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짜장면

4월 14일 ‘블랙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탕, 초콜릿보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내 생애 최고의 짜장면’은 과연 어디일까?

화순반점 간짜장 

인천역 부근에 있는 화교 촌 ‘차이나타운.’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옆 동네 동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초·중·고교 졸업식 날이면 어김없이 50년 전통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고, 쿵후를 가르치는 아버지를 따라 화교 촌의 숨은 고수들을 찾아다닌 나에게는 그곳의 정서가 가슴 깊이 스며 있다. 인천의 3대 포구 중 하나인 만석부두는 시선의 원형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어릴 적엔 거기서 주로 딱지 치기를 했다. 1980년대 연안부두 개발로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바뀐 그곳의 쇠락한 기운은 어쩐지 내게는 되려 차분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만석부두에 가면 꼭 화순반점에 가는데 반드시 간짜장을 시켜야 한다. 구문 즉시 웍에 볶은 고소하고 뒷맛 개운한 춘장을 달걀 프라이에 올라간 순결한 면발에 슥슥 비벼 먹는 이 일품이다. –안동선(<바자> 피처 디렉터)

신성각 간짜장 

공덕역 근처에 위치한 신성각에서 짜장면을 주문하고 그릇을 단숨에 비운 뒤에 인사를 하고 나오는 일련의 과정을 좋아합니다. 좁은 주방에서 면을 치대고, 화구에 불을 올린 다음 큰 ‘웍’에서 장을 달달 볶으면 한 그릇의 간 짜장이 완성됩니다. 저는 무심하게 그 짜장을 모두 면 위에 부어서 먹습니다. 짜장의 적절한 양과 그 양에 따른 간을 조절하는 것까지도 실력이고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맛을 표현하자면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천천히 완성된 제대로 된 맛이라고나 할까요? 인천 ‘혜빈장’의 간짜장도 좋긴 한데, 그래도 역시 간짜장은 신성각이 최고입니다. -임성은(‘헬카페’ 대표)

홍보각의 삼선 짜장면

홍보각 삼선 짜장면

‘내 생애 최고의 자장면’.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짜장면은 순간의 기억을 담고 있고, 그것을 비비는 매 순간들은 벼락을 치듯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기에. 최근 찾았던 ‘홍보각’ 여경래 셰프의 미소에 생각이 멈췄다. 철 가방을 나르던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그의 정직한 노고가 ‘셰프들의 전성시대’를 맞으며 붉게 만개했다. 대가에게 짜장면에 대해 물으니 “짜장이란 장을 볶는다는 뜻이고 그렇게 만드는 면 요리”라고 말한다. 미사여구 한 자 없는 건조한 그의 이야기에서 백 년의 전통과 현대적 해석을 이어온 그동안의 노고가 느껴진다. 지금 그의 짜장면은 맛의 기술에 있어 정점에 올랐다. 심지어 요리 한 그릇에 행복한 마음까지 가득 담아내고 있다. 그는 오늘도 무쇠 ‘웍’ 속에서 장을 볶고 우리는 그것을 비빈다. 짜장면을 먹는 것은 ‘생활’에 가깝지만 먹고 난 뒤에는 그리움이 남는다. –정상원(‘르꼬숑’ 오너 셰프)

군산 지린성 고추 짜장

군산 지린성 고추 짜장

짜장면을 먹기 위해 그곳에 간 건 아니었다. 우리는 겨울의 한가운데에 채석강 근처 변산에서 MT 중이었고 다음날 아침 숙취에 골골대다 군산 출신인 그의 지휘에 따라 12인승 승합차에 몸을 구겨 넣고 새만금 대교를 건너 이름마저 ‘무협지스러운’ 지린성에 도착했다. <백 xx의 3대 천왕>에 나오기 전이었음에도 꽤 긴 줄을 섰고, 때마침 눈이 오기 시작해서인지 본산의 고수들 대부분이 짬뽕이 아닌 짜장을 먹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고추 짜장 12그릇을 시켰다. 항구도시 군산 다운 큼지막한 해물의 ‘불 맛’과 ‘고추 맛’ 춘장에 눈물, 콧물,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마치 거짓말처럼 해장이 되었고 군산이 초행인 이들은 이성당 투어를, 우리 시니어들은 이곳의 랜드마크 금강레저타운에 가서 찜질 복으로 갈아입은 후 군산 ‘최고의 맛’이라는 식혜를 한 병씩 물고 마루에 누웠다. –이상민(프리랜스 에디터)

공리 삼선 간짜장

공리 간짜장

성질이 나면 자극적인 음식으로 화를 다스린다. 다양한 메뉴 중 짜장면은 한때 내 성질을 잠재우기 좋은 음식이었다. 잡지사 에디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 마감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재앙 수준의 내 원고는 편집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리의 방(우리는 회의실을 그렇게 불렀다)에 끌려가 편집장님을 독대하며 머리 없이 손으로만 일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나에게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중국인 셰프가 한다는 강남구청역 근처 ‘공리’로 달려가 볶은 양파가 가득 든 간짜장을 시켰다. 면발에 짜장 소스를 붓고 슥슥 비벼 입에 면발을 처넣으면 달콤하면서 짭짤한 소스가, 탱탱한 면발이, 부드럽게 볶인 양파가 내 화의 농도를 희석시켜줬다. 적당히 자극적인 이 집 짜장면은 미친 듯 ‘화’로 가득한 나에게 ‘레알’ 마음의 양식 같은 것이었다. –고승희(프리랜스 에디터)

<수퍼레시피> 촬영 중 재료 컷

짜장 말고 김치 볶음

짬뽕 외길 인생 30년을 살아온 내가 짜장면을 주제로 칼럼을 맡게 되었다. 향후 50년 치에 해당되는 짜장면을 보름 만에 먹어 치우는 기적을 행하던 그때, 날 살린 것은 ‘김치 볶음’이었다. 짜장면의 이색 고명을 찾던 중 발견한 그것. 칼칼하고 새콤하며 아삭하기까지 해 검은 소스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그것을 난 ‘단무지 장사 망하는 맛’이라고 표현하기로 했다. – 고영아(<수퍼레시피> 시니어 에디터)

복성각 납작 고추 짜장

솔직히 짜장은 그냥 옳다. 굳이 ‘맛집’을 찾는 수고 없이도 성공을 보장받는 신의 메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밥하기 싫은 주말 집에서 시켜 먹는 옛날 짜장도 좋고, 기자로 일하던 당시 마감 때마다 함께 했던 평창동 한 중국집의 간짜장도 피로에 찌든 심신을 치유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졸업 후 훌쩍 지방으로 떠난 동창을 만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던 겨울, 몇 년 만이라는 반가움 이전에 추위가 앞선 우리가 찾은 곳은 서울에도 수 십 점포는 있을 법한 체인 중국집이었지만 그곳에서 눈물 콧물 빼며 열정적으로 흡입했던 매콤한 쟁반 짜장은 근래 먹은 짜장 중 단연 최고였다. 매운 걸 잘 먹는 편은 아닌데도 매운 요리를 좋아해서 매번 주문에는 거침이 없다. 천장을 뚫는 의욕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나의 능력에 매번 실망하지만, 그런 나조차 제대로 ‘맛있다’의 선에서 즐길 수 있는 게 ‘복성각’의 납작 고추 짜장이다. 간간이 젓가락에 걸리는 자잘한 고추만 잘 피하면 큰 위기 없이 ‘완짜’가 가능하다. 잔치국수보단 칼국수, 잡채의 당면보단 찜닭 속 납작 당면이 반가운 나에겐 페투치네 같이 넓적한 이곳의 면발도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 -한나리(번역가)

하이완쥐 라오베이징자장미엔

대륙의 맛, 북경식 짜장면

한국식 짜장면에 질렸다면 한 번쯤 대륙의 짜장면을 맛보는 건 어떨까? 춘장에 돼지고기와 양파를 더해 달콤한 맛을 살린 한국식 짜장면과 달리, 북경식 짜장면은 오로지 춘장 본연의 맛으로 승부한 비빔국수에 가깝다. 작은 그릇에 아무렇게나 썬듯한 야채를 종류별로 담아낸 뒤, 무표정한 직원이 이것을 하얀 면 위에 무자비하게 쏟아주면 여기에 춘장을 더해 비벼 먹으면 된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꾸밈없고 솔직한 맛, 무심함에 섭섭하다가도 구수한 여운이 남는 ‘츤데레’ 같은 맛, 왠지 다음번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 북경 짜장면은 바로 그런 맛이다. –강란(번역가)

엄마 표 짜장면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날 유난히 우쭐하게 하는 건 엄마의 음식 솜씨였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한 것도 엄마의 몫이었고, 그 몸에 토실토실한 살을 붙여준 것도 엄마였다. 그중 손꼽히던 맛이 바로 엄마 표 짜장면이다. 진미 춘장이 담긴 네모난 종이팩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으면 우린 내리 이틀은 짜장을 먹어야만 했는데도 난 그게 전혀 싫지 않았다. 커다란 냄비에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고 달달, 춘장을 넣고 또 한 번, 양파와 호박을 넣어 다시 볶다 물과 녹말 물을 부어 걸쭉하게 만들면 짜장 소스는 끝. 양파가 듬뿍 들어가 달큼하면서 입에 착 달라붙는 소스에 직접 반죽해 삶아낸 면을 비벼 먹거나, 식어 조금은 꼬들꼬들해진 밥에 뜨거운 짜장을 듬뿍 얹어 매콤하게 무친 단무지와 함께 먹곤 했다. 엄마의 짜장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고, 양껏 먹어도 단 한 번 배앓이를 한 적이 없는 ‘착하디착한’ 음식이었다. –구효선(브레댄코 마케팅팀)

상상의 맛, 아라성 짜장면 

“저기 중국집 있잖아. 아라성”

아라성은 외관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허름해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은 곳이었다. 색이 바랜 빨간색 간판은 낙후된 지역의 무허가 건물을 연상하게 했고 입구의 나무 문은 개미 떼가 습격한 듯 손잡이 일부가 불규칙하게 파여 손이 닿으면 당장 나무 가시에 찔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입구 바로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의 백미러는 뼈대만 있을 뿐 양쪽 다 거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 그냥 가자. 여기 배달만 하는 중국집 같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라성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자리 없어요” 남자의 굵직하고 성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뒤에서 바라본 아라성 내의 풍경에 나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여기 끝내준다. 자리 없다고 손님한테 큰 소리치는 거 봐라”

엄마는 뭐가 웃긴지 키득거리며 여기까지 나온 김에 시장에 있는 기계 짜장을 먹자고 했다. 엄마가 연신 “끝내주게 장사하네” 라며 요즘 장사하는 사람들의 서비스 정신에 대해 진지한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아라성 안에 있던 사람들과 분위기, 색감과 냄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아라성 안은 여름이었다. 더운 나라의 노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민소매 옷을 입은 채 시뻘건 짬뽕 국물을 앞에 두고 손으로 탕수육을 집어먹고 있었고 얼굴은 땀과 콧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바로 뒤에선 조리장이 직사각형의 칼로 양파를 썰면서 양파인지 담배인지 길고 하얀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바닥과 벽은 오래된 시멘트가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아 패이고 깎이고 쓸려 있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놀랐던 건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엄마와 나를 향해 기립했다는 점이었다.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도 신경이 쓰였다. 열어서는 안 되는 곳을 열어버린 기분이었다. 기괴했고 의문스러웠다. –강인애(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 ‘내 생애 최고의 짜장면’은 아직 없다. 위 엽편 소설은 상상력으로 쓴 일부 묘사지만 짜장면을 떠올렸을 때 기억되는 단상을 적은 것이다. 최고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짜장면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고 넉넉한 음식임에는 틀림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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