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관한 절박함

새해를 앞두고 더욱 절박하게 시간을 움켜잡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치 비트코인처럼 시간을 채굴해낸 미치광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해피 뉴 이어!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는다. 더 보고, 더 경험하고, 더 생각하고, 세상을 완전하게 체험하고픈 욕구는 커져가는데, 당혹스러우리만치 시간은 달려간다. 하루 24시간을 늘리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시간이야말로 능력의 편차를 극복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이자, 열정의 실체를 구현할 수 있게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듯 시간과의 싸움에 몰두했던 이들의 웃지 못할 일화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절박한 시간 싸움은 빈한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발자크, 그도 다르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야망도 야망이지만, 채권자들의 끊임없는 독촉에 시달렸던 그는 최대한 깨어 있는 시간을 늘려야 했다. 사업에 소질이 없으면서도 줄곧 일을 벌인 터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진 빚만 해도 5만 프랑이었다. 매일 자정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글에 매진하고도 여전히 시간이 부족해, 때로는 48시간 연속으로 집필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그가 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탈고 리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무거운 엉덩이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광선을 뇌로 올려보내’ 지적인 활동을 더 오래 지속하도록 도와준다며 평생 커피를 즐겨 마셨다. 죽기까지 5만여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니, ‘즐겨’ 마셨다기보다는 죽기 살기로 배 속에 들이부은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평범한 커피로는 2주 이상 효능이 지속되지 않는다며, 점점 더 강력한 커피를 개발했다. 그가 ‘끔찍하다’고 표현한 일종의 걸죽한 콜드 브루 커피는, 공복에 마시면 ‘뇌를 향해 불꽃이 발사’되어, 창의력, 기억력, 은유 능력, 논리력, 상상력 등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발자크가 커피를 연료로 한 증기기관차였다면,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마치 전시를 기획하듯, 잠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고 조합하며 시간을 구성해나간다. 20대 초반에는 하루에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며 발자크를 모방했고, 나중에는 세 시간에 한 번씩 15분짜리 쪽잠을 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요법을 따랐다. 실제로 다 빈치가 그의 천재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분할수면’을 통해 하루 6시간씩, 평생 20년에 달하는 시간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아티스틱 디렉터 직을 맡으며 정상적인 수면 사이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오브리스트는 여전히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시간을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침 6시 반에 잡혀 있는 그의 첫 스케줄은 ‘살벌하게 일찍 만나기 모임(Brutally Early Club)’인데, 평소 각자의 스케줄로 바쁜 동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쉽지 않으니, 아예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모이자는 취지다. 발자크가 슬슬 눈을 비비며 펜대를 잡았던 밤 12시가 되면, 오브리스트의 집으로 한 명의 어시스턴트가 찾아온다. 그는 오브리스트와 교대로 잠을 자며, 그의 부지런한 고용주가 세계 각지의 아티스트를 찾아다니며 녹취한 2천 시간 분량의 인터뷰 파일을 활자화하는 작업을 돕는다.

글쓰기에는 어지간히 이력이 났을 장 폴 사르트르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와 함께 글 작업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57년, 극도로 초조해하던 실존주의자 애인의 모습을 회고한 적 있다. 사르트르는 새로운 책을 쓰고 싶었지만, 시대를 대표하던 저명한 지식인의 스케줄은 이미 너무도 빽빽했다. 결국 그는 매일 2백 밀리그램의 암페타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루 정량 10밀리그램인 약을 종일 군것질거리처럼 씹어 먹은 것이다. 그는 평소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며 흡족해했고, 혹자는 그의 입에서 암페타민 한 알이 녹아 없어질 때마다 원고가 한 페이지씩 완성되었다고 했으나 결국 부작용이 심해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건강 또한 극도로 나빠졌다. 그렇게 완성한 <변증법적 이성비판>은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가 되었다.

마이클 커티즈는 38세의 나이로 미국 땅을 밟았다. 1차 세계대전으로 어수선했던 유럽에서 이미 64편에 달하는 영화를 찍은 후였음에도, 할리우드는 그의 창작욕을 한껏 더 불타오르게 했다. 그는 다섯 시에 기상해 가장 늦은 시간까지 스튜디오에 머물다가 마지못해 퇴근하는 생활을 이어갔고,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점심식사를 포기해버렸다. ‘일을 위한 악마’라고 불리었던 그는 연기, 무대, 조명, 영상, 편집 등 모든 부분을 세밀하게 조율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였으니, 시간이 남아날 리 없었다. 결국 할리우드에서만 총 1백2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커티즈가 감독한 <카사블랑카> 속 재즈맨이 ‘시간은 흐르고(As Time Goes By)’라며 흥얼거렸다면, 알렉산드르 류비셰프는 흐르는 시간을 정교한 관개수로 속에 가두어 완벽하게 통제하려 했다. 초인이 되고 싶었던 26세의 생물학 전공생 류비셰프는 하루 24시간에 대한 사용 내역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습관은 56년 후 사망하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졌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 완벽에 가까운 효율성을 자랑했다. 곤충분류학, 철학, 역사학, 수학 등 호기심이 가는 모든 분야에 걸쳐 1만2천5백여 장에 달하는 논문을 남겨두고 갔던 그였기에, 류비셰프를 기리는 학술대회에서는 발표자가 바뀔 때마다 그의 직업이 달라지는 모습이 연출될 정도였다.

더러는 기발하고, 때로는 기이하리만치 처절하게, 야속한 시간의 뒤통수를 좇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반응시간을 1/100초 줄이고 싶다”며 나이키 농구화 밑창을 개조한 코비 브라이언트가 그렇고, ‘꼴통’임에 틀림없는 외과의사 이국종이 그렇다. 이른 아침 튀어나가기 위해 “씻고, 입고, 신고, 가방 줄까지 잡은 채” 잠든다는 어느 고시생 이야기는 슬프기까지 하다. 시간에 관한 절박함은 평생 안고 가야 할 테다. 수많은 레졸루셔니스트(Resolutionist, 이루지도 못할 새해 다짐을 떠벌리는 사람)의 한 명이 된다 하더라도, 새해를 맞는 다짐에 너그럽기를.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구 회일(프리랜스 에디터)
출처

Tags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