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엄마됨’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넌 후회할 거야! 그렇게 돼. 아이가 없는 걸 후회한다고!”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의 <엄마됨을 후회함>의 서문은 엄마가 되길 원치 않는 여성들을 향한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시작된다. 엄마가 되지 않으면, 여성들은 후회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고되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하고 멋진 경험이며, 이 소중함을 모르는 인생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어딘가 불완전하다. 엄마가 되기로 ‘아직’ 결심하지 않은 여성들은 늘 이런 메시지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렇다면, 엄마가 된 여성들은 후회하지 않을까?

드라마 <마더>의 배우 이보영은 엄마가 된 이후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왜 나한테만 모성을 강요할까’란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왜 신랑이 아이를 안고 있으면 자상한 아빠가 되고, 내가 안지 않으면 차가운 엄마라고 하는 건지 저와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매일 혼나는 느낌이 들었죠.” 이는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느냐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여성은 아이를 갖는 순간 강력한 모성을 지닌 완벽한 엄마가 될 것을 당연하게 요구 받는다. 대중매체에서도 모성 신화로부터 벗어난 작품을 만날 기회는 흔하지 않다. 드라마는 평생 고생만 하면서도 자식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는 엄마, 피치 못할 이유로 자식을 떠났지만 부와 권력을 안고 돌아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엄마, 심지어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내세우는 엄마들로 가득하다. 많은 ‘악녀’들이 용서 받을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식을 버렸기 때문이며, 이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엄마인 여성이 자신의 삶에서 온전한 주체가 되려는 순간은 대개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엄마라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엄마가 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그러면서도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 아닌 여자를 보는 것은 드문 경험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엄마들을 끈질기게 그려낸 이가 자타공인 보수주의자이자 고집 센 가족주의자인 김수현 작가라는 사실은 묘한 아이러니다. 이를테면,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3대가 한 집에 함께 사는 ‘판타스틱 김수현 월드’에서 자녀 세대의 결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흔한 가족 드라마처럼 보였다. 하지만 주인공 한자(김혜자)가 환갑 생일에 온 가족을 모아놓고 안식년을 요구하면서 이야기는 생각지 못했던 영역으로 뻗어간다. 한 여성이 평생 수행해온 가사노동과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감정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 노동의 수혜자였던 가족, 특히 자녀들은 일단 당황하고 그다음에는 엄마가 너무 이기적이라며 화를 낸다. 오나 도나스의 말처럼 “엄마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들을 상징적으로 돌본다. 아이에게 묶여 있다는 엄마들의 경험은 ‘엄마는 엄마’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한다는 요구와 기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들은 한 여성의 삶에 대해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 여성이 엄마됨을 거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이 던져진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김수현 작가의 2013년작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기획 의도에서부터 “여자는 어머니이기 위해 한 여자,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포기해야 하는 걸까라는 은밀히 금기시된 명제에도 조용히 의문을 던져본다.”고 말한다. 이혼 후 딸과 함께 친정에서 지내던 주인공 은수(이지아)는 부유하고 매력적인 남자와 재혼하며 아이와 이별한다. 어느 정도의 세속적 욕망과 새로운 남편에 대한 애정이 모성을 넘어선 것이다. 은수는 두 번째 결혼에서도 행복을 얻지 못한다. 그는 아이를 낳아 상대에게 넘기고 다시 이혼한다. 하지만 그는 징벌당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헤어져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인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은수는 ‘엄마’라는 자리에 인생을 던져넣는 대신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선택했다.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뿐이다. 그리고 ‘엄마다움’에 대한 질문을 더 이상 금기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를 낳은 여성의 숫자만큼이나 제각각인 ‘엄마’들에 대해. 그들이 때로는 얼마나 비슷한지, 하지만 실은 얼마나 다른지. 글/ 최지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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