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산책

세운상가는 본래 걷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에 이르는 낡은 상가 단지는 구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종묘와 남산을 잇는다. 50년 만에 이곳에 보행을 위한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세운상가를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 도시 산책자가 보내온 그곳에 대한 짤막한 기록.

취미란을 채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독서, 영화 감상은 내게 취미가 아니라 일이었고 운동이나 커뮤니티 활동은 질색이었다.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산책인데 사람들은 취미가 산책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봤다. 남자들은 특히 더 그랬는데, 있어 보이는 척하지 말라며 그냥 걷는 게 무슨 산책이냐고, 수작 부리지 말라는 소리가 돌아왔다. 그냥 걷는 게 산책이야. 나는 말했지만 강하게 주장하진 않았다. 서울은 산책하기 좋은 도시는 아니니까, 누구도 서울에서 산책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취미나 특기가 산책이라는 사람을 본 적 없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산책은 넓은 정원을 소유한 잉글랜드의 부르주아나 하이라인과 센트럴파크를 거느린 뉴요커, 보들레르의 후예인 파리지앵에게나 어울리는 취미 아닌가. 서울에서 걷는다고? 어디를? 양재천?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시각은 변했고 나도 친구들도 서울의 곳곳을 걷기 시작했다. 아직 다른 나라의 도시에 비하면 몰개성적이고 함부로 지어진 건물과 점포들, 산만한 길과 예의 없는 사람들이 훼방을 놓지만 어느 순간 서울 산책이 조금 재미있어졌다. 도시의 숨은 역사가 발견되고 힙스터들이 숍을 열고 시당국은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인 정책을 무자비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세련됨과 우스꽝스러움과 자본과 마이너한 정서가 뒤죽박죽된 서울이 모습을 드러냈고 사람들은 그걸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중이다.(너무 적극적이라 당혹스럽기도 하다.)

도시 산책, 길거리 떠돌기는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진 취미 활동이다. 특히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도시는 영감의 원천이다. 보들레르와 발터 벤야민 덕에 대명사가 된 플라뇌르(Flâneur), 도시 산책자부터 찰스 디킨스,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앨런 긴즈버그, 패티 스미스, 로버트 프랭크, 우디 앨런까지 모두 도시에서 길을 잃고 도시에서 길을 찾은 아이콘들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 “날이 좋은 저녁 네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집을 나설 때,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우리의 자아를 벗어둔 채 익명의 보행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화국 군대의 일부가 된다.” 나는 울프의 말에 완벽하게 동의한다. 산책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일몰 전후 두 시간이고 나는 그 시간이면 늘 어딘가를 걷는다. 그러나 이건 프리랜서의 특권이다. 직장인이었던 뉴욕의 시인 프랭크 오하라는 점심에 걷는 걸 좋아했다. 그의 시집 <점심 시간의 시들(Lunch Poems)>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산책하는 직장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프랭크 오하라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일했는데 점심만 되면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친구를 만나고 아케이드를 통과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소요하길 즐겼다.

세운상가에 대한 글에서 웬 산책 타령이냐 싶겠지만 세운상가는 본래 걷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흔히 세운상가를 전자상가나 한국의 아키하바라, 최초의 주상복합단지, 빽판과 포르노 잡지를 팔던 회고적인 장소로 기억하지만 구상 당시 김수근이 가진 무모하고 장대한 기획은 종묘에서 남산을 잇는 보행 축을 설계하겠다는 포부에서 비롯됐다. 지리에 무감한 이들은 종묘가 어딘지, 남산이 어딘지 모를뿐더러 그걸 왜 연결해? 그게 연결되는 거야? 라고 생각하겠지만(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연결이 될 뿐 아니라 세운상가 단지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에 이르는 구간을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김수근과 그 일당들의 포부가 드러난다.

나는 충무로에 있는 대학을 다녔는데 학교를 다니며 가장 놀란 사실 중 하나는 충무로에서 광화문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사실이었다. 강북의 구도심은 강남과 달리 밀도가 높아 명동 옆이 시청이고 시청 위가 광화문이고 광화문 옆이 종각이고 종각 옆이 종묘고 종묘 아래가 충무로고 충무로 옆이 명동인, 그야말로 오밀조밀 모두가 이웃사촌인 곳이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에 이르는 낡은 상가 단지는 이 구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종묘와 남산을 잇는다.

1966년 당시 설계를 맡았던 윤승중은 김수근이 김현옥 시장과 대화 중 즉석에서 공중보행데크 이야기를 꺼내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르 코르뷔지에를 차용한 공중보행데크는 차량의 이동에 간섭 받지 않는 보행을 위해 만들어졌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도 종묘에서 남산까지 걸어갈 수 있다, 아래로는 차가 다니고 머리 위에는 공중 정원이 있고 보행로에는 카페와 숍들이 있는 미래도시! 그걸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당연히 조금도 비슷하게 되지 않았다.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성공했다 한들 좋았을까. 김수근이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 역시 성공한 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청계천 공사로 끊겼던 세운상가와 청계상가의 보행로는 현재 복원된 상태다. 보행로의 3분의 1이 연결된 상태이며 서울시는 2020년까지 남산에 이르는 보행로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는 소설가 오한기 씨와 함께 종묘에서 진양상가까지 걸었다. 한기 씨는 대학생 때 진양상가에 있는 찜질방을 자주 갔었다며, 진양상가와 세운상가가 한 몸으로 구상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김수근은 왜 그런 구상을 한 거죠? 서울시는 왜 그런 구상을 한 걸까요, 한기 씨는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계문화유산 종묘와 민족의 영험한 산, 남산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감동적인가 봐요. 나는 말했고 한기 씨는 도통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에 이르는 길은 정비되지 않아 산만했고 구도심 특유의 냄새가 났다. 카페인이 필요해 카페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고 풍전호텔에 이르러서야 손님이 없는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길을 걸을수록 기분이 가라앉았고 버지니아 울프나 프랭크 오하라는커녕 장동운이나 김현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한기 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성공해도 문제 아닌가요? 벌써 임대료가 오르니, 젠트리피케이션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던데요. 그런데 김수근이 살아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요? 한기 씨가 말했다. 김수근이요?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그래서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고 복원했다던데.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고 묻자 한기 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카카오톡에서 나온 그 어떤 말도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기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상이 점점 카카오톡 메시지처럼 변해가는 것 같다고 했고 거기엔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옛 추억을 되새기며 진양상가의 찜질방을 갈까 했지만 그만뒀다. 남산까지 걷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건축가인 크리스토프 알렉산더는 그의 책 <영원의 건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시는 한 사람의 생각대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집단 구성원들의 생각대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도시는 수백만 곱하기 수백만 번의 건축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세운상가는 몇몇 사람의 무모한 기획에 의해 지어졌다. 철거될 뻔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고 다시 한 번 무모해질 기회를 얻었다. 이 무모함이 성공하려면 수백만 번의 덧칠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덧칠은 정부나 기업, 건물주의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닐 것이다. 다시 크리스토프 알렉산더의 말. “건물과 도시에 내재하는 특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활동에 의해 간접적으로 천천히 생성되는 것이다.”

프랭크 오하라의 시 ‘일하러 가는 길(Walking to work)’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길거리에
녹아들고 있어.
당신은 누구를 사랑해?
나를?
빨간불인데 그냥 건널래.

프랭크 오하라가 서울 현대미술관에서 일했다면 이런 시를 썼을까. 삼청동에서 수제비를 먹고 광화문을 지나 세운상가를 걸으며 거리에 녹아들 수 있었을까. 90년대 초반 유하가 노래한 세운상가는 음습하고 소외된 밤의 공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유하가 아니라 프랭크 오하라다. 도시를 밝게 부르는 것, 수백만 번의 덧칠로 채색된 도시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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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 지돈(소설가)
사진Choi Yong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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