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 엄마가 되는가

늦게 귀가하는 아이를 데리러 나온 엄마가 “아직도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고 묻는 괴담이 있다. ‘엄마’가 나를 실제로 위협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자신이 자식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밝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유발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보살피며 아낌없이 희생하는 어머니’상이 일종의 신화이고 훈육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더라도 저 이상에서 놓여나는 일은 쉽지 않다.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가 좋아할 만한 엄마, 모두가 인정할 만한 엄마를 가졌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런 엄마는 세상에 없다.

입히고 먹이고 씻기는 엄마 외에 다른 엄마들이 있다. 미친 엄마, 나쁜 엄마, 슬픈 엄마, 자식을 키우는 것 외에 다른 기쁨을 원하는 엄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식이 최우선인 사람이 그녀임을 확인하려 굴고, 이 확신에의 요구 때문에 일종의 심판자를 자처한다.

“그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모른다. 솔직히 그리워하긴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틀림없는 건 날 참혹하게 다시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내가 선생답지 못한 야한 화장을 한 채 술 담배 냄새를 풍기며 쓰러졌을 때, 그녀는 배신감에 활활 타는 눈으로 째려보다가 나를 길거리에 방치하고 멀어져갔다. ‘어이. 아줌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날 버리는 거요?’”(김이듬,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중). 모든 기대가 배반을 유발하듯이, 엄마는 자식의 모든 것을 보듬으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눈치챘겠지만 엄마는 어쩌다가 엄마가 된 사람이다. 엄마는 곧 집이 아니며, 집밥도 아니고 요람도 아니다. 엄마는 우리 모두가 생애 처음 만나는 낯선 여인이다.

“내가 한 소녀가 혼자 공중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신문기사를 읽다 말고 늙으신 엄마에게 그 코끼리 아이의 안부를 물었더니//그 아이 엄마는 죽고 그 아이 아빠는 탄광에 다녔어/하나도 잊지 않고 대답해주었다”(김혜순, ‘분홍 코끼리 소녀’ 중). 누군가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저 신성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코끼리를 낳는 것처럼, 두렵고 한없이 고독하며 기댈 곳 없는 그녀를 더욱더 몰아세우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렵고 고독한 사람은 엄마가 되지 않는 걸까? 엄마는 언제 엄마가 되는 걸까? 아이를 낳는 순간? 아이를 기르는 순간? 아이로부터 떠나가는 순간?

“구멍 사이로 엄마의 마른 손가락이 보이자 해머를 들어 발을 내리쳤지 사랑해, 엄마. 사랑해. 세상 모든 바다에 쏟아지는 햇살만큼 그 빛에 반짝이는 모래알만큼 엄마를 사랑해 눈물샘과 콧구멍으로 잘게 부숴진 구슬이 쏟아져도 엄마는 보이지 않고”(강지혜, ‘커다란 발을 갖게 되었다’ 중). 엄마는 영원히 오해받고, 영원히 낯설겠지만 영원히 사랑 받는다.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는 단 한순간을 누린다. 엄마는 자식에게 사랑을 주기도 전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받는다. 우리 모두 아기였을 때 우리가 사랑을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때 엄마는 엄마가 된다.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한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 존재로부터 사랑을 되돌려 받길 원했다는 사실, 내가 그토록 약하고 작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내게 사랑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 Kakao Talk
  • Kakao Story

Tags

Credit

에디터
김 복희(시인)
일러스트 The Bridgeman Art Library, Getty Images
출처
49151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