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페미니즘

리베카 솔닛은 말했다. “요컨대 그들은 세상이 변한 게 불만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세상이 이미 변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열린 리베카 솔닛의 강연회는 이 말을 실감하게 해주는 자리였다.

리베카 솔닛이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강연회에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들은 솔닛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바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것이었다. 울프가 그러했듯이, 여성 안에서 여성을 작아지게 만드는 ‘가정의 천사’를 죽이라는 것이다. 어떤 여성이든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가정의 천사’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데, 그 천사의 소리를 듣지 않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이번에 출간된 레베카 솔닛의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의 첫 장을 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4박 5일간의 방문 기간 동안 한국의 독자, 특히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뜨거운 환영을 받은 솔닛은 어떤 질문에나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답했다. <걷기의 인문학>을 재출간하며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지난 몇 년간 민주주의라는 경험을 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라는 말을 전해오기도 했다.

흥미로운 일은 솔닛이 떠난 뒤에 일어났다. 한 일간지에 ‘그녀는 자꾸 같은 질문만 받았다’는 제목으로, 솔닛을 페미니즘 대모로 여기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불편함을 표시하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예상했겠지만, 남자 기자가 썼다. “강연장에 모인 젊은 여성들보다 내가 더 리베카 솔닛에 대해 잘 알고 있다”로 요약될 수 있는 그의 기사는 솔닛이 저 먼 나라 한국에도 당연히 유효한 언론의 ‘맨스플레인’ 사례로 집어넣는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솔닛의 강연을 다 듣고도 “텀블러가 더 인상에 남았다”고 쓴 이 기사를 보다 보면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진다. 도대체 그래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란 말인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리베카 솔닛을 너무 사랑해서? 솔닛이 사랑받는 게 부럽다면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바란다. 당연히 그에 앞서 글부터 잘 써야만 하겠지만. 참고로 솔닛은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려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솔닛이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를 가볍고 쉬운 글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고, 그 덕에 솔닛의 유명한 ‘맨스플레인’ 에세이만 읽었거나 책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솔닛이 쉬운 글을 쓴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솔닛을 읽어나가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솔닛은 여성이라서 받게 된 수많은 편견 섞인 질문에 대해 토로한다. 솔닛이 신간을 낸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출산 계획은 없나요?” 오타가 아니다. ‘출간’이 아니라 ‘출산’이다. 이건 나의 경험과도 흡사하다. 지난해 첫 에세이집을 낸 뒤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말하자 “거기에 결혼은 없나요?”라는 질문이 따라온 것이다.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몸을 훑는 카메라를 향해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이렇게 하나요?”라고 물어봤던 배우 케이트 블란쳇처럼, 나 역시 반문하고 싶다. 남자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느냐고. 이 에세이는 이런 헛웃음이 나오는 경험에서 시작해 여성에게만 던져지는 ‘같은 질문’의 의미, 출산과 육아, 여성의 일에 대해서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이에 대한 통찰은 바로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침묵과, 그 침묵의 폭력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둠 속의 희망>은 책이 쓰여진 미국 부시 정권 초기의 미국 내 다양한 진보 세력의 활동을 짚어간 책이다. 솔닛은 이번 방한의 서두부터 트럼프 시대의 악몽에 대해 말하며 “미국인으로서 외국에 나와 있는 게 이상한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한시적으로 <어둠 속의 희망> 전자책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만큼 극우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이 시대에 새롭게 읽힐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다시 한 번 <걷기의 인문학>의 ‘축제, 행진, 혁명’의 개념과 이어진다. 솔닛은 이런 식으로 자신 안의 이야기들을, 여성을 포함한 약자와 비주류들을 세대와 공간을 넘어 연결 짓는다. 이 책들은 ‘걷기와 저항’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어짐을 감지하고 따라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가며 별과 같은 문장에 감탄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때로 길이 험해 걷기 어렵고 종종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통찰을 곱씹으며 마저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솔닛이 책과 책 사이까지 이어서 수놓아둔 믿기지 않도록 아름다운 별자리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은 <걷기의 인문학> 속 아름다운 한 문장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 노동이라고 할까.”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질지, 혹은 이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의 강연에서 리베카 솔닛은 반복해서 말했다.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직 모른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아직 미래가 쓰이지 않았다는 것,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죠. 이것이 결국에는 우리가 미래를 쓰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미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그 미래를 쓰는 과정에 있다는 것뿐이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빛을 향해 걸어갈 때에만 이 어둠을 벗어난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다. 이를 떠올리며 솔닛이 한국의 젊은 여성을 향해 남긴 말을 되새기면 울컥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강하고 우리는 이긴다.” 이 문장은 이미 그러하다기보다는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이며,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여전히 희망인 미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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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 이나(칼럼니스트)
사진창비 제공 ⓒJim Herr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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