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플랫 컬처

하이엔드와 스트리트, 고급과 저급, 메인과 서브, 흑과 백, 귀와 천, 좌와 우. 모든 것이 광야 위에서 뒤섞인다. 세상은 슈퍼플랫!

우리 의식 속에 ‘문화인=교양인’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건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 매튜 아널드가 문화를 ‘인간 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고 정의하면서부터다. 그의 사전에서 문화는 곧 교양이었고, 사고와 표현을 다듬어 ‘이성과 신의 의지가 널리 퍼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저한 엘리트주의적 관점으로 대중문화를 대중들의 현대사회에 대한 부적응의 표출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다 1970년대 초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주장으로 인간의 ‘구별 짓기’엔 더욱 그럴싸한 명분이 생겼다. 인간의 문화 소비는 소득 수준과 계층에 따라 차별화된다는 게 부르디외의 생각이었다. 이를테면 상류층은 오페라와 클래식, 발레 같은 고급의 전통문화를 선호하는 반면, 하류층은 팝이나 로큰롤 같은 대중문화를 선호한다는 것. 소비하는 문화적 취향에 따라 계층의 정체성이 규정되고, 서로 같은 코드를 공유하게 된다는 ‘구별(Distiction)’ 이론은 본격적으로 인간 문화의 방향과 위계를 나눴다.

매튜와 부르디외가 살아 있다면 서울 시내 어느 스타벅스에 모셔놓고 스마트폰을 하나씩 건네볼 생각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라면 대쪽 같던 그들도 어안이 벙벙하리라 믿는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창한 ‘슈퍼플랫(Superflat)’은 소위 비주류, 하위문화 범주에 속하던 모든 것들을 단숨에 격상시켰다. 우아한 조각과 유화만 취급하던 갤러리에는 만화책에서 보던 알록달록한 인쇄물들이 걸려 있다. 렘브란트와 모네를 매대에 부치던 소더비에선 오타쿠 캐릭터 조각을 고이 모셔 수십, 수백억원에 낙찰시킨다. 

문화 역전 현상은 패션계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목격된다. 기존에 하이엔드로 분류되던 브랜드들이 투박한 길거리의 미감을 차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아함이란 게 과연 아직도 유효한가(I don’t think elegance is relevant).”라고 말한 뎀나 바잘리아의 베트멍부터 우아한 모노그램 패턴 위에 푸투라(Futura) 서체의 로고를 올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킴 존스의 ‘루이 비통 × 수프림’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른 감성이 패션계를 잠식하고 있다. 이제 돈 많은 이들도 정교한 장인의 쿠튀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집에 계시던 할머니가 냅다 잘라버렸다는 케이블 타이를 매단 채 버질 아블로를 입는다. 대학 교수들도 빗물로 트럭 방수천을 씻어 만든 프라이탁을 애호한다. 부자답게, 교수답게? 흑백의 극단으로 양립하는 것처럼 촌스러운 게 없다. 세련된 이들은 이 색도 저 색도 아닌 ‘오프 화이트(Off-White)’를 자처한다. 산업유와 특수유 따위를 취급하는 성수동 대신상사의 옥색 파사드가 버버리의 새 로고 패턴으로 빼곡히 덮였다. 지방시에서 거처를 옮긴 리카르도 티시와 로고를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사빌의 서프라이징이자 캠페인이다. 셀린으로 이사온 에디 슬리메인은 로고 중 ‘E’의 악상(accent) 표기부터 빼버렸다. 그리곤 다원주의(!)의 아이콘 레이디 가가에게 그의 첫 셀린 백을 쥐어주었다. 패션계의 귀추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문화’를 재정의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챕터다. 

인종과 문화권,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흐트러진다. 미국 팝 신의 여왕, 래퍼 니키 미나즈가 최근 방탄소년단의 곡 ‘Idol’에 랩을 피처링했다. 곡이 울려퍼질 무대는 전 세계와 유튜브다. 넉넉한 풍채의 니키는 카리브 해의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늘씬한 소년단은 동방의 예의지국에서 왔다. 랩의 첫 구절은 이렇다. “What’s good Korea? You know I’ve been a boss for my whole career?” 코리아와 커리어가 운율을 꿰는 순간의 쾌감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무언가일 것이다. 높낮이, 정박과 엇박, 메인 키와 서브 키. 노래엔 있지만 오늘 우리에겐 없는 것들이다.   

자본 문화의 지형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평해지는 것은 인간의 존재성이다. 성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남녀 문화를 구분하는 태도는 구닥다리가 됐다. 화장하는 남자는 이제 별종이 아니다. 전 개그맨 김기수가 뷰티 크리에이터로 전향해 론칭한 제품은 홈쇼핑의 러브콜을 받았고, ‘젠더리스 뷰티채널’을 표방하는 남성 유튜버 ‘레오제이’는 뛰어난 메이크업 감각과 유머로 주목받는다. 이런 흐름을 감지한 샤넬 뷰티는 “아름다움은 성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 스타일에 관한 것”이라는 우아한 문장을 앞세워 지난 9월 1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 남성 색조 라인 ‘보이 드 샤넬(Boy de Chanel)’을 론칭했다. 드래그퀸과 트랜스젠더의 영역이 소셜 플랫폼을 통해서 활발하게 소개되고, 그들의 파란한 인생사가 성글지만 호소력 있는 스토리로 가공되어 확산된다. 그간 무조건적으로 터부시되고 사회의 밑바닥으로 치부되던 그들의 이야기가 문화의 또 다른 단면으로 소비된다. “인간은 누구나 귀하다”는 명제의 호소력이 전례 없이 강하다.

이념과 이데올로기, 미디어의 지도는 더 복잡하다. 좌우는 물론, 동서남북 사방팔방에서 자기만의 사상을 말하고, 전통적인 미디어와 기업의 권위는 명멸한다. 개인 방송이 난립하며 영향력 있는 BJ의 한마디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몰고오기도 한다. 케이블과 지상파에서도 개인 방송가들의 전유물이었던 기획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는 ASMR, 복스럽고 야무지게 먹어젖히는 먹방 등이 대표적이다. 근엄하기 그지없던 기업들의 대중을 상대로 한 소통법에도 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다. 최근 KT는 유튜버 백승헌과 손을 잡고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2’ 홍보에 나섰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백승헌 채널의 구독자는 20만 명을 웃돈다.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로 시청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따금씩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재롱잔치(?)를 선보이면, 라이브 방송 시청자들은 ‘ㅋㅋㅋ’를 연발하며 박장대소한다. 인공지능 스피커와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콩트로 꾸민 홍보 영상 속에 ‘코리아 텔레콤’의 위용이나 근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LH토지공사는 유튜버 ‘이라이라경’에게 신축 아파트 단지 홍보를 맡겼다. 영상 속 그녀는 미워할 수 없는 오두방정으로 입주를 재촉한다. 그 어떤 태도, 사상, 관념, 신조, 의식에게도 지정석은 없다. 지금, 세상은 광활한 대합실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세대의 몸집은 점점 비대해진다. 정보와 취향의 공유가 전에 없는 활기를 띨 것이다. 교육의 기회가 무한해지며 언제든 지구 이편과 저편을 가로지른다. 문화를 정의하던 모든 수식이 퇴색되고 경계와 높낮이가 사라진다. 그야말로 슈퍼플랫 컬처다. 사회학자 필립 쿠랑제옹은 ‘취향절충주의(taste eclecticism)’를 말한다. 부르디외 말대로 사람들이 누리는 문화와 취향이 소득 수준과 계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개인의 관심이나 성향에 따라 복잡한 형태로 문화 소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영화, 미술, 음악, 소설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선호는 더 이상 자본이나 계층에 구애받지 않게 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그 다음 단계는 뭔가 고민해봤다. ‘배려와 존중’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날이 총명해지는 AI와 빅테이터 알고리즘의 극성에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천천히, 그러나 속절없이 하나둘 자리를 내어주는 중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헐뜯고 미워하기엔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서로 사랑하기. 그리고 개취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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