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과 이양희의 연습곡

고전음악 연주자로 훈련받은 오민은 현대예술가다. 전통무용수로 훈련받은 이양희는 컨템포러리 안무가다. 두 아티스트 모두 뿌리로부터 벗어나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길을 천연덕스럽게 닦아나가고 있다.

딘가 짓궂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듯한 단편 영상 작업으로 출발한 아티스트 오민은 2014년의 작업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 이후로 서구 고전음악의 구조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였던가. 그는 점차 ‘불안의 감각’을 연구하는 미술가로 각인이 되었고, 서울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자주 눈에 띄었다. 최근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인 ‘에튀드’ 연작은 그러한 성과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인식의 기술’이라는 새로운 테마로 시선을 돌렸음을 보여줬다. 그와 비슷한 시기, 이양희는 100개의 모듈로 구성된 행위 단위를 조합해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는 안무 프로젝트 ‘더스크’를 선보였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안무를 생성해내며, 이를 통해 한국 전통무용이라는 원형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손쉽게 포착되고, 버젓이 눈에 보이는 현상의 저변을 질문하는 두 아티스트의 만남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 작가의 작업을 보면, 레고 블록 앞에서 자신만의 내적 논리에 몰두해 있는 꼬마 아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유년 시절 어떤 아이였는가?

오민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몸이 약해 잔병치레를 많이 했는데, 자주 아프니 늘 불안했고 이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지 항상 고민했다. 그리고 주변을 관찰했다. 무엇을 먹으면 아픈지, 무엇을 먹으면 빨리 낫는지. 지금 생각하면 몸의 예민한 변화를 주시하는 습관은 공연자에게 중요한 자산 같다.

이양희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아이였다. 자전거를 타고 옆 동네까지 가기도 하고, 동네 만화가게에서 아저씨, 오빠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만화책 보고 그리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서 잘 자고. 유년 시절부터 춤을 연마했고 굉장히 자유롭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반복적으로 학습한 것은 한국 전통무용의 춤사위를 ‘잘 춰내는 것’이었다. 전통무용 움직임의 구조, 작품들의 구성 원리, 혹은 몸과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오민 작가는 통제를 할수록 오히려 더 도드라지는 ‘불안의 감각’을 고스란히 재현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고, 이양희 안무가는 통제 행위를 일종의 수양 행위, 리추얼로 접근하며 그 안에서 생겨나는 만족과 안정의 기분을 공유하고자 하는 듯하다.

오민 기본적으로 작업을 할 때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불안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든 내재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부인하거나 없는 것처럼 숨기지 않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가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불안은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나를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또 멈출 수 없게 한다.

이양희 도제 교육 방식으로 교육을 받으며, 가장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통제와 관리 안에서 예술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개인적으로 질문이 많은 성향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이 통제된 시스템 안에서도 많은 질문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한국 전통 춤의 형태와 형식의 제약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되어 나중에는 공연 예술이 사회에서 맺는 관계와 현상들에 대한 관심으로 질문의 폭이 확장되어갔다. 내가 주로 질문하는 것은 공연예술의 가치, 소유, 향유다.

오민 작가의 근작 ‘연습곡을 위한 연습곡’은 시선을 연습하는 이양희 안무가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오민 나는 늘 관계가 궁금하다. 최종과 연습. 몸과 악기. 몸과 소리. 저자와 공연자, 그리고 관객. 무용과 음악.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기술과 사유. ‘에튀드의 에튀드’는 안무가의 창작 연습인 ‘연습무의 연습무’와 연주자의 연주 연습인 ‘연습곡의 연습곡’의 두 편으로 구성된다. 이양희 안무가는 ‘연습무의 연습무’에서 창작을 위한 연습을 한다. 공연뿐 아니라 창작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견지다. 올해 초 피아노 연습곡에 대한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연습곡 안에 들어 있는, 혹은 연습곡이 발생시키는 수많은 관계 요소를 찾았고, 이를 관찰했다. 시간, 공간, 몸, 구조 등 관계를 구성하는 기본적 토대에 대해서 근본부터 재고하고 또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양희 Unlearn, 배운 것을 고의적으로 다시 잊는 연습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2014년에 완성한 작품이 있다. 이 ‘언런’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 한국무용의 원형에 대한 질문은 나의 원형을 정립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올해 초 오민과 대화를 하다가 이것이 당시 오민이 진행하던 작업 ‘에튀드’와 접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양희의 원형들 중 1번은 시선, 즉 ‘눈으로 본다’의 개념이었다. 오민이 내게 소개한 ‘에튀드’의 개념은 이양희 원형의 1번이 소품 형식의 공연으로 발전하는 형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연습무의 연습무’는 그 ‘눈으로 본다’라는 원형을 만들기 전의 단계, 즉 눈으로 보기 위해서 수행해야 하는 특정 연습들의 모음이다. 보는 행위가 춤을 출 때는 보통 간과되어온 점을 오민과 나눌 수 있어 좋은 경험이였다.

이양희 안무가는 스즈키 메소드 이수자로도 알려져 있다. 오민 작가는 “손가락 근육의 미세한 부위를 필요한 속도와 궤도를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반복하고 연습하던 습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그러한 연습을 손가락에서 몸 전체로 확장한 것이 스즈키 메소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민 작가는 스즈키 메소드를 배워보았는가?

오민 스즈키 메소드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이양희로부터 들었던 스즈키 메소드의 사유 방식에 공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도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양희 스즈키 메소드는 신체의 훈련을 기본으로 한 공연예술가의 가치와 태도에 관한 수양이다. 오민과 훈련 행위 자체보다는 철학을 많이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두 분은 구조의 문제 등을 탐구해나가는 데 있어서, 멋있는 인문학적 담론이라거나 최신식 기술을 끌어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투입한 노동의 결과물만을 내놓는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의 현대예술계에서 고유한 힘을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 공연예술을 전공한 데서 개발된 능력으로 생각해도 좋을까?

이양희 그렇다고 믿는다. 집중적인 훈련은 강인한 주의 집중과 신체 구사 능력을 동시에 선물한다.춤과 의식이융합되는몰입의상태를 나는투명한상태(Transparent State)라고말하는데,오랜신체훈련과공연경험은이투명한상태에 좀 더 빠르게 접어들게 해 준다.이것을 수 백 번 경험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은 본인의 삶에 대한 가치와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오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연주가 매우 투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연주자의 생각, 기술, 노력,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 무대 위에서는 무엇인가를 숨기기 어렵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붙잡으면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술 작가로서 질문들을 추적하며 작업하는데, 이 질문들 역시, 연주 못지않게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투명한 것들이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고, 무엇을 발견했고,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지 않으면 내가 딛고 올라갈 단단한 바탕을 만들기 어렵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좇는 질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대를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이 품은 질문들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민 11월 24일, 25일 이틀에 걸쳐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될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다. 작곡가 줄리아 울프의 ‘릭’을 처음 실연으로 들었을 때 느낀 이상한 감각의 원인을 추적하여 추출한 요소들을 재료로 하여 만든 공연이다. 이 재료는 ‘릭’이라는 특정 음악에서 발견, 수집됐지만, 어떠한 공연을 만들더라도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질문, 예를 들어 무대의 안과 밖, 인물과 역할, 미리 계획해야 하는 것과 계획할 수 없는 것, 시간성과 운동성에 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번 작업을 통해 공연자의 몸에서 발생하는 신체성을 비롯하여 제작 단계부터 최종 공연의 순간까지 각 역할 사이를 관통하는 운동성에 관해 연구했다. 공연 제목 <강진안, 공연화, 김민정, 김성완, 배기태, 슬기와 민, 신예슬, 신진영, 심우섭, 오민, 이신실, 이양희, 이영우, 이태훈, 장태순, 정광준, 조세프 풍상, 한문경, 허윤경, 홍초선,>은 각기 다른 역할로 공연의 창작과 흐름에 기여하는 인물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이양희 오민과 함께하는 작업을 마치고 내년부터는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작업을 완성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내년 봄에 뉴욕 댄스페이스 프로젝트(Danspace Project)에서 협업 작업이 있고, 지난 8월에 아트선재센터에서 공연한<더스
크>의 뉴욕유럽 공연을 계획 중이다. 내년에 설립될 ‘림보프로젝트 | 리서치랩’과 병행하여 작업에 몰두할 생각이다.  
글/ 구회일(프리랜스 에디터) 에디터/ 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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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회일(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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