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들의 휴가 문화 생활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기 19인이 고른 영화, 드라마, 책, 음악 목록은 기분 좋은 휴식이 될 것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금빛 죽음>

이차령(포토그래퍼)
열대의 여름

휴가철과는 크게 상관없는 생활을 하는 나는 지금 사는 곳에서 떠나고 싶은 계절이 곧 휴가철이다. 길고 추운 겨울에 가장 더운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고 싶다. 열기와 활기 속에서 누워 있다 섰다 춤추다 쉬고 수영하고 칵테일 적당히 마시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곡을 골라보았다. 강렬한 태양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거나 춤출 때가 떠오른 곡 절반, 맑은 산호모래 해변에서 밀려오는 파도 끝에 앉아 있는 것을 떠올린 곡이 절반이다.

Open Air – Leaving’ My Place
Childish Gambino – Feels Like Summer
Sunni Colon – Psicodelic
Michael Franks – Barefoot on the Beach
Tullio De Piscopo – Stop Bajon
Risque – Starlight
Sterling Saint Jacques – Comin’ Into Love
O’Bryan – Is This for Real
Baba Stiltz – Baby
Robin Hannibal – Amends

 


허유(아트 디렉터, ‘모임별’ 구성원)
생각과 편견

비행기에 착석하자 이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이란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승객의 앉은 눈높이에 맞춘, 그러니까 앞좌석의 뒤통수에 붙은 광고 카피다. 즉 거대한 음모였다. 그러므로 저 문구는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장소를 바꿔보는 행위를 통하여 생각과 편견이라는 초접착성의 작용을 ‘바꿀’ 수 있다는 저 말은. 생각과 편견의 고착화에 그 무엇보다 말초적으로 관여하는 광고 문구가 저러한 사항을 이야기하는 모순 속에서 휴가지에 책을 통째로 들고 간다는 것에는 대관절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광고 문구가 현행범이라면 한 권의 책은 마피아 같은 거대 조직이 아닐까? 그 방대함과 교묘함으로 인하여 헤아릴 수도 없고 멸족시킬 수도 없으며 실은 ‘시스템 유지’를 위하여 결코 멸족치 않는, 공생관계에 있는 거대 조직, 책. 두껍게, 얇게, 여러 권으로, 절판본으로, 넓게, 좁게, 세련되게, 낡게, 질리도록 빽빽하게 방직된 ‘남’의 문자언어가 생각과 편견의 전환이라는 일종의 기적을 좇는 여행길에 과연 보탬이 되려는지, 도리어 해악이 아닌지, 해악이라면 그 독을 어떻게 분해/축출하여 이 질긴 병에 영험한 약이 되게 할 수 있을지 고심하며 몇 권을 늘어놓았다.

박성우(엮음) –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박솔뫼 – <겨울의 눈빛>
다니자키 준이치로 – <금빛 죽음>
Didi & Shauba Chang – <I’m Your Vessel and You are Mine>
여느 항공사의 기내지


Childish Gambino – Feels Like Summer

 

황효진(‘빌라선샤인’ 콘텐츠 디렉터)
상상 일본 여행

주기적으로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일본으로 나아갈 수는 없으니 일본의 풍경이 잘 드러나거나, 일본 음식이 많이 나오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일본어가 나오는 드라마 중 좋아하는 걸 본다. 그런 걸 틀어놓고 있으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달래진다. 얼마 전 회사에 취직한 이후 도통 일본 여행을 갈 시간이 없다. 이번 여름에도 결국 상상 휴가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엄청나게 습하고 뜨거운 일본의 여름을 직접 겪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정신 승리 해보면서.

마츠모토 카나 –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사카모토 유지 – <최고의 이혼>
호라이 타다아키 –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
모토하시 케이타 –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키자라 이즈미 – <수박>


신인정(‘프런트데스크’ ‘소설서가’ 운영자)
낱낱의 책장 너머로

너무 짧은 휴가를 얻었거나 혹은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이들에게 단편소설집을 권한다. 호흡이 짧아 꺼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편은 낯선 시선이나 삶의 조각을 엿보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또 하나의 장르다. 가능한 이 세계와 차단되는 기분이 들 만한 이야기들을 골랐다. 낯선 세계와 법칙을 그리는 보르헤스에서부터 고전과 SF까지.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잠시나마 먼 곳으로 다녀오는 기분에 젖어들 수 있을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 – <블러드 차일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알레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라쇼몽>
귀스타브 플로베르 – <세 가지 이야기>
스티븐 킹 – <스켈레통 크루 (상)>


팀 밀러(제작) <러브, 데스+로봇>

찰리 브루커(제작) <블랙 미러>

조 스완버그(기획) <이지>

미깡(웹툰작가)
Short but Sweet

TV나 모니터 앞에 세상 편하게 드러누워 밀린 드라마를 몇 시즌씩 몰아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달콤한 휴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휴가 때에도 이런저런 일들로 여전히 바쁘다면 차선책으로 옴니버스 드라마 보기를 권한다. 순서대로 볼 필요가 없으니 끌리는 내용만 골라 볼 수 있고, 한 편이 짧게는 10분, 길어도 1시간이면 깔끔하게 끝나므로 바쁜 중에도 부담없이 볼 수 있다. 분량은 짧아도 여운은 깊어 하루 한 편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잘 만든 옴니버스 드라마 다섯 작품을 꼽았다.

찰리 브루커(제작) – <블랙 미러>
이윤정 외 – <떨리는 가슴>
조 스완버그(기획) – <이지>
팀 밀러(제작) – <러브, 데스+로봇>
고바야시 소라(PD) – <기묘한 이야기>


황인찬(시인)
방학 숙제라도 하듯이

여름방학 숙제라도 하려는 것처럼 휴가에는 책을 한 권씩 챙기게 된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책을 미뤄두고 살아왔으니 그 빚이 한 번에 몰려오는 것 같달까.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을 벗어나 여유로움 속에서 책을 읽는 맛은 각별하다. 휴가에 어울리는 가벼운 책도 좋고 평소에는 부담스러워 읽지 못하던 책도 좋겠다. 혹은 너무 오래 기다려온 작가의 신작이라 당장 읽지 않으면 안 될 책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책을 꼭 휴가 동안 다 읽을 필요도 없다. 어른의 좋은 점은 방학숙제를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니까!

김혜순 – <죽음의 자서전>
조해주 –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프레드릭 배크만 – <베어타운>
테드 창 – <숨>
호프 자런 – <랩 걸>


정진아(‘오운’ 디렉터)
삶의 계절에서

삶이 궁금해서 사주를 보니 나의 인생은 겨울의 혹한기를 지나 봄을 맞고 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힘껏 잎을 틔웠으니 이제 바람에 한숨을 쉬고 여름의 푸름을 담기 위해 볕을 견디며 비를 기다리면 되겠구나. 삶을 계절에 비유하니 긴 설명이나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름을 살 테고 누군가는 내가 견뎌온 시린 겨울에 있겠지. 살다 보니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마주하고 저마다의 사정이 생긴다. 나처럼 겨울을 지나 봄을 통과하여 여름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를 골랐다.

하모니 코린 – <구모>
톰 포드 – <녹터널 애니멀스>
엠마뉘엘 카레르 – <콧수염>
에단 코언, 조엘 코언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파울로 소렌티노 – <그레이트 뷰티>


Sade – Why Can’t We Live Together

양성준(스케이트보더)
홀리데이를 기억하게 될 단 한 곡을 찾기 위해

남미 여행을 간다고 삼바 음악만 잔뜩 준비한다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난 이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겨울 밤바다를 조용히 보려고 친구와 떠난 여행에서 난데없이 듀스 노래를 내내 들었던 것처럼, 어떤 순간에 어떤 곡이 꽂힐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한 곡이 제대로 꽂힌다면, 그 곡은 그 여행의 테마곡이 되고 그 여행은 평생 잊을 수 없게 된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는 겸손하게 다양하게 만드는 게 안전하다는 걸 힘들게 배우고, 홀리데이 노래를 골라봤다. 어떤 홀리데이가 될지 모르니까 최대한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마 하나는 걸리지 않을까.

Jean-Luc Ponty – Computer Incantations for World Peace
김반장 – 한 이불 속 우리
The Blazer – Virile
Donald Byrd – Where are We Going?
GZA – 4th Chamber
Dr. Buzzard’s Original Savannah Band – Sunshower
Joe Bataan – I Wish You Love (Part 1)
Frankie Knuckles – The Whistle Song
Sade – Why Can’t We Live Together
염따 – 비행 (Feat. Futuristic Swaver)


파울로 소렌티노 <그레이트 뷰티>

임진아(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놀라지 마. 매일에는 내일이 있대.”

휴일에는 내일이 없는 듯이 쉬고만 싶다. 해야 할 일을 잊고 싶다가도 아직 답장하지 않은 메일이 떠올라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이미 휴일이 끝난 기분이다.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내일에 손짓한다. 왠지 낯부끄러워서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 나에게는 내일이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만이 있는 게 아닌, 그야말로 새 문서 같은 내일 말이다. 지친 하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드라마들.

마에다 시로 – <도보 7분>
키자라 이즈미 –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
미야모토 리에코 –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 1>
고레에다 히로카즈 – <고잉 마이 홈>
도이 노부히로 – <중쇄를 찍자!>


조 벨링거 <테드 번디 테이프>

김영글(‘에스팀’ 디렉터)
유영하는 휴가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가감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보이는 것의 매력이 분명 있다. 짜여 있는 것 같은 장면과 질문들 틈 사이로 나오는 진짜 이야기가 보일 때는 쾌감이 느껴진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OBS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게으른 휴가를 보내고 싶다. 수많은 종류의 다큐멘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주로 음모론, 사이코패스, 종교를 다룬 이야기와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한인 트럭커의 삶을 담은 <아메리칸 트럭커> 같은 소소하고 찡한 이야기의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일주일을 통째로 집에서 홀로 보내는 게으른 휴가를 보내고 싶을 땐 각양각색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을 거다.

대니얼 J. 클라크 –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샘 멘데스 – <관음증자의 모텔>
조 벨링거 – <테드 번디 테이프>
롭 마리아니 – <아메리칸 트럭커>
빌 마어 – <릴리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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