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액자의 미술사

1885년 4월 30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확신컨대 이 그림은 금색 테두리가 잘 어울릴 것 같구나. 잘 익은 밀 볏짚 색의 벽지를 바른 벽 위에 걸어도 좋을 거야. 실제로 식사 장면을 보면 하얀 벽에 반사되는 화덕과 화덕의 빛이 보이는데 이는 빛나는 액자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반드시 짙은 금색이나 구릿빛 액자를 해야 해.” 내 방 한쪽, 사진 한 장을 두더라도 액자의 재질과 컬러, 질감은 꽤 중대한 고려 대상일 수 있다. 하물며 화가들에게 액자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흐의 작품과 그의 굴곡 짙은 인생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가 작품과 액자, 액자와 벽, 이 모든 것들의 유기적인 시각관계에 각별히 예민했다는 사실은 그저 새롭다. 장식미술 감정사이자 미술사학자인 저자 이지은은 액자의 불가결함을 영화 속 조연의 무게와도 견주어본다. 학계와도 서먹하던 ‘액자’라는 사물에 골몰하느라 카몽도 가문의 보험서류를 뒤적이고 루브르의 문서실을 두드리던 시간들이 그녀의 문장을 연단했다. 그림도 인생도, ‘프레임’을 통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본다.

 

인간 정영목

27년간 200여 권을 번역했다. 알랭 드 보통, 커트 보니것, 필립 로스 등 해외 대가들의 묵직한 인문교양서가 정영목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글을 읽고 쓰는 민족에게 부단히 소개되어 왔다. 그런 그가 자신의 번역 인생을 돌아보는 에세이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를 출간했다. 두 가지의 다른 언어를 품고 더듬고 먹고 숨 쉬고 토해내던 지난 30년 동안 쌓은 번역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퍽 아름답다. 편집자에겐 ‘믿고 맡기는 번역가’, 독자에겐 ‘믿고 읽는 번역가’로 알려진 역자 정영목. 모두가 최고라 치켜세워도 답답하리만큼 진중하고 겸양한, 인간 정영목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번역문 말고 오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사사로운 문장들을 만나보자. 번역가 정영목과 무던히도 닮아 있는, 그가 옮긴 책 한 구절이 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필립 로스, <에브리맨> 중)

 

김복희의 시 쓰기

분명히 우리가 쓰고 듣고 말하며 읽는 언어로 이루어진 글 무리지만, 그것들을 눈으로 더듬어 내림과 함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심상은 기기하고 묘묘하다.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복희 시인은 1986년생이다. 단발과 양장은 집어치우고 사색과 고뇌로 드레스업한, 대략 23세기쯤의 모던걸이 그려진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1930년대 범지구적 문예 트렌드였던 ‘자의식 문학’의 한국 대표, 이상 시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세상, 오늘, 인류에게 ‘시’라는 건 뭘까. 시 쓰는 행위 자체를 ‘시 쓰기화’하는, 그녀의 지독한 시 쓰기를 한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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