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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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약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드래그 퀸이 있다. 그의 이름은 모어(More). “2000년에 이태원 ‘트랜스’ 바 위에 있던 게이 바 ‘가르송’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제일기획 사옥 건너편에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올랄라’라는 쇼 클럽이 문을 여는데 드래그 퀸이 필요하다며 저한테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드래그 공연을 트랜스 바 사장님이 보고 스카우트를 해서 그때부터 트랜스에서 공연을 시작했어요. 내년이면 트랜스 공연 19년 차예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했던 모어의 드래그 안무는 전문 아크로바틱을 방불케 한다. “중학교 시절 체육 시간에 손 짚고 옆돌기를 했어요. 처음 해보는데 다리가 부채처럼 펴지고 일직선으로 몸이 휙 돌더니 너무나도 사뿐하게 착지하는 거예요. 체육 선생님이 기가 차서 ‘너는 발레 해야겠다’라고 하시기에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말했더니, ‘그래, 해봐.’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때 신었던 토슈즈는 이제 10~30cm를 육박하는 하이힐로 바뀌었다. “발레가 제 드래그에 미친 영향은 거의 90%예요. 타고난 ‘끼’로 버무리는 춤, 혹은 훈련으로 다듬은 춤이 있는데 저는 후자에 더 가깝죠. 또 립싱크는 드래그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한데, 이 싱크로율을 높이는 데 100% 몰두하지는 않아요. 얼굴 근육을 크게 사용한 표정 변화에 더 집중해요. 눈을 엄청 깜빡거리면서 혀를 정말 빨리 넣다, 뺐다 하는 동작 같은 거요. 이걸로 2012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라카지>에서 ‘페드라’ 역도 맡았어요. 보여드릴게요.” 화상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스크린 너머로 시시각각 변하는 모어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또 한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애니 레녹스. 그녀의 얼굴은 천생 아티스트예요.” 모어는 인터뷰 도중 일어나 집 안 주방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레녹스의 전설적인 음반 <디바> 표지를 보여주었다. 레녹스는 여성으로서 가장 낮은 음역대의 음성을 가졌으며, 1987년부터 이미 남장 혹은 드래그 퀸 분장을 하고 앨범 커버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등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며 ‘게이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적극적인 HIV/AIDS 바로 알리기, 자선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제가 목포 출신인데, 고등학생 때 시내 음반가게를 지나가다가 레녹스의 ‘디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봤어요. 바로 완전히 매료돼버렸어요. 제가 그때도 지금처럼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딱 그 표현을 위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왜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운지 공감을 못하더라고요. 오히려 ‘무섭다’고 했어요. 제 드래그 쇼에서 아끼는 레퍼토리도 ‘Why’를 비롯한 레녹스의 노래예요. 그런데 예전에 이태원 게이 바 ‘르 퀸’에서 그런 노래와 공연을 무대에 올리면 관중들이 저한테 무섭다며 막 소리를 질렀어요. 너무 기분이 상해서 르 퀸을 떠났어요.” 백지영, 엄정화, 이효리의 무대나 뮤직비디오에서 협업하고 비욘세, 패리스 힐튼이 한국에 왔을 때 협연을 하기도 했지만, 모어가 정말 사랑하는 무대는 게이 바도 유명 인사와의 협업 무대도 아니었다. “레녹스의 ‘The Gift’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녀가 드래그 퀸처럼 분장을 하고 베니스의 거리, 광장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한국 버전으로 북한산, 지리산같이 지방 소도시나 산골마을에 가서, 제가 마치 우주에서 그곳에 느닷없이 떨어진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해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요.” 모어는 고양미술박람회, 공평아트센터, 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미술 공간에서도 수차례 드래그 공연을 선보였다. “미술 공간에서 퍼포먼스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누군가 제 춤을 보고 저를 섭외하면 드래그가 가미되고, 드래그를 보고 초대하면 춤이 붙어가요. 한국에서 아직 예술로 간주되지 않는 것과 소위 순수예술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 제가 있는 것 같아요.” 

어느새 드래그 쇼에도 관중이 기대하는 전형적인 모델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드래그 퀸이 여성스럽고 예쁘되 코미디언처럼 웃기길 바란다.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가 딱 제 상황이에요. 한국에서는 아직 드래그 퀸이 내보일 수 있는 감정, 표현 등이 매우 제한적이에요. 제게 영감을 주는 사람은 비욘세,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 그레이스 존스, 조니 미첼, 케이트 부시, 김추자, 양희은, 이상은, 펄 시스터즈, 한영애 같은 분들이에요. 이런 레퍼토리는 일반 게이 바에서 할 수가 없어요. 반응이 ‘무섭다’ ‘징그럽다’ ‘엽기적이다’ 등이거든요. 트랜스 바에서는 저를 ‘범우주적 쇼걸’이라고 소개해요.” 그런 모어의 광범위한 활동상을 현재 이일하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촬영하고 있다. 모어의 인스타그램에는 촬영 도중 그가 한복 치맛자락 한 끝을 어깨까지 손가락으로 걸어 올린 채 숨을 헐떡이며 온양민속박물관 야외의 문인석 군상 사이를 헤집고 뛰어다니는 영상이 살짝 공개되었다. “내년 서울퀴어퍼레이드 때까지 촬영하기로 했어요. 참, 내년에는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맞아 뉴욕의 한 클럽에서 공연도 해요.” 인터뷰 당일은 마침 전날 밤까지 핼러윈 행사를 몰아치고 모처럼 쉬던 날이었다. 모어는 영양갱을 먹으면서 주말과 연말에 몰린 공연 일정을 나열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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