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와 심플 라이프

지난 40년 동안 달항아리를 만든 도예가 권대섭의 눈은 고귀한 단순을 담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이석리. 고요한 팔당호를 끼고 완만한 4차선 도로를 달리다 비좁은 길로 들어서니 잘생긴 한옥이 나온다. 대들보에는 동양화가 김병종의 천진난만한 그림이 새겨져 있고 방에는 시크한 조선 목기가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 한옥의 주인은 권대섭 작가의 딸.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오랜 유학 끝에 앤티크 딜러로 활동하는 그녀는 100년 된 아담한 우물을 지나 낮은 지붕을 이고 있는 본가로 일행을 안내했다. 저 멀리 호수까지 내다보이는 방에는 다도를 위한 낮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작가의 아내는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찻사발에 말차를 타고 있었다. 진녹색 고운 말차 가루를 물에 섞어 차선으로 저으면서 거품을 내는, 절도와 기품이 깃든 동작에 일행의 눈길이 모인다. “가마가 워낙 작아서 항아리를 두세점 정도밖에 못 넣거든요. 항아리와 항아리 사이에 공간이 남잖아요. 거기에 사발 같은 걸 넣죠. 그렇게 만든 찻사발에 여기 오시는 분들 차를 내드려요. 말차는 이 자세로 타야 잘 타지거든요. 가끔은 영 안 타지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괜찮네요.” 부모와 취향 공동체를 이루며 허물없이 지내는 딸이 맞장구친다. “그러게. 오늘은 잘 타네.”

저 멀리 팔당호가 내다보이는 툇마루에 권대섭 작가가 앉아 쉬고 있다.

가마 옆 작업실에는 제작 과정 중의 달항아리 두 점이 놓여 있다.

세 가족이 이곳에 정착한 건 35년 전. 권대섭 작가는 세 살배기 딸을 데리고 사금파리를 주우러 다니는 게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다. 조선 초기, 이 지역에는 왕실의 음식과 식기를 담당한 기구인 사옹원의 분원을 비롯해 우수한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가 2백여 곳 넘게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수운의 편리함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 가마터들을 돌아다니며 도자기의 파편을 관찰하고 이어 붙여 형태를 그려보기도 하면서 작가는 15년을 공부만 했다. “그때는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매일같이 사금파리 가지고 씨름하거나 온종일 책을 읽었으니까. 20년 만에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웬 전시?’ 하고 되물었죠.” 이곳에 정착하기 전, 작가는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들이 건너가 도예를 발전시킨 일본 규슈 나베시마요에서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오가사와라 선생에 사사하며 5년을 보냈다. 그러니까 장장 20년을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린 것이다. 아내와 딸의 재촉에 권대섭 작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40년 동안 달항아리를 만들었어요. 전문성은 그 세월 동안 갈고 닦은 인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도자기 작업은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정신적 고통과 금전적 고통은 이 일의 일부이지요.”

지난 3월 벨기에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Return’에 선보인 달항아리.

권대섭 작가의 눈빛은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했다.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달항아리들 사이에 포즈를 취한 권대섭 작가와 그의 아내.

카날 사이트에 위치한 악셀 앤드 메이 페어보르트 재단의 박물관 설립 첫 작품, 아니시 카푸어의 ‘The Edge of the World’(1998)에서 포즈를 취한 권대섭 작가.

그 모든 시작은 인사동의 어느 고미술품점에서 조선백자를 맞닥뜨린 순간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전국 대회 상을 휩쓸고 당연하게도 홍익대 서양화과에 진학해 군 복무 후 3학년에 복학할 즈음이었다. “그 순간 이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평면 회화를 할수록 입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하는 달항아리는 입체에서도 제일 추상이죠. 그렇게 옮겨가게 됐어요. 저는 전통을 잇고 싶어서 이걸 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현대적이기 때문에, 가장 미니멀하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추상이기 때문에 달항아리를 합니다.”

조선시대의 대표 도자기인 백자는 상감의 다양한 기술이 발달한 고려청자와 영 다르다. “대부분의 도자기는 더 정교하고 화려해지는 방향으로 발전이 되었는데 달항아리만은 그 반대입니다. 더 미니멀해졌죠.” 백자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 만들어지기 시작해 18세기 전반 특정 시기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둥근 달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러한 애칭이 붙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현재 스무 점 미만으로 전하고 있고 그중 일곱 점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7~18세기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많이 제작된 보통의 백자 항아리와 달리 달항아리는 오직 조선에만 있다. 높이 40여cm의 달항아리는 커다란 대접을 두 개 만든 다음 이것을 잇대어 둥글게 만든다. 그 때문에 모든 달항아리에는 가운데 이은 자국이 있고 이로 인해 달항아리의 둥근 선은 정형화된 원이 아니다. 술이나 간장, 젓갈, 곡식 등을 담았다는 분석도 있고, 왕실의 행사를 위한 의례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도가 어찌 되었건 달항아리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도예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계승하고 있고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내외 컬렉터들에게 열렬히 사랑받고 있으며 구본창, 강익중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자신만의 미학을 풀어내기 위한 주요 테마가 되고 있다. 그 시작은 수화 김환기일 것이다. 달항아리의 불가사의한 미감에 심취해 여러 점의 그림을 남기며 김환기는 이렇게 썼다. “한 아름 되는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따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를 반기며 모두가 마당에 나간 사이 홀로 달항아리와 마주 앉아 그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문양은 없으니 빛깔과 형태에 집중해본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말처럼 “무심스러운 아름다움과 어리숭하게 생긴 둥근 맛”도 느껴보고 권대섭 작가의 말대로 “가장 완벽한 추상”이라는 말도 생각하며 달항아리가 자아내는 기운에 흠뻑 젖는다. 달항아리를 앞에 두고 가부좌를 틀면 위파사나 명상도 어렵지 않을 것처럼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졌다. 영국 V&A 미술관에서 저명인사 다섯 명에게 미술관 소장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점을 골라보라는 과제를 제시했을 때 영화배우 주디 덴치가 달항아리를 꼽으면서 했다는 말이 딱 내 느낌이었다. “온종일 이것만 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보고 있자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집니다.” 미학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손을 빌린 사고 이전의 미, 조작 이전의 미, 평범하지만 비범한 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기하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 1935년 영국의 대표적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한국에서 달항아리를 사 가면서 “이것을 영국에 가져가는 게 나에게는 더없는 행복”이라고 했다. 그 달항아리는 지금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악셀 페르보르트가 ‘카날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는 베이네헌의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달항아리.

전시장에 앉아 달항아리를 감상하고 있는 악셀 페르보르트(오른쪽).

러시아 국립박물관, 멕시코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된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는 최근 시카고 미술관에도 소장되었다. 전시 또한 국내만큼이나 해외에서 요청이 잦다. 2009년에는 서미앤투스 갤러리를 통해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에 출품돼 매진을 기록했고, 올해 봄에는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에서 정창섭의 단색화와 함께 2인전을 가졌다. 1960년대 아트와 앤티크 딜러로 일을 시작해 빌 게이츠, 로버트 드니로, 카니에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의 집을 디자인한 악셀 페르보르트는 큐레이터로 영역을 확장한 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나가는 테이스트메이커로 손꼽힌다. 안트베르펜과 홍콩에 갤러리를 갖고 있으며 안트베르펜에서 멀지 않은 베이네헌에서 고유한 개성을 지닌 문화와 주거 공간을 창조하는 ‘카날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존중, 단순함과 조화의 예술, 소박한 물체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동양 미학에 조예가 깊다. 그의 밝은 눈에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들어온 것이다. “그가 달항아리를 전시장 바닥에 놓자고 하더군요. 좋았습니다. 모두가 바닥에 앉아 달항아리를 감상했죠. 달항아리를 만드는 일은 자연이 돕지 않으면 이뤄지기 힘든 작업입니다. 악셀 씨는 그런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권대섭 작가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그다음은 자연에 맡긴다고 했다.

최순우 관장은 달항아리의 비정형의 원이 주는 어진 맛은 특유의 백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의 예찬은 달항아리 한 점과 조선 목가구의 근본이라 할 만한 책장이 자리한 소박하고 고졸한 작가의 집, 그리고 그 집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해사한 작가의 면모에 들어맞는 말이었다. 300년 전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졌으나 현대미술 신에 두둥실 떠오른 달항아리는 더욱 맑은 영혼, 더욱 어진 사람, 그리하여 심플 라이프로 우리를 이끄는 듯하다.

우리나라 제사 문화를 주제로 한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기획 전시 ‘가가례: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 전에서 권대섭 작가가 백자로 구성한 제기를 만나볼 수 있다. 9월 8일부터 11월 2일까지. 아름지기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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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안 동선
사진 Lee Jae-an, Moon Duk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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