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앱으로 만나도 괜찮을까?

우리는 틴더를 켜고 스와이프를 한다. 근사한 데이트를 위해서, 심심해서, 혹은 그냥 습관적으로. 쾌감은 있는데 의미는 없다. 이건 단순히 섹스가 아니라 지금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얘기다.

지극히 평범한 런던의 금요일 밤, 어느 펍.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은 한 손에는 맥주, 다른 한 손엔 휴대폰을 들고 서성이느라 바쁘다.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손에 든 휴대폰 액정엔 전처럼 인스타그램이나 메신저가 아니라 틴더 앱이 켜져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게임 중 하나는 휴대폰을 바꿔서 틴더 결정권을 친구에게 온전히 맡기는 거다. 서로의 틴더 계정을 보면서 추천된 사람들을 상대로 날것의 품평을 던지고, 일부러 끔찍한 사람들에게 ‘슈퍼 라이크’를 누르고, 장난 삼아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스와이프(왼쪽은 ‘싫어요’, 오른쪽은 ‘좋아요’, 가운데 있는 파란색 별은 ‘슈퍼 라이크’를 뜻한다.)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상대에 대한 인간적 존중이 없는 거 아니냐고? 순진한 척하지 말자. 이건 소개팅이 아니라 틴더에 관한 얘기다. 

사실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뉴욕 맨해튼의 주말 밤 풍경을 묘사한 <베니티 페어>의 ‘틴더와 데이트 종말의 시작’이란 기사를 보면 모든 싱글 뉴요커가 틴더링(Tindering, 클러빙처럼 틴더를 하는 행위 자체를 묘사하는 신조어)을 하고 있으며 하루에 몇 백 명 씩 스와이프를 했다는 무용담이나 여기서 여자친구를 찾는 건 이비자에서 아내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코멘트가 등장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만 대충 훑어도 틴더 데이트 후기가 하루에 족히 10개씩은 업데이트된다. 어디서도 절박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코미디언 빌 도스가 이렇게 요약한 ‘틴더적 애티튜드’는 그 앱을 켜는 순간 자연스럽게 탑재된다. “‘넌 저리 꺼져!’ 같은 거만함이 기본이야. 세상에서 제일 재수없는 놈이 되는 거지.” 

그래서 진짜 당신이 궁금한 건, 틴더를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틴더에서 진짜 데이트를 하는 게 가능하냐는 것일 테다. 물론 틴더가 순도 100% 섹스만을 위한 앱은 아니다. 내 주변에도 틴더에서 만나 진지한 연애를 하는 커플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칼럼을 위해 틴더를 사용해본 바, 90% 정도는 캐주얼한 섹스를 원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매칭이 되자마자 “오늘 밤 당장 만나.”(화요일이었다.) “나쁜 남자 좋아해?”(10대인가?) 같은 촌스럽기 짝이 없는 멘트부터 “네 다리가 얼마나 유연한지 궁금해.” 같은 다소 창의적이지만 역겨운 건 마찬가지인 메시지까지, 적나라한 문자들이 쏟아졌다. 평범한 대화로 시작했다 치더라도 결국은 섹스팅으로 향했다. 자연히 메시지에 답을 안 하게 됐고 매칭은 페이스북의 ‘좋아요’처럼 그저 심심풀이로 전락했다. 하지만 여기엔 승자와 패자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선택 단계에서부터 전혀 진지하지 않았고 ‘읽씹’ 당한 상대방 역시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그만이지 뭐”라는, 보통은 쿨함을 가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 문장이 이 세계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누군가는 틴더 자체의 속성을 문제 삼을지 모른다. 위치 기반의 매칭 시스템이 캐주얼한 섹스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틴더는 우리나라의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처럼 외모 점수가 3점이 넘어야 가입이 된다는 다소 까다로우며 불쾌한 조건도, ‘OK큐피드’처럼 공들여 프로필을 작성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온라인 프로필처럼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5월 페이스북이 데이팅 서비스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연신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위치, 외모, 가치관, 취향 등 타인의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 최적화된 페이스북이라면 그들이 자신하듯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쎄,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페이스북을 사용해오지 않았나. 그 속에서 허상이 아니라 진짜를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미 잘 알고 있다.  

하물며 데이팅이 목적이 아니라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그룹 이벤트를 손쉽게 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 ‘밋업(Meetup)’조차 그렇다. 일종의 동호회 활동을 장려하는 이 플랫폼엔 사진, 하이킹, 명상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그룹,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 등 수천 가지 이벤트가 넘쳐난다. 비교적 진지하고 건전하지만 순수하게 그 자체의 관계나 약속의 무게를 따져보면 여전히 가볍다. 분명 10명이 참석하겠다고 적혀 있었는데 막상 가보면 2~3명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나 역시 조금이라도 귀찮은 기분이 들 땐 가뿐히 ‘노쇼’를 선택하곤 했다. 망설임이나 변명, 사과를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안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요지는 모든 게 너무 쉽다는 거다. 고민하거나 기다리는 과정 없이 그냥 넘기면 끝. 하긴, 이미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를 보고 싶으면 넷플릭스에 로그인하고 쇼핑을 할 때는 침대에 누워 아마존을 훑는 게 일상인데, 데이트라고 뭐 다를 게 있겠나. 하지만 미국의 강연가 사이먼 시넥은 이 편리한 환경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지금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자란 세대들은 진짜 관계에 대해 잘 모릅니다. 진짜 세상에서 깊은 관계를 맺을 기회가 점점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이 우정이 허상이라는 걸 차츰 느끼고 있어요. 데이트도 마찬가지예요. ‘괜찮아’가 진짜 괜찮아서 하는 말인지, 반어법인지 전전긍긍해하며 답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다시 스와이프를 시작하면 되죠. 문제는, 자연히 진짜 세상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 또한 모른다는 거예요. 시련이 닥쳤을 때 그들은 사람에게 기대는 게 아니라 디바이스에게 기대는 식이죠.” 여기서 디바이스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틴더 정도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좋아요’ 개수로 희열을 느끼고 에고를 채우는 시대에 매력의 척도를 뜻하는 틴더의 매치는 말할 것도 없이 중독적이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지만 매칭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우울하거나 심심한 밤, 나도 모르게 틴더를 켠다. 여기엔 목표는 없고 환상만 있다. 이 두 가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목표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환상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저 건방진 표정으로 스와이프를 반복하면 된다.  글/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에디터/ 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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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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