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에 살고 계신가요?

양태인 ‘아뜰리에 태인’ 대표
한남동 남산맨션(1972년 준공)

1972년 세워진 남산맨션은 외국인을 위한 호텔 겸 레지던스였다. 소담한 로비와 근사한 복도가 여전히 작은 증거로 남아 있다. 라이프스타일 컨설팅 디렉터 양태인은 남산맨션의 다른 층에서 2년,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5년의 시간을 보냈다. 늘 쓰던 가구와 기르는 화초만으로도 다른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오래되어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그 믿음을 더욱 확고히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인상은?

중국 상하이에 갔을 때 창이나 문은 옛날 그대로 남겨두고 현대적으로 고친 멋진 건물을 많이 봤다. 옛 건물의 뼈대를 빼고 안쪽에만 털어내서 공사하는 게 비용이 두세 배 더 든다는데 정성을 들여서 그런 건물을 만드는 게 너무 멋있고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비슷한 건물에 살려고 낙원아파트와 남산맨션을 점찍어뒀는데 이곳의 복도를 보는 순간 KO 당해 바로 계약했다.

 

 

이곳에 살아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

손님들이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여름이나 겨울에 차 타기 불편하고 나뭇잎이나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 게 귀찮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하다 보면 별일 아니다. 배관이 오래돼 종종 녹물이 나오긴 하지만 생수를 사 먹고 정수기도 있다. 개선할 수 있을 정도의 불편함이다. 한 동에 모여 살아서 서로 거의 다 안다. 아래층에 마트와 카페가 있어서 오며 가며 사랑방처럼 이용한다. 나는 원래부터 아날로그가 잘 맞는 사람이라 불편하기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원래 한국과 미국이 합착해 만든 호텔이자 레지던스였다가 외교관이 빠져나가면서 거주 공간이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위니테 다비타시옹과 비슷한 건축 언어가 엿보인다. 김수근이 건축한 다른 남산맨션은 철거되었지만 이곳은 꼿꼿하다.

처음 구조 그대로 남겨둔 것과 바꾼 것은 무엇인가?

예전 낮은 층 집은 옛날 실버 새시와 나무 문을 그대로 썼다. 좀 춥긴 해도 분위기는 따뜻했다. 지금 집은 전 세입자가 말끔하게 고쳐놓은 상태다. 콘센트와 난간이 남아 있는데 요즘 난간처럼 밉지 않아 맘에 들고 콘센트는 110V짜리 외국 가전을 바로 쓸 수 있어서 유용하다.

 

이웃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1층 가게에는 80세가 다 되어가는 할머님이 의상실을 운영하시고, 문은 닫았지만 오래전부터 운영하던 치과를 오롯이 남겨 놓고 가끔씩 추억하러 들르는 의사 할아버지가 계시다. 패션 업계에 종사하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산다.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확고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이곳의 사계절은 어떤가?

어딜 가나 계단의 디테일에 끌리곤 한다. 이곳의 계단 역시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외부 계단과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사계절 내내 예쁘다. 특히 가을에 환상적이다. 나는 가을이 못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봄의 화사함과 여름의 푸르름보다 가을의 강렬한 빨강, 주황, 노랑의 팔레트가 이렇게 예쁜지 처음 알게 되었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