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원에서 생긴 일

잘 걷기, 바르게 앉고 서기, 제대로 숨 쉬기, 충분히 휴식하기, 그리고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요가를 시작하기 전엔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요가 - 하퍼스 바자

요가원에 갈 때마다 종종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바닥에 드러누우면 조명이 서서히 페이드아웃된다. 몽환적인 BGM이 낮게 깔린다. 흰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리면 눈가에 그렁그렁 뭐가 맺힌다. 그러니까 이건 현대인이 퇴근 후 마룻바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퍼포먼스다. 위에 묘사한 사바사나(Savasana)라 불리는 일명 송장 자세는 수업의 마지막에 하는 이완 동작이다. ‘뚜루루’ 눈물이 흘렀다며 평소답지 않은 장문의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바자> 편집부 관록의 ‘요기니(요가 수련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 수련자를 지칭하는 말, 남성은 요기라 부른다)’께서 이런 답글을 달아주셨다. “(박수 이모니콘 × 3회) 또르르 흐른 그 눈물이 정화의 시작!”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송장 자세로 땅에 누워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하루 종일 하중에 짓눌려 있던 검은 피들이 쾌재를 부르며 사방으로 솟구치는 느낌이랄까. 짜르르하고 저릿하다. 내 생애 발바닥과 무릎으로 느끼는 일이 올 줄이야! ‘부종’을 숙명처럼 달고 사는 나에게 요가보다 더 적합한 ‘처방전’이 없다. 일 년에 3백 일 정도 부운 얼굴로 수줍게 시선을 떨구는 나이지만 요가 후만큼은 보름달처럼 환해진 얼굴로 거리를 활보한다. 거울 앞에서 나는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요가 수업이 끝나는 저녁 9시는 자신감 지수가 상승하는 순간이다. 혹시라도 소개팅이 들어온다면 나는 이 시간에 만남을 청할 것이다. 요가 후 맞이하는 ‘비포 앤 애프터’는 내일이면 다시 풀려버릴 ‘마법’ 같은 찰나이지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배우 문숙 선생님과 양재천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그날의 기억을 회상해본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들려줬던 말들이 아직도 내 노트 속에 남아 있다. “내가 서른 살 후반부터 요가를 시작했는데 요가를 하기 전과 그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요. 요가를 통해 바르게 숨 쉬는 법, 발바닥으로 올바르게 서는 법을 다시 배웠어요. 학교에서 영어와 수학은 열심히 가르치지만 누구도 어떻게 걷고 앉아야 척추가 아프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잖아요. 젊은 시절에는 몸도, 정신도 뻣뻣했죠. 삶 자체가 힘들었는데 요가를 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어요. 몸이 부드러워지니까 정신도 유연해진 거죠.”

2년 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던 그 말을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다운 도그(두 손바닥과 발바닥을 단단하게 땅에 고정시키고 허리를 접어 등을 쭉 펴는 요가의 기본 자세)를 할 땐 지구를 들어올릴 기세로 중력에 맞섰고, 처음으로 역립 자세(벽에 다리를 직각으로 올려두고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하는 동작)에 도전했던 날엔 비록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방정맞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스스로 단단해진 손과 발의 감각을 느꼈다.

특히 요가 수업 중 긴장되고 경직된 몸을 풀어내는 데 소도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정말이지 신박한 경험이다. 폼 롤러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뒤통수를 마사지하다 온몸에 긴장이 풀려 깜빡 잠에 들곤 했다. 요가 소도구를 야금야금 컬렉팅하는 재미에 들렸다. “요가 매트 한 장만 펴면 공항이든 호텔이든 내 공간이 돼.”라며 해외 출장을 갈 때 매트를 둘둘 말아 지고 가던 선배를 똑같이 따라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요가는 최고로 자연주의적이며 평화롭고 개인적인 수련”이라는 그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지난여름 구례로 나주로 신나게 쏘다니며 여행을 했었다. 낯선 동네를 걷다가 고즈넉한 나무 정자가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위에서 다운 도그를 했다. 그 광경이 얼마나 느닷없고 아방가르드하게 보일지 잘 알지만, 나는 자연 속에 놓이면 더욱 강렬하게 요가가 하고 싶어진다. 요가 도구와 의상은 여행지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만약 내게 힘이 있다면 레깅스를 법적으로 금지할 거다.”라고 질 샌더는 말했다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남은 생애 동안 레깅스를 입고 살고 싶다. 요가로 인해 타이트한 검은색 바지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동안 좀처럼 입지 않던 ‘쫄바지’를 입고 인적 드문 야외에서 펼치는 ‘게릴라 요가’는 갇혀 있던 몸에 대한 해방의 경험을 맛보게 해주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나는 시선으로부터 아주 조금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몸엔 ‘요가복’이 장착되어 있고 발 아랜 옥구슬 같은 ‘릴리즈 볼’이 굴러다니고 있다.) “요가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삶의 길”이라고 말한 위대한 요기 스와미 비슈뉴 데바난다 선생의 말을 받들어 아주 사소하며 일상적인 순간에도 요가의 기술을 떠올린다. 스트레스가 머리까지 차오른 사무실 한복판에서 심연에서 끌어올린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을 때가 종종 있다.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옆자리 선배가 귀에 이어폰을 꼽지 않았어도) 요가원에서 하듯 있는 힘껏 들숨과 날숨을 내뱉곤 한다. 입을 다물고 코로 숨 쉬는 요가의 호흡법이 처음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성대모사’ 수준으로 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것 같은 미세한 숨소리를 흉내 내곤 했으니까. 얼마 전 <블루 재스민>을 다시 봤는데, 예약 시간을 계속 바꾸는 진상 고객이 떠난 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케이트 블란쳇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우 요가 수업 가야지. 심호흡, 길게 들이쉬고… 길게 뱉고 후….” 하는 장면에선 무릎을 ‘탁’ 하고 쳤다. 그 장면 안에서 나를 보았달까?

태릉선수촌에 온 것처럼 ‘경쟁의식’과 ‘한계 돌파’를 강요하던 헬스장과는 사뭇 다른 요가원의 초연한 공기는 가만히 있어도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요가를 한다는 건 생각만큼 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동작 이름 앞에 붙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코브라, 메뚜기, 비둘기 등 온갖 야생동물을 수업 시간에 소환시켜야 한다. 느릿하고 고요한 듯 보이지만 스스로의 몸을 견디고 통제하기 위해선 상당한 근육량과 힘을 요한다. 애나 포레스트가 창시한 코어 중심의 포레스트 요가를 한 날엔 정말이지 닭똥 같은 땀이 후드득 이마에서 떨어진다. 아직 사바사나를 할 타이밍이 아닌데도 너무 힘들어 수건으로 눈을 덮고 드러눕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거북목을 하고서 도시의 잿빛 비둘기처럼 피존 자세(한쪽 다리를 접어서 골반을 풀어주는 자세로 여성들에게 특히 좋은 동작)를 하겠다고 골반을 좌우로 뒤뚱거리는 거울 속 내 모습은 때때로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만큼 애처롭다.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시공간에서 요가를 했던 한 선배는 수업이 끝난 후 내게 말했다. “오늘 요가하는 모습에서 너의 인생의 무게를 보았다. 가슴속 어떤 응어리가 느껴지더라.” 깔깔거리며 애써 과장해서 웃었지만, 어느 한 구석이 아려왔다. 어떤 감정의 응어리를 분출하기보다 삭히는 나 같은 성격의 사람들에게 요가는 육체만큼이나 정신의 근육을 쓰게 하는 운동이다. 수업 중 선생님이 해주는 말들은 심중을 쿡쿡 자극해서 그냥 흘려 보내기가 어렵다. “애쓰지 마세요, 내려 놓으세요,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이것은 곧 요즘 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다.


요가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요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요가를 테마로 한 여행은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휴식, 이완, 회복 이 모든 과정을 낯선 시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리트릿’ 그 자체다. 특히 발리 우붓이란 지역은 굉장히 다양한 요가센터가 곳곳에 있다. 일정에 따라 일주일 프리패스권이나 원하는 날짜만큼의 쿠폰을 구매해서 동네를 여행하듯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다채로운 요가 클래스를 경험할 수 있다. 때때로 논밭 한가운데 생뚱맞게 요가원이 위치해 있기도 한데 닭이 울고 개가 짖고 오토바이가 시끄럽게 지나가도 사람들이 전혀 개의치 않고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실내에서 요가 수업이 이뤄지는 국내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창문이 크게 뚫려 있는 고요한 정자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며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안도 다다오가 지은 뮤지엄 산과 같은 시적인 건물 안에서 명상과 요가를 접목시킨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붓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성 혼자서 요가를 테마로 여행하기에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오롯이 홀로 느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내 경험에 근거해서 7박 8일 기준으로 1백30만원 정도의 예산을 잡으면 항공권, 요가 수련 비용(약 20만원), 숙박과 식비를 적정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지금처럼 하늘이 예쁜 계절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서 리트릿 요가의 즐거움을 경험하기에 알맞은 타이밍이다.

글/ 이선영(써니 요가 스튜디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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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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