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쓸모

대구는 바다의 소(牛)라고 한다.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피시 앤 칩스도 원래 대구로 만든다. 창자로는 창난젓, 알은 알젓, 정소(이리)는 탕에 넣어 먹고, 심지어 껍질도 맛있다. 대구탕을 맛없게 끓이기는 힘들다. 무 넣고 소금 치고 끓이면 다 맛있다.

런던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은 대충 이런 계획을 짠다.

“음, 뮤지컬을 한 편 보고, 벼룩시장도 가야지. 대관람차도 타고, 튜브라고 부르는 지하철도 좀 타고 말이지. 아니야, 그냥 그 유명한 2층버스를 타고 돌아볼까. 아아.”

이러고선 런던 여행을 마친다. 참, 여행의 백미라는 구르메 투어는 없었나?

“그렇지. 역시 커리가 맛있더군. 차이나타운의 광둥식 오리구이도 참 괜찮았어.”

아니, 이 사람아. 런던 음식은 뭐 없었나.

“왜 없었겠어. 슈퍼에서 파는 맥주는 아주 좋았다구.”

런던을 간다면 기필코 먹어봐야겠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보통은 없다. 다들 안 그런가. 로스트비프 샌드위치나 키드니 파이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다. 런던 사람들은 아주 현명하다. 거리에서 스시를 먹고 다니며, 어떤 런던 친구는 저녁을 같이 하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하는 라멘집이 있어. 괜찮으면 코리안 퀴진도 좋다구. 내 주머니가 고든 램지에 데려가는 건 말리고 있네.”

위에 차이나타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좁은 식당 안에는 오직 머리 숫자와 매출을 가늠하는 주인의 눈초리만 번득일 뿐이다. 더구나 그릇이 멜라민이라니.(서울 말고 한 끼에 몇 만원씩 내는 식당에서 멜라민 그릇을 척 하고 내주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거지 같은 와인도 몇 만원씩 받아먹는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독자들의 외침이 들린다. 피시 앤 칩스! 피시 앤 칩스!

그래 그래, 안다. 나도 먹어봤다. 혹시나 해서 다른 집도 여럿 돌아봤다. 한 집에서 나는 그 요리를 시키려고 했다. 금색으로 간판을 치장한, 웨일스 왕자 어쩌구 하는 집에 들어서려고 인파를 헤쳐야 했다. 마침 저녁 퇴근 시간이었고, 엄청난 숫자의 남자들이 가게 안팎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마나 인간들이 많은지, 가게 밖에서는 런던의 유명한 기마경찰대가 2개 중대쯤 몰려와서 손님들이 차도로 나오는 걸 막고 있었고, 처칠을 닮은 시장이 나와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런던 사람들이 마음 놓고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관광객들은 저리 꺼지시오!”겨우 인파를 헤치고 주문대까지 갔지만, 직원이 45도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뭐지? 맥주가, 피시 앤 칩스가 다 떨어졌다는 건가? 뭐지?나는 겨우 “에일…”이라고 말을 꺼냈고, 그는 고개를 더욱 틀고 턱까지 치켜들었다. 나는 안다. 유럽에서 좀 살아봤다. 꺼지라는 표정인 거다. 그렇다. 퇴근 시간대에, 그것도 런던의 유서 깊은 펍에, 아시아인이 와서 에일과 뭔가를 먹겠다고 주문대에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그는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보라구, 저 밖에 서 있는 머리 노란 런던 사람들이 안 보이나. 너는 지금 우리들이 매일 치르는 전통적인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맞다. 우선 당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보라. 런던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으면, 런던 시내에서 펍에 가서 얼쩡거리면 안 된다. 에일도, 아니 국물도 없다.나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거의 망해가는 것 같은 펍을 발견했고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할 수 있었다. 미지근하고 탄산도 적어서 말 오줌 같은 에일도 마실 수 있었다.

피시 앤 칩스는 원래 대구로 만든다. 그러나 대구 값이 오르면서 그저 ‘대구를 닮은’ 어떤 생선들로 튀긴다. 진짜 대구 튀김은 아주 비쌀 거다. 대서양 어딘가에서 잡은 거대한 광어나 홍민어나 뭐 그런 거를 쓰는 것 같았다. 기름은 한 컵쯤 접시에 줄줄 흘렀고, 손으로 집어 먹기에는 너무 컸다. 피시 앤 칩스는 사실 맛있는 음식이다. 최현석 셰프가 말했듯이, 신발도 튀기면 맛있는데 생선과 감자튀김이 맛없을 수 없다. 그러나 런던의 많은 펍에서는 그걸 맛없게 하는 신기를 부린다. 이 요리를 할 때 대구를 튀기는 방법이 좀 특이하다. 보통은 밀가루→달걀→빵가루 순으로 옷을 입히거나 전분이나 거친 밀가루를 입혀 바로 튀기는 게 보통이다. 피시 앤 칩스는 반죽(배터)에 베이킹파우더를 넣어서 살짝 부풀린다. 또 갈색의 에일 맥주를 넣어서 짙은 색이 나오게 한다. 맥주 거품이 튀김을 더 부풀리고 바삭하게 만든다. 그래서 피시 앤 칩스는 튀김 요리 중에서 가장 반죽이 크고 기름지며 색이 짙은 요리에 속한다.

원래 피시 앤 칩스가 유행한 건 19세기라고 한다. 영국은 수산물에 관한 한 아주 흥미로운 나라다. 한때 바닷가재가 무진장 잡힐 때는 밭에 비료로 쓰거나 죄수, 하인들의 식사로 썼다. 그러다 보니 하인 그룹은 이 처사에 반발해서 데모를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바닷가재를 주지 말라. 우리 입이 죄수보다 못한가.”

피시 앤 칩스는 엄청나게 잡히고 맛도 좋은 대구를 썼다. 대구는 대서양에서 무한정 잡혔다. 튀기고 지져서 먹었다. 말리거나 소금 쳐서 남부 유럽 국가에 수출했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르는 나라들이 모두 이 소금 치거나 말린 대구(바칼라나 바칼랴우라고 부르는) 요리에 미친 듯이 탐닉했다. 하지만 이제 대구는 더 이상 싼 요리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는 대구가 더 비싸다. 아, 미안하다. 말장난이다. 대구는 ‘大口’라고 쓴다. 문자 그대로 입이 큰 고기란 뜻이다. 입이 크면 머리도 크다. 그래서 유럽에서 잡히는 대서양 대구의 대가리는 유통되지 않는다.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리는 사료나 비료로 썼다. 그러다가 어느 동양 수입업자의 눈에 띄었다. 그걸 수입한 업자는 대박이 났다. 한국에서 ‘뽈찜’이 되었다. ‘대구볼살찜’이라는 뜻인데, 실은 대가리찜이다. 볼살만 따로 모아서 요리해주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구가 잡히지 않았고, 대구 대가리는 값싼 대구탕과 볼살찜의 재료가 되었다. 나도 그걸 안주로 먹고 살았고, 지금도 먹는다. 대서양 대구는 덩치가 크다. 그에 반해 한국 대구는 좀 작은 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걸 보면, 대서양 대구잡이가 나온다. 사람 키 못지않게 큰 것도 많다. 한국 대구는 커봐야 1미터 미만이다. 태평양 대구라고 부른다. 내 친구 중에 ‘팥쥐아빠’라는 인물이 있다. 잘생기고 사람 좋다. 제약회사 연구원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구로동 쪽에 대구탕을 파는 막횟집을 차렸다. 나랑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나 장을 봤다. 그는 늘 겨울이면 대구를 샀다. 매일 새벽, 시장 안에 사람들이 내뿜는 입김이 뽀얗게 찼고, 물 좋은 대구가 경매되곤 했다. 대구가 겨울에 잘 잡히는 건 알 때문이다. 산란을 하러 우리나라 남해안으로 붙는다. 치어를 방류하면서 양이 더 늘었다. 연어만 고향을 찾는 게 아니다. 상당수 생선이 그렇다. 자기가 태어난 바다로 돌아온다. 이때가 겨울이고, 우리나라 대구 철이 된다. 거제, 가덕도, 진해 등지에서 많이 잡힌다. 대구는 암컷보다 수컷이 비싸다. 암컷은 알을 배느라 살이 마르고(내 눈에는 통통하게 보이는데), 수컷이 살 맛도 좋고 국물 맛이 더 깊기 때문이다.

대구탕을 맛없게 끓이기는 힘들다. 무 넣고 소금 치고 끓이면 다 맛있다. 그래도 맛이 없으면 조미료 좀 넣으면 된다. 대구탕은 서울에서는 보통 맵고 빨갛게 끓이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하자면 역시 맑은 탕이다. 통영이나 부산에서는 제철에 맑게 끓여낸다. 무와 소금이 전부다. 대파를 좀 넣을 수도 있다. 딱 하나만 신경 쓰면 된다. 무를 먼저 끓이고 대구를 넣어야 한다. 대구를 오래 끓이면 살이 풀어진다. 대구 살은 수분이 많아서 잘 허물어진다. 대구는 바다의 소(牛)라고 한다.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창자로는 창난젓, 알은 알젓, 정소(이리)는 탕에 넣어 먹고, 심지어 껍질도 맛있다. 대가리는 알다시피 탕이나 찜의 재료로 쓴다. 한때 대구가 많이 잡히고 쌀 때 경남 남해안에서는 대구 김장을 했다고 한다. 대구를 한 지게 들여와서 말리고 저장해 두고두고 먹었다. 며칠 말린 대구포를 죽죽 찢어서 안주로 하면 기가 막혔다. 우리가 맥줏집에서 먹는 대구포는 거의 대구가 아닌 다른 생선의 살이고, 설령 대구라고 하더라도 수입 대구로 만든 것이다. 진짜 대구포는 엄청나게 비싸다. 수입이라고 하더라도.

대구는 회로 먹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고 먹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구 살에 소금을 살짝 쳐서 수분을 말린 후 썰어 먹으면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아니면 식초를 쳐서 씻어내기도 한다. 대구 살을 단단히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뭐, 맛은 대단하지 않다. 대구는 폭 끓이면 맛이 우러나는데, 이상하게 생것은 물컹거리고 감칠맛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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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찬일(‘로칸다 몽로’ 셰프)
일러스트 Re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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