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시애틀에서 포틀랜드까지, 두 도시를 촘촘하게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여행기.

스미스 타워 35층에서 바라본 시애틀 전경.

스미스 타워 35층에 위치한 차이니즈 룸.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시애틀의 하늘은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로 환영인사를 보냈다. 시애틀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누군가 이렇게 말하곤 했다.

“It’s Real Seattle.”

출발 전 복습했던 영화 <만추>의 한 장면처럼 잿빛 하늘이 이 도시의 첫인상을 만들었다. 여행자에게 관대한 이 도시에서 기념품 가게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엽서 같은 순간을 만들고 싶다면 몇 개의 선택지가 있다.

전지적 시점에서 ‘신의 놀이’를 하고 싶다면, 두 개의 고공행진 코스가 당신을 기다린다.

하얀색 삼각 지붕이 이정표 역할을 하는 스미스 타워는 42층 높이의 건물이다. 1914년에 설립된 이 빌딩은 한때 시애틀의 첫 최고층 빌딩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1층 로비에서 놀이기구처럼 느껴지는 클래식한 수동식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 창살 사이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오피스 풍경을 통과하여 35층에 내리게 된다. 360도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발을 디디면 시애틀 입성을 선포하는 시그너처 컷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초현실적으로 빼곡하게 솟아오른 빌딩 숲과 드넓은 바다에서 하얀 스크래치를 만들어내는 배들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차디찬 바다 바람으로 심신이 축축해졌다면 ‘차이니즈 룸’의 칵테일이나 위스키로 체온을 은근하게 올려봐도 좋다.

이 정도 높이에서 큰 감흥을 얻지 못했다면 1962년 ‘최고층’이라는 영예의 왕관을 가져간 스페이스 니들로 향하면 된다. 150m 높이, 비행선 모양의 이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다면 저 멀리 솟아 있는 레이니어 산봉우리까지 조망할 수 있다. 그 장관을 오롯이 감상하려면 두 뺨을 강타하는 칼바람과 인생 셀피를 건지려는 인파를 견디는 것이 관건이지만.

데이비드 보위 사진전이 열리는 EMP 박물관.

왼쪽에 보이는 스페이스 니들, 오른쪽은 EMP박물관.

초스피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번쩍이는 건물을 향해 걷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EMP 박물관이 있다. 프랭크 게리가 지은 미래적인 동굴로 들어가면 지금 한창 데이비드 보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쪽 벽면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Space Oddity’를 들으며 기차에서 콩을 먹거나 쪽잠을 자는 록스타의 흔치 않은 일상을 볼 수 있다. 사진가 믹 록(Mick Rock)이 찍은 데이비드 보위의 사진 전시는 3월 11일까지 이어진다.

 

Seafood Paradise

시애틀은 해산물 애호가들에겐 파라다이스나 다름없다. 어디선가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고, 심지어 공원 모퉁이에서도 거대한 갈매기를 마주치고 흠칫 놀랄 만큼, 이 도시는 바다를 매 순간 의식하게 된다.

캐피톨 힐의 거리 풍경.

시애틀에서 힙하게 뜨고 있는 동네인 캐피톨 힐에 위치한 멜로즈 마켓에 가면 오이스터 바를 꼭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품종별로 모양, 맛, 풍미가 미묘하게 다른 각양각색 오이스터 플래터는 생기와 활력 그 자체다. 샴페인이나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다 보면 수북이 쌓인 껍질이 언제 텅 비었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

리얼 시애틀을 경험할 수 있는 해산물 어드벤처 ‘솔티스 온 알키 비치’

오이스터 테이스팅.

리얼 시애틀을 경험할 수 있는 해산물 어드벤처 ‘솔티스 온 알키 비치’

와인 숍이자 바로 운영되는 로버트 람세이 셀라에서 맛본 와인.

좀 더 본격적으로 먹어볼 작정이라면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 ‘솔티스 온 알키 비치(Salty’s on Alki Beach)’ 브런치 코스를 추천한다. 엘리엇 베이 해안에 위치해 있어서 도시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으로 손꼽는 곳이다. 설치작품처럼 아방가르드하게 쌓아 올린 각종 해산물과 보트만 한 포크 장식물에 입이 떡 벌어진다. 두 손 가득 바다 향이 짙게 밸 만큼 호탕한 식사를 즐기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연어는 시애틀의 생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늘이나 후추처럼 스파이시한 향을 가미해서 훈제한 연어와 캔디처럼 달콤하게 가공한 연어의 맛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전망이 좋은 연어 전문 레스토랑 아이바스 섀먼 하우스.

시애틀에서 근사한 ‘연어의 밤’을 보내고 싶다면 클래식한 레스토랑 ‘아이바스 섀먼 하우스(Ivar’s Salmon House)’도 괜찮은 선택이다. 원주민의 전통 가옥을 재현한 이곳은 곳곳에 해군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배의 일부를 인테리어로 사용하기도 했다. 유니온 호수를 곁에 두고 있어 노을 지는 저녁의 창밖 풍경이 멋스럽다. 연어의 맛이 가장 물오르는 계절은 통상 가을이다. 10인용 테이블을 가득 채우는 다채로운 연어 및 해산물 요리와 함께 워싱턴 주 로컬 와인을 즐기며 시애틀에서 가장 느리게 흐르는 저녁을 맞이해볼 것.

 

Made in Seattle

시애틀의 주요 관광 좌표를 찍은 후엔 본격 탐식의 서막을 열어젖힐 차례다. 당신의 위가 그 어떤 음식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이버 시애틀 푸드 투어(Savor Seattle Food Tours)’를 권하고 싶다. “다양한 먹거리를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맛본다”는 모토 아래 시애틀의 명물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맛집을 순례하는 프로그램이다.

형형색색 간판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마켓 개장 시간에 맞춰 오전 10시에 집결한 전 세계 푸디들은 책상에 삥 둘러앉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고백을 마친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가이드의 뒤를 따랐다. 오늘의 투어를 이끌어줄 캐나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배고프시죠? 제가 충분히 먹게 해드릴게요.(웃음) 자, 그럼 비스킷부터 시작해볼까요?”

세이버 시애틀 푸드 투어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핑크색 우산.

투어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핑크색 우산이 활짝 만개했다. 이날 아침에 마주한 생동감 넘치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풍경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베트멍이라고 해도 믿을 쿨한 주황색 앞치마를 툭 걸치고서 생선 모형까지 동원해서 한 편의 호객 뮤지컬을 펼치던 수산물 코너의 ‘피시 가이즈(Fish Guys)’에게 홀딱 정신을 빼앗겼다. 흠집 있는 아티초크를 럭비공 던지듯 쓰레기통에 명중시키던 채소가게 청년의 퍼포먼스는 좋은 식재료에 대한 당찬 고집처럼 느껴졌다. 그날 과일가게에서 시식한 빨간 사과는 내 평생 먹어본 중 가장 달콤하고 과즙이 넘치는 열매였다.

마켓에서 가장 경쾌한 구역, 피시 가이즈.

하나씩 전부 맛보고 싶은 싱싱한 채소.

1907년에 오픈한 이 마켓은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운동으로 살아난 이력이 있다. 시장의 타일 바닥엔 후원자 이름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시애틀에서 가장 자주 마주쳤던 단어는 ‘Local’이다. 마트든 패션 편집숍이든 지역에서 나온 재료와 지역 디자이너들이 만든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이 도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Made in Seattle’이란 캐치프레이즈가 아닐까?

 

All about Coffee

시애틀의 낮 시간은 커피와 함께 흐른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시애틀을 상징하는 기업 중 하나는 스타벅스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위치한 스타벅스 1호점 문 앞에는 오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한다. (문 닫기 직전에 방문하는 것이 나름의 팁이라고 누군가 귀띔했지만, 캐피톨 힐에 위치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 테이스팅 룸이 훨씬 더 다채로운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캐피톨 힐에 위치한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의 생생한 원두 로스팅 현장.

강력한 압력에 의해 원두 선별이 이루어지던 카페 아파시오나토의 진공관.

원두를 로스팅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설계도처럼 최첨단 장비와 시스템으로 펼쳐서 보여주는 장엄한 스케일의 인테리어가 시선을 압도한다. 진공관을 타고 빠르게 회전하는 원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술술 흐른다. 또한 이곳에는 세 가지의 원두를 커피의 맛과 향에 잘 어울리는 각각의 초콜릿과 함께 테이스팅할 수 있는 메뉴가 있다.

원두의 신선도와 다양성을 보여주는 스타벅스 인테리어

스타벅스에서 맛본 초콜릿과 커피의 마리아주.

지역의 소규모 카페 곳곳을 탐방하고 싶다면 커피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로드 도그스 시애틀 브루어리 투어(Road Dog’s Seattle Brewery Tour)’는 다양한 맥주, 증류주 양조장 투어와 함께 커피 투어도 진행한다. 흰색 승합차에 오밀조밀 모여 앉아서 커피의 역사부터 시작해 최신 트렌드까지 구석구석 알려주는 살뜰한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투어에 동행한 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시애틀에는 2백 개 정도의 로스터리 숍이 존재한다. 시애틀이 커피로 조명받는 이유는 전적으로 이 도시의 스산한 날씨 덕이라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안내한 카페 아파시오나토(Caffe Appassionato)는 커피를 사랑했던 베토벤에게서 모티프를 얻은 클래식한 공간이다. 보통은 가스로 원두를 로스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스모키하고 깊은 맛을 끌어내기 위해 나무를 태워서 사용한다고 했다.

카페 아파시오나토의 아메리카노.

시애틀에서 방문했던 카페 중 기억에 남는 또다른 곳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인 라 마르조코에서 오픈한 카페다. 카페 바로 옆에 라디오 방송국이 자리하고 있어서, 실시간 방송하는 모습을 유리창으로 볼 수 있다. 머신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만큼 매달 그들이 큐레이션한 브랜드의 원두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커피 투어 덕분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톡톡히 경험했다.


MUST PICK

마린 하드웨어(Marine Hardware)는 시애틀에서 트렌디한 쇼핑 거리로 떠오르는 발라드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이다. 저녁에 방문한다면 5코스로 이루어진 셰프 테이스팅 메뉴(65달러)를 추천한다. 섬세한 맛의 조합이 돋보이는 작은 요리들을 좋은 와인 페어링과 함께 즐길 수 있다. 

4741 Ballard Ave NW, Seattle
www.ethanstowellrestaurants.com

Tour Info

로드 도그스 시애틀 브루어리 투어의 커피 투어 체험은 세 시간 동안 총 세 곳의 카페를 방문한다. 가격은 79달러이며 참가자들에게 맥주 샘플러, 티셔츠, 텀블러와 같은 기념품도 증정한다.

1427 Western Ave, Seattle
seattlebrewerytour.com

세이버 시애틀 푸드 투어는 오전 10시에 시작되며 주말엔 오후 2시 타임도 있다. 가격은 41.99달러이며 인터넷을 통해 예약 가능하다.

1501 Western Ave, Ste 301, Seattle
savorseattletours.com

Where To Stay

W 벨뷰 호텔에 머문다면 호수가 보이는 룸을 추천한다. 약 2백50개의 매장이 모여 있는 쇼핑 타운인 벨뷰 컬렉션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10455 NE Fifth Pl, Bellevue
www.wbellevue.com

 

How To Go

델타 항공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까지 연결하는 직항편을 운영한다.

ko.del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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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기타 취재 협조/ 시애틀관광청(visitseattle.kr), 미국관광청(www.gou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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