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파리서의 7박8일

잘생긴 코끼리, 재잘거리는 원숭이, 우아한 기린, 날렵한 표범들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WHERE
THE WILD THINGS LIVE

1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
2 사파리 캠프의 텐트.

복숭앗빛 해돋이에 잠이 깬 후, 커다란 캐노피 침대에 누워 차를 홀짝이다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스위트 룸의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진 창문 밖으로는 푸른 언덕과 그 너머로 반짝이는 푸른 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 그림 같은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요란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줄무늬 얼룩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녀석들은 우리의 존재를 잊은 듯, 커다랗고 노란 이빨로 덤불을 씹어 삼키며 웅성거렸다. 오두막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선 열한 마리의 기린과 마주쳤다. 그들은 어렴풋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다 무리를 지어 돌아서곤 숲속으로 우아하게 몸을 숨겼다.

에그 베네딕트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직원들에게 동물들과 마주친 얘기를 했더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코원숭이들이 빨래를 낚아채거나 수영장 물을 마시는 건 아주 흔한 일이라고 했다.

처음 보츠와나로 가족 사파리를 떠나기 전, 나는 10대 딸들과 함께 앉아 그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챙겨주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경고한 것은 아이들이 이 상황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동물을 발견하는 것이 운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악의 상황은 아마 당분간 인터넷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은 모두 틀렸다. 카사네(Kasane) 공항에 착륙하자 깔끔하게 제복을 입은 경비원의 안내로 깨끗한 고급 수송기를 타고 응고마 사파리 오두막(Ngoma Safari Lodge)으로 날아갔다. 큰 길을 따라 차를 몰아 초베(Chobe) 국립공원을 지나면서 운전자에게 차를 세워달라 요청하기도 했으며, 캐러멜 컬러의 임팔라 떼와 새끼들과 터벅터벅 걸어가는 흑멧돼지 떼, 기다란 풀 속으로 숨어들기 전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우리를 무섭게 노려보던 옅은 갈색의 야생고양이, 그리고 거대한 기니새 떼를 보았다.

예상했던 불편한 점이라면 어메니티를 적게 챙겨줬던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 묵은 것뿐이었다.(그래도 얼룩말 소리에 잠이 깨거나 하지는 않았다.) 밖에서 보면 우리 방은 마치 전통적인 초가집처럼 보였지만, 안쪽은 모두 세련된 콜로니얼(Colonial)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나무 바닥, 사주식 침대와 바삭바삭한 리넨 침구, 더블 싱크대, 캡슐이 완전히 채워진 네스프레소 머신(그리고 끝없이 제공되는 홈메이드 비스킷)이 갖춰져 있었고, 테라스 안팎으로 강력한 샤워기가 자리해 있었다. 물론 와이파이도 훌륭했다.

 

수년간 BBC 다큐멘터리를 시청해온 나는 이곳에서 금빛으로 일렁이는 평원을 보게 될 거라 기대했는데, 막상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신록의 언덕이 가득한 모습으로, 영국의 도싯(Dorset, 잉글랜드 남서부 지역)을 떠올리게 했다. 여기에 28℃를 웃도는 화창한 날씨마저 영국의 여름과 닮아 있었다. 가이드인 존이 말하길, 약 15만 마리의 코끼리들이 살고 있는 이 구릉 형태 공원의 면적은 1만km2가 넘는다고 했다. 실제로 보니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가늠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신에 끝없이 이어지는 임팔라 무리(과연 ‘덤불의 맥도날드’라 불릴 만큼 자주 보였음), 금빛 찌르레기, 이번 시즌의 형광 핑크, 녹색, 연한 청록색 등이 뒤섞인 듯한 눈부신 라일락 빛깔의 가슴을 가진 롤러카나리아 무리까지, 우리는 눈에 들어오는 동물의 종류를 50개쯤 세다 멈추었다. 해 질 무렵,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돌아가기 위해 정신없이 숙소로 향하다 귀를 쫑긋 세운 거대한 수컷 코끼리와 마주쳤다. 코끼리가 돌아서기 전까지 우리는 똑같이 놀란 얼굴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촛불 아래의 저녁식사는 세 코스로 이뤄져 있었다. 아스파라거스 수프, 겨자 소스와 딸기 무스를 곁들인 돼지고기, 여기에 입 안을 상큼하게 해주는 소르베까지 먹고 나니 너무 배가 불렀다. 포만감을 안고 이불 속에서 추리소설을 읽다 야간 일정을 못 나갈 뻔했으니. 하지만 야간 활동을 고집하는 두 아이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밤길을 내달렸다.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내다가 번개 맞은 나무 위를 회전하던 거대한 부엉이를 가리키기 위해 존이 손전등을 번쩍였고, 한편에서는 기린 무리들이 주변을 배회하는 사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다음 날엔 워터 사파리 코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즐기는 걸 포기하고, 변화무쌍한 야생동물 퍼레이드를 감상하기 위해 오두막을 떠나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강에 도착해 5분도 안 돼 역시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차양이 있는 모터보트를 타고 출발했는데, 모네도 깜짝 놀랄 만큼의 파랗고 노란 수련들이 마치 카펫처럼 물 위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모네의 그림과는 달리, 악어 떼를 지날 때엔 절대 밖으로 손을 뻗어선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가 들려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우리 뱃머리의 아래쪽에서 킁킁거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분홍빛을 띤 갈색의 거대 생명체가 나타났다. 바로 하마였다. 뱃사공은 황급히 보트를 반대로 몰았다. 하마는 얼핏 자애롭게 보이지만, 그들의 포악한 성질과 거대한 몸집은 때론 엄청난 위협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배를 침몰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 후, 버빗원숭이들로 가득한 바오밥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다가 문득 이곳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울적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빅토리아 폭포

다음 날에는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사파리 클럽의 테라스에 앉아 완벽에 가까운 진토닉을 마시며 15마리의 엄마코끼리와 아기코끼리가 조심스레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반면 또 다른 근처에는 거대한 독수리 떼가 나무 하나를 온전히 자기 구역으로 만들어놓았는데, 너무 가까워서 그들의 꽥꽥거리는 울음 소리와 톡 쏘는 고약한 악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떤 것을 이 경험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방문객들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폭포였다. 폭포는 살아 있는 그 어떤 야생동물보다 길들여지지 않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천둥 소리가 나는 연기(빅토리아 폭포를 일컬음)’의 위력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완벽하게 촬영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실제로 옷이 흠뻑 젖은 데다 주머니엔 물이 가득 차서 휴대폰 하나는 고장이 났고, 다른 하나도 이상해져서 차라리 호텔에 두고 나올 걸 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스릴을 추구하는 첫째 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려 지프와이어를 탈 때 크게 나올 수 있도록 클로즈업 샷을 찍어달라고 안달이었다. 그동안 나는 둘째 딸과 침실로 가서 카드놀이를 했고, 객실 창문 아래에서 드라마틱한 폭포의 모습을 평화롭게 감상했다. 한편에서는 심술궂은 한 마리 악어가 흑멧돼지 가족을 지겹도록 쫓아다니고 있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느껴지는 모험을 끝내고 나니 놀라울 정도로 허기가 졌다. 차로 조금 떨어진 전통 음식점 보마(Boma)에서는 흑멧돼지 스테이크와 쿠두(Kudu, 아프리카산의 몸집이 큰 영양) 스튜를 곁들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어 세비체, 뇨키, 벌집 아이스크림을 아주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던 사파리 클럽 레스토랑의 음식이 좀 더 맛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보츠와나로 돌아가 세 번째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가 탈 6인승 프로펠러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 시간을 앞당겨 운행했고, 목적지인 리니안티(Linyanti)에 있는 사부티(Savuti) 캠프에 도착하자 비가 쏟아졌다. 카굴로 덮개를 씌운 랜드로버를 타고 물에 잠긴 도로를 따라가는 동안 여기저기 부딪히고, 진흙탕에 차축이 몇 번씩이나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캠프에 도착해서 커다란 우산과 뜨거운 수건을 들고 환하게 웃는 스태프들의 환영을 받으니 큰 위안이 되었다. 한 직원은 망가진 슬리퍼를 고쳐준다며 가져가기도 했다. 우리는 몸을 떨면서 날개 젖은 코뿔새도 몸을 숨기고 있는 초가집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시멜로가 들어간 핫초코를 마셨다. 창문 너머로 앞쪽 수로에서 코끼리들이 행복하게 놀고 있는 모습, 작은 물고기들을 뒤쫓는 물총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뒤 산책로를 따라 첨벙첨벙 걸어 호화로운 가족용 스위트 룸으로 향했다. 사주식 침대와 소가죽 러그, 코퍼(Copper) 싱크대를 갖춘 방에서 우린 두 시간가량 푹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해는 베란다를 가로질러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갈대가 우거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노포크 브로즈(Norfolk Broads, 특별 보호를 받는 영국 최대의 습지대)가 떠올랐지만, 이곳의 갈대는 하마들을 숨겨주기 위해 존재했다. 그림 같은 장소에 우리를 데려온 가이드 앤디는 차를 세우고, 아이들을 위한 탄산음료와 하이볼 잔, 얼음으로 채운 커다란 아이스 백을 꺼내더니 갑자기 긴장한 듯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안주용 간식을 깜빡 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캠프로 돌아가 식사를 했고, 물 밖에 있는 하마가 낄낄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범뷰라 평원(Vumbura Plains)이었는데, 능숙한 여성 조종사가 모는 또 다른 소형 전용기에 탑승했다. 도중에 수많은 새끼들과 이동하는 거대한 코끼리 무리, 멋진 쿠두 떼를 지나쳤다. 쿠두의 가슴에 있는 꼬인 뿔과 커다란 털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리셉션 구역에 더블 매트리스 크기의 화구, 은색의 우드 데크와 그네를 갖춘 범뷰라 평원은 인테리어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을 자랑했다. 이러한 오두막이 자연 경관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친환경적인 방식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더 놀랐다.

 

범뷰라 평원의 패밀리 스위트.

방도 마찬가지로 웅장했는데, 우리 집 거실 크기만 한 샤워 부스,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는 거대한 창문, 그리고 외부에는 프라이빗 수영장이 갖춰져 있었다. 아이들은 방에 머물며 게임을 즐기고 싶어했지만, 강제로 끌어내 밖으로 나가 생애 첫 사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청회색의 사자 수컷 네 마리가 덤불 밑에서 졸다가 이따금씩 커다란 꼬리를 흔들었고, 한 쌍의 아름다운 얼룩무늬 표범 새끼들(암컷과 수컷)이 어미가 사냥하는 동안 풀밭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표범들이 으르렁거리다 통통하고 얼룩덜룩한 발로 서로를 때리는 모습에 매혹되었고, 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여기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하나 더 있었다. 인적이 드문 모래밭 길을 따라 흰 옷을 입은 웨이터 두 명이 온갖 집기가 완비된 바(Bar)를 차려놓았는데, 주홍빛과 자주색의 장엄한 일몰을 마주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비치해둔 것이었다. 그곳에 놓인 의자부터 이를 둘러싼 그림 같은 풍경까지, 모두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쇼를 보기 위해서 자리를 잡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빅토리아 폴 사파리 클럽: 7박, 아프리카 알비다 관광 및 야생 사파리 포함,  성인 1명당 약 £5450부터, 성인 2명과 12세 이하 어린이 2명에 포함된 어린이 1명은 약 £4925부터. 사우스 아프리카 항공료 포함(www.rainbowtour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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