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누군가가 보장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겠다. 저녁이 있는 삶은 개인이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간신히 찾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삶은 밤 10시에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저녁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들에 대하여. 

야근이 있는 삶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시작되는 요가 수업을 듣는다. 70분의 수련이 끝나고 8시 40분이 되면 선생님은 언제나 같은 말로 수업을 마친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은 하루는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보내길 바랍니다. 나마스테.” 슬쩍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나마스테” 이후에도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이 열 개쯤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가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 마치 하루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처럼 달려야 한다. 요가로 애써 풀어놓은 목과 어깨의 근육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주 52시간 근무의 시대가 도래하며, 대한민국 전체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워라밸, 외식 대신 집밥, 호모 나이트쿠스 같은 키워드들이 연일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에 오른다.(호모 나이트쿠스가 무슨 뜻인가 싶어서 찾아봤다. 업무가 끝났다고 해서 막연하게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취미나 공부, 재능 기부 등의 의미 있는 활동에 밤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라고 한다.) 그러나 나와 나의 주변인들은 여전히 호모 나이트쿠스로 진화하지 못한 채, 한 달에 일주일쯤은 회사에서 세 끼를 해결하는 호모 오피스쿠스에 머물러 있다. 얼마 전 다른 회사로 이직한 후배는 저녁 9시면 전기를 차단하며 퇴근을 종용하는 회사 덕택에 집에까지 일거리를 들고 오게 생겼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남자친구와 같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업무 카톡이 오면 답을 하게 된다는 선배도 있다. 그것이 일의 성질 때문인지, 업무량 때문인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시스템 때문인지, 혹은 개인의 업무 습관 때문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요인들이 한데 뒤범벅된 채 덩어리가 되어 퇴근 이후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어서,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정신과 육체에 어느 정도 깃들어 있는 피로감에 익숙해져 있다.

사실 시간 관리보다는 시간 낭비가 창조적인 일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해가 진 다음에야 무언가 괜찮은 것들이 생산되며, 낮 시간은 예열 기간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예열 기간은 한없이 늘어지는 반면에 몰입의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겼던 영감의 시간, 즉 저녁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텐션이 걸려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격이 나빠졌다.’ ) 일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창조적인 저녁 시간이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 시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한다. 지난달에 만난 노라노 선생님은 이에 대해 귀감이 되는 말을 들려주셨다. “나는 87세에 죽을 줄 알았거든요. 오래 사는 건 더 많은 일을 하라는 거야. 늙어서 할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해. 그게 바로 죽은 거지. 더 많은 일을 해야 해. 지금 사람들은 120살을 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오래 살 플랜을 세워놔야 해요. 일할 계획. 그거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려면 체력과 능력의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해요. 10%를 남겨두세요. 뛰지 말고 걸으세요. 오래 살면서 오래 일할 플랜을 세우는 거. 이거 굉장히 중요해요. 꼭 기억하세요.” 91세인 그분은 지금도 매일 7시간씩 일터에서 패턴 작업을 하신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라도, 광기 어린 단거리 달리기에 적합한 삶의 패턴을 장거리 달리기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사실 올해부터 몇 가지 일들을 은밀히 시도해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밤 10시 이후에 오는 업무 카톡에 대한 답을 다음 날로 미루기. 그룹 채팅방의 알림음을 모두 무음으로 해 놓고 내가 휴대폰을 확인할 때만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점심이 없는 삶을 추진해보았다. 매일 누군가와 어울려 뭘 먹을지 고민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은 뒤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시간은 만족감보다는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점심 시간에 회사 안이나 밖에서 혼자 느긋하게 밥을 먹는 일은 성공적으로 내 삶에 안착했다. 저녁 약속을 잡는 기준은 철저히 ‘만나면 즐거운 자리’로 한정했다. 본 지 오래됐다거나 왠지 만나야 할 것 같다거나 거절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유한한 저녁 시간을 나누지 않았다. 업무의 절대 시간을 줄일 수 없으니 먼저 업무에서 파생되는 관계들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둔 것이다. 동료와 친구, 공적 대화와 사적 대화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은 나의 경우 이는 쉽지 않은 시도였는데, 다행히도 나의 부재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로부터 ‘노쇼족’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이러한 삶의 패턴은 사실 나의 본성과 썩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시간을 채운 것은 올해부터 함께 살게 된 고양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어떤 결단 없이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양이는 타고난 귀여움만으로 인간을 강제적으로 집으로 들어오게 만든다. 덤으로 저녁 시간은 물론 24시간 내내 잠을 자거나 창밖을 쳐다보면서 무용한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다. 에디터/ 김지선


육아가 있는 삶

9년 차 직장인이자 5년 차 엄마가 된 나를 돌아보자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자전거로 5분 내외다. 더욱이 내가 일하는 직장은 육아에 관해서라면 관대한 편이다. 야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생기면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은 또 있다. 회사의 옆집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인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에 버금가는 ‘옆집이 어린이집’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그렇듯 두 번째 출근은 아이를 하원시키는 저녁 6시부터 새롭게 시작된다.

두 번째 출근은 반가우면서 지리하고, 열심히 하는데도 티도 안 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첫 번째 출근처럼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다섯 살이 된 아이는 예전보다 손이 덜 가지만 저녁을 챙겨주고 씻겨준다거나, 책을 읽어주고 침대 머리맡을 지켜주는 일은 여전히 나의 차지다. 아이와 함께한 5년여의 시간 동안 두 번째 출근은 내게 큰 의미가 되고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출근과 두 번째 출근은 그 어떤 역할로 움직일 뿐, 내가 나로 존재하는 시간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두 번째 출근의 퇴근 시간을 잡아놓았다. 일명 ‘육퇴’의 시간은 밤 9시 반에서 10시 사이.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9시 반을 전후로 대개는 잠이 든다. 아이의 침실을 빠져나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형광등을 끄고, 집 안의 조도를 낮추는 일이다. 신데렐라가 일정 시간만 되면 변하는 것처럼 밤 10시 이후는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직원이거나, 아내가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일과 육아 사이에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렇게 마음을 먹은 뒤로는 밤의 시간을 이전과는 다르게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밤 10시 이후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정리도 하지 않는다. 아침에 허겁지겁 일어나서 치우는 일도 많다. 대신 10시 이후를 위하여 10시 전에 미리 집안일을 해놓는 요령이 생겼다.

글씨를 간신히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된 거실에서 동요 CD를 빼고 좋아하는 CD를 플레이어에 넣는다. 조도와 음악이 바뀐 공간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 정도는 전환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성껏 찻잎을 우리는 날도 있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날도 있다. 요즘 같은 여름엔 시원한 맥주나 레몬을 넣은 진토닉도 제격이다. 기분에 따른 마실거리까지 완성되면 진정한 퇴근이 시작된다. 안락한 캠핑용 체어를 꺼내어 음악만 듣는 날도 있고 스탠드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도 바로 이 시간부터 시작된다. 

혼자 만끽하는 이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외롭다고 생각되는 날도 있다. 그래서 일 년 전부터는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 기능을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처럼 실시간으로 수다를 떠는 것으로 ‘#홍라디오’, ’#약속없는밤의약속장소’라는 타이틀도 달아주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에게 밤 10시는 밖에서 누군가와 만나기엔 부담스럽고 늦은 시간이기에 심야에 거실에서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찾다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을 뿐. 일이나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책이나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이다.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면서 방송을 듣는다는 분들에겐 묘한 동지애를, 내가 모르는 새로운 영화들을 추천해주는 이웃들에게는 감사함을 느끼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물론 아무리 즐겁다 해도 라디오 방송을 매일 할 순 없다. 아이가 잠드는 것만을 기다리다 내가 먼저 잠드는 일도 부지기수며 다음 날 아침에 허탈하게 일어나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도 나는 매일 밤 10시를 기다린다. 진토닉을 타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많지만 그것 역시도 일과 육아를 하기 전의 나의 모습이었으니까. 매일 아침이 오듯이 매일 밤 10시가 온다. 내가 내 자신이 되어 나를 쓰는 시간이 온다. 글/ 이홍안(키티버니포니 마케터)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이홍안(키티버니포니 마케터)  
일러스트 Choi Jeeook
출처
54486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