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장르, 드래그

드래그는 이제 음악과 무대 공연을 넘어서 미술을 포함한 문화예술 전반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남이사.” 누가 무얼 입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참견일까? 도발적 비주얼은 이런 메시지도 전달한다. “맘껏 봐.” 본인의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성(性)과는 다른 성을 표현하는 메이크업, 의상, 말투, 행동 등을 차용하는 행위인 ‘드래그(Drag)’는 이 두 표현을 아우르며 문제적 지점을 발생시킨다. 얼마 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이 테마를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 <DRAG: Self-portraits and Body Politics>가 열렸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신디 셔먼, 아나 멘디에타 등 익히 알려진 작가를 포함한 30여 명의 미술가 및 드래그 퍼포머를 초대해 1960년대부터 오늘까지 드래그의 역사를 조망했지만, 평면 및 비디오 작품을 위주로 한 소규모 전시였다.

하지만 이 협소함 혹은 아늑함은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 탓에 빛을 발했다. 전시 기간 중 실제 활동하고 있는 드래그 퀸이 전시 투어를 진행한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날에는 런던에서 매달 세 차례에 걸쳐 <The Shay Shay Show>를 진행하는 호스트 드래그 퀸 셰이 셰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 작은 공간에 모인 수십 명의 관객은 셰이 셰이를 에워싼 채로 그녀의 화장과 의상은 물론 미세한 눈꼬리의 움직임, 속삭이듯 내뱉는 농담, 향수 냄새 등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조명만 환하게 켜졌을 뿐 영락없이 자그마한 드래그 퍼포머 전용 게이 바 같은 분위기였다. ‘남성’, ‘여성’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젠더(Gender)’란 무엇인지 설명하며 시작된 셰이 셰이의 전시 가이드는 “드래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아래 나올 수 있는 각종 답변들을 각 출품작에 도입하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 도시의 대표적 문화예술 기관에서 젠더의 정의를 정립하는 권력을 드래그 퀸에게 전적으로 위임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 역시 셰이 셰이의 가이드 방식을 차용해 드래그 문화의 범주를 훑어보며 이번 전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위에서부터) Ulay, ‘Renais Sense (White Mask)’, 1974/2014, Giclee print, 94×74cm, Private collection, London. Hunter Reynolds, ‘Shhh (from Patina du Prey Drag Pose Series)’, 1990/2012, Digital c-print mounted on centra, 76.2×57.79cm, Photo: Michael Wakefeld, Courtesy of the artist, P.P.O.W and Hales Gallery. Ming Wong, ‘After Chinatown’, 2012, Video, Courtesy carlier | gebauer GmbH, Berlin. Luciano Castelli, ‘His Majesty the Queen’, 1973, Collage, photograph, watercolor, 90×66cm, (framed), Courtesy Christophe Gaillard, Paris. Michel Journiac, ’24 Heures dans la vie d’une femme/ Phantasmes La Maternite’, 1974, Color photograph, text, 60.8×53cm, (framed) Courtesy Christophe Gaillard, Paris.

현대적 개념의 드래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드래그 퀸의 비주얼과 퍼포먼스다. 몇 십 년 전, 아니 지금까지도 많은 지역에서 드래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성을 결점 없이 모방해야 한다는 기준을 중시하지만 이 잣대 역시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미국 출신 남성 작가 헌터 레이놀즈의 사진 작품 ‘Shhh’(1990/
2012)에서 작가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드래그 퀸 파티나 드 프레이로 분해, 1987년부터 HIV/AIDS 감염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싸워온 단체인 액트 업의 모토 ‘침묵=죽음’을 상징하듯 검지를 다소곳이 입술 위에 올려놓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액트 업의 초창기 멤버이자 HIV 감염인으로서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레이놀즈는 검정색과 핑크색 대비가 두드러진 화사한 화장과 장신구, 그리고 어깨까지 난 가슴 털과 본인의 짧은 머리카락을 대비시키며 드래그 퀸으로서 다양한 젠더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영국 출신 남성 작가 폴 킨더슬리의 ‘Wedding’(2012), ‘High Fashion’(2012), ‘Lobster’(2013) 등 유튜브 영상 시리즈는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이크업 강좌를 모방하고 있는데, 그가 시연하는 드래그 퀸 화장술은 거의 낙서에 가까운 기상천외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영상 속 킨더슬리는 결혼식, 교회, 사진 스튜디오 방문 등 상황에 따라 매우 타당한 이유를 들며 화장을 한다. 가령 ‘정액같이 하얀’ 물감으로 양 귀를 뒤덮어 결혼식 하객들의 칭찬에 귀가 빨개질 것을 대비하고, 실내 도배용 붓에 시커먼 물감을 적셔 두 눈썹을 강렬하게 이음으로써 중차대한 사진 촬영을 준비한다. 셀러브리티 룩을 따라하려는 유행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희화화하고, 모방과 차용을 기본 골조로 삼으면서도 남들과는 달라야 하는 드래그의 기본 철학을 자조한다.

드래그 킹으로 분한 여성 작가들은 표피적 남성성만으로 얼마나 큰 개인적, 사회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인다. 이스라엘 출신 여성 작가 오리트 애셔리는 마커스 피셔라는 이름의 가상의 정통파 유대교도 남성으로 분장해 남성만 참석할 수 있는 종교 의식에 잠입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사진작품 ‘Self Portrait as Marcus Fisher’(2000)에서 피셔로 분장한 작가는 단추를 풀어 헤친 흰색 셔츠 사이로 묵직한 한쪽 가슴을 끄집어내어 한 손에 받쳐 든 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그/그녀의 시선은 의아해 보이기도, 의뭉스럽기도, 애틋하기도, 심지어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회 전방위적으로 명백하게, 미묘하게 권력의 불균형을 조장하는 고착된 성 관념은 때로는 그 위에 흠집조차 내기 어렵다. 드래그는 그러한 성의 공고한 경계를 흐릴 수 있는 전략적 도구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작가 발리 엑스포트는 부모 중 그 어느 편의 성도 따르지 않고 오스트리아 담배 브랜드 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3폭 제단화처럼 나란히 설치된 흑백 사진 연작 ‘Identity Transfer 1, 2 & 3’(1968)에서 각각 작가는 미묘한 표정이나 의상 변화를 제외하고 모두 허리춤에 양손을 얹은 동일한 ‘남성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짧은 곱슬머리 가발, 스모키한 화장, 쇠사슬처럼 길게 늘인 목걸이 등으로 치장한 작가는 1과 3에서는 흰색 재킷의 지퍼를 열어 두어 가슴골이 살짝 비치고, 2에서는 컬러 재킷을 입고 지퍼를 올렸다. 보이시한 여성 혹은 마일드한 글램 록 스타일의 남성 사이에서 작가는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전형적 젠더 비주얼에 도전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설치된 미국 출신 여성 작가 마사 윌슨의 컬러 사진 3점 ‘Posturing Drag’
(1972/2008), ‘Posturing: Male Impersonator (Butch)’(1973/2008), ‘Captivating a Man’(1972/2008)은 그녀의 전형적인 초상 사진 및 텍스트 병치 연작이다. 첫 두 작품의 경우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작가는 드래그 퀸, 드래그 킹으로 분했다. 마지막 작품에서는 다분히 여성스러운 화장과 옷을 입은 채 프레임 밖 관객을 응시하는 작가의 초상 사진과 함께, 상대를 매혹시키는 성적 표현에 깔린 암묵적 권력 관계가 이성/동성애자, 남성/여성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암시하는 텍스트를 병기했다.

시스젠더 여성이 드래그 퀸의 비주얼을 덧입는 실험, 즉 여성 드래그 퀸의 퍼포먼스는 사회적 성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생물학적 성과 별개로 작용할 수 있는지, 젠더 개념이 얼마나 유동적으로 탈장착될 수 있는지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 출신 여성 작가 린 허시먼 리슨은 ‘External Transformation’(1976)에서 컬러 초상 사진 프린트 위에 물감을 덧칠하고 작품 속 여성만의 메이크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텍스트를 화면 위에 병기했다. 이 인물은 허시먼 리슨의 또 다른 자아인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로서, 작가는 이 가상의 금발머리 미혼 여성으로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생활했다. 브라이트모어만의 패션 및 화장 스타일, 걸음걸이, 몸짓, 손 글씨체 등을 개발했고 프로젝트 4년째에는 세계 각지에 네 명의 브라이트모어를 ‘재생산’해냈다. 작가는 이 가상의 인물로 아파트도 대여하고, 룸메이트도 구하고, 은행 계좌까지 열었으며, 정작 작가는 가질 수 없었던 신용카드까지 만들 수 있었다. 클리블랜드의 엄격한 정통파 유대교 집안에서 자란 작가는 히피 문화가 융성했던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고 이후 작업을 통해 종교, 관습, 문화 등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성관념을 편협하게 옭아매는지 몸소 증명해 보였다. 캐나다 출신 작가 빅토리아 신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올해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크 나이트(Park Night)’ 프로그램에서 드래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던 신은 여성 드래그 퀸으로 활동하지만,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규범의 그 어느 카테고리 안에도 포함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영문법에 따라 대명사 ‘그들(they/them)’을 사용해 자신을 지칭한다. 그들의 영상작품 ‘Tell me everything you saw, and what you think it means’(2018)에서 나체의 작가는 한껏 부풀려 굽이치는 은빛 가발, 강렬한 색조로 눈과 입술의 윤곽을 과장한 화장, 터질 듯 팽팽한 플라스틱 풍선 가슴, 가터벨트 등을 입은 채 미술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성 누드 자세인 ‘올랭피아(Olympia)’ 포즈로 누워 관객을 응시한다. 중국계 혼혈인인 그들은 드래그 퀸의 통상적 모델인 ‘서양 여성상’을 전유함으로써 드래그 문화 내에서도 소수로 취급되는 유색 인종 드래그 퍼포머의 인종 이슈도 포괄하고 있다. 이 영상에 입혀진 내레이터 사운드는 “봐, 봐, 봐(Look, look, look)”라고 지시하며 관객이 작가의 신체 부위 중 어디를 어떻게 훑어야 하는지 감탄조로 명령한다. 이로써 그들은 생물학적 성, 사회학적 성, 인종의 관점에서 응시의 주체 및 객체, 능동 및 수동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해체시키고 재조합한다.

다시 셰이 셰이가 전시장에 등장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묵직한 통굽 하이힐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관객의 이목이 쏠리자 그는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만 좀 쳐다봐!” 관객 중 누군가는 당황하기도, 누군가는 겸연쩍게 웃기도, 누군가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환영의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신의 아랫도리가 성을 결정짓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는 순간, 당신은 드래그를 통해 벌어지는 젠더, 응시, 권력의 한판 게임을 제대로 웃고 감탄하며 즐길 준비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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