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의 세계

LEE HEEMOON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를 이수한 명창 이희문은 무대 위에서 마돈나가 되고 싶다. “경기민요를 불렀던 소리꾼은 원래 대다수가 남성이었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기생 문화가 들어오고 도제식 교육으로 기생을 길러내던 권번 제도가 도입되면서 거의 여성의 전유물이 됐죠. 오랜 학습 끝에 경기민요의 특징은 소리를 동그랗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여성 소리꾼들이 가꾼 문법에 여성적 특성이 가미되면서 자연스럽게 더 여성적 소리가 된 것 같아요.” 이희문은 일본에서 미디어 영상을 수학하고, 뮤직비디오 조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대 후반에야 민요에 뛰어들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경기민요 이수자 고주랑 명창이고, 그의 스승은 경기민요 예능 보유자 이춘희 명창이다. “가르침을 준 분들이 모두 여성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소리가 너무 여성스럽다는 거예요. ‘아니, 그럼 남자 소리는 뭔가?’라는 궁금증과 갈증이 생겼어요. 이춘희 선생님은 발성을 매우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남몰래 실용음악 학원에서 보이스 트레이닝을 따로 받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선망했던 김광석, 일본 록 그룹 미스터 칠드런의 사쿠라이 가즈토시 등 보컬리스트들을 다시 찾아봤는데 다들 얼굴 근육을 정말 현란하게 사용하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른 안면 골격 구조를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 소리를 내는 방법도 다 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광대뼈도 별로 크지 않은 제 경우에는 얼굴 근육을 많이 써야 하고, 거기에다가 소리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움직이면 소리가 더 잘 나오더라고요.” 이처럼 여러 결의 소리가 안과 밖에서 충돌하는 와중에 그는 현대무용가 안은미를 만났다. “2007년 초연을 선보이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해외 공연을 한 안은미컴퍼니의 <프린세스 바리> 작품에서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호한 주인공 바리 역할을 맡았어요. 아들이 귀해 딸을 등한시했던 원작의 시대 배경이 지금과 너무 다르기에, 바리를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생명체로 설정하셨대요. 이 작품을 위한 노래방 오디션 때 안은미 선생님은 제가 민해경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걸 보고 바로 제 재능을 알아보셨지만, 제가 선생님의 말귀를 알아듣는 데는 7년이 걸렸어요. 전통이라는 틀과 제 안에 감추어진 진정한 제 모습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저를 보고 선생님은 자꾸 저를 찔러보셨어요. ‘너는 무대에서 마돈나, 민해경이 되고 싶잖아. 그걸 왜 감추니?’”

2009년 안락했던 이춘희 명창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기성복 같은 기존의 전통민요 공연과 다른 본인만의 맞춤형 공연을 기획했다. 안은미가 연출을 맡은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시리즈 1부 ‘잡(雜)’(2013), 2부 ‘쾌(快)’(2014)에서 이희문은 드래그에 가까운 분장은 물론 미러볼, 사이키델릭, 기상천외한 의상과 메이크업을 민요의 얼굴과 몸에 덧입혔다. “특히 ‘쾌’를 제작하면서 밴드 씽씽(SsingSsing)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이 답답한 세상을 우리가 유쾌, 상쾌, 통쾌하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고, 돌이켜보니 과거엔 ‘굿’이 그러한 역할이었어요. 예전 농경사회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데 무당이 제사장 역할을 맡았고, 거기에 음악, 춤, 놀이가 필요했어요. 페스티벌이었던 거예요. 무당은 오락부장이었던 거고요. 한국적인 놀음을 세련되게 풀어내기 위해 요즈음 사람들 귀에 익숙한 사운드와 화려하고 지루할 틈 없는 색채, 움직임 등을 도입했죠.” 그 이후 2015년 결성된 씽씽은 3명(남성 2명, 여성 1명)의 보컬이 모두 드래그(혹은 글램 록) 같은 분장을 도입한 비주얼이 특징이다. 이 밴드는 민요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클럽에 가야 하는 획기적인 새 판을 짰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의 유명한 <작은 책상 콘서트(Tiny Desk Concerts)>에도 아시아 뮤지션 최초로 초대됐다. 해당 영상은 현재 230만 뷰를 돌파했고, 귀국 후 공연에서 관객은 ‘민요 떼창’으로 화답했다. “민요 가사를 다 아는 거예요. 무서울 정도였어요. 아쉽지만 올해 12월 미국 투어를 끝으로 씽씽은 활동을 잠정적으로 마무리합니다.” 경기민요와 젠더에 대한 고민은 사실 그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 서울, 경기에서 활성화된 ‘깊은사랑(舍廊)’ 문화가 있어요. 남자들이 농한기에 노는 땅에 구덩이를 파서 움막을 치고 그 안에 둘러앉아 남자 소리꾼을 초대해 원 없이 듣고 싶던 소리를 들었대요. 사랑방 개념을 따서 그 공간을 ‘깊은사랑(舍廊)’이라고 불렀어요. 이를 본따 2016년부터 ‘깊은사랑(舍廊)’ 시리즈 3부작을 시작했어요. 1부는 제가 어떻게 소리꾼이 되었는지, 2부 ‘사계축’은 남자 소리꾼의 소리, 3부 ‘민요삼천리’는 여자 소리꾼의 소리를 다뤄요. 연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남자 소리꾼의 소리 발자취를 좇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발견한 진정한 소리 예술의 정신을 되새기며 좀 더 제 소리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어요. 반대로 3부에서는 제가 어머니 분장을 하고 근대화를 거치며 정립된 여성의 소리에 집중했죠. 치마저고리를 입고 노래하고 춤추려니까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 실감이 되더라고요.” 그의 프로젝트 중에는 다소 반성조의 ‘한국 남자’(2016)도 있다. “2016년 여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4인조 남성 재즈 밴드 ‘프렐류드’를 만났어요. 거기에 이희문컴퍼니의 남자 프로젝트 그룹 ‘놈놈’까지 합세했죠. 재즈의 즉흥성과 민요의 전통을 잘 마찰시켜서 경기 재즈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민요 가사를 찬찬히 보면 여성의 애환을 다룬 내용이 많아서 한국 남자들이 그간 여성들의 노고를 치하해드리자는 차원에서 이름 지었어요.” 올해는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기획, 이태원 편곡,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협력으로 경기십이잡가 뮤직비디오 <설렘, 소춘향가 2018>도 선보였다.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뮤직비디오도 계속 만들고 싶죠. 앞으로는 제 공연에 연기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싶어요. 판소리는 텍스트 자체가 서사 구조이지만, 경기민요는 함축적인 언어로 된 시를 바탕으로 이뤄져서 무대 위에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게 어색해요. 그런데 ‘민요삼천리’ 때 어머니 흉내를 냈던 경험을 바탕 삼아, 나만의 스타일의 연기와 소리를 하고 싶어요. 향후 10년 안에 꼭 경기 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겠다는 꿈도 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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