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배우 이재인

영화 <사바하>에서 이재인은 이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캐릭터 ‘그것’과 ‘금화’를 연기했다. 묘한 눈빛과 목소리로 명확한 이야기를 하는 배우, 이재인이 들려준 영화 <사바하> 그리고 이재인에 대한 해석.

STRANGE THINGS

후디는 Mahagrid,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장식된 이어커프, 실버 이어커프는 모두 Portrait Report.

웃지 않을 때와 웃을 때의 온도 차가 극명하다.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 <사바하>에서는 미스터리한 역할이었고 다른 작품에서도 날카로운 연기를 많이 했는데 원래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사진 촬영할 때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쑥스러워하고 장난치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바로 표정이나 눈빛이 매서워졌다.

확실히 나는 배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웃음) 사진 찍을 때마다 자꾸 스스로 ‘아, 지금 좀 어색한가?’라고 되묻게 되더라.

연기할 때는 확신을 가지고 하는 편인가?

연기가 재미있고 내가 즐기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확신은 아직 없다. 지금은 부족한 부분이 자꾸 보이지만 언젠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 그때까지 배우를 계속 하는 게 목표다.

 

러플 드레스는 Minju Kim, 데님 팬츠는 Bouton Boutique.

영화 <사바하>가 굉장히 화제다. 아무래도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호불호가 갈리고 여러 해석이 난무하는데, 이재인의 연기에 대해서만은 호평 일색이다.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칭찬을 정말 많이 해주셔서 당연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고 책임감도 강해지는 느낌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사바하>에서 ‘금화’와 ‘그것’이라는, 쌍둥이 자매를 연기했다. 처음에는 1인 2역이 확정이 아니었는데 본인이 자청했다고?

처음에는 ‘금화’ 역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쌍둥이의 교류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려면 1인 2역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인물을 모두 연기하면 금화와 ‘그것’이 느끼는 감정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두 인물의 상호작용을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영화 초반의 내레이션이 무척 강렬하다. 장재현 감독 역시 캐스팅의 첫 번째 이유로 목소리를 꼽았다.

오디션에서도 그런 읊조리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 낭송과 쌍둥이자리 설화를 준비했었다. 쌍둥이의 감정이 어떤 것일까,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리스 신화의 쌍둥이자리를 모티프로 짧은 독백을 썼는데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재인 배우가 금화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다. 단독 CV가 시급함”이라고 트위트했더라.

사실 금화가 가진 ‘그것’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증오하면서도 혈육 간의 본능적인 애정이나 미안함이 남아 있는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나이 특유의 혼란도 있었을 테고, 종교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니까 분명 여러 번 기도를 했을 텐데 응답해주지 않는 신에 대한 원망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덩어리진 감정들을 대사가 아니라 눈빛이나 세세한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다.

캐릭터 설정을 위해 장재현 감독과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독특한 캐릭터다 보니까 감독님이 설정하신 부분과 내가 생각하는 인물의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을 꼼꼼히 했다. 특히 감독님이 금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까칠한 고양이 같은 상태일 것 같다면서 카카오톡 ‘네오’ 이모티콘을 보여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웃음)

‘그것’은 어떻게 해석했나?

감독의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절대자이자 신인데. ‘그것’은 아직도 좀 어렵다. 결국엔 신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절대자라기 보단 ‘울어주는 자’의 느낌에 가까웠다. ‘나한(박정민)’을 기다리는,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존재, 바꿔 말하면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의미 없는 삶을 가진 자. 그런 공허함이나 서글픔 같은 감정을 울음소리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것’을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하고 눈썹까지 밀었다.

애초에 오디션을 볼 때부터 삭발이 가능한지 물어보셔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촬영 현장에서 신 들어가기 직전에 직접 머리를 밀었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기왕 하는 거 내 손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삭발은 정말 괜찮았는데 사실 눈썹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다.(웃음)

이정재, 박정민, 진선규 배우 등과 함께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다른 선배님들과는 부딪히는 신이 없었지만 박정민 선배님과는 많이 만났다.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순식간에 나한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나 역시 그런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서 더욱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고 말이다. 내가 유독 힘들어했던 신에서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어떤 장면인가?

금화가 나한에게 ‘그것’의 존재를 말하는 신이었다. 지금까지 금화가 묵혀두고 담아두기만 했던 감정들이 겉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확 변한 것처럼 보여지면 안 될 것 같았고 어떤 진심이 필요했다.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을 때 박정민 선배님께서 “네가 금화라고 생각하고 금화의 감정을 느끼면 저절로 슬퍼질 수 있을 거야.”라고 조언해주셨는데 그 말이 참 와닿았다.

 

 

오버사이즈 재킷은 Ordinary People, 로고 티셔츠는 Calvin Klein Jeans, 데님 팬츠는 Bouton Boutique, 가죽 벨트는 Cos, 스니커즈는 Converse.

초등학교 6학년 때 전작 <어른 도감>을 촬영하면서 김인선 감독에게 “아역이나 누구의 딸 역할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고 들었다. 하고 싶은 역할과 하고 싶지 않은 역할이 분명한 편인가?

물론 심하게 폭력적인 연기나 계속 비슷한 인물을 반복하는 건 지양하고 싶지만, 어떤 특정한 역할이 싫다고 몸을 사리는 편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뭐든 새로운 경험이고 캐릭터마다의 감정이 모두 다르니까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역 연기와 성인의 연기가 구분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나이 때 모습을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극중에서는 놀랄 만큼 의연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인스타그램을 보면 영락없는 열여섯 살 중학생의 모습이더라. ‘엽사’ 찍는 걸 즐기고 동생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동생은 나와 세 살 차이인데 슬슬 질풍노도의 시기가 오는 것 같다. 요즘 나와 잘 안 놀아준다.(웃음)

열여섯 살이면 사춘기는 지난 건가?

나는 좀 지난 것 같다. 제일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보다 중학교 1학년 때가 진짜 사춘기였다. 딱 <사바하> 촬영하고 있을 무렵이라 금화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인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가?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린다. 이건 내 자화상 같은 거다. (아이폰 사진첩에서 찾아 보여준 그림엔 교복이나 후드 티에 편한 바지를 입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와우’ 껌, 6학년 국어 교과서 같은 것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수첩 꾸미는 게 취미다. 대본 쓰는 것도 좋아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놨다가 글을 쓰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대본을 보여준 적도 있나?

장재현 감독님께 중학교 1학년 때 쓴 대본을 보여드렸던 적이 있다. 평범한 학교 이야기였는데 지금 보면 ‘아이고, 왜 저렇게 썼을까’ 싶은 흑역사다. 감독님이 “정말 그건 명작이었지!” 하시면서 지금까지 놀리신다.(웃음)

얼마 전에 영화 <중경삼림>을 봤다고 들었다. 25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옛날 영화도 좋아하나?

<중경삼림>은 정말 멋있었다. 왕조위와 왕페이가 나오는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나 시기의 영화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끌리는 영화를 본다. 요즘엔 나이 때문인지 하이틴 로맨스가 좋은데, 넷플릭스 영화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재미있게 봤다. 뭐든지 계속 보고 계속 읽다 보면 이해가 되니까 반복적으로 하는 편인데, 영화가 특히 그렇다. <물랑루즈>는 동생이 대사까지 다 외울 지경이니까 그만 보라고 할 때까지 봤고 <암살>이나 <마이 걸>도 정말 여러 번 봤다.

<사바하>도 다시 볼 건가? 이제까지 몇 번이나 봤나?

세 번 봤는데 앞으로 더 볼 예정이다. 친구들이 같이 보면 좋겠다고 하기도 하고 그냥 내가 더 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특히 엔딩이 좋다.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고 담담하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게, 볼 때마다 더 슬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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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권 민지
사진 곽 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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