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 간판이 없는 이유

‘우주만물’은 다섯 젊은이가 운영하며 잡동사니를 판다. 5년 전에 을지로에 왔으며 아직 간판이 없다. 누군가는 그걸 ‘핫’하다 한다. 을지로가 그렇게 젊음만을 위한 거리이던가? 을지로 철거는 오늘도 계속된다.

사람이 그래도 사람의 힘을 투철하게 믿었던 20세기의 유산과 21세기의 젊은이들이 공존하는 지금의 을지로와 같은 생태계는 다시 건설될 수 없다.

간판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다. 간판 업자들은 잘못이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만 비싸다. ‘우주만물’이 공간을 을지로3가로 옮기고 한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은 지도 2년이 지났다. 처음 이사했을 때부터 간판에 대해 고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판 디자인까지 완성했는데도 아직 간판을 달지 못했다. 을지로에는 간판이 없는 곳이 많다. 그걸 ‘트렌드’로 알고 있는 딱한 공간들도 있긴 하지만.

서울 도심에서 우주만물이 이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공간이 을지로3가에 있었다. 기존 효창공원의 매장보다 크기는 1.4배 크면서 월세는 17만원이나 저렴했다. 교통도, 상권도, 유동인구도, 시설도 딱히 고려하지 않았다. 매달 술값 정도의 수익을 내는 중이었고, 계속한다는 것이 모든 가치에 우선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가 우리로서 살아남는 도전을 하고 있었다. 을지로3가로 이사 온 후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칵테일 바에서 술을 마시는 건 아니다.

우주만물은 달라진 게 없는데 친구들이 달라졌다. 을지로3가와 사랑에 빠졌다. 노가리 골목의 호프집들, 우화식당, 전주집, 동원집, 미정, 오구반점, 을지면옥, 우일집, 원조녹두빈대…. 우주만물 때문에 왔던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술을 마셨다. 우주만물과 거의 동시에 바이자 공연장인 ‘신도시’가 문을 열었고, 다른 친구의 다른 친구들까지 나타났다. 그때까지 이 동네 젊은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퉁칠’ 수 없게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곳저곳에서 내부공사 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을지로가 ‘핫’해지고 있었다.

점심 시간에 점심을 챙겨 먹듯 매체가 을지로에 대해 ‘젊음’ ‘예술’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가난과 생존에 더 가깝지 않나, 지나치듯이 생각했다. 예의는 알았지만 대의는 거추장스러웠다. 더군다나 을지로는 젊음, 예술 같은 말이 덧붙지 않았을 때도 이미 생기 넘치고 예뻤다. 우주만물에게 젊음과 예술은 유리칼처럼, 집 안 어딘가에 있는 건 알지만 쓰지는 않는 물건이었다.

아무튼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전히 ‘매출 0’이라고 적는 날이 적지 않았지만, 우리가 아는 만큼의 일을 자발적으로 해나가는 시간이었고, 을지로에는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말하는 듯한 ‘현장’의 공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명성, 성과, 미래, 인맥 따위를 제쳐두고 순수하게 그 일만 생각할 때 구할 수 있는 행복이었다. 물론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는 의도치 않게 다 망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도심의 공동화된 공간에 젊은 사람들이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느니 심폐소생술을 한다느니 하면서 그곳을 삽시간에 망쳐놓은 숱한 사례를 의식했다. 직감적으로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곳의 어른들이 알려주는 골목의 규칙을 따랐다. 그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것을 모든 일에 우선했다. 동네 어른들과 인사하며 덕담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명동골뱅이와 함께 우주만물 2주년 이벤트를 기획했다.

점점 더 많은 취재 요청을 통해 이곳이 어떤 궤도에 올랐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우주만물의 다섯 구성원은 우주만물을 좀 더 본격적으로 만들려는 고민을 했다. 2년 전, 을지로3가의 좀 더 큰 공간으로 이사한 배경이었다. 지척의 새로운 공간에서 뜻밖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중이었지만, 이제는 사람과 거리가 확연히 바뀐 게 눈에 보였다. 세입자의 불안(월세 올리면 어떡하지?)에 더해, 사회적 약자의 불안(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까지 상대하게 됐다. 그런데 예상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끝이 다가오고 말았다.

공구상과 철물상, 공업소 등이 밀집한 입정동 공구거리 일대 철거를 시작으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시작됐다. 그 한 블록 건너에 우주만물이 있다. 중구청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아직 관리시행인가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됐고, 이 계획은 2023년에 끝난다. 2009년에 처음 결정고시되고, 2014년에 최종적으로 변경 결정고시된 계획이다. 우주만물이 을지로3가로 이사 오기 한 해 전이다.

이 계획이 얼마만큼의 공청회를 거쳤는지를 별개로 한다면, 10년에 걸쳐 변경고시된 계획이라는 점에서 건물주와 세입자, 관과 민간, 개발사와 주민 그 어느 쪽이나 이 상황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커다란 문제를 너무 사소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즉, 커다란 문제를 어떤 타협안이나 절충안으로 좋게좋게 넘어가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매체가 젊음과 예술이라고 썼던 것을 좀 더 보편적으로 풀어쓰려고 한다. 그것은 자발적인 힘이다.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서 하는 일에서, 사람은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다. 자원이 모자라고 능력이 부족해도 방법을 찾고 막힌 길을 뚫는다. 한 사회가 젊은이를 어떻게 대하고, 예술가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 한 사회의 교양과 상식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딱히 드러나지도 계량화할 수도 없는 자발적인 힘을 헤아리는 통찰력 덕분이다. 성숙한 사회는 부수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돈으로 그의 능력을 빌릴 수는 있어도 돈으로 그의 인생을 걸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자발적인 힘에 집중하는 사람 자체도 희귀하지만, 그들을 특정 지역이나 공간에 모이게 하는 것 역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직적인 방식의 계획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관에서 법인에 외주를 줘서 만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들이 동시대의 영민한 한국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왜 그렇게 나른하고 유치한지, 그래서 왜 성대한 시작 이후에 점점 발길이 끊기고 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매해 공간 만들기 연구 용역과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통해 나가는 수십조의 예산이 을지로에 투입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그들이 주택가나 유흥가가 아닌 제조업의 현장에서 ‘그분들’과 이웃으로, 때로는 동지로 일한다는 것은 ‘젊음’과 ‘예술’에 부족한 ‘경험’과 ‘기술’ 그리고 기나긴 시간에 걸쳐 쌓인 ‘환경’을 수혜받는 일이다. 오랜 세월 을지로에서 치열하고 정직하게 제조업을 지켜온 그분들에게 젊은 사람들이, 이 사회가 갚아야 할 빚이다. 한 매체 인터뷰에서 을지로의 한 신생 공간 운영자가 “(이 동네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잘 맞았던” 거고, “운이 좋았던” 거라고 말하는 걸 봤는데, 정말 부끄러운 말이다.

아마 젊음과 예술이라는 단어를 굳이 돌아가는 게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개인적인 선호도 있지만 그것이 대상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는 너무 큰 단어라서, 그렇게 순진하게 넘어갈수록 이 사안이 너무 단순하고 감상적으로 흐르는 듯해서 그랬다. 젊은 사람들이야 호기롭게 낡은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다거나, 구도심을 예술적으로 변모시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관이나 매체라면 그보다 높은 혜안과 언어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젊음과 예술을 강조할수록 가난과 생존이라는 조건은 가려지고, 젊음과 예술은 어느 시대에나 영속한다는 인상 탓에 을지로의 대안이 어딘가 있을 것처럼 여겨지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사람이 그래도 사람의 힘을 투철하게 믿었던 20세기의 유산과 21세기의 젊은이들이 공존하는 지금의 을지로와 같은 생태계는 다시 건설될 수 없다.

올해 우주만물은 5주년을 맞이하고, 간판을 달 수 있을 정도의 운영비는 어렵사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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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정우영(‘우주만물’의 대표 중 한 명)
사진 이윤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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