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햄버거, 편의점 도시락

햄버거가 최고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천생 어린이 입맛의 소유자인 밴드 못의 아이언을 위해 천운영 작가는 어린 시절 생일상과도 같은 만찬을 준비했다.

이이언이 첫 솔로 앨범 <Guilt Free>를 들고 나타났을 때, 그는 꼭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사람이거나. 앨범을 받아 들기가 두려웠다. 손을 대는 순간, 베이거나 데이거나 녹아버리거나 얼어붙을 것 같았다. 시디를 넣고 음악을 듣고 나서야, 그 연유를 알 것 같았다. 그야말로 살과 뼈를 녹이고 태워서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음악들. 차가운 듯 뜨겁고, 날이 선 듯 부드럽고, 들숨인가 하면 날숨인. 사이보그의 짜고 뜨거운 눈물 같은 음악.

그리고 몇 달 후 첫 단독 공연 무대도 기억한다. 삼면을 바리케이드처럼 둘러싼 테이블, 테이블 위 세 대의 컴퓨터와 생수, 퇴로를 막고 있는 영상 막. 공연 내내 그는 처음 위치한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이 없었다면 정지 화면이라 우겨도 될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고 컴퓨터를 조작하고 밴드와 시선을 맞추는 때를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소한의 언어로, 무대 위에 가만히 존재했다. 나는 무대 아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있었음에도, 그저 앉아 듣고 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도, 심장이 떨렸다. 자주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예민한 완벽주의자라고 칭한다. 동의한다. 자신의 살과 뼈와 피를 동력으로, 수만 개의 예민한 촉수를 움직여, 원하는 곳에 가 닿는, 최초의 생명체 혹은 미지의 생명체.

못(Mot)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트위터에서 우연히 서로의 팬이었다며 인사를 나눈 것을 계기로 다른 두 누나와 더불어 친해지게 된 후, 다른 예술가들과 의기투합하여 남극과 칠레를 다녀오고, 지금은 그의 두 반려견 호드와 이를 가끔 봐주는 사이가 되는 동안, 나는 그를 보면 늘 언제나, 무언가 먹이고 싶어진다. 뭐라도 먹여야만 마음이 놓인다. 어여 먹으란 말이야, 내 눈앞에서. 이걸 다 먹지 않으면 안 보내줄 테다, 묶어놓고 사육이라도 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를 위해서는 고기가 필요하다. 제 살을 태워 살고 있는 사람이니, 미안하지만 다른 살 도움을 받자꾸나. 그의 외양을 보아서는, 풀이나 과일, 이슬로 이루어진 초식동물의 식탁을 차려야 될 것 같지만. 그는 사실 고기를 아주 좋아한다.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그래서 그를 위해 오랜만에 안심스테이크를 준비했다. 소스는 필요 없다. 약간의 소금만 있으면 될 일. 그리고 스페인식 돈까스를 넣은 버거. 어린애처럼 감동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슈거 카페인 리퀴드, 편의점 도시락

솔로 앨범 나올 즈음에 말야, 저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었어. 앨범 준다고 만났을 때는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더라. 마음 아파서. 죽다 살아온 사람 같더라? 너 없이 누나들끼리 만나면 저러다 이언 죽겠다, 걱정들을 얼마나 했는지. 맞아, 그때 주변 사람들도 다 그랬어. 얼마나 걸렸지? 6년. 마지막 일 년은. 정말 암흑이었지.
그때 정말 힘들었어. 한계를 봤거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가장 밑바닥. 앨범 내고 정상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한 일 년은 더 걸린 것 같아. 공연도 앨범 작업의 연장선이었잖아. 공연에 사용될 라이브 영상을 코딩해서 만들었는데, 노래 연습 합주 연습 와중에 밤새워 프로그래밍을 해야 되는 거야. 공연을 앞두고 보름 정도가 남았는데, 이걸 다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드니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패닉 상태까지 왔었어. 약으로 버텼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세상에 보여줄 가치가 있는 게 뭔가 싶어. 아무리 좋은 품질의 물건이 있다 해도, 아동들 노동 착취해서 만들 가치는 없는 거잖아. 어떤 아티스트를 그렇게까지 혹사시켜서 만들어야만 할 게 뭔가. 옳지 않아. 그때 깨달았어. 나는 내 삶을 존중하지 않고 있었구나. 예술이라는 예술지상주의에 사로잡혀서.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이언을 더 존경하게 된걸? 이런 완벽주의자가 있을까. 특히 그 노래, ‘SCLC(Sugar Caffeine Liquid Cloud)’, 와 정말, 미치게 좋았거든.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고마웠어. 단순한 팬심을 넘어서 창작자로서 존경심이 깊어졌지.

완벽주의. 그 말에 수긍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성격적 결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미화될 일은 아냐. 그렇게 작업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내일은 없어, 오늘 만들다 죽어도 좋아, 완벽해질 때까지, 불나방처럼. 세상은 더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안 돼. 완벽주의자들은 머릿속으로 완벽한 계획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이루거든. 불완전한 대로 실행에 옮기고 해가면서 또 고치고,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돌아가는 거야.

그때 뭐 먹고 살았어? 먹기는 했어? 설탕, 커피와 술, 구름과자? 편도. 편도가 뭐야? 편의점 도시락. 하루 세 끼를? 아니 하루에 하나, 건너뛸 때도 있고. 먹는 데 시간을 쓸 수가 없어서. 알약이 있다면 그걸 먹었을 거야. 씻지도 않고 외출도 안 하고,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먹고 씻고 그랬거든. 한 손으로 입에 넣으면서 한 손으로 작업하면서.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었어. 맛도 모르겠고.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뇌가 고장 난 상태였던 것 같아. 작업이 끝나면 나한테 이런 보상을 해줘야겠다, 달콤한 기대감 같은 게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뭘 생각해봐도 날 즐겁게 해줄 만한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 거야. 아무것도. 그때 내가 본 거는 지옥의 한 조각이었던 것 같아. 들여다봐서는 안 되는. 지금 생각해봐도 소름이 돋아. 사람이 얼마나 영혼이 텅 비면 그렇게 아무 욕망이 없을 수 있을까?

치아바타에 스페인식 돈까스를 넣은 버거와 심플한 안심스테이크.

먹구름을 향해 달려가는 차 안에서

어쩌다 음악을 하게 된 거야? 전파공학을 전공했잖아. 원래 컴퓨터를 좋아했고. 프로그래밍에는 재주가 있었어. 음악보다는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해. 컴퓨터로 이것저것 해보는 와중에,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온 거야. 신세계였어. 듣기만 하던 걸 만들 수도 있다니. 용돈 받으면 작곡책 사서 공부하고. 하이텔 음악 동호회 활동도 하고, 공모전에 출품해서 입상도 했었어. 게임 음악 알바도 하고. 고등학교 때? 우와 능력자잖아. 아니야 사실 난 남들이랑 똑같이 노력했을 때 결과는 평균 이하야. 남들만큼 하려면 남들의 120% 해야 해. 열심히 해서 겨우 남들만큼만 하니까 억울하잖아. 자존심도 상하고. 그럴 바에는 더더더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잘하는 수준까지 가자. 그런 태도가 습관이 된 것 같아. 내 고통과 노력으로 뭔가와 교환하는 게 익숙해진 거지. 내가 조금 고생을 하면 더 나은 것을 받아오니까, 내 몸을 갈아 넣으면 뭐든 얻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면서. 내가 고통을 견디는 건 소질이 있거든.

우리 남극 갔을 때 기억 난다. 썰매 타러 간 적 있었잖아.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비닐 같은 거 타고 내려오던. 거기까지 가려면 비탈을 꽤 기어 올라가야 했는데, 나는 한 번 하고는 다시 못 가겠더라고. 힘들어서. 그런데 이언은 세 번을 탔어. 어찌나 즐거워하던지. 그날 기지로 돌아와서 앓았을걸 아마? 아, 그랬던 거 같다. 내가 스키 타는 걸 좋아하더라고. 대학교 계절학기에 스키 수업이 있어서 학점 때울 겸 놀 겸 신청했는데, 다른 애들은 스키 캠프 가서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데, 나는 스키만 탔잖아. 야간스키 새벽스키. 예전에 운동 중독도 있었지 않아? 달리기나 웨이트 같은 거. 승부를 내는 스포츠는 안 좋아해. 내가 이기기가 쉽지 않거든. 그래서 승부는 피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운동을 좋아하지. 웨이트는 고통을 숭배하는 거잖아. 원리 자체가 근육에 무리를 줘서 상처를 날 정도로 혹사시킨 다음에 회복하면서 강하게 자라게 하는 원리거든.

고통 숭배자 같다. 하지만 120% 노력해야 보통 수준이 된다는 말엔 동감하지 않아. 난 좀 천재라고 생각했거든. 남극에서 나와 칠레 여행했을 때 기억나지? 차 렌트해서 가는데, 먹구름을 통과한 적 있잖아. 그때 다섯 명의 예술가가 함께했는데, 그 묘한 경험을 그 어느 누구도 작품으로 만든 사람이 없어. 음악으로 만든 이언이 유일해. ‘먹구름을 향해 가는 차안에서’가 그날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거 맞지? 음악 듣는데, 그때 그곳으로 돌아간 거 같더라. 아, 이게 이언의 몸을 통과한 그 시간이구나. 어떤 찰나가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현현하는구나. 정말 짜릿했어. 그랬구나. 어쨌거나 그런 순간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할 것 같아. 무식하게 나를 재료로 갈아 넣어서 나를 인신공양하는 작품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차올라 저절로 툭 던져진 작품.

나는 그를 보면 늘 언제나, 무언가 먹이고 싶어진다. 어여 먹으란 말이야, 내 눈앞에서. 그를 위해서는 고기가 필요하다. 제 살을 태워 살고 있는 사람이니, 미안하지만 다른 살 도움을 받자꾸나. 그의 외양을 보아서는, 풀이나 과일, 이슬로 이루어진 초식동물의 식탁을 차려야 될 것 같지만 그는 사실 고기를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오늘의 실패한 날씨는 성공이다

못 1,2집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언 목소리만 들렸어. 이토록 우울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라니. 그 다음엔 가사가 들어왔는데, 이 사람 시인이구나 그랬어. 가사 쓰는 데 제일 애를 먹였던 곡은 뭐야? 가사만을 따지면,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붙이려는데 멜로디에 어떤 가사를 넣어도 안 어울려. 곡이 약간 동요 같은 느낌이어서 서정적인 느낌을 받아들일 멜로디가 아닌 거야. 생각해서 구체화시키면 우스워지고. 그런데 어느 날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갔는데, 막상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가 아니더라고, 그래서 오늘 날씨는 실패다, 돌아가자, 라고 걔들에게 말하는데, 그 순간 풀렸어. 논리적이고 완전한 문장을 쓰려고 하니까 안 되더니, 말이 안 되는 가사를 중얼중얼 생각의 흐름 그대로 두니까 되더라고.

강아지와의 산책이 도움을 줬네? 산책은 자주 해? 매일. 비 오거나 완전 폭염일 때 아니면 최대한 매일 하려고 해. 그것도 일종의 강박 아니야? 얘들은 그것만 기다리고 있잖아. 책임을 다하고 싶었어. 좋은 삶을 누리게 해주고 싶고. 생명을 기르면서 예전엔 몰랐던 걸 알게 돼. 우리는 왜 사는 걸까, 삶의 비밀 같은 거. 우화처럼 말야. 얘들이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 갑자기 두려워지는 거야. 이 세계가 사라지면 어쩌지? 하고. 한 생명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낄 때 동시에 슬픔이 같이 오는 거지. 그래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거야. 삶이란 게 뭘까. 무슨 의미가 있어서 삶은 계속되는 걸까.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거야. 반짝이는 순간들이 너무 예뻐서 그걸 보려고 이어지는 거라고. 반짝이는 어떤 순간들 때문에. 반짝여보려고. 반짝임을 시도해 보려고. 반짝이는 기억을 되돌려보려고.

그런데 이언은 절대로 안 늙을 거 같아. 지금도 그 나이라고 누가 믿어. 전에 이언 공연 조카애랑 같이 갔거든? 공연 끝나고 조카애가 네 나이를 묻더라? 나이를 알려줬더니 그러는 거야. 고모, 음악은 사람을 안 늙게 하나 봐요. 자기보다 몇 살 더 많은 줄 알았대. 참 내.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네 나이의 두 배가 넘는다고. 사실 내가 나이 드는 일에 자각이 안 돼. 나도 늙겠지? 지금도 늙고 있는 중이고. 그런데 실감은 안 나. 일생을 하루 시간표 짜듯 그려봤어. 아홉 시에 기상해서 열두 시에 잔다 치고, 지금 나이면 하루 중 몇 시인가. 네 시 반 정도 됐더라고. 아침 점심을 지나 아직 반짝이는 햇빛이 있는, 하루가 꽤 지났지만, 또 생각해보면 제법 많이 남아 있는. 저녁에 재미있는 일도 많잖아. 밤에만 즐거운 일들도 있을 수 있고. 혹시 운이 좋으면 한두 시까지 놀다 잘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하면 더 신나지는 거야.

알록달록한 컬러로 재미나게 먹을 수 있는 타파스.

햄버거에 대한 명상

아무래도 육체만 안 늙는 게 아니라, 정신도 안 늙는 거 같아 이언은. 아, 입맛도. 초딩 입맛의 대가잖아. 그렇지. 그런데 미식가 초딩이라고 해줘. 맛을 좀 아는 초딩. 오늘은 뭐 먹었어? 빵하고 스크램블에그, 베이컨, 소시지.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네? 집에서 요리를 하기도 해? 햇반이랑 스팸, 계란 해서 차리기도 하고, 알리오올리오도 만들어 먹어. 훌륭한 요리사는 못 되지만. 좋아하는 건 나도 만들어 먹는다구. 치아바타 샌드위치 같은 거. 어제는 맥모닝 시켜 먹었어. 그건 언제 먹어도 맛있어. 역시 초딩 입맛이군. 난 늙어서도 입맛은 비슷할 거 같아. 어릴 때 좋아했던 건 아직도 좋아. 덜 좋아지는 게 없어. 추이가 일정하게 갈 거 같아. 햄버거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야. 건강한 맛? 햄버거가 건강한 맛이면 왜 먹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맛, 그게 진정한 버거지.

아 햄버거 하니까, 기억 나는 게 있는데, 어릴 때 생일파티를 하겠다고 엄마한테 생일상 차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 스무 명 정도. 메뉴에는 반드시 햄버거가 들어가야 한다고. 철딱서니 없는 얘기였지. 그땐 변변한 햄버거집도 없던 때잖아. 그런데 나는 엄마가 가정 선생님이어서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주곤 했거든. 손수 패티 만들어서? 응. 그걸 먹어보고 너무 맛있었는데, 친구들은 못 먹어봤겠지 싶은 거야. 엄마가 만든 햄버거를 먹게 해주고 으스대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햄버거 생일상을 차려주셨어? 그 많은 애들을? 응.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만찬이었어. 으쓱으쓱했지. 엄마가 경양식집 데려가서 양식 먹는 예법 같은 걸 가르쳐준 기억도 나. 포크 쓰는 법이랑 수프 먹는 법이랑, 밥은 숟가락이 아니라 포크로 먹으라는 것까지. 그런 기억이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다들 이언을 채식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해. 맞아 다들 비건이냐고 물어봐. 그런데 난 고기를 더 좋아해. 고기라면 다 좋아. 고기를 먹기 위해 가축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거 보면, 안 먹어야 되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아직까지는 나의 미식의 즐거움은 버리지 못해서. 다른 방향으로 응원하고 후원하기로 했어.

전에 어떤 해외 뮤지션 내한공연 때 이언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 존 카메론 미첼이 내한했을 때 못의 ‘날개’를 불렀었어. <헤드윅> 콘서트 때. 아 맞다. 그런데 그 노래는 어떻게 알았대? 자기 말로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좋아서 불렀다는데. 그 노래를 얼마나 맘에 들어했는지 우리를 공연에 초대해서 백스테이지에서까지 불렀었어. 그때 그 사람이 감독했던 영화 <숏버스>가 개봉 중이어서 극장 무대 인사를 하러 다녔는데, 그 자리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날개’를 그렇게 부르고 다녔다네? 한복 입고.

정말 마음에 들었나보다. 최근에 언니네 이발관 기타리스트 이능룡하고 같이 작업을 했잖아? 이능룡 기타의 멜로함이 좋았어. 음악적 이유도 중요했지만, 사람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 예민함이 비슷하기도 했고. 함께 작업을 하려면 서로 조심스럽고 존중하고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이 사람 참, 나도 어디 가서 착한 걸로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나를 악당으로 만들어버리는 부분이 있더란 말이지. 작업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어. 이전의 못 작업은 개성적인 고유의 색에 초점을 맞추는 실험적인 작업이었다면, 나이트 오프 작업은 내 고유함과 다른 고유함이 합쳐져 미묘한 색을 만드는 조화로운 작업이었다고 할까? 조금 겸허해진 것 같아. 예전에는 내가 다 통제하고 완벽해지려고만 했는데, 이제 일정 부분 남한테 맡겨도 된다는 걸 배웠어. 어찌 보면 성장이지.

성장한 이언의 모습을 보는 건 참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하지만 나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조금씩 성장하면서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다. 80이 되어서도 어린애 입맛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가 80이 된 생일에,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생일파티를 해주는 일을 상상해본다. 그의 늙은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날개’나 ‘나의 기념일’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햄버거를. 그때까지 나도 늙지 말아야지. 서로 반짝이면서. 글/ 천운영(소설가) 에디터/ 김지선

※ 이이언은 2004년 밴드 못(Mot)의 데뷔 앨범 <Non-Linear>를 들고 세상에 나왔다. 2012년에는 솔로 앨범 <Guilt Free>로 이이언만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이어나갔다. 9년 만에 나왔던 못의 3집 앨범 <재의 기술>을 마지막으로 계속 새 앨범을 준비하며 팬들을 애태우는 중이다.

※ 소설가 천운영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외에 장편소설 <잘가라 서커스> <생각>을 출간하였다. 서울 연남동에 스페인 음식점 ‘돈키호테의 식탁’을 열었다. 요리는 직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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