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디자인에 대한 의문

2월 9일, 마침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한다. 오직 기록과 순위, 그리고 메달 색깔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는 치열한 스포츠의 세계를 비집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메달 디자인 이대로 좋은가?

개기일식이나 대선처럼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4년에 한 번씩(그사이 하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그리고 기타 국제 스포츠 행사가 즐비하지만) 돌아오는 이 행사가 시작되면 전 국민이 하나같이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순수한 스포츠 정신의 일념 아래 귤 까 먹고 둥글레차 마시며 애국심에 불타는 우리 대한건아들의 화이팅을 목격한다. 이번엔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피겨스케이팅 여왕 김연아의 은메달 게이트, 스피드스케이팅 전사 이상화의 전설 같은 신기록,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적의 계주, 소치 올림픽은 아니었지만 할리우드 액션의 아폴로 앤턴 오노 등 새벽에 일어나서 본 감동적인 장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때가 다시 왔다. 그사이 대통령도 탄핵되고, 글로벌 경제는 점점 삼천포로 빠지고, 북한과 미국은 저러고 있고…. 생각해보니 말 많고 탈도 많았던 소치 올림픽이기도 했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를 벌써 잊었는가? 다행히 이번 올림픽은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시청할 필요는 없지만 사그라든 우리의 애국심과 담합을 다시금 일깨우기에 더 없이 좋은 때인 듯하다. 거기에 북한의 평창 공세 실랑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 미지수지만 개막식 때 북한과 공동 입장할지 기대해볼 만하다. 그럼에도 올림픽을 향한 끌림이 살짝 약해졌다는 느낌은 왜일까? 태양이 힘차게 소리치자고 해도 88 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 때처럼 ‘으으’의 맛은 없고 오히려 저자세인 듯하다. 힘들게 삼수하여 개최지로 합격한 평창이기도 했고 수많은 의혹들 때문일까?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지만. 시작부터 그리고 그사이에도 거듭 말이 많았던 평창 올림픽 개막일 2월 9일까지 으레 해온 올림픽 얘깃거리보다 식견을 달리 가져보거나 생각지 못했던 것에 집중해보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도 거창하지 않게 작지만 큰 역할을 하는 메달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선수들은 왜 메달을 입안에 넣을까? 설마 순금으로 생각해 확인차 깨무는 걸까? 아님 ‘블링블링’의 상징으로 ‘내가 1등 먹었어’를 보여주려는 걸까? 언제부터 시작된 ‘의식’인지 모르겠지만 올림픽 메달은 금이든 은이든 동이든 모두 도금이다. 생각해봐라. 최근 금 시세를 봤을 때 순금으로 메달을 수여한다면 그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주최국이 어디 있을까? 가장 최근 리오 올림픽 금메달의 경우 금 함유량이 1.34%였다. 나머지는 순은이었다. 은 시세도 만만치 않지만 차라리 나라에서 주는 보상금에 무게를 두는 게 현명하겠다. 입에 무는 건 아마 사진 찍기 좋은 포즈라서 그런 것 같다.

직사각형 형태를 띤 1900년 파리 하계올림픽 메달은 형태는 가장 독특했지만 그 안의 도안은 그리스 승리의 여신과 영웅상(후면)이 새겨져 있다. 재미난 사실이다. 개최국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역대 여름 올림픽 메달 디자인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모티프를 형상화하고 있다. 뻔한 설정의 장면이 거듭되어왔다는 것이다.

1900년 파리 하계올림픽 메달은 직사각형으로 디자인되었다. 꽤 오랜 세월 그리스 승리의 여신은 메달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메달은 왜 원형일까? 단말기 인공지능에도 물어보고, 지식인에도 검색해봤지만 뚜렷한 답은 구하지 못했다. 동전처럼 주조하기 쉬워서 아닐까? 지금껏 개최된 올림픽(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중 동그란 형태가 아닌 경우는 1900년 파리, 1972년 삿포로 그리고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 정도이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메달도 있긴 하지만 도대체 무슨 형태인지 모르겠다. 직사각형 형태를 띤 1900년 파리 하계올림픽 메달은 형태는 가장 독특했지만 그 안의 도안은 그리스 승리의 여신과 영웅상(후면)이 새겨져 있다. 재미난 사실이다. 개최국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역대 여름 올림픽 메달 디자인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모티프를 형상화하고 있다. 나이키, 제우스, 좀 전에 언급한 승리의 여신, 영웅상, 아크로폴리스 등 뻔한 설정의 장면이 거듭되어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1921년에 IOC에서 메달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카시올리(Giuseppe Cassioli)의 도안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8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줄곧 사용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약간의 변형도 있었다. 승마가 더 부각된 1958년 스톡홀름 올림픽, 1960년 로마 올림픽의 메달은 목에 거는 스트랩이 월계관 패턴이었다. 1972년 독일(당시 서독) 뮌헨 올림픽 때부터 후면 디자인이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리디자인 된다. 월계관을 들고 원형 경기장 ‘위’에 있던 나이키 여신이 이번에는 직접 원형 경기장에 들어서서 ‘재림’하고 있다.

겨울 올림픽 메달 디자인은 좀 다르다. 물론,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것은 IOC의 검열을 거쳐야 하지만, 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인에 대한 제약이 그나마 덜한 모양이다. 1928년 샤모니에서 첫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때부터 하계올림픽과 달라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왔다. 그리스 승리의 여신은 (특이하게도) 메달 정면에 있으면 안 되고, 올림픽 정식 명칭, 엠블럼, 개최국 그리고 경기 종목이 명시되어야 한다는 것 외에 제약이 없다. 그 결과 독특한 도안이 4년에 한 번씩 선보이기 시작했고, 금, 은, 동은 순위에 불과한 명칭으로 재료도 독특하게 사용되어왔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장인에 의해 손수 제작된 유리 메달을 볼 수 있었고, 바로 다음 올림픽인 1994년 스웨덴 릴레함메르에서는 화강암이 주재료로 사용되었으며 바로 다음인 1998년 나가노에서는 일본 전통 옻칠이 메달을 장식했다. 참고로 1992년까지 여름, 겨울 올림픽을 같은 해에 개최하다가 1994년부터 분리 개최해 두 올림픽 사이 2년 터울이 생겼다.(분리 개최가 곧 IOC에 돌아가는 수익과 관련 있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그건 다른 글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 이후의 메달 디자인은 개최국의 문화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모티프로 고대 그리스 신화의 그것들을 대신해왔다. 역대 올림픽 메달 중 크기가 제일 컸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메달은 가운데가 뚫려 있어 소위 도넛 혹은 CD 메달로 더 알려졌다. 메달 구멍에 스트랩을 끼우고 매듭을 지어서 선수들의 목에 걸어주었다.(오글거리지만, 가운데가 뚫린 이유는 선수의 열정과 다짐으로 채우기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2014년 소치 올림픽 메달은 금속과 합성수지로 제작되었다. 바로 전년도인 2013년 2월 15일 한 운석이 지구 대기층과 충돌하여 공중 폭발하면서 대낮에 러시아 우랄산맥 동쪽 첼랴빈스크에 섬광과 굉음을 동반한 운석우(隕石雨)가 떨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부상자와 건물 파손이 많았다. 이때 채취한 운석 광물을 2014년 2월 15일(정확히 1년 후) 소치 올림픽에서 수여된 금메달에 집어 넣음으로써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 광물 메달이 주어진 셈이 됐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메달은 역대 올림픽 메달 가운데 크기가 가장 컸다. 스트랩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 대신에 메달 구멍에 스트랩을 끼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장인이 수공예로 제작한 유리 메달이 사용되었다.

2013년 2월 15일 한 운석이 지구 대기층과 충돌하여 폭발하면서 러시아에 운석우가 떨어졌다. 2014 소치 ₩ 그때 채취한 운석 광물로 메달을 만들었다.

마침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에 다다랐다. 제품 디자이너 이석우의 작품으로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인 중에서 원형의 형태 그리고 재료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메달보다 더 무덤덤한 디자인이다. 밴쿠버 메달 각각은 커다란 이미지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니 하나가 전체를 이룬다는 나름의 독특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의 정식 메달 디자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현존하는 가장 완성도 높은 음성 체계인 한글을 모티프로 하여, 자음이 길게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역동적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형상을 제안하는 컨셉트.” 메달 측면에 ‘평창 올림픽’의 초성을 따와서 ‘ㅍㅊㅇㄹㅍ’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측면에 상세정보를 넣은 셈이다. 정면은 사선들로 이루어져 오히려 뒷면으로 생각될 정도로 심플하다. 스트랩은 전통 한복 소재인 갑사를 이용해 하늘거린다. 메달 케이스는 원목으로 제작되어 한국 전통 건축의 지붕인 처마의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렇다. 전 세계가 모이고 집중하는 이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현재를 고작 전통 민속으로 함축했다. 또 다시 한글, 한옥, 한복이다. 뛰어난 조리법과 완벽한 건강 음식인 김치를 왜 배제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울부짖었던 한류니 K팝은 어디 가고? 온 국민이 담합하여 국민을 우롱하던 대통령에 대항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모았던 재작년의 평화 시위, 그게 바로 ‘하나된 열정’ 아니고서 무엇인지. 거기서 꺼지지 않았던 촛불(올림픽 성화 봉송과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듯), 몇 백만이 모인 평화 시위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재를 상징하기에 한글이나 한복보다 더 적절하지 않았겠는가.

바야흐로 이번 평창 올림픽 메달 디자인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여전히 한국 전통부터 내세우는 고위급 관료주의의 진부한 사고에 사로잡힌 디자인처럼 우리도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올림픽에 발목 잡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 효과, 관광특수 같은 허황된 꿈, 순수한 스포츠 정신으로 전 세계가 화합된다는 착각, 이런 국제 행사를 늘 따라다니는 비리 의혹과 개최지 후유증의 현실, 엄청난 개런티 수익 없이는 올림픽 같은 행사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우리는 4년 후에도 여전히 옹기종기 모여 순수한 스포츠 정신의 일념 아래 귤 까 먹고 둥글레차 마시며 애국심에 불타는 우리 대한건아들의 화이팅을 목격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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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경식(디자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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