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하이볼의 진짜 매력

위스키 하이볼의 진짜 매력은 껴입지 않은 맛 그 자체다. 계절과 기분만이 있을 뿐.

막상 바텐더가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어오면, 문 닫으려는 음식점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초조해진다. 우주에 없는 것도 만들 태세의 바텐더가 하염없이 답을 기다리고 있고, 수없이 많은 위스키는 백 바(Back Bar)에서 제각각 어깨를 곧게 펴고 나를 쳐다본다. 4초 정도 침묵이 흘러 괜히 발뒤꿈치가 들썩들썩 불안해지면 나도 모르게 “하이볼로 시작할까요?”라는 말을 툭 던지고 마는 것이다. 첫 주문으로 위스키 하이볼을 선택하는 손님이라니, 장미에 안개꽃처럼 지루하고 재미없었겠지…. 바텐더가 하이볼 글라스에 재단한 듯 딱 들어맞는 얼음을 한 층씩 쌓을 때마다 후회도 꾹꾹 쌓였다. 레몬으로 글라스의 림을 한 바퀴 돌릴 때에는 이미 다음 칵테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곤 했다. 바텐더가 글라스를 스윽 밀면서 말했다. “식사를 많이 하고 온 손님에겐 위스키 하이볼을 주로 추천해요. 배부를 테니까 좀 개운하게 마시고 시작하자는 뜻으로요.” 칵테일 선택의 이유가 ‘소화 촉진’일 수가. 이보다 더 멋없는 주문이 또 있을까.

지금껏 비운 칵테일의 잔 수가 나보다 족히 세 배는 될 것 같은 어느 남자와 함께 바를 찾았을 때, 그의 첫 번째 주문은 ‘하이랜드 쿨러’였다. 칵테일을 고르는 무드로 치자면 위스키 하이볼을 주문하는 사람들과 비슷했겠지만, 그의 선택은 비단 위를 걷는 것처럼 훨씬 우아해 보였다. 오직 위스키와 탄산수로만 잔을 채우는 위스키 하이볼에 비하면, 하이랜드 쿨러는 위스키에 진저 에일, 레몬즙, 앙고스투라 비터까지 들어가 옷을 여러 겹 더해 입고도 부대낌이 없는 단정한 신사 같은 맛의 칵테일이다. 그 남자의 주문을 옆에서 본 이후로, 한동안 나는 ‘하이랜드 쿨러’를 4초의 침묵을 깨는 비장의 카드로 활용했다.

위스키 하이볼 앞에서 어기대는 웃음을 짓던 5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 바를 찾는 기분도, 술을 마시는 에너지도, 좋아하는 칵테일의 스타일도 달라졌다. 더 가볍게, 더 편하게, 더 쿨하게…. 격식보단 솔직, 지적보단 웃음, 맹렬한 한 달보단 태만한 하루에 더 가치를 두고 살고 싶어졌다. 퇴사를 선택한 것도, 이별 앞에 질척대지 않은 것도 그냥 개운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와르르 몰려온 결과다. 그렇게 위스키 하이볼을 다시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가보는 나라의 공항 밖을 나설 때의 기분이 생각났다. 마셔본 적 없는 칵테일을 손에 쥔 것처럼 설렐 때도 있었다. 어느 때엔 레몬조차 넣지 않은 것이 좋았다. 진저에일이나 토닉워터를 더한 유사 위스키 하이볼을 내려는 곳이나 후추를 갈아 올려주려는 곳에서는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입안에 들러붙는 그 무엇도 없이, 바삭하게 넘어가는 맛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소량의 술과 그보다 많은 양의 탄산이 있는 믹서를 조합하는 하이볼 칵테일 카테고리의 범주는 꽤 넓지만, 하이볼의 최대 묘미는 위스키와 소다를 섞는 일본식 위스키 하이볼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바에서는 조니워커 블랙으로, 집에서는 산토리 가쿠빈으로 하이볼을 마셨다.

갑자기 떠난 지난 주말 2박3일간의 도쿄 긴자 여행을 하는 내내 위스키 하이볼을 마셨다. 음악도 의자도 없는 삼보아 바에서는 얼음마저 없는 위스키 하이볼을 차 한 잔 마시듯 훌쩍 마셨다. 2평도 안 되는 스탠딩 바 MOD에서는 못생긴 얼음을 대충 돌려 투박하게 만든 하이볼 한 잔을 마셨다. 야키토리 집에서는 산토리 하이볼과 산토리 사에 합병돼 무섭게 소비량이 치솟고 있는 짐빔 하이볼을 번갈아 마셨다. 위스키 양이 적어 맛이 꽤 밋밋한 것도, 탄산에 김이 빠져 질감이 좀 재미없는 것도 있었지만 한 번도 과한 하이볼은 만나지 못했다. 잔에 부딪히는 얼음소리마저도 화려했던 적이 없다.

디테일로는 장안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바텐더가 어느 날 두 잔의 하이볼을 눈앞에 내밀었다. 똑같은 양의 술, 똑같은 양의 소다로 만든 하이볼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달라질 것이라는 장담과 함께였다. 5분 뒤 왼쪽 하이볼의 탄산 기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쪽은 향마저도 짱짱했다. 무슨 차이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바텐더는 웃기만 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스터 횟수 차이’, ‘위스키 하이볼 메이킹 디테일’ 등으로 검색어를 돌려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젠 궁금하지 않다! 하이볼을 마실 때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음주인이 되고 싶다. 두 잔 마실 지, 세 잔 마실 지만 고민하고 싶다. 위스키 하이볼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위스키와 소다의 합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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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손 기은
사진 이 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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