 맛은 아니었다. 그건 내게 김밥이 아닌 다른 음식이었다.

어떤 계기로 연희동 사러가쇼핑 뒤에 연희 김밥을 알게 됐다. 고급 주택가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5월이었으니 소풍철이어서 그랬나, 아무튼 엄마들이 줄을 쫙 서있는 게 심상치 않았다. 기본 메뉴인 연희김밥과 시그니쳐라는 오징어꼬마김밥을 포장해서 먹었다. 이거다, 이거. 엄마가 말아주던 그 김밥이었다. 아니, 추억 보정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더 맛있었다. 탱글탱글한 밥은 잘 씹혔고 각각의 재료들도 향과 식감이 잘 어우러졌다. 무엇보다 ‘딱간’이었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간이 맞지 않으면 김밥이 아니다. 프리미엄 김밥들이 제일 아쉬운 게 그거다. 반찬이 필요없는 게 김밥인데, 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뒤로도 가끔 김밥이 생각나면 무조건 연희 김밥을 찾는다. 맛을 보신 엄마도 “옛날 김밥 맛이네” 인정하셨다. 소풍과 피크닉의 계절, 멀지 않은 곳에 연희김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들이 준비 걱정이 한 결 가벼워진다. – 김작가(음악평론가)

남춘식당

제주 남춘 식당

몇 년 전부터 꿀단지라도 감춰둔 양 제주를 뻔질나게 왔다 갔다 했다. 혼저옵서예. 제주에 사는 친구 덕에 늘 발 빠르게 유명한(해질) 맛집을 먼저 다닐 수 있었다. 그 목록에 김밥의 자리는 없었다. 물론 ‘오는정김밥’과 ‘남춘식당’ 김밥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갈 때마다 매번 새롭게 생기는 식당들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제주에서 좋아하는 식당과 새롭게 추가된 식당 사이에 굳이 김밥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2016년 12월 24일. 운명처럼 성탄 이브에 성스러운 김밥을 만났다. 공항으로 우릴 마중 나오던 친구는 남춘식당에서 김밥 5줄을 포장해왔다. 이브의 밤. 우리는 저녁으로 끝내주는 한림 육고깃집에 들러 포식했고 오는 길에 통닭까지 포장해와 먹었다. 배부름의 여세를 몰아 식어있는 김밥까지 입에 넣었다. 아, 김밥에 ‘따위’ 같은 말을 붙인 나 자신을 반성했다. 42년을 살며 유부의 새로운 세계에 눈 떴다. 이 김밥 안에 있는 유부와 그 뻔한 유부초밥의 유부가 같은 유부라니… 잘고 촘촘하게 썰어 넣은 유부의 간과 식감은 정말 굉장했다. ‘남춘식당’의 김밥에 눈을 뜬 뒤부터 나에게 김밥은 오직 유부 김밥만이 존재한다. 다른 건 다 ‘사파’다! 이 얘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하자 한동안 제주에 살았던 지인이 말했다. “그래도 나는 오는정파.” 설마, 아무리 오는정김밥이 훌륭하다 해도 남춘식당 김밥보단 맛있 진 못할 것이다. 그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 -김학선(음악평론가)

군자역 한아름분식

방금 전까지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를 말다 오신 듯, 머리에 보자기를 뒤집어쓰신할머니 두 분이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 동네 사랑방 같은 이곳이 바로 내 생에 최고의 김밥이 있는 ‘한아름분식’이다. 복잡한 군자역 뒤쪽의 동네 길에 자리 잡은 한 아름 분식은 인상 좋으신 노부부가 운영한다. 고슬고슬 잘 지어낸 밥을 김의 2/3까지 고르게 편 후 굵직하게 잘라 구워낸 햄, 노란 단무지, 신선한 오이를 제 자리에 척하니 올린다. 이 사이에 고소하게 기름에 볶아낸 당근과 짭조름한 ‘오복지’를 올려 가볍게 둘둘 말아낸 후 거칠게 간 깨를 솔솔 뿌리면 ‘한아름분식’의 대표 메뉴, 야채김밥 완성. 화려하게 치장한 몸값 높은 재료 없이도 훌륭한 맛을 낸다. 자극적이지 않아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이 집 김밥의 장점이자 단점. 항상 과식하게 되기 때문. 양껏 먹어도 며칠 후 그 맛이 생각나서 또다시 발길을 닿게 한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최소 5줄씩 구매하니 기다림은 필수. -이상미(마케터)

직접 만든 두부 김밥

대학을 졸업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러려고 요리를 전공했나 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면 다른 살길을 찾을까 싶어 그 어느 때보다 요리책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엄마가 생일선물로 사주었던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이라는책, 베스트셀러로 그 당시 생소했던 사찰음식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던 책인데, 거기에서 유난히도 먹고 싶고, 해보고 싶었던 메뉴가 있었다. 바로 ‘두부김밥’. 튀긴 두부를 간장에 맛깔나게 조리고, 우엉과 시금치, 당근이 가볍게 들어간 그야말로 사찰식 김밥이었는데 어디 파는 데도 없으니 직접 만들어 보자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요즘 프리미엄 김밥이라 나오는 형형색색의 터질듯한 김밥보다 훨씬 맛있는 게 아닌가! 그 이후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니던 일터를 접고 엄마와 같이 김밥을 말아 여의도역에서 ‘김밥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두부김밥을 메인으로. 새벽 2시에 일어나 아침 9시면 끝나는 엄청난 강행군을 버티기 힘들었던 탓에 6개월만 하고 접긴 했지만 아마도 그때, 어느 날 갑자기 두부김밥을 팔던 아가씨가 한순간에 사라져 여의도역 인근 직장인들이 서운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건강을 생각한 아침 메뉴를 편의점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메뉴가 업그레이드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단돈 천 원에 정성껏 튀겨 조린 두부와 우엉, 일일이 채를 썰어 볶은 당근, 맛깔나게 무쳐낸 시금치 그리고 압력솥을 몇 번을 돌려 찰지게 지어낸 밥으로 만든 김밥을 어디서 맛볼 수 있었겠나. 이제 내 딸이 7살, 아무리 바쁜 와중이라도 소풍날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그때의 그 시절 나의 두부김밥을 떠올리며  ‘돌돌돌’ 말곤 한다. 백 줄쯤은 쉬이 말았으니 열 줄쯤이야 하면서. -장은실(맛있는 책방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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