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씹는 계절

달력을 보니 이제 방어가 겨울을 대비해서 부푼 뱃살을 두드리며 제주 남쪽에 나올 때다. 잇몸이, 혀보다 먼저 일어나 방어를 반긴다. 아아, 방어란 놈.

왜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어떤 미지의 장소에서 얻은 뜻밖의 감동 같은 것들. 여행에서 우리는 종종 그 현장에 있게 된다. 한때 전국을 떠돌았을 때는 시장의 허름한 밥집과 대폿집들이 그런 곳이었다. 아직 명태가 잡히던 1985년도 강원도 북부 거진항의 겨울도 기억난다. ‘일억조 다방’(그냥 조 단위로는 시시해서 일억조다)이라는, 늙은 레지가 있는 다방에서, 함경도 말씨를 쓰는 어떤 선주(船主) 아저씨가 추위와 배고픔에 벌벌 떨던 내게 쌍화차와 사발면을 사주셨다. 쌍화차란 걸 먹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고, 사발면(육개장 사발면의 출시 초기였다)은 맵고 달았다. 일억조 다방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겨울, 규슈 서쪽의 항구도시에 갔다. 나가사키는 확실히 한국보다 따뜻하다. 옛 정서대로라면 남국(南國)이 맞다. 눈이 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했다. 그래도 겨울엔 바닷바람이 찼다. 짬뽕도 먹고 시시한 차이나타운도 걸었다. 동행인과 시내를 벗어나 마냥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동네에 들어섰다. 원래는 제법 많은 인구가 살았을, 낡은 주택들이 언덕을 가득 메운 동네였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지방 소도시의 운명이 그렇듯, 나가사키의 외곽 동네는 죽어가고 있었다. 간혹 지팡이를 짚고 가거나 보조기를 밀고 가는 노인들만 보였다. 아하, 모두 떠나버리고 노인들이 지키고 있는 최후구나.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그런 휑한 바람이 골목 어귀에 몰아쳤다. 동네를 슬슬 돌았다. 일본 어디든 가게가 많게 마련인데, 잘 보이지 않았다. 고작 미용실과 이발소, 도시락가게가 전부였다. 아니, 우리가 이 초밥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붉은 외출복을 아주 잘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앉아 초밥을 먹고 있었다. 언제 돌아가셔도 ‘호상’ 소리를 들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이타마에(板前)였다. 이타마에란, 숙련된 요리사란 뜻이니 그에게 이런 말을 붙이는 건 외람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숙련이라니, 그는 적어도 60년은 초밥을 쥐었다고 했다. 10대 후반에 시작한 일이고, 80이 넘었다고 하니. 할머니는 홀에서 시중을 들고, 그는 초밥을 쥐었다. 그래도, 노인들이 연금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이렇게 몇 명이라도 들를 테지. 나는 ‘망해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 최후의 초밥집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흰머리의 이타마에 씨에게 우리는 주문할 초밥을 골라야 했으나,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간이 진열 냉장고에는 오직 두어 가지 생선의 살만 보였으니까.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를, 어쩌면 아무도 안 올 수 있는 동네의 초밥집에서 늘 싱싱한 생선 열두어 가지를 마련해두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의 냉장고에는 오징어와 방어만 보였다. 그렇다. 방어. 부리, 라고 이타마에 씨가 말했다. 부리는 방어의 일본어 이름이다. 그는 새벽장에서 오직 방어 한 마리, 아니 반 마리(가능하다면)를 사 왔으리라. 초밥 생선을 숙성해서 먹는 이들 관습에 따라 한 마리를 사면 손님이 적더라도 삼사일 이상은 너끈히 두고 팔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초밥 세트’를 주문했다. 밥알 덩이(샤리)를 크게 크게 잡아서 배가 부르도록 마음을 썼다. 그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물 흐르듯이 유연한 솜씨로 초밥을 쥐었다. 그의 동작은 느려 보였으나 금세 초밥이 만들어졌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느릿하게, 힘 쓸 곳을 최소화하는 노장의 비법이려나. 초밥을 올려내는 도마가 꽉 차도록 커다란 방어 살점을 얹은 초밥이 가득해졌다. 방어는 보통 5킬로그램, 크게는 10킬로그램이 넘는 걸 대우해준다. 그가 얹어낸 방어 살점으로 가늠해보니, 대방어라고 부를 만한 큰 놈이었다. 방어와 참치는 클수록 대우받는다. 배 아래쪽의 기름기 있는 살점이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방어 뱃살은 몰라도 참치 대뱃살은 들어봤으리라. 방어도 참치처럼 대양을 회유하면서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배에 기름을 저장한다. 그것이 우리 입에 들어오면 살살 녹는 지방층을 가진 뱃살 횟감이 되는 것이다. 그는 대뱃살, 그 아래쪽의 중뱃살, 등살 등을 고루 섞어서 초밥을 만들어주었다. 한 몸에서 났으나 그 맛과 감촉이 제각기인 초밥들로 행복해졌다. 아아, 그 집이 아직 있으려나. 노인이 초밥 쥘 힘이 없어지고, 문을 닫았을 것 같다. 아니, 그가 아직 지구상에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 세월이 흘렀다.

방어 철이 되면, 몸이 다는 사람들이 있다. 10월 말이면 이미 방어잡이가 시작된다. 제주 일대를 비롯한 남쪽에서 활발해진다. 바쁘게 출어가 이루어지고, 겨울까지 이어진다. 11월 초에는 대방어, 말하자면 8킬로그램을 넘는 멋진 방어를 노리는 배가 나간다. 흥분과 기대가 방어잡이 전진 기지라 할 모슬포항을 가득 메운다. 이 항구의 식당들이 방어를 먹으러 온 관광객으로 가득 메워지는 시즌이 된다.

방어는 거대한 포탄처럼 생겼다. 붉은살 생선이라도 다 모양이 다르다. 참치와 가다랑어가 단거리를 아주 잘 달리는 근육질의 스프린터 같다면, 방어는 조금 느긋하게 생겼다.

방어 살점은 굳이 뱃살이 아니어도 좋다. 두툼하고 붉은 등살도 좋다. 그것이 입안 가득 들어와서 싸한 금속성 기운을 입으로 퍼뜨리는 맛에 빠져든다. 그리고 우리는 씹는다. 쑥쑥, 이가 들어가며 방어 살이 해체되기 시작한다. 초고추장이든, 고추냉이 간장이든. 양념은 돕고, 살에서 진액에 나와 혀를 어루만진다.

그래도 방어라면 가마살을 찾는 이들이 있다. 엄밀히 말해서 가슴살이라고 할까. 방어 머리 아래쪽의 흰 지방층을 가진 두툼한 살점이다. 굵은 가시가 있어서 횟감으로 떠내기가 어려운 쪽이기도 하다. 언젠가 횟집에서 가마살을 시켰더니 30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라면 얼려둔 것이다. 가마살은 지방이 많아 얼려도 크게 품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얼리면 물이 생기고, 씹어보면 냉동고 냄새가 난다. 손님을 30분이나 기다리게 할 작정이라면 미리 냉동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살은 보통 칼집을 넣어서 낸다. 딱딱하다고 할 정도로 기름기가 차돌처럼 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씹는 품을 줄이고 식감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칼집을 넣는다. 미안한 얘기인데, 나는 간혹 이 살점이 먹고 싶으면 정호영 씨에게 연락한다. 맞다. 텔레비전 나오는 그 친구다. 그는, 아마도 이런 부탁을 받으면 가마살을 슬쩍 감추어둘 게 틀림없다. 그래도 동네 선배인데. 철에 가마살을 몇 점 씹어야 비로소 방어가 왔구나 실감이 든다. 가마살을 씹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마 사람의 잇몸에는 미각수용체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잇몸이 바르르 떨리게 씹는 맛이 좋을까. 잇몸이, 혀보다 먼저 일어나 방어를 반긴다. 단단한 살점을 씹을 때 잇몸은 혀와 경쟁하며 제 일을 한다.

방어는 거대한 포탄처럼 생겼다. 붉은살 생선이라도 다 모양이 다르다. 참치와 가다랑어가 단거리를 아주 잘 달리는 근육질의 스프린터 같다면, 방어는 조금 느긋하게 생겼다. 맨몸으로 승부를 보는 거친 육박전의 대가들(엘에이 다저스의 푸이그가 딱 그 기운이다)과 달리, 뭐랄까 청동의 기사 같다고나 할까. 실제로 방어는 아주 아름다우면서도 위엄이 있다. 녹색과 코발트색이 뒤섞인 듯한, 싱싱한 청동빛의 몸체 가운데 흘수선 같은 노란색 색 띠가 머리 쪽에서 꼬리 쪽으로 그어져 있다. 눈빛은 검고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살은 탄탄해서 손으로 눌러도 잘 들어가지 않고, 새벽 경매장의 높은 조도의 전구 밑에서 비늘을 번쩍인다. 한때, 방어를 참 많이 사서 팔았다. 한겨울 내내 방어는 인기였다. 그것을 사러 첫차를 타고 갔다. 활어 수조에 상인들이 더운 물을 부어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노량진시장 바닥에 흥건한 염수가 모두 얼어버릴 정도일 때도 있었다. 얼리지 않았다는 뜻의 선어인지 냉동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활어가 아닌 녀석들은 모두 얼어버리는 새벽 날씨는 매웠다. 수산시장에서는 방어를 방다리라고 부른다. 그것은 어린 방어를 뜻한다. 방다리가 참 많았다. 살아 있는 방어를 사면 상인이 말한다. “찍어드릴까?”

그렇다고 하면, 그는 거친 식도의 등으로 방어의 머리를 딱 한 대 내리친다. 최후의 경련 뒤에 방어는 경직되고, 상인이 재빨리 칼로 아가미 옆을 찔러 숨통을 끊어준다. 방혈을 위해서다. 피를 빼야 방어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오오, 달력을 보니 이제 방어가 겨울을 대비해서 부푼 뱃살을 두드리며 제주 남쪽에 나올 때다. 배를 몰아 방어잡이를 할 어부나, 방어 살점의 맛을 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제철이 온 것이다. 그리하여, 도하 횟집에서는 썰 때마다 칼날에 방어 살이 쩍쩍 붙는 느낌을 즐기는 요리사들이 있을 것이다. 아아, 방어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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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찬일(‘로칸다 몽로’ 셰프)
일러스트Re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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